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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10
    김밥싸는 여자
    봄밤

김밥싸는 여자

신랑은 고추를 심고 난 뒤 어제 오늘 고추(지지)대를 세우고 있다.

덕분에 새벽 5시나 6시에 나가 밭일을 하고 7시반에 출근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밥굶으면 세상 끝나는 줄 알던 우리는

아니 신랑은 아침을 거의 굶고 출근했다.

좋은 반찬 아니어도 입맛에만 맞으면 한끼 뚝딱 잘먹는 신랑은

구운김을 좋아한다.

내일 아침에는 굶겨서 미안한 마음은 안가져도 되겠다.

겨우 김몇장 굽고는...

 

아기들을 재우고 주방정리를 하고 김을 구운다. 밤 열두시가 다되었다.

들기름과 소금을 섞어 김에 바른다. 솔은 깨끗이 씻어도 세제찌꺼기랑

김, 기름 찌꺼기가 남아 나는 손가락으로 바른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소풍때마다 손으로 기름을 바르던,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천천히 싸주던 엄마.

나는 솔 놔두고 더럽게 손으로 기름 바른다고 퉁을 줬다.

손때문이라기보다 알록달록 이쁘지 않은 김밥이

조금은 창피해서였을거다.

 

사는 내내,

머리가 굵어지고 아이 둘을 낳은 지금까지도

나는 때로 엄마가 창피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 막내 고명딸, 말이 좋아 수양딸이지

그 때에는 소녀들을 식모로 많이 두던 때였나보다.

학교 구경은 커녕 수양딸로 들어가 부엌데기로 살아온

엄마가 창피했다.

 

스물 일곱 넘은 나이에 전처와 그녀의 아들이 득시글거리는

아빠와 결혼한 엄마가 창피했다.

그렇게 살면서 낳은 아들이 죽고 그뒤로

딸만 줄줄이 셋을 낳은 엄마.

나는 그 셋 중에 엄마 나이 마흔에 낳은 셋째딸이다.

 

월세방 얻을 돈이 없어 큰 언니를 낳고

갈라서지 못하고 곁방살이를 했다던 엄마.

 

덕분에 평생을 우울하게 살아온,

그 분노들을 가슴에 묻어두다 때로 설움과 화가

북받치면 집기들을 두들겨 패대기치던,

평소에는 한없이 좋기만 하던 엄마지만

화가 나면 무서운 눈과 욕을 씹어대던 목소리.

엄마에게 맞은 적은 없다.

 

몇년 전에 고관절 수술을 했었는데

3주 전에는 무릎수술을 했다. 연골이 닳았단다.

엄마의 마음도 닳고 닳아 이제는 물기없이

버석거리는 소리가 난다.

일흔다섯이 된 엄마는 아기가 되었다.

 

부스럭 부스럭 쓱쓱 싹싹

김에 닿는 손가락이 내는 소리.

씩씩 쌕쌕

아기들과 신랑이 잠자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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