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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14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마진철
  2. 200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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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4/08
    올드미스다이어리 모니터링
    마진철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방송모니터링

SBS 교양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목요일 저녁 9시)

지훈


@ 방송 내용

부산 물개 Max 이야기(1화), 미니어쳐 초가집 짓는 매인 노인 이야기(2화),               

독특한 집 - 도심 속 비둘기 집(3화),  Back Man 으로 불리우는 사나이 - 대만편(4화)


@ 세부 사항

방송의 대상을 지나치게 온정적인 시선으로 미화시켜 방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그릴 때 많이 발생하는 오류이다. 개인이 처한 상황을 넘어서서 따뜻한 멘트와 화면 처리로 그들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만드는 전개 방식은 실제의 삶보다 항상 미화되거나 과장되기 마련이다. ‘2화’에서도 노인과 그의 부인의 생활을 그리면서, 부인은 수십년동안 한결같이 맹인 노인을 곁에서 따뜻하게 지켜주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다. 하지만 가끔 드러나는 말투에서 부부는 여느 다른 부부들과 다름없이 퉁명스럽고 투박하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인 듯 하였다. 이렇게 평범한 삶을 더욱 아름답고 돈독하게 그리려고 하는 것은 방송사가 시청자에게 주고 싶은 마음일 뿐이지 사실은 아니다. 지나친 의미부여는 사실을 왜곡한다.

‘3화’에서 철사와 대못 등으로 지은 비둘기 집을 가지고 새전문가를 불러다가 이야기는 나눈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전문가의 이야기는 일반인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벗어나질 못하였다. 왜 굳이 전문가를 불러다가 이야기를 들을까?라는 의아함이 들 정도였다. 전문가의 입을 통해 사실을 고증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생각 그 이상의 식견과 해안을 보여주는 것이 전문가의 입을 빌리는 의의일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의 전문가는 불필요한 구성일 따름이다.


@ 전반적인 이야기


<세상에 이런 일이>는 시민 제보들을 통해서 우리 주위의 기인과 기이한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일상 속의 기이함’은 시청자가 공감과 동시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소재이다. 현실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겸비해야 좋은 방송임을 상기해 볼 때, <세상에 이런 일이>는 매우 훌륭한 기획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선정성이다. 일상에 존재하는 소재로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들 위주로 방송이 될 위험이 있다. 2002년 1월 31일에 방영되어 논란이 되었던 전북 농가의 귀신 소동 이야기는 방송이 선정성과 자극이라는 시청률 경쟁의 함정에 빠진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 주전 방송에서 귀신현상에 대해서 6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할애해 예고를 한 후에, 본 방송에서 아이들의 자작극으로 판명하는 방송을 한 것이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무책임하게 방송한 <세상에 이런 일이> 제작진에게 많이 비판하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예에서 드러나듯이, ‘기이하고 특이한’ 소재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로 잘못 전이될 때 방송은 무책임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제작진은 이를 항상 염두 해야 한다. 그리고 좀더 현실에 가까운 솔직함과 진실성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재미를 포착하는 저널리즘적인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두 명의 사회자와 두 명의 패널로 이루어진 진행구성이 엉성하였다. 여자 진행자 박소현은 방송 전반에 걸쳐 몇 마디 하지 않고 자리만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오히려 패널인 박미선은 VCR이 나오는 동안 틈틈이 이야기를 하면서 영상에 대한 반응을 보여서 ‘공감’을 보여주었다. 전반적인 역할이 두 명의 사회자 보다는 두 명의 패널이 더 큰 기이하게 구성된 것이다.


@ 타 방송과의 비교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는 9시라는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된다. 이 시간에 타방송사에서는 , , KBS2에서는 <인간극장>과 <올드미스다이어리>를 방영한다. SBS로서는 쉽지 않은 방송시간대이다. 9시의 시간대가 SBS로서는 가장 어려운 시간대임이 예상된다.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설득이 갈 방송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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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가슴 모니터링

 

<떨리는 가슴> 모니터링

지훈

 

1. 기획


드라마 <떨리는 가슴>은 6명의 연출가와 작가가 6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드라마 한편씩 만들어 가는 새로운 방식의 창작을 시도하였다. 등장인물과 그 관계는 전체 드라마에서 동일하나, 각 편마다 포커스가 되는 인물이 바뀌고, 추가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화 사랑은 배두나를 주인공으로 이혼녀의 사랑을. 2화 기쁨에서는 하리수를 주인공으로 트렌스젠더의 삶을. 3화 슬픔에서는 딸 보미의 첫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초등학생의 첫사랑을. 4화 바람에서는 김창완을 통해서 40대 중년 남성의 사랑을. 5화 외출에서는 배종옥의 사랑을 통해서 중년 여성의 옛사랑과 현재의 사랑. 6화 행복에서는 종옥과 두나의 예전 어머니인 김수미를 등장시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 구성방식은 매우 획기적이며, 신선하다. 기존의 주말드라마에서처럼 몇 달동안 지속적으로 지켜봐야하는 것이 아니라, 매 회만 보더라도 충분히 드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또 다양한 작가와 연출가의 스타일을 만끽할 수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연출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또 단편으로서의 완결성을 보여주면서 장편의 한계를 극복함과 동시에, 지속성이라는 장편의 장점을 유지하는 것이 큰 매력이라 하겠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드라마 제작이 많이 도입되는 것은 매우 유의미할 것이다.


2. 주제 및 내용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기존의 주말 연속극은 20대 혹은 30대 남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는데, <떨리는 가슴>은 이러한 관계 설정의 식상함을 너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2회 기쁨 편에서는 트렌스젠더라는 성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실제 트렌스젠더 하리수가 과감히 연기함으로써 신선함과 사실감, 진실성을 담보하였다. 또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음으로써 사회의 공익에 앞장서야하는 방송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트렌스젠더라는 특수한 상황만이 아니라 초등학생, 이혼녀, 40대 중년 남,여 등의 이야기들 역시 매 회의 주제로 삼으면서 주말 저녁의 가족 시청시간대에 맞게 대부분의 시청자 연령대에 맞추는 것 역시 매우 좋은 시도였다. 드라마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문을 열고 나서면 주위에서 볼 수 있음직한 이야기들이어서 현실감이 있었고 또 보편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들이었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담담하게 드라마를 전개시키나가는 것이 주말드라마로서 적절하였다. 특히 40대 중년 남여의 외도 이야기의 경우에는 매우 심각하고 부도덕하게 빠지기 쉬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무겁지 않으면서도 동조하기 쉬운 터치로 그려나갔다. 사실 중년 남여라고 해서 사랑이 없겠는가? 감정이 없겠는가? 한 사람만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을 지닌 것이 당연함에도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는 내적 규범으로 ‘그러지 말아야 함’을 강제해왔다. 이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사회적 인식의 차원에서 억누르고, 이를 벗어나는 경우에 있어서 벌을 내리는 행위였다. 그러나 <떨리는 가슴>은 존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묘사하는 ‘쿨’함을 지니면서 표현하기에, 무겁지 않게, 또 가볍지 않게 이해되도록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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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찾사 웃음의 비밀

 

1. 웃찾사는 해체적인 방식으로 웃음을 창조한다.



  다른 개그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 나 '폭소클럽' 혹은 '코미디 하우스'는 전형적인 웃음의 방식이다. 5년 전 혹은 10년 전의 개그 방식과 그리 다르지 않다. 다만 최근의 사회에 맞는 소재와 화법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개콘 꼭지 중에 신동작그만, 조폭개그(이름이 생각이 안남;;), 봉숭아 학당 등이 그러하고, 폭소클럽의 도울강의(지금은 없지만), 믹스콘서트 등이 그러하다. 예전보다 조금 세련되고 깔끔하다는 느낌외에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물론 더욱 지저분해진 면도 있다.)


 하지만 웃찾사의 웃음방식을 살펴보자. 웃찾사는 오히려 예전의 틀을 깨는 방식으로 웃음을 전달하고 있다.

  '윤택'은 말도 안되게 느린 반응속도를 가진 인물이다. 물론 걸음걸이와 말투, 그리고 헤어스타일도 비정상적이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존재할 수 없는 캐릭터인 것이다.

  또 '희한하네' 꼭지에서는 모두가 단기 기억 상실증을 가진 인물이다. '택시비 얼마예요?', '오천원이요' '택시비 얼마냐니깐요?' '이천원이요~' '예~ 여기 오천원 드렸습니다.' ㅋㅋ 이런 방식으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간다.

  특히 '그때 그때 달라요'에서는 매우 특색있게 나타난다. 이들은 문자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영어 문장 몇 가지를 적어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소리나는 대로 읽고, 그리고 서로에게 미쳤다고 소리지른다. 또 극 진행중에 자기들 마음대로 웃기도 하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갑자기 무대를 한바퀴 돌기도 한다. 음... 그러니깐 완전히 정상이 아니다.


  즉 웃찾사의 이야기 전달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일상의 대화와 생활과는 너무 다르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대화법, 생활방식을 해체시켜 놓은 것이다. 개콘이나 폭소클럽이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가면서 웃기려고 한다면, 이들은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돌 뿐이다.

  그러므로 이미 익숙하고 몸에 베어있는 사고의 잣대를 가지고 웃찾사를 보는 이들에게 웃찾사는 재미있을 리 없다. 오히려 기존과는 다른 방식의 이야기, 행동들로 난무한 웃찾사를 보면서 '언제 웃어야할지? 뭐가 웃긴건지? 쟤네들 왜 저러고 있는 건지?'하는 생경감 만을 받을 것이다.



2. 웃찾사는 만화를 보는 것 같다.



  만화를 어릴 적 부터 보고 자란 이들은 지금 이 땅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많이 잡아도 30대 중반정도로 생각할 수 있고,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만화를 보며 자란 이는 20대 후반까지일 것이다. 그래서 만화란 젊고 어린 이들에게는 매우 익숙하면서도 그 윗세대에게는 매우 어색한 매체일 것이다. 이 만화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을 때는 그나마 누구에게나 적응할 만한 매체이지만, 만일 만화가 살아있는 사람으로 부터 생성되게 된다면 만화에 익숙치 못한 세대들은 적응불가능일 것이다.


   웃찾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만화캐릭터같다. 가끔씩은 정말 코스프레(만화 캐릭터 따라하기)를 한 배우들이 나온 것 같다. 윤택, 귀염둥이의 종규와 형은, 그때 그때 달라요의 미친소와 김대발 조교 모두 행색이 매우 만화적이다. 물론 행동도 만화적이다.

  ‘그때 그때 달라요’에서 미친 소는 갑자기 인라인 스케이트를 탄다. 이유 없다. 그냥 만화(특히 엽기만화)를 보다보면, 이상한 캐릭터들이 갑자기 나타난다던지 소리를 지른다던지, 뛰어다니는 등의 행동으로 보면 될 것이다.

  또 2004년 최고의 캐릭터인 리마리오를 보라. 얘기를 하다가 음악이 나오면 갑자기 의미도 없는 춤을 춘다. 그리고 계속 이야기를 진행한다.

  ‘귀염둥이’에서 종규는 여자친구인 형은을 멜로디에 맞추어서 ‘귀엽고 깜찍하고 예쁘고 상큼하고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솜사탕처럼 달콤한 우리 귀염둥이’라고 묘사한다. 음.. 지극히 만화적이다. 이에 못지않게 형은은 종규의 행동에 ‘오빠 미워요~ 나 삐졌어~’하면서 뿡뿡뿡 춤을 추며 무대를 돌아다닌다. ‘오! 이런!’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모습에 만화에 익숙치 않은 세대의 사람들은 정말 어이가 없을 것이다. 왜 갑자기 춤을 출까? 왜 저기서 뛰어다닐까?를 생각하게 된다. 젊은 아이들이 웃찾사를 보면서 웃으면서 따라하고 있을 때, 그 아이들까지도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아이들이 주위에 넘쳐나게 되면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상한가?’ 이상하진 않다. 다를 뿐이다.



3. 웃찾사는 감각적이다.


  매우 감각적이다. 신세대 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즉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최첨단 유행어들을 쏟아내며 통하는 사람들만 통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쨌든 로보캅’을 보면 예전에도 항상 있어왔던 콩트이다. 하지만 그 속도감은 엄청나게 다르다. 그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트박스의 속도는 그 자체 만으로도 탄성이 나오게 한다. 또 효과음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 로보캅의 땐스 실력도 여느 땐스 가수 못지 않다. 기존에 흔히 볼 수 있는 콩트이지만 그 모습은 너무나도 감각적인 것이다.

  또 예전의 소나기 강호동을 흉내 내면서 개그하는 ‘행님아’ 꼭지를 보라. 예전 강호동을 똑같이 흉내내면서, 그 속도는 아마 두 배 이상일 것이다. 그리고 말 뿐만이 아니라 강호동 흉내를 내는 신형의 몸동작도 무척이나 빠르다.

  ‘알까리나 뉴스’는 입심 좋은 개그우먼이 중동어의 느낌이 나는 말들 중간 중간에 한국어를 섞어가며 피가 터져라 속사포처럼 말들을 뱉어낸다. 중간 중간엔 욕도 섞여있다.

  또 ‘뭐야!’ 그리고 ‘그런거야!’에서는 서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정말 복잡하다. A가 B에게 얘기하는데 갑자기 C가 이야기하고, 또 분명 C가 이야기할 타이밍인데 A가 다시 이야기하고 있다. 어디서 이야기가 터져나올지 전혀 종잡을 수가 없다.

  또 그들은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국적 불명의 “파”를 날려대고, “귀밥 봐라”, “그런거야”, “뭐야”를 반복한다. 웃찾사를 즐겨보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처럼 웃찾사는 매우 빠르고 감각적이다. 신세대 적이다. 신세대는 예전 세대에 비해서 생각하는 판단하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이 훨씬 짧단다. 이는 많이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또 예전에 비해서 훨씬 빠르고 감각적임을 예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즉 신세대 감수성에 맞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편안한 방식이지만, 그 윗세대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4. 결론 : 웃찾사를 즐기려면...



  생각하지 마라. 이해하려고도 하지마라. 생각과 이해는 이미 기존의 생각과 잣대를 개그를 판단하는 과정이 개입된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웃찾사는 해체적이다. 기존의 틀과 전형을 부수고 만화적인 방식으로 감각적으로 웃음을 전달한다. 여기에는 생각이나 판단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그냥 쉽게 만화 한편 보는 것이다. 만화를 보는데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다. 판단을 하는가? 그렇지 않다. 웃찾사는 한편의 엽기만화를 사람이 몸으로 보여주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그냥 웃어라. 혹은 그냥 웃기 싫다면 보지 않음 된다. 하지만 웃찾사를 보게 되었다면 아무런 생각말고 판단말고 그 곳에 몸을 실어보아라~ 그걸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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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미스다이어리 모니터링

  올드미스 다이어리 프로그램 모니터링 <한국여성민우회가 제기한 두 가지 비판점에 대한 생각> 올미다 제작진의 기회의도에도 이미 세상과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체되어 그려진 TV 드라마 속의 여성상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변화된 여성의 모습을 반영하고자 함이 올미다의 기획의도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그렇지 못함’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1. 변화하는 여성상을 반영 못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시트콤

  2. 주인공들의 인생 최대의 목표가 여전히 결혼, 결혼지상주의

 

  이에 대한 올바른 비판을 위해서는 방송, 그 중에서도 드라마에 대한 상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삶의 반영인가? 혹은 이상적인 삶의 모델이 되어야하나? 나는 물론 이 두 가지의 절충을 생각하고 있다. 삶의 결정이라는 것이 항상 여러 가지 대립상황의 절충과 타협이듯이, 이 두 가지는 분명히 함께 존재하여야 한다.

 

  드라마는 현실을 충실히 반영해야한다. 그래야만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고, 또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우리 곁의 이야기, 옆집 아줌마, 아저씨, 친구, 동생들의 이야기 같은, 있음직한 스토리를 보았을 때, 우리는 감동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방송 및 공연이 그렇듯이 대표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모든 모습을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보니 특정 성격유형들의 대표적 인물들을 설정하여 현실을 나타내야한다. ‘현실의 극화’라는 과정에서 우리는 드라마의 허구성이라는 불순물이 개입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된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은 항상 불치병을 앓고 죽고, 남자들은 잘생기고 돈많은 재벌 2세이고....벌써 한숨이 나온다... 뭐... 절대로 내 주위에는 이런 사람없다. 그러므로 공감도 없다... 글을 쓰고 있는데 벌써 한숨이 나온다... 흠.. 그러니 드라마는 현실을 충실히 반영해야한다.

 

  하지만 무조건 현실만을 나타내라고 할 수는 없다. 첫째로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현실 그대로의 드라마는 재미가 없다. 매일 보는 현실을 굳이 왜 또 TV로 보겠는가? 나라도 안보겠다. 또 현실은 너무 징글징글하다. 둘째로 문화 창조자 입장에서 대중에게 끼칠 영향력을 고려해서 드라마를 통해서 삶을 아름답고 즐겁게 만들 의무가 있다. 힘들고 거지같은 현실이라도 그 속에서의 살아가는 희망과 즐거움 등을 잘 찾아내어 시청자들에게 던져주고, 이로 하여금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즐거워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화창조자의 의무가 아닐까?(결코 이 말이 삶을 왜곡하고, 자의적으로 생성하라~ 라는 얘기가 아니다. 징글징글한 사회라도 잘 찾아보면 항상 즐거움이 있는 법이니, 이를 잘 찾으라는 이야기이다.)

 

 이쯤 되면 내가 생각하는 드라마의 상이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 그렇다면 올드미스다이어리(이하 올미다)를 살펴보자. 우선 올미다에 대한 감상이다. 재밌게 보았다. 음.. 억지스럽지도 않고, 정말 친근한 이야기였다. 있을 법한 인물 설정에 있을 법한 해프닝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었다. .

  특히 개인적으로는 할머니들의 일상 이야기가 정말 공감이 갔다. 음.. 포카리 000 음료수의 뚜껑을 어찌 따야할지 난감해하고, 센서로 작동하는 변기의 물을 어찌 내려야 할지 난감해하는 모습에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처음 수세식 좌변기를 접했을 때, 어떻게 볼일을 봐야할지 난감해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고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렇다보니 올미다 자체의 흐름이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면구성도 어색하고, 중간 중간 섞이는 효과음도 어색했다. 이는 현실성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효과(기교)를 되도록 쓰지 않았기에, 효과나 기교에 익숙한 우리에게 가끔의 효과가 어색하게 느껴졌을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진솔하고 친근한 이야기가 부담없이 전개되어지고 억지스럽지 않아서 매우 편안한 드라마, 혹은 시트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비판에 대해서 역시 충분히 공감하는 편이다. 드라마와 시트콤이 이상향적인 모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근거있는 비판에 대해서는 충분한 수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용과 함께 적절한 선에서의 조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가 올드미스라는 계층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좋은 시도로 볼 수 있으나, 이것이 어쩌면 개인에게는 민감한 ‘노처녀’의 이야기를 하나의 유희꺼리로 만들 위험도 있는 것이다. 또 조금이라도 잘못 그려졌을 때는,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 받고 살고 있는 이 땅의 노처녀들에게 또 하나의 가시덤불이 될 수 있을 것이다.(음... 작년에 결혼한 함께 살았던 나의 이모를 보면서 노처녀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드라마에서는 결혼에 목매달고, 인생 최대의 목표가 결혼이고 등의 한국여성민우회에서 걱정하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이는 내가 아직 20대 중반의 남성이고, 또 올미다를 자주 보지 못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올미다 제작진이 한국여성민우회의 비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개선을 시도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나 올미다에게 칭찬하고 싶은 것은, 비판의 목소리를 숨기기 보다는 토론방을 개설하고 시청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던 점이다.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고 고려하는 모습이 앞으로 만들어가야할 방송 문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게시판이 KBS내의 올미다 꼭지에 있어서 올미다 애청자들만이 주로 방문하는 한계 혹은 계획적인 의도는 조금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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