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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사랑님 어록

 

첫째 사랑이는 만 32개월 반, 둘째 해랑이는 이제 만9개월 반이다.
요즘 우리 집이 화해모드로 되어가면서 사랑이가 더욱 밝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 전능한 자아를 주장하기보다는 타협, 제안과 같은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낮에 해랑이가 사랑이를 귀찮게 한 모양이다. 밀었는데 방바닥으로 쾅 넘어진거다.
아직 앉은 모양새가 불안정한 해랑이는 요즘 거의 매일 그렇게 사랑이때문에 뒤로 넘어진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악"비명소리가 나온다. 아, 그럼 안되는데..그게 사랑이에게는
죄책감이 되는데...알면서도 그 상황에서는 절제가 안된다.
사랑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사랑이 왜그랬어, 아기가 사랑이 귀찮게 했어? 사랑이가 아기 밀어서 넘어졌지?
엄마가 그러면 아기가 아주 위험하다고 했잖아. 엄마 지금 정말 화났어. 아기가 사랑이처럼 잘 걸

어? 사랑이처럼 잘 뛰어? 못하잖아. 아기는 앉아있다가도 잘 넘어지는데, 귀찮다고 아기 밀면
위험하다고 했잖아. 아무리 아기가 미워도 아프게 하면 안된다고 했지? 엉? "

"..."

 

한참을 사랑이에게 훈계를 하는데 사랑이가 작은방으로 가면서 흐흐 허허 웃는다.
기가 막혔다. "너 이리와! 엄마가 말하는데 그냥 가면 어떡해? 아직 안끝났어."
계속되는 꾸중에 사랑이가 처음엔 웃다가 나중엔 차가운 표정을 짓더니 다시 작은방으로 간다.
가엾은 생각이 들어서 작은방에 가서 말없이 사랑이를 안았다.

이 작은 사람..이 작은 우주에 또 상처를 주었구나...미안한 마음.
"미안해, 사랑이는 그저 귀찮아서 민 것 뿐인데...엄마가 미안해 사랑이에게만 뭐라고
해서 엄마가 미안해. 잘못했어.." "..."

마음이 아파서 사랑이를 더 볼 수가 없다.
사랑이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아기가 못걷고 중심잡고 앉지 못하는게
사랑이 탓도 아니고 먼저 태어난게 죄라면 죄인데...

바람이라도 쐬어야지싶다.
"사랑아 두부사러 가자~~~나가서 바람쐬자. 두부랑 훌라후프 사러가자"
옷을 챙겨입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기는데...

 

"엄마~ 해랑이가 빨리 컸으면 좋겠어"  두둥...
사랑이는 사실을 보고 있었고 내 마음을 읽고 있었다.
다시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 엄마도 해랑이가 빨리 컸으면 좋겠구나..그래그래"

해랑이를 업고 사랑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는데 우리 연립주택 골목 입구 재활용품
분리수거장에 퍼즐식 놀이방 매트가 얌전히 놓여있는게 아닌가. 얼른 들어 집에 갖다놓았다.
흐...이건 하늘의 뜻이구나.

 

두부를 사러 나가는 길.
이곳에 이사온 지 이제 두달 반이 되었다.
그동안 오래된 공단지역인 이곳에서 상점, 은행, 약국, 동사무소 등 어느곳에서도
난 친절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바로 그 두부.

 

생협에서 취급하던 두부가 사업자등록이 안되어있어서 다른 두부로 바뀌어 유통되는데
그 두부공장에 바로 이 근처에 있는 것이다. 요즘 고기를 아주아주 귀하게 먹고
채식으로 돌리려는 참이라 두부를 거의 매일 먹는데 생협에서 일주일에 한번
나눔받아 먹다보면 부족하다. 반가운 마음에 그곳에 전화를 걸어 "여기 **동인데요,
두부 한두개도 살 수 있나요?"물었더니 수화기속의 여자는 대뜸 "근데 가격은 아세요?"
라고 묻는다.

(이 동네가 오래된 공단으로 영세업체들이 많은 곳이고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 차림새나 분위기가 퇴락한 변두리 동네 분위기다.
몇군데 안가봤지만 식당의 음식은 정말 한 입도 넘기기 힘들고 마트,은행,약국 등 서비스종사자(?)
들도 불친절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건 다음에 자세히 하기로..)

"네에 생협 조합원인데 두부가 조금씩 더 필요해서요" "아 예에" 이어지는 여자의 말소리는
잘 귀에 들리지 않는다.
불쾌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건 뭐지? 이 불쾌감은 무엇때문일까..'
내가 부자동네 이름을 대며 **동인데요..했다면 다르지않았을까? 뭐 그런 느낌이었다.

 

그 토종콩 두부공장을 찾아갔다. 계단 몇개를 올라가 두부 좀 사러 왔다고 했더니..
대뜸 "그런데 얼만지 아세요?" 이러는거다.
아~뚜껑열려...
"뭐예요? 나 어제도 전화해서..."이러구저러구 마구 마구 화를 냈다.
생협 조합원이라니까 그제서야 "아아, 예에~~~"
보통 시중에서 파는 두부가 1천8백원에서 2천 5백원정도 하는데 여기는 4천원이나 한다.
그래서 그 곳으로 두부를 사러 가끔 오는 사람들은 무슨 두부가 그렇게 비싸냐, 금테둘렀느냐, 사

기친다..등등 엄청 수난을 당했다는 거다. 그래서 자기들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기농두부나 국산콩두부가 비싼게 당연하지만 쉽게 사먹지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라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야할지(저임금 영세노동자들에게 4천원짜리 국산토종콩두부 한모

보다는 4백원짜리 두부나 4천원짜리 돼지고기 한근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건 당연한 거겠지.),
한 아기는 업고 한 아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온 이 여자 행색이 상당히 후줄근해 보이는게 그런 반

응을 불러왔는지..

어쩌면 내 안에서 먼저 먹을거리에 대한 어떤 권력의식이 자리잡고 있어서,
시중에서 파는 식품에 대한 불신감과 현실적인 정보(농약, 각종 약품처리 등등)가 그저 정보만이

아닌 생활과 삶의 큰 기저가 된 지금 이게 그저 나의 취향이나 대리만족 혹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에 대한 우월감으로 자리잡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미안하다며 두부 한모와 콩국물하나를 덤으로 주며 자주 오라고 한다.

나보다 열살 이상은 많아 보이는 사장아주머니님에게 너무 심하게 화를 냈나, 사랑이도 보는데..
생각도 들었다. 이 쓸데없는 예의, 집어치워야 할.

집에 오는 길,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 이 느낌은 내 열등감이었다.
난 그런 사람 아니라고, 난 영세노동자의 아내도 아니고 난 어디까지나 유기농 식품만 먹는
그래도 생각있는 사람이고 너희가 매일 보는 그런 후줄근한 인생이 아니라는 열등감.
이놈의 열등감이 나의 유아, 유년기의 낮은 자존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가며 치유해간다고 믿고있

는데, 시도때도 없이 치고 나와 고개드는 이 방어...

해랑이는 등에서 자고 사랑이는 종알종알 뭐라고 말을 한다. 훌라후프 하나를 문구점에서 사고, 쉴

새없이 후줄근한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지나 역시 후줄근한 모습으로 꾸부정한 모습으로
집으로 오는 길.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집에 도착해 사랑이 신발을 벗기는데 사랑이 하는 말,

"엄마~ 아까, 좀더 상냥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성질 부렸네에~~이, 이이?(이거 전라도의 '그렇지'

의 사투리)"라며 살짝 미소를 짓는다.

 

 

헉...역시 사랑이는 내 스승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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