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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6/07
    죽 끓이는 시간
    봄밤
  2. 2008/05/10
    김밥싸는 여자
    봄밤

죽 끓이는 시간

사랑이가 아팠다. 하룻동안 열이 39.5도까지 올랐다.
병원에서 재보니 39.2도. 주사를 맞으라는데 해열제주사만큼 위험한 것 없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 열 더 오르면 나중에 다시 와서 맞히겠다고 했다.
병원에 다녀와서 죽을 끓였다. 흰찹쌀을 물에 불렸다가 끓이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기억하는 그 때부터 밥보다는 죽이나 누룽지를 더 많이 먹었다.
죽과 누룽지는 냄새가 참 고소해서 옆에서 먹고 있으면 한 숟가락 얻어먹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날마다 죽이나 누룽지를 먹는 엄마와 아직 어린 나는 꼭 함께 그것들을 먹곤 했다.

한번 부~하니 끓으면 약한 불에서 은근하게 보글보글 끓인다. 그걸 보고 있자니 서글퍼진다.

늘 먼 곳을 바라보며 내게는 거의 눈을 마추지 않고 혼자서 동네 마실을 다니거나

내가 모르는 곳에 다녀온 엄마.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학교 갔다가 돌아오면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
잠겨진 문 앞에서 울다가 옆집 아줌마가 준 고구마를 먹던 기억.

 

세살, 한살짜리 아기들을 데리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다, 내 조건에서는.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갈 곳도 없다.
애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며 운전면허라도 있어야 사람구실 하겠다 싶다.

엄마의 그 텅빈 눈, 조용히 죽을 끓이던 그 창백한 시간을 사랑이에게 허락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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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싸는 여자

신랑은 고추를 심고 난 뒤 어제 오늘 고추(지지)대를 세우고 있다.

덕분에 새벽 5시나 6시에 나가 밭일을 하고 7시반에 출근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밥굶으면 세상 끝나는 줄 알던 우리는

아니 신랑은 아침을 거의 굶고 출근했다.

좋은 반찬 아니어도 입맛에만 맞으면 한끼 뚝딱 잘먹는 신랑은

구운김을 좋아한다.

내일 아침에는 굶겨서 미안한 마음은 안가져도 되겠다.

겨우 김몇장 굽고는...

 

아기들을 재우고 주방정리를 하고 김을 구운다. 밤 열두시가 다되었다.

들기름과 소금을 섞어 김에 바른다. 솔은 깨끗이 씻어도 세제찌꺼기랑

김, 기름 찌꺼기가 남아 나는 손가락으로 바른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난다.

소풍때마다 손으로 기름을 바르던,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천천히 싸주던 엄마.

나는 솔 놔두고 더럽게 손으로 기름 바른다고 퉁을 줬다.

손때문이라기보다 알록달록 이쁘지 않은 김밥이

조금은 창피해서였을거다.

 

사는 내내,

머리가 굵어지고 아이 둘을 낳은 지금까지도

나는 때로 엄마가 창피하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 막내 고명딸, 말이 좋아 수양딸이지

그 때에는 소녀들을 식모로 많이 두던 때였나보다.

학교 구경은 커녕 수양딸로 들어가 부엌데기로 살아온

엄마가 창피했다.

 

스물 일곱 넘은 나이에 전처와 그녀의 아들이 득시글거리는

아빠와 결혼한 엄마가 창피했다.

그렇게 살면서 낳은 아들이 죽고 그뒤로

딸만 줄줄이 셋을 낳은 엄마.

나는 그 셋 중에 엄마 나이 마흔에 낳은 셋째딸이다.

 

월세방 얻을 돈이 없어 큰 언니를 낳고

갈라서지 못하고 곁방살이를 했다던 엄마.

 

덕분에 평생을 우울하게 살아온,

그 분노들을 가슴에 묻어두다 때로 설움과 화가

북받치면 집기들을 두들겨 패대기치던,

평소에는 한없이 좋기만 하던 엄마지만

화가 나면 무서운 눈과 욕을 씹어대던 목소리.

엄마에게 맞은 적은 없다.

 

몇년 전에 고관절 수술을 했었는데

3주 전에는 무릎수술을 했다. 연골이 닳았단다.

엄마의 마음도 닳고 닳아 이제는 물기없이

버석거리는 소리가 난다.

일흔다섯이 된 엄마는 아기가 되었다.

 

부스럭 부스럭 쓱쓱 싹싹

김에 닿는 손가락이 내는 소리.

씩씩 쌕쌕

아기들과 신랑이 잠자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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