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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 기획의도
1. 국제문제는 생존의 문제임. 그래서 보다 심층적인 정규 해외 시사프로그램.
2. 시청자들에게 폭넓은 세계관과 국제 감각을 키울 수 있는 기회 제공
@ 코너
1. 월드 이슈 : 국제 뉴스를 심층적으로 소개
2. 와이드 코리아 : 세계 속의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을 객관적으로 조명.
3. W-스페셜 : 국제 이슈를 다큐멘터리적인 개념으로 접근하는 미니 다큐.
@ 7.22 방송순서
1. 호주 한인남매 구금 사건
2. 진실인가 허구인가! 유골 가짜 주장
3. 아프가니스탄의 붉은 유혹
@ 총평
- 국가간의 경쟁이 치열하고, 다국적 기업들의 활동이 왕성한 지금, 21C에 국제뉴스는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보도 프로그램(뉴스 포함)에서 국제 뉴스를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해외 시사 프로그램
- 진행자 아나운서 최윤영의 의상 문제? 너무 야하다. 화려하다 등의 구설수. 7.22일 방송에서는 매우 수수한 의상. 초기에는 사이버 느낌이 나는 의상과 메이크업이었다.
- 외국 프로그램 같다. 세트장과 진행자, 그리고 방송 이름까지.??? 방송 프로그램 이름의 지나친 외국어 편향이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뉴스 플러스 암니옴니> -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보도 프로그램)
@ 기획의도
1. 균형 잡힌 시각으로 시청자 입장에서 뉴스를 분석.
2. 신개념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 코너
1. 뉴스 프리즘(뉴스 다시보기) 2. 뉴스 A/S(후속보도)
3. 미디어 광장(매체비평코너) 4. 이윤석의 만세삼창(만평으로 세상읽기)
@ 7.22일 방송 순서
1. 요람에서 무덤까지 땅 부자 2. 풍전등화 조선인학교
3. 이윤석의 만세삼창 4. 시민 기자에 대해서
@ 총평
- 기획의도와 같이 균형잡힌 시각이 돋보인다. 기존의 방송이 일부 계층(유산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송 위주임에 비해, <암니옴니>는 다양한 계층을 대변한다. 7.22일 방송만 보더라도 부동산을 집중 조명하면서 땅부자들의 현상을 비판하였다. 또 조선인 학교의 폐교 위기 보도에서는 북한 공산주의 계열의 학교라 보도하기가 까다로웠을 텐데, 사상의 차이를 떠나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충실한 보도가 공정성이 있었다.
- 이윤석의 만세삼창은 여러 가지 신문의 만평들을 종합해서 해석하는 프로그램이다. 개그맨 이윤석이라는 섭외가 눈에 띈다. 개그맨이자 언론학 박사 수료생인 그를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기용한 점은 대중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기획인 것 같다. 이는 시사의 딱딱한 면모를 진행자로 보완한다는 점이 매우 좋다.
<해피투게더 프렌즈>
1. 기획의도
스타와 당신의 추억을 찾아드립니다. 당신은 과연 학창 시절 친구를 몇 명이나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변해버린 학창 시절 친구 찾기를 통해 느껴보는 순도 100% 감성쇼-!
스타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 세월이 흐른 후,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다면, 달라진 친구들을 스타는 과연 몇 명이나 알아볼 수 있을까?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의 증언과 에피소드를 통해 공감대를 나누면서, 하나씩 찾아가는 추억의 조각들!
스타는 그 추억의 조각들을 힌트로 60명의 군단 속에 숨은 추억의 친구들을 추리해서 찾아나간다. 찾은 후, 옛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추억의 감동 이벤트까지!
순수했던 학창시절 에피소드와 추억을 통해 오래 된 추억의 앨범을 들여다보듯 진한 감동과 재미와 함께 7080 세대들의 향수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2. 코너 소개
가. 기억의 재구성 - “뻐꾸기는 알고 있다!”
나. 숨은 친구 찾기 - 1ROUND : 앉은 자리에서
다. 숨은 친구 찾기 - 2ROUND :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3. 해피투게더 쟁반 노래방 이후
‘쟁반 노래방’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해피투게더>가 최근에 ‘프렌즈’라는 부제를 달고 스타들의 친구찾기로 새로이 인기몰이에 나섰다. 예전의 신동엽, 이효리가 진행했던 <해피투게더>는 두 MC의 호흡과 ‘쟁반 노래방’이라는 참신한 소재로 매우 큰 인기를 끌었었다. 하지만 유재석, 김재동으로의 MC 교체가 있은 후 그 재미가 반감되었고, 또 쟁반 노래방이 시청자들에게 익숙해 지면서 <해피투게더>는 시청률 경쟁에서 뒤쳐지게 되었다. 그 이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청률 회복을 모색하였으나, ‘꿇어 요!’ 혹은 머리로 건반 두드리기 게임인 ‘도레미 콩콩콩’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해피투게더> 제작진은 프로그램 전체에 리모델링 수준을 넘어선 재건축을 시도하였고, 스타의 초등학교 동창찾기라는 새로운 아이템으로 <해피투게더 프렌즈>를 만들었다.
4. <해피투게더>의 특징
<해피투게더>는 줄곧 학창시절이라는 아이템을 이어왔고, 게스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한 듯 하다. ‘쟁반 노래방’ 시절부터 ‘책가방 토크’를 통해서 스타들의 학창시절 에피소드에 초점을 맞추었고, 교복을 입고 동요를 따라부르는 스타들의 모습에서 차별화되지 않은 일상적인 스타들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이러한 <해피투게더>만의 느낌이 <해피투게더 프렌즈>로까지 이어온 듯하다.
<프렌즈> 역시 스타들의 학창시절 추억들로 가득하다. 초등학교 동창생을 찾는 과정에서 친구들로부터 혹은 자신의 입으로 언급되는 학창시절의 추억들은 매우 정겹다. 그리고 스타들은 일반인과 차별화된 모습이 아니라, 남들과 다름없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에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흥분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러한 <해피 투게더>의 지속적인 ‘학창시절의 추억’과 ‘스타들의 진솔한 모습’이라는 소재는 최근 새로운 인기몰이의 비결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타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스타들의 화려한 모습, 그들끼리의 말장난으로 일관할 때 <해피투게더>는 일반인들을 출연시키는 과감성을 보였고, 이것이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하고 즐겁게 다가갔을 것이다.
5. <해피투게더 프렌즈> 비평
학창시절의 친구 찾기라는 소재는 일반적이면서도 참신해서 많은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유쾌한 웃음을 주기도 하고,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한다. 스타의 평범한 모습과 어린 시절과의 변화된 모습을 보는 것도 큰 재미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고쳐야 할 점이 보인다.
우선 패널들이 지나치게 많다. 스튜디오는 이미 스타들의 친구와 가짜 친구들로 가득차있다. 여기에 두 MC를 제외하고도 4명의 패널들 또한 각자의 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패널들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다. 한 시간의 방송 동안 그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다. 이렇게 가득찬 스튜디오에 4명의 패널들은 제 역할을 찾지 못하는, 장식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그리고 스타들의 친구들과의 인터뷰과 극히 소수에 집중되어있다는 점이다. 물론 재미와 이야기 거리에 따라서 비중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방송 내내 인터뷰 한번 하지 못한 친구가 스타의 친구로 밝혀졌을 때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조금은 당혹스럽다. 일반인들의 모습이 보기 좋은 <해피투게더 프렌즈>에서 친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역시 이 프로그램의 몫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MC들의 진행에서 가끔 지나치게 트집을 잡는 것에 열중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요즘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대부분의 MC들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탁재훈, 신정환 등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메인MC와 보조MC들의 트집잡기 발언들은 너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불편한 진행을 보고 있으면 짜증과 화가 나는 경우가 종종있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질적인 발전을 위해서 이러한 지나친 진행은 모두가 삼가야겠다.
<폭소클럽 모니터링>
1. 세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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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니 지니 : 음악을 이용한 개그 - 억지스럽지 않고 음악이라는 요소를 이용하여 자연스러운 개그가 일품! 2. 야식남녀(김인석, 요리전문가) : 요리를 이용한 개그 - 야식을 만드면서 남녀에 대한 토크 **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에 대한 놀림이 많다. 외모 비하가 개그의 소재로 이용되는 것이 조금을 거슬림. 또한 남과 여에 대한 차별적인 이야기들이 존재. 자연스러움?과 지나침? 사이의 경계에 존재하는 듯. 3. 스마일맨. : 판매왕 도전기 자동차 보험이라는 일상 생활의 소재를 개그화. 참신한 아이디어가 좋다. 4. 샬랄라 음악교실 : 음악 전문가의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의 개그(남편 재조립 프로젝트) ** 남녀, 아내와 부인의 고정된 관념상을 재고착화.(외박하는 남편과 기다리는 부인 등의 관념.) 5. 최신늬우스 6. 떳다 김샘 : 유명 연예인이 아닌 일반 사회의 입담 좋은 사람을 섭외해서 개그. 7. 요즘 세상 이야기 (김형곤) : 정치 풍자 개그 8. 바퀴달린 사나이 : 장애인의 입으로 장애인이 겪는 세상 풍자. 9. 3.6.9 10. 록키 & 루키 : 신인 개그맨들만의 무대. |
2. 전체 평
: 폭소클럽은 요즘 유행하는 웃찾사, 개그콘서트 등의 스탠딩 코미디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른 스탠딩 코미디와는 차별화된 웃음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해 주었다.
타 개그프로그램은 점점 속도가 빠르고 주기가 짧아지는 웃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의 성공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자주 터지는 웃음이다. 웃찾사는 이 주기를 더욱 당겨놓았다. 하지만 웃음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청자들은 시청 뒤의 허무함과 정신없음 등을 더 크게 느끼게 된다. 또한 일부 시청자들이 배제되는 현상도 이와 관련된다. 이와는 달리 폭소클럽은 빠른 웃음에 연연하지 않고 천천히 만들어 가는 웃음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빠르지 않은 동시에 자극적이지도 않다. 타 프로그램이 빠른 만큼 자극적인 소재와 웃음방식을 고집하였다면, 폭소클럽은 전반적으로 자극적인 소재 그리고 웃음 전달 방식은 극히 드물다.
폭소클럽 만의 또 하나 특징은 일반인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다른 개그 프로그램은 주로 방송사 소속 개그맨들이 주를 이룬다. 물론 폭소클럽에 여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일반인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제작진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야식남녀, 샬랄라 음악교실, 바퀴달린 사나이, 떳다 김샘 등에서 직업 개그맨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또 다른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다. 그중에서도 바퀴달린 사나이 코너에서는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 박대운 씨가 들려주는 장애인으로 겪는 어려움 등을 담담한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이는 평소 TV에서 잘 듣지 못했던 장애인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값지기도 하고, 또한 슬픔이 아닌 기쁨, 절망이 아닌 희망의 메시지를 웃음과 함께 던져줌으로써 큰 감동마저도 선사한다. 그리고 장애인을 연민과 동정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서 바라보게 되는 계기도 된다. 이렇듯 일반인들의 이야기는 나와 동떨어진 웃음, 허무한 개그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 내 이웃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꾸며낸 이야기 보다 실화가 더욱 재미있듯이 이들의 개그는 참된 웃음을 전달해준다.
그런데 가끔 폭소클럽 각 코너에서 상대방의 외모를 놀리거나, 고정된 남녀의 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차별적인 차별적인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개그 프로그램이다 보니 성에 대한 소재가 자주 이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성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동등한 남녀, 그리고 고정되지 않은 남녀의 상에 대해 이루어진다면 우리 사회에 조금 더 유쾌한 웃음을 던져줄 수 있지 않을까?
@ 소재 및 방송 보도 형태
<세븐데이즈>에서 방송하는 소재들은 대부분이 연성화 된 소재이다. 이 날 방송만 보더라도, 네델란드의 박지성 열풍, 가족을 희생시켜 보험금을 탄 여자, 성인 오락실 중독자들이 소재였다. 중요한 사회적 맥락이 있는 소재들이 아니라, 특이하거나 이목을 끌만한 소재들이 대다수다. 방송 형태 역시 르뽀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심층적이지 못하다. 사회적 현상의 원인을 깊게 추적하여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수박 겉핥기식의 고발형태를 가지고 있다.
생방송이라지만, 생방송일 필요가 없는 듯 하다. 한 시를 다투는 내용의 방송도 아니고, 대부분이 VCR 화면이 나오는 방송에서 생방송이 왜 필요한건가? 그리고 사회자의 멘트도 많지가 않다. 차라리 안정된 녹화방송으로 가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듯 하다.
마지막의 성인오락실에서 카메라의 역할이 매우 재미있었다. 여느 고발 프로그램에서의 카메라는 철저하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찍는다. 이는 언론인과 개인 사이에서의 의무감에서 갈등을 낳아놓는다. 전쟁에서 죽고 있는 사람,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 등의 모습을 퓰리처 상을 받는 사진들이 져널리즘의 영광과 사진 작가 개인의 도덕성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낳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이처럼 일반 보도 프로그램에서의 카메라는 철저하게 객관적인 접근을 하는데, <세븐 데이즈>의 성인오락실 꼭지는 그러지 않았다. 방송 담당자가 오락실에 빠진 고시생과 노무자에게 더 이상 도박에 빠지지 말라고 권유도 하고, 심지어는 가족에 까지 연락을 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신선했으며, 두 가지 의무를 모두 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시청률 확보를 위한 선정적인 화면구성을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시청률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고 이를 바꾸어나가는 것에 일조를 하는 것이 보도프로그램의 사명이라 하겠다.
항상 보도프로그램에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사생활 침해이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와 개인의 신상 보호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존재한다. 분명 두 가지 모두 중요한 것이라,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사안에 따라 적절한 입지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리고 개인의 신상을 보호해 줘야 할 때는 철저히 지켜줘야 한다. 사실 조금 모자이크 처리된 개인의 모습은 인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개인의 신상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보도 프로그램은 여전히 이러한 잘못된 관행을 범하고 있다. 이는 조금이나마 볼 만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인 듯 하다. 하지만 볼만한 그림 보다는 개인의 신상이 더욱 중요함을 방송사는 알아야 한다.
방송사별 편성 분석
<저녁 프라임 시간대(7시~12시)>
저녁과 밤은 다른 때에 비해서 많은 사람들이 TV 앞에 모이는 시간이다. 그래서 방송사는 이 시간대의 시청률에 가장 집중을 한다. 그래서인지 시청률을 끌 수 있는 오락 프래그램과 드라마 그리고 방송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뉴스가 이 시간대에 포진되어있다.
이 시간대의 방송사별 편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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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
MBC |
KBS 2 |
KBS 1 |
|
7 ~ 8 |
오락 |
논스톱 |
무한지대 큐 |
뉴스 |
|
오락 |
교양/오락 | |||
|
8 ~ 9 |
뉴스 |
뉴스 | ||
|
드라마 |
드라마 | |||
|
9 ~ 10 |
오락 |
뉴스 |
인간극장 |
뉴스 |
|
시트콤(올미다) | ||||
|
10 ~ 11 |
드라마 |
드라마 |
드라마 |
교양/문화/다큐 |
|
11 ~ 12 |
오락 (수 뉴스추적) |
오락 (목 100분토론) |
오락 (수 추적60분) |
뉴스 |
이를 통해 프라임 시간대의 각 방송사의 편성 특징을 알 수 있다. 우선 SBS는 한 시간 빠른 뉴스와 뉴스 전.후로 편성된 오락 프로그램이 타 방송사와의 차이이다. MBC는 드라마중심의 편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KBS는 두 개의 채널이라는 이점을 매우 잘 활용하고 있다. KBS는 7시 반부터 11시까지 끊이지 않고 드라마가 방송되며, 또한 7시부터 12시까지 지속적으로 뉴스가 방송된다. 이는 KBS가 드라마를 통한 시청률과 뉴스를 통한 정보와 공신력 있는 이미지, 두 가지 모두를 획득할 수 있는 결정적 기판을 마련한다.
저녁 시간 편성에서 가장 돋보이는 SBS이다. SBS는 뉴스를 타 방송보다 한 시간 빠르게 8시에 전진 배치시킴으로써 8시 시간대의 시청률을 획득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SBS 측으로는 9시 시간대가 가장 큰 고민거리일 것이다. SBS 9시 방송 프로그램은 월, 화, 수, 목 순으로 <진실게임>, <생방송 TV연예>,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세븐 데이즈>의 젊은 층을 겨냥한 방송으로 편성되어있다. 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이 적은 젊은 층의 시청을 뉴스가 아닌 연성 프로그램으로 확보하려는 시도가 눈에 보인다. TV가 두 대 이상인 가정의 수가 매우 많기에 이러한 젊은 층 겨냥 편성은 매우 승산있는 전략인 듯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세밀한 조사가 필요할 듯 하다. 사실 9시면 학교, 학원, 도서실 혹은 거리 등의 가정이 아닌 밖에 있는 젊은 층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SBS에 9시 시간대는 영원한 난제일 것이다. 시청률 확보를 위해서는 차라리 이 시간대 건전하고 설득력있는 가족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이 어떨까?
<아침 시간대(6시~11시)>
아침은 매우 역동적인 시간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출근, 등교 등의 이유로 TV가 있는 가정에서 TV가 없는 밖(사회)으로 외출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 구성원의 연령, 직위에 따라서 기상시간과 외출시간이 모두 다르기에 짧은 시간 주기로 TV 시청자 층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아침 시간대 방송은 매우 세밀하고 유연성 있게 편성되어야 할 것이다.
방송 3사의 아침 시간 편성은 다음과 같다.
|
|
SBS |
MBC |
KBS 2 |
KBS 1 |
|
6 ~ 8 |
모 닝 외이드 |
뉴 스 투데이 |
생방송 세상의 아침 |
뉴스· |
|
7 ~ 8 | ||||
|
TV 유치원 | ||||
|
8 ~ 9 |
아주 특별한 아침 |
뉴스타임 |
TV 소설 | |
|
아침 연속극 |
아침마당 | |||
|
9 ~ 10 |
지구촌 홈스테이 |
김약국의 딸들 |
드라마 | |
|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 |
생방송 정보토크 팔 방 미 인 |
이홍렬, 박주미의 여유만만 |
뉴스 | |
|
10 ~ 11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
저녁 방송 편성과 달리 30분 단위의 짧은 주기의 방송이 많이 편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아침 시간의 역동적인 특성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하루를 준비해야 하는 아침이기에 정보전달 프로그램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이 KBS1을 제외한 타 방송채널에서는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아침 방송에서도 SBS는 조금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저녁 시간의 SBS가 한 시간 빠른 뉴스가 특징이라면, 아침 시간의 SBS는 30분 빠른 드라마가 특색있다. 이는 타 방송국과의 드라마 분포 시간이 다르기에 드라마를 좋아하는 주부 시청자를 끌어들이기에 매우 유리한 편성이다. 하지만 주부들이 아이들 등교 후에 약간의 집안일(식탁을 치우고 설거지 정도)의 겹침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더욱 필요할 듯 하다.
<전반적인 편성 평가>
방송 3사의 편성이 모두 비슷하다. 다른 채널에서 방영한다 뿐이지, 비슷한 내용과 형식을 담은 복제품 같은 방송이 각 방송국마다 존재한다. 이는 각 방송사만의 색깔 있는 방송을 추구하기 보다는 시청률에 연연한 방송 전략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천편일률적인 방송 프로그램은 시청자로 하여금 TV를 재미없고 뻔한 바보상자로 인식되게 만들 뿐이다. 방송사는 자신 만의 특색 있는 방송 내용과 편성 전략으로 타방송사들과 차별화를 두어야 한다. 그 것이 방송사가 오랫동안 인정받고 끊임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SBS가 타 방송과 다른 시간편성으로 차이를 두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과 형식의 방송을 시간대만 조금 달리해서 방영하는 것은 진실된 의미의 차별화는 아니다. 단순히 시간대의 차이뿐만 아니라, 방송의 내용과 특색에서 SBS 만의 방송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차별화 전략일 것이다. 진정한 차별화 전략 없이 시간대만 조금 달리하는 것은 SBS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다. 이는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양날의 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방송 내용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SBS 가정의 달 특집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 편성
가정의 달을 맞아 SBS의 행보가 눈에 돋보인다. 가정의 달 특집 방송이 여러 개 신설되었으며, 오후 4시 시간대는 주간의 5일을 모두를 가정의 달 특집 방송으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저녁 9시의 프라임 시간대에도 가정의 달 특집 방송을 편성하였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이다.
@ 개략적 내용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평범한 가정을 대상으로 하여, 가정교육의 실태를 진단하여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수정을 하고, 이를 통해서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살펴보는 프로그램이다.
첫 회 방송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 둘로 이루어진 가정을 대상으로 하였다. 부모는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피고 챙기는 과잉보호형의 어머니와 무심함으로 일관하는 개인 중심형의 아버지였다. 아이들은 장소에 구애없이 매우 소란스럽고 지나치게 활달하게 행동하였다. 전문가는 이러한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서 가정에서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진단하고 장난감을 치우고, 아버지가 골몰하는 컴퓨터를 거실로 내놓는 등의 처방을 내린다. 그리고 부모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처방에 따라 행동을 변화하게 되고, 이에 따라 아이들도 변하게 된다.
@ 내용 평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현실성 있지만 참신한 가정교육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매우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은 우리 주위의 평범한 가정을 그리기에 현실성있다. 그렇기에 방송 내용은 전반적으로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즉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부모와 아이들의 문제점이 나의 이야기로 다가왔으며, 전문가의 처단 역시 살아감에 꼭 필요한 소중한 정보로 인식되었다. 또 가정이라는 매우 일반적인 소재 중에서 가정교육을 중심으로 잡으면서, 너무 흔하기에 인식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새삼 깨닫고 중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매우 유익하면서 동시에 참신한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첫째는 가정교육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선정적인 표현으로 지나친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경각심을 넘어서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공포심과 이에 따르는 거부감을 형성시킬 우려가 있었다.
둘째는 집안에 CCTV를 장착하여 가정의 사적인 이야기를 지나치게 자세하게 공개를 한다. 이는 사생활의 소지가 있다. 특히 부부가 다투면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남편이 욕을 하는 장면까지-비록 묵음으로 처리하기는 하였지만-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적절한 선에서 편집을 하여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만 전달하면 되었는데, 이러한 자극적인 편집은 시청률을 의식한 행동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셋째 가정교육 개선 방법 중에 하나가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녀오면 바로 손을 씻기고 공부를 시키는 모습에서 그릇된 가정교육의 모습을 형성시킬 우려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학벌과 학력 그리고 이에 따른 경쟁으로 많은 폐단을 지닌 나라이다. 이러한 나라에서 가정교육의 일환으로 유치원, 그리고 곧 이은 공부를 제시하는 것은 이 폐단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다.
@ 형식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쇼.오락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융합한 하이브리드 장르를 형식으로 하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러브하우스>의 느낌과 전개를 많이 따르고 있으며, 가정의 모습과 부모와의 인터뷰는 다큐멘터리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온다. 이러한 융합은 사실성과 함께 즐거움, 그리고 감동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기에 매우 효과적이고 신선한 구성이다. 이를 통하여 가정의 문제점을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그렇다고 거짓으로 미화하지 않으면서 보여줄 수 있었다. 가사 노동이 어머니에게 많이 치우쳐져있고, 특히 육아는 어머니의 일인 듯한 일반 가정에서의 모순을 꼬집어 이야기 하면서도 지나치게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하이브리드 장르의 강점인 듯 하다.
@ 총평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는 가정교육에 대해서 적절한 문제 지적과 또 이에 따르는 적확한 처방 지침과 실천으로 올바른 가정의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희망’이라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였으며, 이는 현실성있는 구성으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공감된 희망’은 우리 가정 그리고 사회가 변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가지는 의의이자 큰 힘이다.
<아무도 모른다. >
@ 내용
일본의 도심에서 아버지가 각기 다른 4명의 아이들이 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가 많으면 집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첫째 아키라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집 안에서 조용히 숨죽여가며 살아간다. 이들은 학교도 다니지 않으며, 심지어 빨래를 해야하는 둘째 쿄코를 빼고는 베란다에도 나오질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집 안에서 놀이도 하고 집안일도 하며 재밌게 살아간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우시던 어머니 마저도 아이들을 버리고 결혼을 하여 떠나간다. 이제 아이들은 첫째 아키라에 의지해서 살아가야한다. 하지만 간혹 보내져오는 어머니의 돈은 네 아이가 살아가기에 턱없이 모자라다. 물, 전기, 가스가 모두 끊긴 채 아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공원에서 물을 떠다가 살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목숨만 유지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불행이 찾아온다. 막내 유카가 의자에서 떨어져 죽게 된다. 불행에 익숙한 아이들은 유카의 죽음 역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 감상
<아무도 모른다>는 고도의 경재성장을 이룩한 일본의 아이들을 추모하는 영화 같다. 여기에는 여러 모습의 어린 피해자들이 등장한다. 부모 모두에게 버림받은 아이들과 이지메에 지쳐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 원조교제를 통해서 돈을 구하는 아이, 집에 쳐박혀 게임에만 집착하는 아이, 또래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물건을 훔치는 아이. 이 모든 슬픈 군상이 경제 대국 일본의 현주소이며 실상이다. <아무도 모른다>가 실제 사건은 극화 시켰다는 점이 더욱 현재의 일본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이 아이들을 피해자로 만든 건 어른들의 무관심이다. 어른들은 돈을 벌기에 급급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없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아이들을 보살펴야한다는 도덕적 의무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아이들을 이용하지 않음 그것으로 다행이다. 이 영화에서는 원조교제를 하는 어른. 13살 꼬마에게 ‘난 네 엄마와 sex할 때 콘돔을 꼈다’라고 변명하는 어른. 4명의 아이를 두고 도망가는 어른들만 존재할 뿐이다. 이들은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의 생각과 생활, 그들이 받는 고통을. 집을 구하기 위해서 큰 트렁크 속에 담겨져 이사를 왔던 아이들의 존재를 집밖(사회)에서는 아무도 모르듯이, 일본의 아이들의 실상을 어른들은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는 슬픈 현실을 매우 건조하고 담담하게 담았기에 매력적이다. 감독은 ‘가족주의’ 나 ‘온정주의’, ‘연민’등에 빠지지 않고, 항상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둔다. 만약 감독이 경계를 풀고 아이들의 심정에 동화 되었다면, 아마 <아무도 모른다>는 최루성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되었다면 아마 관객은 펑펑 울었겠지만, 극에서 그리는 아이들은 그저 불쌍하고 애처로운 존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는 사실을 왜곡한다. 아이들은 단순히 불쌍한 처지가 아니라 피해받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감독의 거리두기는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거리두기는 아이들의 슬픈 모습을 역설적으로 가볍고 경쾌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베란다에 나갈 수 없는 셋째 시게루는 실수로 장난감을 베란다에 떨어뜨리게 된다. 이미 어머니는 집을 나간 상황이지만 시게루에게 베란다(밖, 세상)는 금역의 공간이다. 그렇기에 시게루는 베란다 문턱에 엎드려 슬리퍼를 들고 팔을 뻗어 장난감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이런 시게루의 행동을 보면서 나오는 건 눈물이 아니라, 귀여운 모습에 대한 웃음과 현실적 고통에 대한 한숨이다. 또 4명의 아이들이 어머니가 없는 집 안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집 밖으로 살금살금 세상구경 나가는 장면은 즐겁고 통쾌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영화는 아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애처롭고 불쌍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웃음과 이에 따른 한숨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모습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한국적 정서로는 ‘때려죽여야 마땅한’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친근하게 묘사된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좋아하고, 어머니 역시 아이들과 재밌게 논다. 첫째 아키라와는 마치 고민을 털어놓는 둘도 없는 친구 같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크리스마스에 오겠다는 작별의 인사를 한다. 한 방울의 눈물과 망설임도 없이. 그래서 이별도 가볍고 담담하다.
이처럼 <아무도 모른다>에서 감독은 카메라를 인물로부터 거리 두었으며, 매우 객관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런 점에서 감독은 매우 영리하다. 감독은 슬픈 소재의 최루성 영화가 가져다주는 눈물 뒤의 허망함과 기운빠짐의 폐해를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슬픈 톤으로 갔을 때 아이들의 모습이 불쌍함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음 역시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시선과 감정의 거리를 둠으로써 일본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받는 피해를 충실히 그리고 지치지 않게 보여줄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많이 웃음 지었다. 그리고 그 웃음의 곱절만큼 한숨 지었다. 하지만 한 방울의 눈물도 나지 않았다. 흘리지 않은 눈물은 아마 세 곱절의 오랜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이성애 와 가족관계의 해체 :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를 보고
현대의 일반적 가족제도는 일부일처제이다. 일부일처제를 기본으로 하지 않는 나라는 많겠지만, 감히 이것이 일반적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우위를 가지고 세계를 주도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부일처제를 기본적인 가족제도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마주하는 대부분의 나라 역시 이러한 나라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일부일처제란 매우 결혼제도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인식되어진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이성애 역시 그러하다. 결혼은 한사람과 해야 하는 것이고 상대는 이성이 되어야 한다고 자연스레 생각되어진다. 이성애는 일부일처의 가족제도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동성애는 거부된다. 동성애는 일부일처제의 기본적인 틀을 벗어난 상태이고, 동성애가 인정된다면 일부일처제의 견고함이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성애가 거부되고 불법화되며, 동성애자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동성애가 이상한 것은 전혀 아니다. 조금 단순화시켜 이야기 하자면, 식사 후에 후식으로 커피/사이다/콜라를 택하는 개인의 기호와 동성애/이성애/양성애를 선택하는 개인의 성적 지향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상대자는 반드시 이성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동성애 보다 거북스럽다.
스페인 영화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이성애를 나누는 커플과 동성애를 나누는 커플의 스토리를 엮어 기존의 가족관계와 결혼제도의 해체를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 마지막 부분에 어머니(소피아)의 여자 애인(엘리스카)과 둘째 딸(엘비라)의 남자친구(미구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결혼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엘리스카가 불법체류자이기에 체코로 쫓겨가야 할 상황에서의 해결책이 미구엘과의 결혼인 것이다. 정상(?)과 다른 이 결혼은 매우 즐겁고 행복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마 감독은 이성애와 결혼이라고 하는 인위적인 관념이 필연적이지도 자연스러운 것도 아님을, 그리고 다른 모습의 사랑도 결혼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동성애는 이미 기존의 애정 관념과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부분 부정된다. 그렇다면 동성애 커플에게는 당연히 기존의 결혼 모델 역시 불필요하게 된다. 서로 좋아한다면 그냥 함께 있는 것으로 되는 것 아닌가? 서로 좋아하면 그것이 동성이든 이성이든 상관이 없는 것 아닌가? “왜 굳이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며 꼭 이성이랑 해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할 수 있는 답은 없을 것이다.
이 짧은 평에서는 동성애 결혼이 겪어야 할 사회적, 법적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물론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주어진 틀 안에서 일탈(?)을 하기 때문에 불과하다. 그 틀이 바뀐다면 힘든 동성애와 동성간의 결혼이 가져다 주는 어려움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0. Intro
2000년 5월의 프랑스 깐느의 맑은 하늘아래, 한국 영화 한편이 전 세계의 영화인들 앞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역량있는 감독들의 문제작들을 엄선해 출품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제53회 깐느국제영화제의 '감독주간' 출품작에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상영된 것이다. ‘박하사탕’은 깐느 영화제에 참석한 많은 외국인 관객들 사이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박하사탕은 깐느국제영화제, 대종상 작품상을 비롯한 국내외의 많은 영화 시상식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으면서, 많은 상들을 휩쓸었다. 이 영화는 또한, 영화인들의 평가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반 영화관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전국적으로 47만명을 웃도는 영화관객들이 박하사탕의 향기에 취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영화 전문가들에게 그리고 일반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박하사탕은 좋은 영화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1. 좋은 영화의 구분?
많은 영화 잡지나 영화제 그리고 영화 소개 방송 등에서, 좋은 영화들을 선정하여 소개하고 평가한다. 이러한 영화 구분은 일반 영화 수용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작업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영화들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각 나라의 영화들이 문화적 인프라를 통해서 자유롭게 이동을 하는 것이 지금의 영화 현실이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수용자가 어떤 영화를 보아야 할지, 어떤 영화가 자신에게 유의미할 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많은 영화들에 대해서 일반적인 기준으로,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는 것은 일반 수용자에게 매우 유익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영화에 대한 구분이 빈번히 일어나는 것에 비해서, 좋은 영화의 구별에 대한 기준은 명확히 정해져있지 않다. 각 영화 시상식 마다 수상되는 영화작품이 다르고, 수상 결과에 대한 분분한 불만들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아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우수하게 평가된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 영화를 보면서 매우 감동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왜 훌륭한 영화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개인들 역시 많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개인사적 배경과 현재적 상황,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하여 쌓아온 경험과 생각이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같은 일을 겪어도 각 개인이 느끼는 감정은 매우 다를 것이다.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작품을 놓고, 보는 이에 따라서 느끼는 지점도 다를 것이고, 느끼는 감정도 매우 다양할 것이다. 혹은 전혀 감동받지 못하는 영화수용자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좋은 영화라는 것을 구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나름대로 객관적인 기준을 통하여 영화를 평가하는 영화집단들의 입장이 모두 다양하고 상이하다. 또한 수용자들은 하나의 영화를 통해서도 수천, 수만가지의 반응을 일으킨다. 좋은 영화의 기준이라는 것이 오히려 억지스러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 좋은 영화의 구분은 유의미한 작업이고, 또한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많은 대중들이 그 구분에 동의하고 호응하며, 수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화의 평가나 좋은 영화에 대한 선정을 어떠한 기준을 통하여,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2. 영화의 구성 요소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틀을 유지하고, 하나의 장르로써 영화의 의미를 갖추기 위해서 꼭 필요한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좋은 영화는 이 영화의 구성요소를 충분히 잘 구현하고, 각 구성요소를 매우 조화롭게 배열한 영화일 것이다. 영화를 좋은 영화로 만들어주는 구성요소는 ‘촬영과 카메라의 움직임’, ‘미장센’, ‘편집’, ‘서사’ 네 가지이다.
2.1. 촬영과 카메라의 움직임
촬영은 샷(shot), 앵글(angle), 조명, 색조(color), 렌즈, 필터, 필름, 광학기기 등의 기본적인 요소들로 현실을 필름으로 담아내는 행위를 의미한다. 촬영은 영화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바탕이라 할 수 있겠다. 촬영을 통해서 장면을 더욱 생동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필수적이다.
2.2. 미장센
미장센(Mise-en-scene)은 원래 '무대장치, 무대에 올린다'란 뜻의 프랑스어로 연극에서 쓰이는 용어였으나 영화로 옮겨오면서 '쇼트의 프레이밍'과 관련된 영화 제작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1). 즉, 연극에서 무대가 되는 여러 장치들을 영화의 현실성, 장면 분위기, 혹은 창작자의 연출 의도를 위해서 촬영 배경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2.3. 편집
영화는 촬영이 끝이 아니다. 촬영된 필름을 필요없는 부분을 삭제하고, 나타내고 싶은 부분은 강조하며, 영화 전체가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갖도록 하기위해서는 반드시 편집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는 장면 하나하나의 자름과 이음 뿐만이 아니라, 영화 전체를 시간의 재배열, 공간의 재배치 등을 함께 아우르는 개념이다.
2.4. 서사
서사(narrative)는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과 관계로 엮어진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들의 연결을 의미한다2). 쉽게 이야기하여 이야기 꺼리 이다. 영화는 이야기 꺼리 없이 존재할 수가 없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서 관객들에게 촬영과 편집을 통하여서 건네주어야 하나의 영화가 탄생되는 것이다.
3. 좋은 영화의 필수조건
‘촬영과 카메라의 움직임’, ‘미장센’, ‘편집’, ‘서사’ 네 가지 영화의 구성 요소들이 각자가 매우 잘 표현되고, 또한 이 것들의 조화로운 조합이 영화 전체에서 잘 드러나는 것이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좋은 영화란 훌륭한 내러티브를 영상적으로 잘 처리하고 잘 편집된 영화3)’가 좋은 영화란 이야기이다.
물론, 이러한 조건을 갖춘 영화가 흥미있고, 재밌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예술적으로 좋은 영화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훌륭한 이야기를 깔끔하고 세련된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만으로는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영화라는 컨텐츠만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감독과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도 컨텐츠로써의 영화 이상으로, 의미있게 느껴져야 하는 것이다.
좋은 영화는 영화 창작자의 올바른 지향을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어야 하고, 이것이 관객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3.1. 좋은 영화의 감독적 요소
감독은 무가치적인 영상을 카메라에 담담히 담아내는 사람이 아니다. 감독은 자신이 담아내고 싶은 내용과 영상을 자신의 가치에 맞게 카메라와 필름으로 표현하여, 세상을 향해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이어야 한다.
현실을 단순하게 모방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영화적 감각과 기술만을 겸비하고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예술로써의 영화를 창작하는 사람 즉, 예술가(artist)가 아니라 기술자(technician)에 불과한 것이다. 혹은 영화산업에 매몰된 하나의 영화산업 직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감독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현상이 가지는 내면적 의미를 표현해야한다. 현상에 가리워져있는 내면적인 의미를 파악하고, 내면적 의미를 영화를 통해서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출해야 한다. 즉, 자신이 세상을 보는 방식, 세상에 대한 생각, 자신의 지향점을 관객들에게 표현을 해야하는 것이다. 이 것은 사실적 장면 만을 담아낼 수 밖에 없는 사진술이 예술로써 존재할 수 있는 이유와 동일하다. 즉, 단순 모방이 아닌, 본질에 대한 모방을 예술가는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3.2. 좋은 영화의 관객적 요소
훌륭한 내러티브를 영상적으로 잘 처리하고 잘 편집되었거나, 혹은 창작자의 올바른 지향을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하였다고 해서 모두 좋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 관객, 즉 영화 수용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위의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좋은 영화는 될 수 가 없다.
영화는 관객에 많이 의존하는 예술이다. 미국의 헐리우드라는 거대한 영화산업체가 영화를 초기부터 산업적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표현주의, 프랑스의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의 몽타주 등의 영화의 순수예술적 사조의 흐름이 영화 초기에 많이 존재하였고 지금까지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것은 헐리우드의 관객을 중심에 놓는 서사(narrative) 중심의 극 전개 방식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수용자들은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순수예술로서의 영화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대중예술적 성격의 영화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헐리우드 식의 영화방식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영화라는 예술이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현재 영화 예술의 탄생 배경은 관객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로 영화를 발전시켰다.
또한 모든 예술에는 다양한 주체가 존재한다. 예술을 행위하는 것에는 예술을 창작하는 행위도 있겠지만, 예술작품을 보고, 느끼고, 감상하는 수용하는 행위도 있는 것이다. 즉, 영화에서 바라보면,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즐기는 수용자 역시도 영화예술의 하나의 주체인 것이다. 다양한 예술 주체들 중 어느 하나가 결여되어 있는 예술은 좋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영화 역시도 관객적 요소가 부족한 영화를 두고, 다른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고 좋은 영화라고 지칭할 수 없을 것이다.
관객이 보고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좋은 영화인 것이다. 물론 관객들의 기호와 성향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하나의 영화는 좋은 영화가 될 수도, 의미 없는 영화가 될 수도, 나쁜 영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창작자는 수용자들의 일반적인 추상4)화된 성향을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영화는 훌륭한 내러티브를 영상적으로 잘 처리하고 잘 편집된 영화임과 동시에, 영화 창작자의 올바른 지향을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어야 하고,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이어야 한다.
4. 박하사탕은 좋은 영화인가?
주인공 김영호, 그의 순수했던 젊은 시절과 점점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사회들...주인공 김영호는 첫사랑 윤순임을 만났을 당시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들꽃을 사진에 담고 싶어했던...군에 입대하여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도 순임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박하사탕의 순수함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영호의 오발로 인해 한 소녀가 죽게 되고, 그의 삶은 그때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변하기 시작한다. 경찰이 되어 그 사회에 물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여기서 그의 역할은 운동권 학생을 취조하는 것,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조금이나마 따뜻한 맘이 남아있다. 차가움으로 자신을 찾아온 순임을 돌려보내고...결혼을 하여 사업을 하면서 그는 점점 악한 사회에 물들어 간다. 아내의 외도, 엇갈린 영호의 삶...그는 이제 더 이상 순수한 청년이 아니다. 친구의 배신 등으로 사업은 망하게 되고 그의 삶은 걷잡을 수없이 황폐화되어 간다. 죽기로 결심을 하고 있던 순간 한 남자가 방문을 하게 되고...그는 순임의 남편이었다. 병실에서 죽어가고 있던 순임이 영호를 찾고있는 것이다. 영호는 박하사탕을 한 통을 사들고 병문안을 가지만 순임은 이미 의식이 없다. 거의 정신이 나간 영호는 옛날 그 소풍의장소로 돌아온다. 예의 그 사람들이 모여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르다. 영호는 철교위로 올라가 절규한다. 그리고 기차가 영호를 향해 달려온다......
4.1. 훌륭한 내러티브를 영상적으로 잘 처리하고 잘 편집한 영화
우선, 박하사탕은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김영호’라는 인물의 죽음을 역으로 돌아보며, 그의 죽음 속에 내재해 있었던 의미들을 찾고 있다. 김영호는 대한민국의 근대를 몸으로 살아왔던 매우 평범한 인물들 중의 하나이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일반인들의 삶과 유사하다. 물론 살아온 경험과 바탕은 다르겠지만, 근대의 한국을 살아온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인 것이다. 삶이 유사한 것 만큼 그의 죽음 역시 일반인들과 유사하다. ‘죽음’은 단순히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김영호의 삶은, 1979년부터 1999년 까지의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보여준다. 그 곳에는 70년대의 순수함과 사랑에 대한 풋풋함이 담겨져 있고, 80년의 광주의 끔찍했던 한국 역사와 80년대의 민주화 항쟁 속에 고통받았던 한국인이 담겨져 있다. 80년대의 고통 속에서 한없이 꺾여지고 삐뚤어지는 90년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있고, 자신의 삶을 망가뜨려 놓는 국가 경제의 위기도 영화 속 이야기에 존재한다. 이처럼 박하사탕은 추상화된 한 인물의 삶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어두웠던 과거의 역사를 조명해 준다.
박하사탕은 좋은 이야기(narrative)를 좋은 표현들로 나타낸다. 기차가 달려오는 선로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울부짖음을 마지막으로 생을 거둔 ‘김영호’의 삶을, 과거로 거슬러 오르면서 영화는 순수함의 시대를 보여주면 끝을 맺는다. 이러한 역행적 구성은 한국의 역사를 내재하고 있는 한 인물의 삶을 보여주기에 매우 훌륭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시작과 끝, 순수와 죽음을 강이 있는 자연에서 이루어지게 하고, 더러워지고 고통받는 모습들을 인공적인 도시와 도시 속의 건물들에서 보여주는 미장센 역시 뛰어나다. 또한 80년의 광주 항쟁과 그 이후에 계속되어지는 민주화 항쟁의 모습을 김영호라는 인물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만, 매우 사실적이고 대표적으로 표현하는 영화의 상징성과 치밀성은 매우 훌륭하다. 그리고 과거로의 회귀를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을 천천히 거꾸로 달리는 기차로 표현한 것은 매우 독특하며 동시에 영화 전반의 느낌을 잘 나타낸 것이다. 촬영과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김영호의 역사와 감정의 전이를 충분히 잘 전달할 만큼 풍부하였다.
4.2. 영화 창작자의 올바른 지향을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한 영화
박하사탕은 매우 순수했던 시절과 좌절하고 고통받는 황폐화되는 시간들을 매우 극명하게 보여준다. 감독은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암울한 한국사회의 근대적 역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표현하였다. 이는 감독 스스로가 삶을 영위하면서 받았던 고통과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암울한 역사를 표현하면서도 놓치지 않는 생각의 끈을 감독은 가지고 있다. ‘삶은 아름다운가?’이다.
형사 김영호는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온 대학생을 고문을 하게 된다. 매우 고통스럽고 잔인한 고문을 하면서 대학생을 자백하게 까지 만드는 김영호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삶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대학생의 일기장에 적힌 ‘삶은 아름답다’라는 문구가 그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지금, 다른 사람에게 잔인한 고통을 던져주는 김영호 자신도,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보았을 지도 모른다. 대학생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그래도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김영호에게 말해준다. 시간은 지나, 김영호는 잘나가는 사업을 하는 사장님이 된다. 자신의 부인이 바람피는 것을 추적하여 부인과 그녀의 남자를 흠씬 두들겨 패주고는, 자신은 자신의 직원 미스리와 불륜의 행위를 한 그날 저녁, 김영호는 다시 그 대학생을 만나게 된다. 그는 다시 ‘삶은 아름답다’라고 중얼거린다.
이처럼 영화는 순수의 시간에서부터 황폐함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삶은 아름답다’는 고통스러운 주문을 끊임없이 외고 있다. 이 것은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는 감독의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삶을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고 관객들에게도 이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감독은 박하사탕을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과 그 세상에 대한 진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여준다.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진실을.
4.3.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
많은 관객들이 박하사탕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김영호를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이며, 자신의 삶을 깊게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그래! 삶은 아름답다. 또한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 또한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사람과 삶이 아름답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시사하는 사실들을 관객들은 느끼고 되새기면서, 어두운 극장에서 밝은 세상 밖으로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한 인물을 바라보며, 느꼈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또한, 나는 ‘김영호와 같이 황폐한 길을 걷지 않고 태초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나의 머릿 속에 가득 찼었다. 하지만,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한송이 꽃처럼, 나의 어두운 절망감 속에서 ‘그래도 삶은 아름다운 것이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라는 밝은 빛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박하사탕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이다. 단순한 감정의 흔들림이 아니라, 관객에게 세상을, 삶을 바라보게 해주며,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통하여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깊은 성찰을 전해주는 영화이다.
5. 박하사탕은 좋은 영화다.
박하사탕은 훌륭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이를 빼어난 촬영기법과 미장센, 그리고 편집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매우 잘 전달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감독이 지향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관객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앞에서 말한 좋은 영화에 대한 조건들을 박하사탕은 모두 충족하고 있다. 그렇기에 박하사탕은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가 있다.
하지만, 몇 가지의 항목에 맞추어서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분류는 좋은 영화의 구분을 위해서 크게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같은 영화라도 관객에 따라서는 감동을 받을 수도, 무의미 할 수도, 혹은 나쁜 느낌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박하사탕이 좋은 영화이다’ 이야기는 전적으로 개인(나)에게 좋은 영화인 셈이다.
절대적으로 좋은 영화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관객의 입맛에 맞는 영화란 없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적 분류의 좋은 영화에 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영화의 기본 구성요소를 충실히 잘 따르는 영화 중에서, 감독의 지향을 훌륭한 표현법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추상화된 일반 영화 수용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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