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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Intro
2000년 5월의 프랑스 깐느의 맑은 하늘아래, 한국 영화 한편이 전 세계의 영화인들 앞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역량있는 감독들의 문제작들을 엄선해 출품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제53회 깐느국제영화제의 '감독주간' 출품작에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상영된 것이다. ‘박하사탕’은 깐느 영화제에 참석한 많은 외국인 관객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박하사탕은 깐느국제영화제, 대종상 작품상을 비롯한 국내외의 많은 영화 시상식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으면서, 많은 상들을 휩쓸었다. 이 영화는 또한, 영화인들의 평가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반 영화관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전국적으로 47만명을 웃도는 영화관객들이 박하사탕의 향기에 취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영화 전문가들에게 그리고 일반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박하사탕은 좋은 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1. 좋은 영화의 구분?
많은 영화 잡지나 영화제 그리고 영화 소개 방송 등에서, 좋은 영화들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평가한다. 이러한 영화 구분은 일반 영화 수용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작업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영화들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각 나라의 영화들이 문화적 인프라를 통해서 자유롭게 이동을 하는 것이 지금의 영화 현실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수용자가 어떤 영화를 보아야 할지, 어떤 영화가 자신에게 유의미할 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많은 영화들에 대해서 일반적인 기준으로,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는 것은 일반 수용자에게 매우 유익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영화에 대한 구분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에 비해서, 좋은 영화의 구별에 대한 기준은 명확히 정해져있지 않다. 각 영화 시상식 마다 수상되는 영화작품이 다르고, 수상 결과에 대한 분분한 불만들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아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우수하게 평가된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영화를 보면서 매우 감동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왜 훌륭한 영화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개인들 역시 많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개인사적 배경과 현재적 상황,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하여 쌓아온 경험과 생각이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같은 일을 겪어도 각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매우 다를 것이다.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작품을 놓고, 보는 이에 따라서 느끼는 지점도 다를 것이고, 느끼는 감정도 매우 다양할 것이다. 혹은 전혀 감동받지 못하는 영화수용자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좋은 영화라는 것을 구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나름대로 객관적인 기준을 통하여 영화를 평가하는 영화집단들의 입장이 모두 다양하고 상이하다. 또한 수용자들은 하나의 영화를 통해서도 수천, 수만가지의 반응을 일으킨다. 좋은 영화의 기준이라는 것이 오히려 억지스러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 좋은 영화의 구분은 유의미한 작업이고, 또한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많은 대중들이 그 구분에 동의하고 호응하며, 수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평가나 좋은 영화에 대한 선정을 어떠한 기준을 통하여,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2. 영화의 구성 요소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틀을 유지하고, 하나의 장르로써 영화의 의미를 갖추기 위해서 꼭 필요한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좋은 영화는 이 영화의 구성요소를 충분히 잘 구현하고, 각 구성요소를 매우 조화롭게 배열한 영화일 것이다. 영화를 좋은 영화로 만들어주는 구성요소는 ‘촬영과 카메라의 움직임’, ‘미장센’, ‘편집’, ‘서사’ 네 가지이다.
2.1. 촬영과 카메라의 움직임
촬영은 샷(shot), 앵글(angle), 조명, 색조(color), 렌즈, 필터, 필름, 광학기기 등의 기본적인 요소들로 현실을 필름으로 담아내는 행위를 의미한다. 촬영은 영화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라 할 수 있겠다. 촬영을 통해서 장면을 더욱 생동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필수적이다.
2.2. 미장센
미장센(Mise-en-scene)은 원래 '무대장치, 무대에 올린다'란 뜻의 프랑스어로 연극에서 쓰이는 용어였으나 영화로 옮겨오면서 '쇼트의 프레이밍'과 관련된 영화 제작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1). 즉, 연극에서 무대가 되는 여러 장치들을 영화의 현실성, 장면 분위기, 혹은 창작자의 연출 의도를 위해서 촬영 배경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2.3. 편집
영화는 촬영이 끝이 아니다. 촬영된 필름을 필요없는 부분을 삭제하고, 나타내고 싶은 부분은 강조하며, 영화 전체가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갖도록 하기위해서는 반드시 편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장면 하나하나의 자름과 이음 뿐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시간의 재배열, 공간의 재배치 등을 함께 아우르는 개념이다.
2.4. 서사
서사(narrative)는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과 관계로 엮어진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들의 연결을 의미한다2). 쉽게 이야기하여 이야기 꺼리 이다. 영화는 이야기 꺼리 없이 존재할 수가 없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서 관객들에게 촬영과 편집을 통하여서 건네주어야 하나의 영화가 탄생되는 것이다.
3. 좋은 영화의 필수조건
‘촬영과 카메라의 움직임’, ‘미장센’, ‘편집’, ‘서사’ 네 가지 영화의 구성 요소들이 각자가 매우 잘 표현되고, 또한 이 것들의 조화로운 조합이 영화 전체에서 잘 드러나는 것이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좋은 영화란 훌륭한 내러티브를 영상적으로 잘 처리하고 잘 편집된 영화3)’가 좋은 영화란 이야기이다.
물론, 이러한 조건을 갖춘 영화가 흥미있고, 재밌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예술적으로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훌륭한 이야기를 깔끔하고 세련된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만으로는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영화라는 컨텐츠만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도 컨텐츠로써의 영화 이상으로, 의미있게 느껴져야 하는 것이다.
좋은 영화는 영화 창작자의 올바른 지향을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어야 하고, 이것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3.1. 좋은 영화의 감독적 요소
감독은 무가치적인 영상을 카메라에 담담히 담아내는 사람이 아니다. 감독은 자신이 담아내고 싶은 내용과 영상을 자신의 가치에 맞게 카메라와 필름으로 표현하여,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이어야 한다.
현실을 단순하게 모방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영화적 감각과 기술만을 겸비하고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예술로써의 영화를 창작하는 사람 즉, 예술가(artist)가 아니라 기술자(technician)에 불과한 것이다. 혹은 영화산업에 매몰된 하나의 영화산업 직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감독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현상이 가지는 내면적 의미를 표현해야한다. 현상에 가리워져있는 내면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내면적 의미를 영화를 통해서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출해야 한다. 즉,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 세상에 대한 생각, 자신의 지향점을 관객들에게 표현을 해야하는 것이다. 이 것은 사실적 장면 만을 담아낼 수 밖에 없는 사진술이 예술로써 존재할 수 있는 이유와 동일하다. 즉, 단순 모방이 아닌, 본질에 대한 모방을 예술가는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3.2. 좋은 영화의 관객적 요소
훌륭한 내러티브를 영상적으로 잘 처리하고 잘 편집되었거나, 혹은 창작자의 올바른 지향을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하였다고 해서 모두 좋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 관객, 즉 영화 수용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위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좋은 영화는 될 수 가 없다.
영화는 관객에 많이 의존하는 예술이다. 미국의 헐리우드라는 거대한 영화산업체가 영화를 초기부터 산업적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표현주의, 프랑스의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의 몽타주 등의 영화의 순수예술적 사조의 흐름이 영화 초기에 많이 존재하였고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것은 헐리우드의 관객을 중심에 놓는 서사(narrative) 중심의 극 전개 방식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수용자들은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순수예술로서의 영화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대중예술적 성격의 영화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헐리우드 식의 영화방식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영화라는 예술이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재 영화 예술의 탄생 배경은 관객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로 영화를 발전시켰다.
또한 모든 예술에는 다양한 주체가 존재한다. 예술을 행위하는 것에는 예술을 창작하는 행위도 있겠지만, 예술작품을 보고, 느끼고, 감상하는 수용하는 행위도 있는 것이다. 즉, 영화에서 바라보면,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즐기는 수용자 역시도 영화예술의 하나의 주체인 것이다. 다양한 예술 주체들 중 어느 하나가 결여되어 있는 예술은 좋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영화 역시도 관객적 요소가 부족한 영화를 두고, 다른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좋은 영화라고 지칭할 수 없을 것이다.
관객이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좋은 영화인 것이다. 물론 관객들의 기호와 성향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하나의 영화는 좋은 영화가 될 수도, 의미 없는 영화가 될 수도, 나쁜 영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창작자는 수용자들의 일반적인 추상4)화된 성향을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영화는 훌륭한 내러티브를 영상적으로 잘 처리하고 잘 편집된 영화임과 동시에, 영화 창작자의 올바른 지향을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어야 하고,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이어야 한다.
4. 박하사탕은 좋은 영화인가?
주인공 김영호, 그의 순수했던 젊은 시절과 점점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사회들...주인공 김영호는 첫사랑 윤순임을 만났을 당시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들꽃을 사진에 담고 싶어했던...군에 입대하여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순임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박하사탕의 순수함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영호의 오발로 인해 한 소녀가 죽게 되고, 그의 삶은 그때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변하기 시작한다. 경찰이 되어 그 사회에 물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여기서 그의 역할은 운동권 학생을 취조하는 것,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조금이나마 따뜻한 맘이 남아있다. 차가움으로 자신을 찾아온 순임을 돌려보내고...결혼을 하여 사업을 하면서 그는 점점 악한 사회에 물들어 간다. 아내의 외도, 엇갈린 영호의 삶...그는 이제 더 이상 순수한 청년이 아니다. 친구의 배신 등으로 사업은 망하게 되고 그의 삶은 걷잡을 수없이 황폐화되어 간다. 죽기로 결심을 하고 있던 순간 한 남자가 방문을 하게 되고...그는 순임의 남편이었다. 병실에서 죽어가고 있던 순임이 영호를 찾고있는 것이다. 영호는 박하사탕을 한 통을 사들고 병문안을 가지만 순임은 이미 의식이 없다. 거의 정신이 나간 영호는 옛날 그 소풍의장소로 돌아온다. 예의 그 사람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르다. 영호는 철교위로 올라가 절규한다. 그리고 기차가 영호를 향해 달려온다......
4.1. 훌륭한 내러티브를 영상적으로 잘 처리하고 잘 편집한 영화
우선, 박하사탕은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김영호’라는 인물의 죽음을 역으로 돌아보며, 그의 죽음 속에 내재해 있었던 의미들을 찾고 있다. 김영호는 대한민국의 근대를 몸으로 살아왔던 매우 평범한 인물들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일반인들의 삶과 유사하다. 물론 살아온 경험과 바탕은 다르겠지만, 근대의 한국을 살아온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인 것이다. 삶이 유사한 것 만큼 그의 죽음 역시 일반인들과 유사하다. ‘죽음’은 단순히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김영호의 삶은, 1979년부터 1999년 까지의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보여준다. 그 곳에는 70년대의 순수함과 사랑에 대한 풋풋함이 담겨져 있고, 80년의 광주의 끔찍했던 한국 역사와 80년대의 민주화 항쟁 속에 고통받았던 한국인이 담겨져 있다. 80년대의 고통 속에서 한없이 꺾여지고 삐뚤어지는 90년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있고, 자신의 삶을 망가뜨려 놓는 국가 경제의 위기도 영화 속 이야기에 존재한다. 이처럼 박하사탕은 추상화된 한 인물의 삶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어두웠던 과거의 역사를 조명해 준다.
박하사탕은 좋은 이야기(narrative)를 좋은 표현들로 나타낸다. 기차가 달려오는 선로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울부짖음을 마지막으로 생을 거둔 ‘김영호’의 삶을, 과거로 거슬러 오르면서 영화는 순수함의 시대를 보여주면 끝을 맺는다. 이러한 역행적 구성은 한국의 역사를 내재하고 있는 한 인물의 삶을 보여주기에 매우 훌륭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시작과 끝, 순수와 죽음을 강이 있는 자연에서 이루어지게 하고, 더러워지고 고통받는 모습들을 인공적인 도시와 도시 속의 건물들에서 보여주는 미장센 역시 뛰어나다. 또한 80년의 광주 항쟁과 그 이후에 계속되어지는 민주화 항쟁의 모습을 김영호라는 인물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만, 매우 사실적이고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영화의 상징성과 치밀성은 매우 훌륭하다. 그리고 과거로의 회귀를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을 천천히 거꾸로 달리는 기차로 표현한 것은 매우 독특하며 동시에 영화 전반의 느낌을 잘 나타낸 것이다. 촬영과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김영호의 역사와 감정의 전이를 충분히 잘 전달할 만큼 풍부하였다.
4.2. 영화 창작자의 올바른 지향을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한 영화
박하사탕은 매우 순수했던 시절과 좌절하고 고통받는 황폐화되는 시간들을 매우 극명하게 보여준다. 감독은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암울한 한국사회의 근대적 역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표현하였다. 이는 감독 스스로가 삶을 영위하면서 받았던 고통과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암울한 역사를 표현하면서도 놓치지 않는 생각의 끈을 감독은 가지고 있다. ‘삶은 아름다운가?’이다.
형사 김영호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온 대학생을 고문을 하게 된다. 매우 고통스럽고 잔인한 고문을 하면서 대학생을 자백하게 까지 만드는 김영호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삶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대학생의 일기장에 적힌 ‘삶은 아름답다’라는 문구가 그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지금, 다른 사람에게 잔인한 고통을 던져주는 김영호 자신도,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보았을 지도 모른다. 대학생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그래도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김영호에게 말해준다. 시간은 지나, 김영호는 잘나가는 사업을 하는 사장님이 된다. 자신의 부인이 바람피는 것을 추적하여 부인과 그녀의 남자를 흠씬 두들겨 패주고는, 자신은 자신의 직원 미스리와 불륜의 행위를 한 그날 저녁, 김영호는 다시 그 대학생을 만나게 된다. 그는 다시 ‘삶은 아름답다’라고 중얼거린다.
이처럼 영화는 순수의 시간에서부터 황폐함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삶은 아름답다’는 고통스러운 주문을 끊임없이 외고 있다. 이 것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감독의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삶을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고 관객들에게도 이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감독은 박하사탕을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과 그 세상에 대한 진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여준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진실을.
4.3.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
많은 관객들이 박하사탕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김영호를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이며, 자신의 삶을 깊게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그래! 삶은 아름답다. 또한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 또한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사람과 삶이 아름답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시사하는 사실들을 관객들은 느끼고 되새기면서, 어두운 극장에서 밝은 세상 밖으로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한 인물을 바라보며, 느꼈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또한, 나는 ‘김영호와 같이 황폐한 길을 걷지 않고 태초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나의 머릿 속에 가득 찼었다. 하지만,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한송이 꽃처럼, 나의 어두운 절망감 속에서 ‘그래도 삶은 아름다운 것이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라는 밝은 빛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박하사탕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이다. 단순한 감정의 흔들림이 아니라, 관객에게 세상을, 삶을 바라보게 해주며,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통하여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깊은 성찰을 전해주는 영화이다.
5. 박하사탕은 좋은 영화다.
박하사탕은 훌륭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이를 빼어난 촬영기법과 미장센, 그리고 편집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매우 잘 전달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감독이 지향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앞에서 말한 좋은 영화에 대한 조건들을 박하사탕은 모두 충족하고 있다. 그렇기에 박하사탕은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가 있다.
하지만, 몇 가지의 항목에 맞추어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분류는 좋은 영화의 구분을 위해서 크게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같은 영화라도 관객에 따라서는 감동을 받을 수도, 무의미 할 수도, 혹은 나쁜 느낌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박하사탕이 좋은 영화이다’ 이야기는 전적으로 개인(나)에게 좋은 영화인 셈이다.
절대적으로 좋은 영화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관객의 입맛에 맞는 영화란 없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적 분류의 좋은 영화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영화의 기본 구성요소를 충실히 잘 따르는 영화 중에서, 감독의 지향을 훌륭한 표현법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추상화된 일반 영화 수용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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