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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몇달전 18개월 둘째 해랑이 한쪽 유두에 몽우리가 생겼어요..소아과 갔더니,,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병원가서 검사해보라고...
그러다 이게 계속 커지는것 같고 해랑이도 아프다고 해서 안되겠다 싶어 잘본다는 소아과를 갔지요.
대학병원가서 검사하래요...오늘 진료받고 검사했는데...
성조숙증..그러니까 성호르몬이 지금 사춘긴가 아닌가 착각한다는..암튼 그 때문에 난소에 혹이 생겨
그로인해 유두에 몽우리가 생길수 있는 가능성과
뇌종양..이 있어도 유두에 몽우리가 생긴다고...
오늘 피검사 소변검사 초음파검사 했어요..쉬운건 하나도 없어서 피뽑는데 애가 얼마나 울었는지...
뽀로로 반창고에 기분이 나아지긴 했지만,,ㅠㅠ 아직 오줌 못가리니 비닐로 된 걸 붙였는데 이게 접착테입처럼
되어있고 비닐이 부드럽지 않아서 아프겠더라고요..뗄떼도 아프고요..
그러고나서 초음파검사 하려는데 오줌이 좀 차야 잘 보인다고 애는 자지러지게 우는데
오줌 차면 다시 하자고..그래서 한참을 젖먹이고 물먹이고 놀다가 다시 엄청 울리고 검사했지요...
속시원한 얘기도 못듣고..괜....찮지요? 영상의학전문의에게 물으니...담당선생님에게 들으세요...이구
다음주에 다시 결과 들으러 가야는데...
저도 '사랑의리퀘스트쇼' 뭐 그런데 나가는거 아니겄지유....ㅠㅠ ㅠㅠ
남편에게는 괜찮겄지..머..그러다 "우리 해랑이가 지구랑 함께 아프구나,," 걍 글고말았어요..
점심도 못먹고 졸립고 배고픈 애들 데리고 반나절을 병원서 보내고 파김치가 되어서
간식과 반찬거리 몇가지 사려고 생협에 갔다가 반창고 사주기로 한 약속이 생각나서
또 한참을 걸어 약국을 찾았지만 결국 못찾고..사랑아 이 근처에 약국이 없구나..아주많이 걸어가야 약국이 나올텐데
엄마 너무 힘들고 사랑이도 힘들거같어..해랑이도 자고.. 긍게 담에 사자..잉? 약속 못지켜 미안해....
택시타고 집에 와서...씻기고 먹이고...
좀 놀고,,몸은 천근만근인디 더 죽을상하고 있을 남편 생각해 저녁준비하고..
밥먹고..또 간식에 목숨거는 남편...낮에 산 칼국수 면 보고환호하는 걸 보고...
이구...사랑이가 칼국수 좋아하니 끓여줘야지...그람서 밥먹은지 한시간만에 칼국수 끓이고...
멕이고...씻기고...또 멕이고 씻기고...
불현듯...눈물이 쑤욱....
엄마가 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지 둘째까지 낳아가지고서리...그럼서 둘째 원망해서 미안하고
엄마도 먹고픈 소주한잔만 먹자 그럼서 애 재우고
소주 딱 한잔 먹고, 글고 바로 애깨서 알콜쮸쭈먹인거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고...
첫애는 다친적도 거의 없는데, 맨날 둘째 밀쳐서 넘어져 머리 다친거 생각하니 또 첫애가 밉고...
젖먹이다가 문자보낸것도 미안하고...신생아때 사랑이도 엄마손 한참 필요했고 그래서 해랑이가 울어도
큰아이 먼저 위로하고 받아주라던 말씀따라 큰애먼저 돌보고 작은애 젖주고..그럼서도 너는 왜이리 울어대냐고...
신경질내고...기저귀갈면서도 손에 힘주어서 함부로 하고....이제제법커서 "내가 내가"를 외치는
해랑이한테 사랑이랑 너도 똑같아~~~그럼서 소리지르고....
모든걸 다 "언니꺼"라고 말하고 자기 사진보면서도 "언니'라고 말하는 해랑이...
생각할수록 가슴이...
(근디요, ..."해랑이 쮸쭈아프지요? 그래서 의사선생님한테 보여주고 선생님 쭈쭈 아파요 하러 병원 갈거예요."
계속 그 얘길 했더니..진료받음서...선생님한테 "선생미~~임~~쭈쭈아파요"우는척, 입내밀고 자꾸 그래요...
아이구...의사선생님을 걍 녹여부렀어요...^^
이렇게 사랑많고 애교많고 깊고 푸른 우주같은 아이들을...
아이구 내가 이 아이들 엄마구나...
아이고...ㅠㅠ)
그래도 저는 이렇게 살 수 있음이 고맙고 행복합니다.......
요즘 일은 많아도 사람사는거같아 좋습니다...
힘이 더 많이 납니다.....
별일 없겠지요...제게 힘이 있으니 이렇게 큰 선물을 둘이나 주셨겠지요....ㅠㅠ
일주일동안 더 행복하게 지내야겠습니다,...
다음주 병원가면 속시원한 대답 들을 수 있으니 즐겁게 기다려봐야겠습니다.
걱정 그때해도 늦지않겠죠...^^
오늘(수)이 원래 상담받는 날이었어요...
그런데 낮에 문자가 왔어요.
상담샘이 밤에(제 상담시간이 저녁 8시입니다) 강의가 생겨서 당분간 진행못하겠다고...
괜히 죄없는 애들에게 화내고...
안되겠다 싶어 전화했더니 안받아요. 사무실에 전화했더니
사무국장이란사람이 다른 일을 하면서 전화를 받는지 묻는 말에 대답조차 제대로 안하면서
한참을 딴소리만 하더니 그러니까 언제 통화할 수 있냐는 말에
전화번호 알려달랍니다. 이미 알고 있을테고 누구한테 전화왔다, 만
전하면 될것을...아으...지금도 막 올라와요...
그리고 하루 종일 연락 없었습니다.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났습니다. 무슨 똥개 훈련시키는것도 아니고
첫 약속잡고 일정 생겼다고 연기, 상담한번, 다시 일정있다고 연기, 상담한번,
남편이 안와서 애들 데리고 가서 시도하다가 결국 못하고 돌아온...
여태 한달을 그리 보냈네요...
상담연기한다는 것도 문자만 띡 보내고 말고 그때마다 제가 확인전화했습니다.
두번 상담 할 때도 30분 넘게 기다리고요.
아우...뭐라 말도 안나와요..
처음부터 그랬네요. 내가 온전히 받아들여질지 걱정된다고요...그래요
전 상담샘에게 거부당하는거 그게 제일 걱정되었지요, 여태 관계에서 상처받았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머리가 텅 비어있어요...
그냥 저 하던대로할까요?? 가서 멱살이라도 잡을까요? 전화해서 욕설이라도 퍼부을까요??
정말 기가찹니다...
처음 아는 분께서 이 샘을 소개해줘서 전화를 걸었어요.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저를 왜 소개했대요? ***샘이 성인상담안하신대요? 하긴 ***샘이 바쁘시긴 하시지"
그때 제 기분은 마치 귀찮은 아이 맡겨지는 상황, 그 아이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불쾌한 기분으로 시작됐지요.
그 당시 한참 힘들어서 정말 날마다 죽는 생각만 했을 정도였는데,
처음부터 연기되니 이게 날 시험하나 싶은겁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번도 한적이 없습니다.
첫 상담은 별 거 없이, 이미 가마솥(육아사이트에서 내적불행을 다루는 소모임)에서 풀어낸 것들 재탕한다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감정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지요.
그러다 또 연기됐어요..회의가 잡혔다고...역시 문자로만 전날...
다음날(상담날) 먼저 전화한건 저였습니다,
제가 연기된걸 좀 받아들이기 힘든 분위기로(??) 말했더니...그걸 마땅치않게 듣는것같았습니다..느낌이...
그리고 전혀 미안함이 없더군요..
그러다 두번째 상담때..그때 섭섭했냐고...다른 사람도 다 그랬다고...
그러니까 그 샘 말은 다른 사람도 다 그랬는데 왜 너만 그러냐는 식입니다.
감정 확 상해서 제대로 진행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하기로 했던 내용이 아니라 다른 내용을 얘기하고...
자신은 미술치료와 상담을 둘다 했으니 정 원하면 상담만 하는 분 소개해주겠다...
이 말을 지금까지 열번정도 했습니다.
제가 저는 빨리 풀고 싶어요...너무 힘들고 답답해요..그렇게 하소연했는데...
자기는 그렇게 못한다고...
원하면 다른 분 소개해준다고...알아서 하라고...
휴...뭐 이런게 다 있어 싶을만큼 기분이 나빠졌어요...
그러면서 하는말.
제가 전에 공부했던 연구소 샘 얘길 하면서 그 샘이 깊지않다고
거기서 공부한 학생 다 자기한테 와서 다시 한다고...
이거 아닌데...했지요...이건 치료자가 할 말이 아닌데...
그러다가 지난주 남편이 술먹는다고 안와서 애둘 데리고 갔는데...
상담이 될 수가 없더라구요..애들이 워낙 달라붙어서...
그냥 이런 저런 얘길 하는데...
그때말한대로, 큰애가 저대로 가면 언어치료받아야한다...
뭐 받게되면 받아야겠지만 그 샘 말은 제가 기준없이 키워서 기관안보내고 집에서 키우니
저런다고 그랬습니다.
작은애는 훨씬 빠르다고..그 말을 들으니 이 사람은 가드너박사의 다중지능 머시긴가 그걸로
애들 학습능력 향상하는게 더 관심이 많겠구나 싶더라구요...
심지어 목요일에 상담하는 다른 엄마는 라포형성이 잘 되어서 빨리 진행되는데,
저는 그렇지 않고 이것저것 아는건 많은데 제대로 아는게 아니라서, 완전 모르는것도 아니라서
빠져들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저 상담 전에 다른 사람의 얘기까지 하면서 그 부모가 상담 잘 되어서 참 좋아한다,
기관 보내려면 저소득 안되어서 돈많이 들거라고 했더니, 그 아이 얘길 하려고 합니다...
아무튼 그 애들처럼 나중에 더 돈많이 들게 하지말고 그냥 기관보내랍니다..
어떻게 할 지 결정해서 문자달라대요...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가서 또 거부당할까봐 두려웠을까요...
아님 상담료를 싸게 해줘서 였을까요..
(그 사람돈 안되는거, 피곤한거 싫어하나봅니다, 이구 이런 판단...다 그샘때문이야..으으으)
계속 잘해보겠다고, 지금까지 알고 있던거 내려놓고 잘해보겠다고...문자보냈습니다.월요일에..
생각해보니...
눈물나네요...엄마 내가 잘못했으니까 버리지 마요..용서해줘요..왜 그게 떠오를까요..
엉엉....
제 잘못인거죠..그 샘 말대로라면...
공감은 하지도않으면서 제게 삶의 기술을 가르쳐주고 싶어나봅니다.
뭐가 그리 잘난거죠?
아으.....뒷골땡겨...
그러다가 오늘입니다...
대체 제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너무너무 화가 나요...
일단은 샘에게 내일 전화해서 이런저런 과정 얘기하고
샘이 무슨 신인줄아느냐...
이런 식으로 치료할거면 그냥 '교수님'하시지 무슨 치료자를하신다고 하느냐...
뭐 그렇게라도 얘길하고 싶은데...
정말..여기저기 심리치료 동네에서 확 왕따시키고 싶어요...
돈밝히고 사람 가지고 장난치고 자기 혼자 잘난척하고
기본 치료자의 자세가 안되어있다...그렇게 소문내고 싶어요...
(흑.,..그러다 명예훼손으로 걸면 어쩐대요...
저 예전에 감옥갈때도 노동부 명예훼손했다고, 갔는디..우띠...)
정말 정말 화나요...
님들....제가 어떻게 해야 되는건가요????
(뱀다리....함부로 마구 대하는게 능사아닌줄 알어요..근데 그러고싶어요..
근데 또 사람 언제 다시 마주할지 모르는게 사람일이잖아요...
오늘 용산참사 추모집회 갔다가...몇년전 감옥에서 만난 철거민투쟁하는
언니를 만났네요...순회투쟁한다고 전주까지 오셨는데..참...기분묘햇어요
남편은 힘들다고 푹 쉬시라고 혼자 애둘데리고 갔다왔더니 술취해서 헤롱헤롱...
결국 또 저한테 소리지르고 원망하고 욕하고...애들 둘다 그만해.,그만해 소리지르고...
아으...죄없는 입술만 깨물어댔습니다..온종일....
막판에 잠이 온 애들 목욕시키다가 성질만 버럭...
엉엉엉엉엉....휘둘리지말자고 했건만......................)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첫애 사랑이 책을 읽어주는데...탄탄테마동화 중에 '불룩뱃속아가야'를 가져오네요.. 언니 오빠, 할머니 할아버지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아기... 책을 읽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릅니다. 몇일전에 왼손으로 쓴 내면아이가 어른저에게 보낸 편지.. '이곳이 무서워요, 배고파요. 나를 버리지 마세요...'가 생각났어요.. 그게 다가 아니더라도, 사실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내면아이의 편지를 읽고 얼마나 서럽게 울었었는지. 책을 읽어주다가 그 아이가 생각나서 꼭 안아주었어요.. 와줘서 고맙다 아가야.. 몇일동안 널 보아주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이젠 꼭 널 지켜줄게... 그렇게 말했어요.. 하지만 아침 국은 미역국을 끓일 수가 없을것같아요.. 눈물이 나서 먹을 수가 없을것같거든요.. 설에 친정에 가지 않았어요. 딸셋, 큰언니는 함께 살고 둘째언니는 직장일로 바빠서 못오고 아무도 오지 않는 엄마의 집... 엄마, 난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어.. 내게도 시간을 줘요... 이 추운 날 나를 낳고 엄마는 얼마나 울었을까. 나이 마흔에 아들보려 낳았는데.. 세번째 딸이 얼마나 싫었을까. 그래도 난 엄마가 기대고 의지할 그런 자식이 아니에요.. 나를 너무 궁지에 몰아넣지 마세요.. 난 겨우 자위나 하는, 거짓말과 도둑질을 하는 못된 애라고요.. 아가.. 누가 뭐래도 너는 너무나 소중하단다.. ... ... 해후의, 우연의, 우발성의...비가 내리듯 아... 이렇게 다시 내가 널 만났구나.. 사랑하는 내 어린미숙아... 강포에 싸인 이 작은 아기야.. 편히 숨쉬어라 너의 울음소리는 너무 여리구나 힘차게 젖을 빨아라 너는 아주 배가 고팠구나 내가 널 안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줄게.. 걱정말아라..내가 네 엄마가 되어줄게 모든건 그렇게 우연처럼 흘러간단다 사랑하는 내 어린 미숙아... |
첫째 사랑이는 만 32개월 반, 둘째 해랑이는 이제 만9개월 반이다.
요즘 우리 집이 화해모드로 되어가면서 사랑이가 더욱 밝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 전능한 자아를 주장하기보다는 타협, 제안과 같은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낮에 해랑이가 사랑이를 귀찮게 한 모양이다. 밀었는데 방바닥으로 쾅 넘어진거다.
아직 앉은 모양새가 불안정한 해랑이는 요즘 거의 매일 그렇게 사랑이때문에 뒤로 넘어진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악"비명소리가 나온다. 아, 그럼 안되는데..그게 사랑이에게는
죄책감이 되는데...알면서도 그 상황에서는 절제가 안된다.
사랑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사랑이 왜그랬어, 아기가 사랑이 귀찮게 했어? 사랑이가 아기 밀어서 넘어졌지?
엄마가 그러면 아기가 아주 위험하다고 했잖아. 엄마 지금 정말 화났어. 아기가 사랑이처럼 잘 걸
어? 사랑이처럼 잘 뛰어? 못하잖아. 아기는 앉아있다가도 잘 넘어지는데, 귀찮다고 아기 밀면
위험하다고 했잖아. 아무리 아기가 미워도 아프게 하면 안된다고 했지? 엉? "
"..."
한참을 사랑이에게 훈계를 하는데 사랑이가 작은방으로 가면서 흐흐 허허 웃는다.
기가 막혔다. "너 이리와! 엄마가 말하는데 그냥 가면 어떡해? 아직 안끝났어."
계속되는 꾸중에 사랑이가 처음엔 웃다가 나중엔 차가운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작은방으로 간다.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 작은방에 가서 말없이 사랑이를 안았다.
이 작은 사람..이 작은 우주에 또 상처를 주었구나...미안한 마음.
"미안해, 사랑이는 그저 귀찮아서 민 것 뿐인데...엄마가 미안해 사랑이에게만 뭐라고
해서 엄마가 미안해. 잘못했어.." "..."
마음이 아파서 사랑이를 더 볼 수가 없다.
사랑이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아기가 못걷고 중심잡고 앉지 못하는게
사랑이 탓도 아니고 먼저 태어난게 죄라면 죄인데...
바람이라도 쐬어야지싶다.
"사랑아 두부사러 가자~~~나가서 바람쐬자. 두부랑 훌라후프 사러가자"
옷을 챙겨입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기는데...
"엄마~ 해랑이가 빨리 컸으면 좋겠어" 두둥...
사랑이는 사실을 보고 있었고 내 마음을 읽고 있었다.
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 엄마도 해랑이가 빨리 컸으면 좋겠구나..그래그래"
해랑이를 업고 사랑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는데 우리 연립주택 골목 입구 재활용품
분리수거장에 퍼즐식 놀이방 매트가 얌전히 놓여있는게 아닌가. 얼른 들어 집에 갖다놓았다.
흐...이건 하늘의 뜻이구나.
두부를 사러 나가는 길.
이곳에 이사온 지 이제 두달 반이 되었다.
그동안 오래된 공단지역인 이곳에서 상점, 은행, 약국, 동사무소 등 어느곳에서도
난 친절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바로 그 두부.
생협에서 취급하던 두부가 사업자등록이 안되어있어서 다른 두부로 바뀌어 유통되는데
그 두부공장에 바로 이 근처에 있는 것이다. 요즘 고기를 아주아주 귀하게 먹고
채식으로 돌리려는 참이라 두부를 거의 매일 먹는데 생협에서 일주일에 한번
나눔받아 먹다보면 부족하다. 반가운 마음에 그곳에 전화를 걸어 "여기 **동인데요,
두부 한두개도 살 수 있나요?"물었더니 수화기속의 여자는 대뜸 "근데 가격은 아세요?"
라고 묻는다.
(이 동네가 오래된 공단으로 영세업체들이 많은 곳이고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 차림새나 분위기가 퇴락한 변두리 동네 분위기다.
몇군데 안가봤지만 식당의 음식은 정말 한 입도 넘기기 힘들고 마트,은행,약국 등 서비스종사자(?)
들도 불친절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건 다음에 자세히 하기로..)
"네에 생협 조합원인데 두부가 조금씩 더 필요해서요" "아 예에" 이어지는 여자의 말소리는
잘 귀에 들리지 않는다.
불쾌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건 뭐지? 이 불쾌감은 무엇때문일까..'
내가 부자동네 이름을 대며 **동인데요..했다면 다르지않았을까? 뭐 그런 느낌이었다.
그 토종콩 두부공장을 찾아갔다. 계단 몇개를 올라가 두부 좀 사러 왔다고 했더니..
대뜸 "그런데 얼만지 아세요?" 이러는거다.
아~뚜껑열려...
"뭐예요? 나 어제도 전화해서..."이러구저러구 마구 마구 화를 냈다.
생협 조합원이라니까 그제서야 "아아, 예에~~~"
보통 시중에서 파는 두부가 1천8백원에서 2천 5백원정도 하는데 여기는 4천원이나 한다.
그래서 그 곳으로 두부를 사러 가끔 오는 사람들은 무슨 두부가 그렇게 비싸냐, 금테둘렀느냐, 사
기친다..등등 엄청 수난을 당했다는 거다. 그래서 자기들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기농두부나 국산콩두부가 비싼게 당연하지만 쉽게 사먹지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라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야할지(저임금 영세노동자들에게 4천원짜리 국산토종콩두부 한모
보다는 4백원짜리 두부나 4천원짜리 돼지고기 한근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건 당연한 거겠지.),
한 아기는 업고 한 아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온 이 여자 행색이 상당히 후줄근해 보이는게 그런 반
응을 불러왔는지..
어쩌면 내 안에서 먼저 먹을거리에 대한 어떤 권력의식이 자리잡고 있어서,
시중에서 파는 식품에 대한 불신감과 현실적인 정보(농약, 각종 약품처리 등등)가 그저 정보만이
아닌 생활과 삶의 큰 기저가 된 지금 이게 그저 나의 취향이나 대리만족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에 대한 우월감으로 자리잡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미안하다며 두부 한모와 콩국물하나를 덤으로 주며 자주 오라고 한다.
나보다 열살 이상은 많아 보이는 사장아주머니님에게 너무 심하게 화를 냈나, 사랑이도 보는데..
생각도 들었다. 이 쓸데없는 예의, 집어치워야 할.
집에 오는 길,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 이 느낌은 내 열등감이었다.
난 그런 사람 아니라고, 난 영세노동자의 아내도 아니고 난 어디까지나 유기농 식품만 먹는
그래도 생각있는 사람이고 너희가 매일 보는 그런 후줄근한 인생이 아니라는 열등감.
이놈의 열등감이 나의 유아, 유년기의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가며 치유해간다고 믿고있
는데, 시도때도 없이 치고 나와 고개드는 이 방어...
해랑이는 등에서 자고 사랑이는 종알종알 뭐라고 말을 한다. 훌라후프 하나를 문구점에서 사고, 쉴
새없이 후줄근한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지나 역시 후줄근한 모습으로 꾸부정한 모습으로
집으로 오는 길.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집에 도착해 사랑이 신발을 벗기는데 사랑이 하는 말,
"엄마~ 아까, 좀더 상냥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성질 부렸네에~~이, 이이?(이거 전라도의 '그렇지'
의 사투리)"라며 살짝 미소를 짓는다.
헉...역시 사랑이는 내 스승님이다.
내 꿈은 창녀였다.
내 나이 한 열살쯤, 한복을 입고 제사상 같은 차려진 상 앞에 앉아 혼잣말을 하며 술을 따른다.
그러다 누워 자위를 한다.
나는 술집작부 또는 창녀 흉내를 내고 있었다.
나는 창녀가 되고 싶었다. 나같은 건 창녀나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다섯 또는 여섯살의 어떤 날, 나는 동네 언니들과 함께 난교파티놀이를 했다.
성행위하는 것을 흉내내는 것인데, 둘이 껴안고 이불로 돌돌 말아 방 이쪽에서 저쪽까지
굴려준다. 한번은 나보다 한살 많은 아이 정희와 아랫도리를 벗고 문지르며 성교하는 흉내를 냈다.
그 느낌이 얼마나 선명한지 모른다. 부드러운 살.
그 놀이를 했던 곳은 우리 옆집이었는데 우리 집 두칸 그집 두칸. 그 방이 기억난다.
우리집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것들이 그런 짓이나 하고...이제껏 나는 그 어린 날의 내게 그렇게 말해왔다.
그 즈음 나는 정희와 우리 집에서 놀이를 했다.
그 방에는 몸져누워 똥오줌을 받아내던, 말도 못하고 정신도 오락가락하던 할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우리가 하는 짓을 못보게 하려고 부엌에 있던 장작을 들고와 위협을 하고 나서
정희와 성교놀이를 했다.
더러운 년, 나쁜 년...지금껏 살면서 나는 다섯살의 내게 그렇게 말해왔다.
겨우 다섯살의 그 어린 아이에게...
수치심.
그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 할아버지는 불과 몇달 혹은 몇일 전까지만 해도 내가 할아버지를 부축해드리며 다니고
재떨이도 씻어드리던, 그러니까 나는 아주 착한 손녀였다는 것이다.
이중인격. 죄책감.
그런 날들에 엄마나 아빠 언니들에 대한 기억은 없다.
내 대여섯살의 기억에는 성교흉내를 내는 교활한 어린애가 있을 뿐이다.
그 뒤로 일곱살에 옆동네로 이사온 뒤 할아버지는 죽었다.
나는 마당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다가도 방에 들어가 혼자 자위를 했다.
내가 이상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여자의 알몸을 그리며 자위를 하고
티비에서 본 침대위의 남녀가 이불을 덮고 눕는 장면과 그 다음 예상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자위를 했다.
나는 겨우 다섯살 일곱살의 아이였는데...왜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는지.
그 때 난교놀이할때 둘째 언니도 있었는데.. 왜 그걸 말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지.
저학년 어떤 날은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내게 약수터가 어디냐고 묻고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산속 약수터까지 가다가 "에이 그냥 가라"
그렇게 날 보내줬다. 그 얘길 엄마에게 했더니 다시는 따라가지 말라고 했다.
난 차라리 그때 무슨 일인가 있기를 바랬다. 나는 이미 더러운 몸이니까.
대학교에 가서 수치심에 쌓인 내 몸은 '걸레'가 되었다.
동아리와 과에서는 늘 진탕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까지 술냄새를 풍기고 다녔다.
대학 1학년이 끝나기 전, 나는 선배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당했다'는 표나지 않게 쿨하게 가해자를 길에서 만나 먼저 아는체하기도 했다.
그 뒤로 별 부담 없이 여관을 다니며 문란하게 살았다. 내 의지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게 내 내적불행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정말 창녀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엄마가 교통사고로 받은 보상금이 좀 있었는데, 왜 난 한 푼도 안주냐며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고 막말을 하니 엄마가 울면서 돈 30만원을 내놓았다.
집에서 나오면서 '짐승같은 년, 나같은 건 죽어야 돼'를 뇌까렸다.
죄책감은 나를 더 깊은 고통과 타락으로 이끌었다.
학교 근처에 와서 우연히 만난 선배와 그 선배의 친구와 셋이 맥주, 양주를 마셨다.
필름이 끊겼다.
여관에 셋이 갔고 내 옆에 자던 선배의 친구가 내 몸으로 올라왔다.
술을 먹어 찢어지는 아픔도 몰랐다.
잠이 깨고 나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방바닥에 말라붙은 피범벅 피딱지..
모든게 다 끝났다고, 꿈도 희망도 이제는 나의 것이 아니라고, 난 정말 열살의
언젠가처럼 술이나 따라야 한다고, 그게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마흔에 날 낳은 엄마, 딸셋중의 막내인 나.
큰 언니는 스무살에 아이를 낳았다. 임신해서 남자의 집에 들어가 살았다.
둘째 언니는.. 글쎄 별 기억이 없다. 희미하다.
난 열심히 공부해서 엄마의 원수를 갚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공부를 좀 해서 대학에는 어떻게 갔지만 돈버는 사람 하나 없는 집에서 등록금 대기도
내 몸 누일 방 한 칸 마련하기도 모두 불가능했다.
이 친구집 저 친구집을 날마다 오가며 살았다.
무능한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나같은 더러운 년을 왜 낳아서 날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속으로 얼마나 욕을 했던지.
나는 엄마에게 또다른 아빠였다.
나는 분노를 폭발하는 아빠를 그대로 닮아 아빠처럼 엄마를 무시하고 언어로 폭행하고 짓밟았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면서 그랬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사춘기 즈음부터 거의 이십대중반까지 그렇게 살았다.
남들은 엄마가 그리워 집에 갔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음 한편으로는 한없이 따뜻한 엄마를 그리워했지만 나의 엄마는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
우리 집은 그저 분노와 먼지, 폭력과 엄마의 병, 불안과 우울이 가득한 곳이었다.
우리집 사람들은 모두 피해자고 가해자였다.
가난, 자위, 폭력, 수치심, 죄책감.
지금껏 내 삶은 이것들로 얼룩져있다.
지금도 나는 엄마의 목소리조차 듣기가 싫다.
굴욕적이고 나약한 자의 비명, 자식에게 목숨걸고 의존하는...
불과 몇시간전, "애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니 오지 말라는 소리냐며 화를 낸다.
빨리 죽어야지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려고 한다.
살면 얼마나 사느냐고 살아계실때 잘 하라는 남편을 보면 쥐뿔도 모르면서..싶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내 고통을 알아? 그래 난 이것밖에 안된다.
잘난 년하고 결혼해 살지, 뭣하러 나같이 쥐뿔도 없는 년하고 사냐...뇌까린다.
남편하고의 섹스는 나를 늘 굴욕감과 수치심에 휩싸이게 한다.
꼭 어느 사창가에 온 손님과 아가씨와 같은 그런 기분이다.
한번도 좋았던 적이 없었다.
아이를 만들기 전까지는. 희한하기도 하지.
내 음순은 비뚫어져있다. 하도 손으로 누르고 만져서 그랬나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보고 나도 거울로 비춰봤었다.
처음으로 내 몸이 안되었고 가여웠다.
난 여성운동을 영역운동 이름으로 접하면서 희미하게나마
꼭 내 잘못만이 아님을, 이제껏 내 삶의 얼룩들을 모두 내가 책임져야 하는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기막힌 것은 단체활동을 하다가 기관에서 성추행을 당했고, 그것을 싸울 것인가 말 것인가로
큰 갈등을 했다.
싸운다면 그동안 나를 알던 혹은 나와 함께 섹스를 한 남자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가슴 좀 만졌다고 그 난리를 치나? 라는 비난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어차피 너는 그런 여잔데 이슈만들려고 별 짓을 다하는구나 그런 비난이
끊임없이 솟아났다.
결국 나는 이제껏 내가 그렇게 살아온게 사실이고 그게 내 잘못이 아니었고 이제는
그렇게 당하며 살지 않겠다는 내 의지로 계속해서 싸웠다.
질 것을 알면서, 어쩌면 더 큰 상처를 입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
그 일로 나는 무고와 명예훼손죄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
.
.
나의 내적불행.
한번도 알아주지 못한 어린 나.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어린 나이에 수치심과 죄책감을 먼저 배우고 그동안 얼마나 가슴조리며 살아왔니...
삼십년간 얼마나 아팠니..아가야 미숙아...
얼마나 외로웠는데..내가 얼마나 외로웠는데..
아무도 봐주지 않고 아무도 관심갖지 않고..
나도 엄마손 아빠손 잡고 나들이 가는 그런 아이이고 싶었는데...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싶었는데...나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이 나를 주워왔다고 말하고
나만 특이하다고 이상하다고 성격 이상하다고....
난 정말 세상 어딘가에 내 친 아빠 친 엄마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면 친엄마 친아빠를 찾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
.
.
얼마전 나도 내 내적불행을 치유하려고 엄마에게 이런 저런 말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왜 날 맨날 혼자 두고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어..미안하다...
엄마는 여전하다. 다 내가 멍청한 탓이다...
그러다 들은 또한가지 얘기.
일곱살땐가 여덟살땐가 엄마가 여수에 다녀와 보니
한 겨울 밤에 냉방에서 혼자 울고 있더란다...
세상에...불쌍한 것..불쌍한 것..
이젠 좀 자유롭고 싶다. 나도 좀 살고 싶다.
더이상 내 고통이 내 아이들에게 전가되는 게 싫다. 죽기보다 싫다.
오늘은 우리가 함께 산 지 만 8년이 되는 날이다.
남편은 친구와 술을 마시다 11시에 들어와 12시가 다 된 시간에 통닭과 소주를 마시고 있다.
자고나면 자기가 그걸 먹었는지도 모를 거면서...
게다가 아이를 옆에 두고서....
편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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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사랑아빠
우리는 부모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살았어...
지금, 선배는 사랑이에게 치킨을 주고 있네. 나는 자다 깬 8개월 둘째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있다네. 그래서 이 시간은 폭풍전야의 시간이지.
우리가 돈을 물려줄까, 집을 물려줄까. 세살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이 얼마나 치명적인데 이밤에 술마시는 것도 부족해서 애한테 튀긴닭을 주면 그게 사랑일까.
선배는 내게 이 모든 상황을, 그로인한 고통을 돌리더군. 그래 내책임 전혀 없지 않아.
그런데 요즘 정말 힘드네. 내 내적불행을 만나는 것도 괴로운 일인데 말이야.
선배 탓을 하자는게 아니야.
선배도 그렇게 자라왔으니 그럴 수밖에.
내게 한 말, '기다려줘'라는 말...난 지금 기다릴 수 있어,
그런데 선배는 선배를 기다릴 시간이 아니라 돌아보고 살아온 날들, 아주 어릴적부터를 되돌아보고
그 속의 자신을 대면해야 할 시간인 것 같어.
어쨌든,
밤 12시에 이러는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편으로는 너무 화가 나고 한편으로는 내가 내 발등 찍었다는 생각에 절망적이기도 하고.
난 이런 생활 이런 부모모습 물려주고싶지않아...
내 아버지라는 사람, 나를 직접 때린 적은 없지만 언어폭력은 말할 수 없이 지독했어.
늘 욕하고 비난하고 자기비하하고 무서운 괴물같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밥상을 엎고 제사상 앞의 접시를 발로 찍어눌러 깨고...
늘 술에 취해서 붉은 핏발 선 그 눈...
자기 인생이 우리 때문에 엄마와 우리 셋 딸들 때문에 펴보지도 못하고 그리 되었다고 원망만 했어.
아들도 아닌 것들이 자길 무시한다고, 남자인 자기를 무시한다고 그런 것만 같았지...
그래서 내게 남자 컴플렉스가 있는지도 모르겠군.
난 어릴때 아빠가 늦은 저녁과 술을 먹을때 옆에서 뭔가 얻어먹곤 했는데(군것질, 먹는것, 자위, 그게 날 안정되게 했나봐)그러다가도 불호령이 떨어지면 가슴조리고 숨을 죽여야 했어.
언니들도 엄마도 나도, 이유도 모른채 죄인이 되어야 했어.
아빠를 흘겨볼라치면 엄마는 슬쩍 나를 꾹꾹 찌르고..그러지 말라고..
그때는 정말 가슴이 답답해서 집을 나가고 싶거나 저사람들 말고 어디선가 돈많고 교양있는
친아빠와 친엄마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
그러고 나면 엄마는 다음날이나 그다음날쯤 어김없이 우리들과 아빠에게(물론 우리만 있을때) 욕을 하고
나나 언니들에게 분풀이를 했어.
다정하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면,
날 한겨울에 냉방에 혼자 내버려두고 모두 어디론가 가버리지 않았다면,
내가 아파서 운다고 아빠가 욕하고 화낼때, 엄마가 한마디라도 애가 아파서 그러는걸 왜 화내냐고 한번이라도 말해줬다면,
모두가 화내고 욕할때 내가 얼마나 무섭고 가슴이 먹먹했는지 알아줬다면,
사는게 조금 덜 힘들수도 있었을텐데.
선배가 화내고 내 탓하며 내 존재를 깡그리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할때, 난 꼼짝없이
그런 아빠 앞에 다시 서있는 어린아이가 되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고 가슴만 두근거리고 무서워.
술에 취해서 날 모욕하고 애 앞이라는 것도 잊은채 욕하는 걸 보면 나역시 엄마처럼 되겠구나,
그래서 내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면 어쩌나, 중요한 일이 생겨 빨리 처리해야 하는데
발만 동동 구르는 내 언니들처럼 그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면
그냥 내 생각과 감정과 이성의 모든 회로가 끊겨.
그건 마치 죽음과도 같은, 살았지만 죽은거나 마찬가지인 삶이야.
또 10월의 마지막날이네.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
만8년전... 그래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우린 우리 사이의, 우리 존재의 모든 문제를 그저 회피하며
봉합하며 살아왔네..
나는 당신을 사랑이란 이름의 의존으로 파먹고 당신은 스스로를 파먹고 나를 파먹고...
우리의 지금 삶이 뭐가 부족할까.
선배 문자대로 선배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을까.
정말 그럴까.
나는 행복한데, 나는 태어나 처음 내가 여자고 엄마인게 다행인데,
나는 우리가 뭐가 부족할까 싶은데...
그것도 나의 착각일까. 선배 말대로 판단능력을 상실한 비정상의 미친년의 생각일까.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선배를 사랑하고(지나보니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인것같아)
함께 살자 하고, 결혼하고 애도 낳았는데...
행복이 그렇게도 힘든 건가.
그동안의 내 모든 것들이 선배에 의해 부정당한 느낌이야.
물론 아무리 선배가 나를 부정해도 내가 부정되지 않는게 그나마 다행인 사실이네.
그래, 시간이 필요하면 기다릴게.
나도 선배를 존중하고 올바르게 사랑하기 위해 노력할께.
우리가 사랑해야 행복해져야 우리 부모가 내게 물려준 불행의 유산을 내 대에서 끊지.
그래 목숨걸만한 싸움, 아니 목숨걸만한 사랑 아냐?
다시 해보자고.
내게 이런 시간, 이런 행복을 줘서 고마워.
최근 푸름이닷컴을 알고 나서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육아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깨지고 새로운 개념?화두?패러다임이 생겼다.
그 중 하나가 육아는 그저 아이를 기르는 일(마치 동물을 기르는 것같은)이 아니라
나를 성숙하고 행복하게 이끈다는 것이다.
아이키우는 것이 한편으론 행복하면서도 내게는 얼마나 고된 일인지 늘 힘들어 힘들어를 달고 사는 내게
육아는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독서영재교육법을 소개하는 사이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있다.
최근 이 사이트에서는 '내적불행'이 화두로 일고 있다.
그동안 여러가지 방어기제를 통해 자신을 감추고 살아온 부모들이 아이와 만나면서 유아기때부터 가져온 불행해지고자하는 욕망(내적불행)을 키우며 살아온 자신을 아이에게 투사하고, 아직 그 내면에서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기가 양육된 방식 그대로 아이에게 불행을 대물림한다는 내적불행과 불행한 육아 혹은 불행한 삶.
나도 한권두권 읽던 육아서를 보며 그동안 넘겨보았던 많은 경험과 사실을 다시보게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남편이 왜 그렇게 죽도록 미웠는지, 사람들을 대할때마다 불안감과 두려움이 엄습해 관계맺기에서 늘 실패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는지 등.
그리고 사랑이와 해랑이를 키우면서 일상에서 겪는 그 많은 갈등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무언가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다.
물론 이 사이트에서 말하는 것들을 모두 지지하지는 않는다.
때론 이거 엄마를 완전 혹사시키는거 아냐 하는 생각에 화날때도 있는데, 그건 그동안의 나를 이루는
좁은 틀로 봤을 때의 이야기다.
그 사이트의 소위 고수들이 추천하는 육아에 참고할만한 서적들을 보면,
아동발달과 심리에 관한 것, 정신분석, 긍정심리학, 가족관계에 관한 심리학 등 정신분석을 토대로 한 심리학이 큰 토대이자 핵심을 이룬다. 나아가 비폭력대화법과 위에 말한 내적불행에 관한 책들, 명상서적까지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보다 더욱 폭넓지만 내가 읽은 것이 아직은 여기까지다.
나는 이점이 참 흥미롭다.
언젠가 조문익선배가 말한 성장하는 사람, 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게 아닌가 싶다.
요즘 나또한 나의 내적불행을 접하면서 차마 마주하기 어려운 고통에 대면하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내가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영성수련, 미술치료에서 못다한 나의 내면으로의 여행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다.
더욱 깊이 빠지고 싶다. 더 깊게 응시하고 싶다.
여전히 사랑 해랑에게 사랑과 분노를 갈팡질팡하며 오가고 있지만 이제는 달라진다.
달라지고 있다.
나는 치유하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여성인 것이 다행이며 고맙다.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가질수 없던 계기 아닌가.
내 안의 여신이 부드러운 미소를 보낸다.
사랑한다. 내 안의 나여, 내안의 아기들이여, 내안의 우주여...
사랑한다, 미숙아...
어릴적 한번도(적어도 내기억에)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준 적없는(혹은 그렇게 내가 오해하고 있는)
나의 엄마, 아빠...언니들...
이제는 그 아이를 데려와 내가 키우고 어루만지고 사랑을 주겠다.
그래, 이젠 내가 되었다.(become & ok)
얼마전, 별것도 아닌걸갖고 사랑이랑 줄다리기 하다가
사랑이가 소리를 꽥 질렀다.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날 닮아가면 어쩌나 불안감에 살고있다 요즘)
뺨을 때렸다...
정말, 정말 그때 느낌은 말로 할수없다.
미련한 나, 둔한 나, 바보같은 나...
자존감 바닥인 나...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
천사와 악마 사이를 오가는 나...
가여운 나...
사랑받고 싶은것을...왜 또 잊었니...
여름에 비맞아 모니터가 고장나 엊그제 새로 장만했다.
덕분에 육아사이트에 오랜만에 가보니...
내 아는 사람의 가정탐방 동영상이 있다.
새벽까지 가슴치고 울었다..
내적불행을 이겨내고 수년동안 기다림 또 기다림...
변치않는 열정과 인내..
왜 사느냐. 우리 여기 왜 이렇게 아파하고 있느냐...
사랑받고 싶어서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나 사랑받기 위해 살아가는것이지
사랑받지 못해 울고 사랑받지 못해 아파하는 것이지
어제까지만해도 죽이고 싶던 남편을
다시 본다..한없이 가여운, 아픈 어린새가 된 내 남편을..
무조건 참기.
무조건 사랑하기..
조건없는 사랑...
'그래 네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하든 나는 너에게 열려있다...오라.....
그래 내 마음이여 내가 다 안다....'
아잔차 스님의 제자라는...아잔브라흐마의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그게 바로 조건없는 사랑, 자비...
내 아이들과 남편,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한없는 사랑으로 대하기...
사랑이가 생겨나지 않았다면 난 술마시다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져 죽든,
술마시다 사고로 죽었을거다...
사랑이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난 술취한 미친 코끼리로 평생을 죽이는 삶을
살았을거다...
사랑이가 날 살리고 날 가르치고..
사랑이는 날 목숨걸고 사랑한다...
그 사랑이 나를 먹여살리고 날 일으켜준다...
며칠전.
둘째 해랑이를 안고 젖을 먹이는데 사랑이가 자꾸 주위를 맴돌면서
아기를 집적인다.
"사랑이가 마음이 불편한가보다, 엄마가 아기만 안고 있어서 샘났구나? "
사랑, "응~"하면서 입이 쑥 나온다.
"그래 우리 사랑이가 엄마랑 꼭 껴안고 싶은데, 쭈쭈도 만지고 싶은데
아기때문에 못해서 속상하구나?~" 더 크게 "응~"
아기를 내려놓고 사랑이가 되어서 사랑이 팔을 내려놓고 팔베개를 했다.
조그맣고 가는 팔.. 사랑이는 아직 아기구나..
나는 아기가 되어서 사랑이를 엄마 삼아 떼를 부렸다.
"엄마~~~~ 왜 나는 안안아주는 거에요.. 잉~
나도 안아주세요. 엄마는 왜 아기만 안아주는 거예요...
나도 안아주세요. 엄마~ 엄마~"
사랑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사랑이 품을 파고드는데...
울컥, 눈물이 북받친다...
나는 계속했다.
"엄마..나도 안아줘요. 엄마~~ 엄마~~헝~"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입을 삐죽이면서 아기처럼 에~앵 울었다.
한참.
사랑이가 나를 안고 토닥토닥거렸다.
"미안해, 사랑아. 엄마가 조금 슬퍼서 우는 거야, 괜찮아"
외롭고 무섭고 피곤한 눈물이 쏟아졌다.
어딘가 낯익은 눈물...
내 어린 날,
엄마 없는 텅 빈 집에서 자고 일어났던 그 오후의 눈물...
난 아직 어린데...엄마는 늘 내 곁에 없었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갔는데 문은 잠겨 있고, 난 열쇠도 없는데...
엄마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고 옆집 아주머니가 고구마 몇개를
가져다 주고...
그때 알았다.
내 안의 작은 아이가 그렇게 있었는지..
비로소 열쇠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
하나. 내 어린 날이 아주 우울했다는 것.
엄마는 나를 무척 사랑했다고 믿었지만 사실 난 어느정도 방치되었다는 것.
둘. 그 외로움을 이기려고 자위를 많이 했다는 것. 나의 수치심과 죄책감이 여기서
기인했다는 것.
그 뒤로 사랑이를 보면 더 안쓰럽고 가엽고 미안하고 고맙고...
더욱 사랑스럽다.
병원에 다니는 요즘, 버스 정류장에 서서 사랑이를 보다가 너무
사랑스러워 꼬옥 안게 되는게...첫사랑 할때 이렇게 좋았을까 싶다.
이 느낌 오래 간직하고 싶다.
내 안의 작은 아이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 아이, 더 불러보고 더 마주하고 싶다.
엊그제 애들 고모가 멀리 울산에서 왔다.
예정에 없던 외출,외박을 하게 됐는데...
낮에는 그렇게 잘 따르고 잘 놀던 사랑이가 10시쯤 자다가 11시부터 울더니 30분간 울어제꼈다.
보통 낮잠을 못잤거나 피곤했거나 낮에 스트레스가 있었거나 하면 가끔 울기도 하는데
이날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엄!마!~아 엄마~악~~" 악을 쓰며 운다. 거의 발작.
가슴이 두근거리고 나중에는 화가 났다. 사랑이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무섭단다. 집에 가잔다.
거실에서 술에 취한 아빠의 목소리때문에 사랑이의 울음이 더 듣기 싫고 짜증이 났다.
아빠를 불러 집에 가자고 했다. 애가 도무지 그칠 줄을 모르고 집에 가잔다고 말했다.
표정 확~ 얼어붙은 사랑아빠. 거의 터져버릴 것 같은..
시댁에서 있기 싫어서 우는 애 앞세워서 집에 가려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한대다, 자기 식구들이라면 끔찍한, 정말 끔찍한 애아빠에게 왜 이상황에서
집에 가야하는지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럴 겨를도 없었다.
할머니할아버지에게 가서 애가 무섭다고 집에 가자고 해서 가야겠다고 했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어"라며 어서 챙겨서 가라고 하신다.
대리운전비도 주신다.
온몸으로 나를 비난하는 사랑아빠는 집에 가자는 내 말에 너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벌개지고 이미 사리분별을 못하고 있었다.
대리운전을 부르고 주말이라 30분을 차안에서 기다리다... 내가 이게 뭔가 싶다.
화를 내는 사랑아빠에게 뭐라 할 말이 없다.
나도 이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으므로. 단지 사랑이가 집에 가자고 했으니 더이상
애가 힘들어하는 걸 못보겠어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애아빠는 아침까지 화를 내고 나를 죽일 것처럼 으르렁댔다.
내가 자기를 말려죽인단다. 사람 괴롭히는 것도 가지가지란다...
그런 말은 중요치않다. 그 사람이 그렇게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나랑 같이 살면서 내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지 싶다.
다시 자책,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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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둘째 해랑이가 오후 6시쯤 열이 났다.
37도 38도 왔다갔다 하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 병원에 못가고 아빠를 기다렸다.
7시쯤 정리하고 오겠다는 아빠는 연락이 없다. 문자를 보냈다. "애가 아퍼"
병원 문닫는 8시가 지나고 전화해도 안받는다. 그러더니 열이 39도에 이른다.
<삐뽀삐뽀119소아과> 책을 보니 6개월 미만아기에게는 해열제를 부루펜이 아닌
타이레놀을 쓴단다. 부루펜을 그냥 조금 먹일까 하다가 해열제 그렇게 함부로
먹일 약이 아니라서 일단 미지근한 물로 씻어줬는데 그때 뿐이다.
화도 안나고 이러다 응급실 가겠다 싶어 천천히 애들 옷과 기저귀 가방을 챙겼다.
백일 갓 지난 아기가 열이 나니 그냥 볼 수가 없었다. 그때 11시쯤 애아빠가 왔다.
술에 잔뜩 취해 작은 방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절망감...
그때 내 눈에 애 아빠는 사람이 아니었다.
택시를 불러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사랑이는 업고 해랑이는 다 벗겨진채로
싸개 한겹으로 싸고 가방을 메고..눈물이 조금 났다.
교통사고 환자가 있는지 경찰들이 웅성거리고 여기저기서
애들 우는 소리...정신 쏙 빼고도 남게 생겼다.
기다리는 시간은 왜이리 긴지..
사랑이는 자가 깨서 컨디션 영 좋지 않고 해랑이는 계속 보챈다.
덥다. 나 혼자 애 하나 업고 애 하나 안고 큰 가방 메고...창피함? 아니 비참함..
한참을 기다려 접수하고 인턴이 상태보고..한참을 기다려 레지 와서 상태보고..
한참을 기다려 열이 폐렴때문인지 보려고 가슴 엑스레이 찍고...
여기도 타이레놀을 안쓰고 부루펜 처방을 했다. 타이레놀이 없단다.. 참담함..
(대학병원 응급실 절대 안간다...수술하게 생긴 거 말고. 상비약-해열제 등 꼭 구비해야 겠다. 사랑이는 거의 아픈적이 없이 커서 방심하고 자만했다.)
열은 높지 않아 약만 처방받았다. 애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냐고..
응급실이라고, 이제 곧 갈거라고...끊었다. 그이도 나도..너무 가엾고 불쌍하다.
대체 사는게 뭐라고.. 그저 아퍼서 병원 왔고 그이는 올 수 없어 함께 못왔을 뿐인데..
나는 그걸 트집잡아 잡아먹을 것처럼 생각하고...그이는 미안함에 차마 말을 못잇더라.
택시를 불러 집으로 왔다.
놀란 애아빠는 한참을 아기를 바라보다가 작은 방에 가 잔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눈뜨면 일어나 일하러 나가고 땡볕 아래서 돌가루 날리는 삭막한 공장에서
정말 개처럼 일하다 해가 지면 녹초가 되어
돌아와 밥한그릇 먹고 다시 자고...이게 아닌데..
사랑이도 소중한 우리 아이고 사랑이 아빠도 소중한 남편인데...
미운 감정이 너무 오래된 건 아닌지... 누가 정답좀 말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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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처음엔 서러워서 엉엉 울다가 나중에는
그 언니 말에 100톤짜리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 그리고 참회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
언니 말,
"네가 남편한테 받고 싶은 대우, 그대로 신랑에게 먼저 해봐.
그러면 남자는 조금씩 바뀐다, 그리고 운전 배워. 인생이 달라져.
오라는데도 갈데도 없다는 말 하지 말고 나가라. "
울면 뭐하나..달라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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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포옹도 받으세요^^생일축하해요.-생일없는 뻐꾸기 드림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