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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여성의 문제제기와 지혜, 민주노총의 범죄적 성폭력 사건, 노동자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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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3
    이번 민주노총 문제를 바라보면서...
    곰탱이

이번 민주노총 문제를 바라보면서...

(마리신 님의 글에 트랙백을 걸려다가 그냥 혼자 궁시렁대는 글이 될 것 같아서 관두었다.)

 

이번 민주노총 사건은 사실상 예견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번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단순한 성폭력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가부장적인

문제점으로부터 발생했다고 본다.

그래서 인간성 나쁘고 도덕적으로 질 낮은 인간이 저지른 단순하고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재수 없이 미친 개에게 물린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 사실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폭력을 포함한 성적 억압과 착취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며, 그래서 모든 남성들은 자신이 그런 억압과 착취를

하는 것인지도 잘 모르고, 또한 인지하려 하지 않는다.

모든 남성들이 그런 성적 억압과 착취의 이데올로기 교육 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또한 세뇌 당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본은 자기 손을 직접적으로 대지도 않고, 즉 아무런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물론 가족 임금제라는

것이 있지만 흔한 말로 '껌값'도 되지 못한다) 산노동의 피를 한방울도 남김 없이 빨아먹고자 하는데,

이의 토대는 바로 성 차별적이고 성 억압적인 성 분업에 기초한 여성 노동이다.

이를 통해 여성 노동 --> 남성 노동 --> 자본이라는 먹이사슬 구조가 형성된다.  

이것이 여성 노동이 남성 노동과 비교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

그리하여 여성(또는 여성 노동)은 부차적이고 하찮은 것이 되며, 남성(또는 남성 노동)의 지배 대상이 된다.

이때 자본은 이 둘 사이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단이 사적이고 개인적인 일로 치부된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것으로서의 자본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항상 개별적으로만 자본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개별적인 상품인 노동력을 자본이 노동자엑 주는 임금과 교환할 수 있을 뿐이다.

계약이 이루어지는 순간 노동자는 자본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자신의 생존과 주체성을

자본에게 종속시킬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종속시킨다.

이제 노동자는 자본과 한몸이 된다.

자본이 망하면 자신도 망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자본이 노동자 자신을 집에서 기르는 가축(자본은 늘 노동자에게 우리는 한식구라고 말하는데,

이때 한식구라고 말하는 것은 가축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보다 못한기계처럼

대한다고 생각이 들 때, 그는 자기를 대리할 노조를 찾게 된다.

이제 노동조합은 자본처럼 모든 개별 노동자들의 대리인이 되며,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임 받는다.

이렇게 됨으로써 노조는 자본과 마찬가지로 권력체가 된다.

노조는 최전선에서 자본과 대적한다는 이유로 거의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게 된다.

이는 상급단체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자본과 싸우려면 자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은 자본과 동일한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사분란함을 깨는 행위는 모든 반동적 행위로 간주된다.

(이것이 민주노총이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개별적인 개인으로서 노동자는 이중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자본이 망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노동조합도 망해서도 안 된다.

이것이 현재 노동자 계급 대중이 가지고 있는 이중적 속성이며,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는 자기 생산의 토대를 억압적인 성별 분업에 기초한 가부장적인 양식에 두고 있다.

자본이 망하거나 노동조합이 망하거나 또는 이런 토대가 사라지는 것은 동일선상에 있다고 본다.

이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또한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자본과의 투쟁은 개별 노동자에게 양적인 수준에, 즉 임금을 얼마나 더 받는가 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게 된다.

 

노동자의 모순적인 자기 생산 양식으로서의 가부장제의 철폐 없이는

이런 성폭력과 같은 범죄적 사건들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이 사건은 예견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성폭력 사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민주노총의 재발 방지 다짐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그 가해자는 강승규처럼 또 돌아올 것이고,

여전히 노동조합은 절대적 궡력을 휘두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 부분은 어떻게 해야

노동자의 모순적인 자기 생산 양식으로서의 억압적 가부장제를 해체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노동자 대중은 '계급'으로서 자유로이 연합할 수 있는 개인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을 보는 여성의 문제제기와 그 문제제기에 대한 지혜가 너무나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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