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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주말 시대가 시작되었다. 직장인들은 예전보다 알찬 주말을 보내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다. 기존의 1.5일의 짧은 휴식형 주말엔 TV 시청과 부족한 잠 보충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지만, 이제는 2.5일의 긴 시간을 생산형 주말로써 보내고자 한다. 이제 주말의 TV시청과 잠은 빈둥거림과 시간 죽이기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여행, 동호회 등의 생산형 여가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고 있다.
하지만 집에서만 주말을 보내던 이들에게 황금 주말은 뜨거운 감자이다. 알찬 주말을 보내야 하지만, 막상 이용할 수 있는 문화 인프라는 턱 없이 부족하고, 또 일반 레저 상품은 경제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부족한 인프라 속에서 싸고 유용한 문화 컨텐츠는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수용 능력 또한 매우 적다. 그렇다고 매 주말을 여행이나 공연 관람으로 보내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결국 한동안 ‘알찬 주말의 강박’에 거리를 방황하던 사람들은 집으로, 그리고 TV 앞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TV 매체가 안일한 태도로 이들을 맞이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이들은 ‘여가 아노미’를 벗어나 알찬 여가 선용 능력을 갖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전에 TV는 하루빨리 알차고 건전한 주말 여가 문화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은 2.5일의 주말에 걸 맞는 정보의 제공이다.
알찬 휴가에 목말라 있는 자들에게 문화 강좌, 문화 교육 등의 유익한 정보 프로그램으로 보람 있는 주말을 제공하면 된다.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찾아 헤매는 대신 TV를 통해 필요한 부분을 충족할 것이다. 그리고 여행, 공연 관람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다양한 공연 소식, 여행지 정보 등을 제공하면 된다. 어차피 TV 곁을 떠날 사람이라면 TV가 그 출발점 되면 된다.
이러한 주말 TV의 변화가 단순히 시청자와 방송사의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만은 아니다. 주5일 근무제에 따른 시대적인 흐름에 따른 변화이자, 부족한 현실 조건을 채울 수 있는 문화적 대안으로서의 자리매김인 것이다. 또한 오락과 유희에 편중되어져 있던 주말 TV가 시청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위한 당연한 귀결이며, 알차고 유익한 언론으로서의 사명인 것이다.
1000만 관객 동원의 한국 영화 산업 발전에는 “7080세대”라는 새로운 문화 키워드가 숨어있었다. 4,50대가 집과 회사가 아닌 문화시장으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이들의 행보는 문화계 불황임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맘마미아>의 대박, 7080 콘서트 매진 등의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문화산업은 이들의 두둑한 지갑을 겨냥하여, 수많은 컨텐츠들을 생산하고 있다.
중년으로서 안정된 지위와 경제적 여유를 가진 이들이 문화 시장의 주 소비층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주목해야할 점은 이들을 겨냥한 컨텐츠들이 모두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 상품이라는 점이다.
7080세대는 가난했던 산업화 시대에 유년시절을 보내었고, 20대에는 대학에서 혹은 거리에서 독재정권의 폭압 속에서 민주화 투쟁의 정점에 서있었던 세대이다. 30대에도 6월 항쟁 등으로 민주화의 고통을 겪었으며, 90년대에 IMF의 경제난을 가장 고통스럽게 경험한 것도 이들이다.
그렇지만 고통스럽던 과거는 일정정도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이 성취된 지금의 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훈장이며, 아름답고 달콤한 추억일 것이다. 그렇기에 7080세대를 자극하기에는 추억 상품만큼 훌륭한 자극제는 없다.
하지만 추억 상품은 한계를 가진다. 추억이란 가끔 떠올릴 때 즐거운 법이다. 끊임없이 똑같은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결국에는 지겨워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구매력 있는 문화 소비자인 7080세대를 끊임없이 유혹하기엔 과거의 추억만으로는 부족하다. 추억을 현재 진행형으로 만들어야 한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7080세대의 문화가 1,20대를 소비층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문화 생산으로 신세대를 흡수한다면 문화 상품으로 끊임없는 가치를 창출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세대 문화에 자연스레 융합되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70년대의 문화를 신세대적 감각으로 승화시킨 SBS 드라마 <패션 70S>이다. 두 경우 모두 세대 차이를 넘어 소통의 공간으로서 7080문화가 의미를 가질 때 7080문화는 오래 지속될 것이고, 7080세대는 문화소비의 주체로서 계속 주목받게 될 것이다.
청계천 공사 비리, 철도 공사 유전 비리 등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정치인들이 많이 생긴 가운데, 유독 잘 나가는 정치인이 하나 있다. 일명 ‘홍사마’로 불리는 정치인 홍준표이다. 모래시계의 검사의 실제 인물인 그는 모래시계 방영 당시와 거의 맞먹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가 발의한 국적법 개정안 덕분이다.
부모의 단기간 해외 거주시 태어난 자는 이중 국적을 취득하였고, 17세 이전에 하나를 포기할 수 있는 것이 기존 국적법이었다. 이는 병역기피의 훌륭한 전략 요새였다. 하지만 다음 달에 개정될 국적법에서는 병역의무를 마치기 전에는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홍사마의 예외없는 병역 의무에 대한 평등의식이 고맙기는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불과 몇 달 전에 터져나왔던 ‘훈련병 인분 사건’ 이나, 매년 발생하는 ‘구타 사건’, ‘성폭행 사건’등을 주시해보라. 사실상 우리나라 군대는 인권의 사각지대이다. 또한 체제 순응, 상명하달의 조직 논리 등의 잘못된 사회 경험을 체득하는 곳 또한 군대이다. 게다가 개인의 의사가 반영될 수 없는 강제적인 징병제도이다. 이중국적을 취득한 상위층 자녀이든, 평범한 대한민국민이든 이렇게 살기 힘든 군대를 강제로 보내는 것은 그것 자체로 폭력이다.
국적법 개정안을 두 손 들어 환영한다. 하지만 이는 근원적인 문제를 흐릴 위험을 내포한다. 군대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병역의 의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어야 한다. 이는 선진국의 첨단 군대의 모델이기도 하며,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선택권 없이 모두가 가야만 하다라는 사실이 군의 환경을 개선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군을 선택하지 않은 자에겐 대체 복무의 의무를, 그리고 군을 선택한 자에겐 그만큼의 혜택을 줘야 한다. 홍사마의 국적법 개정안. 평등의식의 첫 걸음을 넘어, 군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앞으로의 현명한 행보를 기대한다.
[논술] 세밀한 기준의 낙태 관련 법 수정이 필요하다.
지훈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낙태가 금지된 나라이다. 낙태를 한 산모도 낙태 수술을 한 의사도 형법에 의해서 처벌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출산 인구보다 2.5배나 많은 어린 생명이 낙태로 인해 죽고 있다. 이는 생명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마땅한 생존권에 대한 엄연한 침해이다. 하지만 낙태를 단순히 악한 행위로만 간주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 낙태도 여러 종류의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판단을 내리게 되면, 많은 오류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낙태에 대한 찬성이든, 반대이든 간에, 고귀한 생명에 대한 판단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실제로 낙태는 현실에서 필요악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준 강간에 의한 임신 혹은 기형아 임신의 경우나 혼전 성행위 시에 잘못된 피임으로 인한 임신이 해당된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낙태가 온전히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 생명의 생존권을 위해 낙태를 하지 않는다면, 이는 결국 산모의 생존권 침해로 직결되기에 낙태는 필요악으로 이루어져야만 한다.
문제는 필요악으로의 낙태가 아니라 무분별한 낙태행위 이다. 바로 아들을 낳기 위한 낙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당수의 낙태가 이에 해당한다. 이는 남녀 성비를 비추어 추론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출산 전 성별 식별 또한 법으로 금지되어있지만, 이것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양이다. 아들을 낳기 위한 낙태는 절대적으로 부모들의 편의를 위해서 , 어린 생명을 죽이는 생존권의 침해이다. 이는 엄격한 법 적용을 통해서 철저하게 규제해야 한다.
이처럼 낙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법률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단순히 ‘낙태는 불법’이라는 절대 명제만을 가지고 판단한다. 이러한 막연한 법은 오히려 모든 낙태에 대해서 속수무책이 되어 버린다. 필요악의 낙태에 대해서는 법 적용이 불가능하고, 이것이 규제되어야만 하는 낙태에 대해서 까지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단순한 낙태가 문제가 아니라, 올바르게 적용되고 규제되지 못하는 일괄적인 법체계가 문제이다.
아이와 산모 모두의 생명은 존엄하다. 그렇기에 이에 대해서 쉽게 판단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낙태에 대해서 불능의 법의 잣대로 막아야할 낙태까지도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기능하지 못하는 법은 살인행위를 방관하고 있다. 이제 낙태 관련 법은 세밀한 기준에 의해서 수정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의해서는 낙태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사라져야할 낙태에 대해서는 엄중히 규제해야 한다. 아이와 산모의 생존권이라는 진리를 기준으로, 세밀하게 구분되어진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엄격히 지켜야만 무분별한 낙태를 통한 살인을 막을 수 있다.
얼마 전에 국내 최대의 엔터테인먼트사인 IHQ 매각을 두고, SKT사와 KT사가 경쟁을 벌인 바 있다. 휴대전화사업자인 두 회사의 IHQ 매각 경쟁은 매우 흥미롭고 의미있는 사건이다. 이는 DMB 시대가 멀지 않음을 보여준다.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는 앞으로의 매체 문화를 크게 바꾸어놓은 차세대 방송이다. 기존의 고정된 브라운관, 스크린을 넘어서서 이제는 휴대폰으로 방송을 보는 것이다.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는 것은 기본이다. 이제는 영화와 TV 방송을 보고, 실시간 뉴스를 접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휴대폰 보급률과 신세대들의 휴대폰 친화력을 고려해보았을 때, DMB 산업 시장은 매우 거대하며 최고의 보물창고인 것이다.
DMB 산업의 성패는 컨덴츠의 확보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볼거리가 얼마나 풍부하냐에 따라서 소비자는 매체이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SKT와 KT의 IHQ매각 경쟁은 컨덴츠 확보 경쟁으로써 당연한 행보이다. 일본의 SONY사의 할리우드 거대 영화 기업인 콜롬비아 사와 MGM 매각 소식 역시 컨덴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휴대폰 사업자들에게는 컨덴츠 확보가 중요하듯이 각 방송사는 컨덴츠 개발이 중요하다. 기존의 방송을 그대로 매체이동을 시키는 식의 전략은 매우 안일한 생각이다. 매체에 따라서 적합한 문화 양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와 TV 방송은 각각 스크린과 브라운관 그리고 극장과 가정이라는 상이한 매체에 적합하게 다르게 정착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DMB 컨덴츠는 휴대폰이라는 매체에 적합하게 발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거대 산업인 DMB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각 방송사는 휴대폰 방송에 적합한 컨덴츠 개발을 시도해야만 하는 것이다.
DMB 컨덴츠는 휴대폰에 적합하게 만들어 져야한다. 휴대폰 화면은 TV보다도 작다. 그리고 휴대폰은 이동중이거나 혹은 여러 사람이 있는 곳 등의 상대적으로 불안정된 상황에서 이용된다. 또한 언제든지 전화가 걸려올 수도 있다. 이러한 휴대폰에 걸맞게 DMB 컨덴츠는 구성되어야 한다.
우선 보다 클로저업 된 화면 구성을 많이 포함시켜야 한다. 멀리서 잡은 롱샷은 작은 휴대폰에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어려우며, 표현전달에도 한계가 있다. 또한 사건의 전개는 빨라야 한다. 조용한 집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집중할 수 있는 주기도 짧아짐이 당연하다. 조금만 지루하면 언제든지 집중은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는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짧은 컷들을 이용한 빠른 사건 전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보통 한 시간의 기본 단위로 구성되어있는 방송보다는 30분 단위의 짧은 구성이 더 적합하다. 대중교통 이용자는 길게는 한 시간 짧게는 1,20분 정도의 시간이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한 시간의 편성은 매우 부적합하다. 그렇기에 조금 더 짧은 편성 시간으로 방송을 맞추어야만 시청자들이 조금 더 편하게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DMB는 당장 내년에 시행될 방송 문화의 획기적인 변화이다. 이는 문화향유의 엄청난 혁명이자, 문화 시장의 금광이다. 이러한 DMB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매체에 적합한 컨덴츠 개발이 필수적이다. 기존 방송의 매체 전환은 국제적인 DMB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는 안일한 사고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매체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컨덴츠 개발에 조금 더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는 각 방송사의 수익 확보이자 동시에 국가 경쟁력과도 이어진다.
호주제 폐지를 찬성하며..
지난 3월 2일 국회 본의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 소식에 많은 한국 여성계와 여러 진보 단체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호주제는 1957년 제정된 이래로, 그것에 대한 폐지가 한국 여성 운동계의 가장 큰 목표였다. 그만큼 호주제 폐지는 현재까지의 한국여성운동사에서 가장 큰 성과로 기록해도 좋을 만큼, 매우 의미 있는 결실이다. 이로써 남녀평등에 대한 의식이 직장 및 국가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의 영역에 까지 크게 확산될 수 있는 뜻 깊은 계기가 될 것이다. 또 법적으로 남녀가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져 있는 모순적인 구조를 깨뜨리면서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호주제는 1957년에 제정되고 그 다음해 2월에 공포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한 가정의 호주 즉 가장은 남성이 우선적으로 승계하게 되어있다. 또 여성은 결혼을 하게 되면, 호적을 파서 남편의 호적에 입적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녀는 무조건 아버지의 성을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호주제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호주제는 근원 자체가 남녀의 차별을 당연시 하고 있다. 이는 여성에게 억압적인 제도임은 두 말할 나위조차 없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남성에게 조차 필요 이상의 짐을 안겨주는 제도이다.
여성은 호주제 때문에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결혼의 시작에서부터 남편에게 종속되어야 했다. 집안의 가장은 남성으로 못박혀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조건에서 결혼을 했더라도 가정의 주인은 남편이 되었다. 만일 남편이 죽는다 하더라도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 자신이 호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호주가 되어야 했다. 또 어머니가 이혼 후 자녀들을 데리고 재혼을 하였을 때는 성이 다른 가족을 구성해야 했고, 아이들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아야만 했다. 만일 이것이 견딜 수 없다면 다시 계부의 성으로 아이의 성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여성은 늘 낮은 곳에 위치하면서 남편과 아들을 떠받들면서 살아야 함을 국가에서 깔끔히 정리해서 문서로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호주제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남성이 호주제의 수혜자는 아니다. 호주제의 영향 하에서 자란 남성은 가정을 꾸리고 자신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을 매우 당연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열심히 놀았던 남성들도 군대 제대를 계기로 열심히 호주가 되기를 준비한다. 학점을 올리고, 취업준비를 하고, 조금씩 번 돈을 모으면서 가정을 준비한다. 또 가정을 이룬 후에도 ‘내 가족은 내가 먹여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아침 일찍 출근, 밤에는 야근, 주말에도 출근을 반복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가장의무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역시 호주제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남성이 가장이 되고 가정의 생계 책임자가 되는 것을 법적으로 임명한 것이 바로 호주제이다.
이처럼 호주제는 여성에게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 조차 억압적인 제도이다. 억압적일 뿐만 아니라 시대에도 맞지 않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이혼율이 2위이다. 이는 재혼가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제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성을 쓰는 가족을 대표적 가족 형태로 제시하면서 변화되는 가족을 받아들이기 힘들게 하고 있다. 앞에서 예를 들었듯이 아버지와 성이 다른 자녀는 친구들의 놀림감이 된다. 하지만 자녀가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성을 자유롭게 따르고, 다양한 성이 존재하는 가정이 많게 된다면 성이 다른 부자가 놀림감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호주제의 폐지는 지금까지 살펴본 많은 모순과 차별들을 해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호주제가 사라진다고 해서, 일순간에 남녀의 차별이 사라진 평등의 사회가 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규정된 차등적인 남녀의 위치를 동등하게 놓는 것은 평등한 현실을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여성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다. 여성이 맞닥뜨린 억압적인 구조만큼, 남성들도 필요 이상의 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여성의 지위 향상은 남성들에게 그만큼의 짐을 덜어낼 수 있게 해준다. 또 구시대적인 호주제를 폐지함으로 인해 하나로만 고집되어온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제도를 수용할 수 있다. 이는 변화무쌍한 현대의 사회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오늘도 야근이다. 지난 주에도 3일이나 야근했는데, 월요일부터 야근이군. 남들은 주5일제 근무다. 주말 웰빙 보내기다로 떠들썩하지만, 나에겐 언젠가부터 일주일에 휴일은 하루뿐이다. 나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나보다. 하지만 내 주위 친구들은 모두 나와 비슷하다.
25살에 늦은 군입대를 기점으로 내 인생은 남들보다 2, 3년씩 늦은 시계바늘로 움직여간다. 29살에 취업을 하고, 지금은 35살이지만 겨우 회사 6년차다. 물론 적은 봉급으로 살다보니 아직 내 소유의 집도 없다. 여자친구 역시 남들에 비해서 늦게 생겼다. 회사 입사와 비슷한 시기에 만난 여자친구는 마음씨 착하고, 깔끔한 외모의 소유자이다. 아마 나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여자친구일 것이다.
여자친구는 올해 겨우 나이 앞에 3자를 붙여보았다. 그러니 나와는 5살 차이가 나는 것이다. 주위에서는 이제 결혼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성화다. 여자친구 역시 주위 친구들과 가족들로부터 은근히 많은 압박을 받나보다. 그래서인지 주말에 만난 여자친구의 얼굴이 그리 밝지는 않다. 여자친구가 조심스레 자신의 여동생이 결혼할 남자를 집에 데려왔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 서로 이야기하기가 싫은 것이다.
사실 결혼이라는 것 나와 여자친구 모두 별로 할 생각이 없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서로 집도 가까워서 보고 싶을 땐 항상 본다. 그리고 직장 생활도 바뻐서 지금 정도의 거리감에 서로 불만이 없다. 하지만 항상 문제는 ‘너와 내’가 아니라 ‘남들’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보다 더 우리의 결혼에 대해서 걱정인 사람들이 많다. “나이들어 결혼하면 임신이 잘안된다”, “늦은 출산으로 얻은 아이는 머리가 안좋다”, “나이먹고 웨딩드레스 입으면 흉하다” 등의 적령기 타령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결혼할 때가 되었나보다. 결혼 해야겠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남들도 이런 식으로 결혼하는가보다. 어릴 적 결혼과 사랑에 대한 환상은 정말 환상이다. 처음한 밥은 뜨겁고 윤기가 나지만, 전기밥솥에 오래 꽂아두면 마르고 비틀어져 누렇고 딱딱해지듯이 결혼과 사랑도 그런가 보다.
그래!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로 하는구나. 지금까지 그 쉬운 공식하나를 외우지 못하고 살았구나. 3일의 야근이 지나고, 남들 노는 토요일의 근무가 지난 다음, 일요일에는 여자친구와 조용히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야겠다. 그리고 비싸지 않은 선물과 함께 부드러운 프로포즈를 해야겠다. 봄날의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듯이, 남들이 정해준 나의 적령기의 의무를 받아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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