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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07
    죽 끓이는 시간
    봄밤

죽 끓이는 시간

사랑이가 아팠다. 하룻동안 열이 39.5도까지 올랐다.
병원에서 재보니 39.2도. 주사를 맞으라는데 해열제주사만큼 위험한 것 없다고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아 열 더 오르면 나중에 다시 와서 맞히겠다고 했다.
병원에 다녀와서 죽을 끓였다. 흰찹쌀을 물에 불렸다가 끓이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기억하는 그 때부터 밥보다는 죽이나 누룽지를 더 많이 먹었다.
죽과 누룽지는 냄새가 참 고소해서 옆에서 먹고 있으면 한 숟가락 얻어먹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날마다 죽이나 누룽지를 먹는 엄마와 아직 어린 나는 꼭 함께 그것들을 먹곤 했다.

한번 부~하니 끓으면 약한 불에서 은근하게 보글보글 끓인다. 그걸 보고 있자니 서글퍼진다.

늘 먼 곳을 바라보며 내게는 거의 눈을 마추지 않고 혼자서 동네 마실을 다니거나

내가 모르는 곳에 다녀온 엄마.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학교 갔다가 돌아오면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
잠겨진 문 앞에서 울다가 옆집 아줌마가 준 고구마를 먹던 기억.

 

세살, 한살짜리 아기들을 데리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다, 내 조건에서는.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갈 곳도 없다.
애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며 운전면허라도 있어야 사람구실 하겠다 싶다.

엄마의 그 텅빈 눈, 조용히 죽을 끓이던 그 창백한 시간을 사랑이에게 허락하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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