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줍다.

 

까만 아스팔트 위  반짝반짝 빛나는 동그라미. 로드킬 당한 동전들이다. 애초에 납작하고 단단해서 정말 차에 치어 죽은 비둘기나 고양이 만큼의 끔찍한 몰골은 아니지만,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서 이 너덜너덜한 동전들을 내면 받아줄까?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누비다 보면 많은 것들을 줍는다. 나 또한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흘리고 다니겠지.. 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적이고도 공적인 1주년.

2009-06-16 12:30:00 퀵 인디스페이스 을지로2가 북아현동 홍대 상상마당 지음/라봉 9 14000
2009-06-17 17:10:00 퀵 수유+너머 해방촌  서울대 라봉 12.5 13000
 

(1년 후)

 

2010-06-14 10:50:00 퀵 빈농집 화전동  연남동 북센스출판사 라봉 7.2 1000
2010-06-14 14:53:00 퀵 녹색연합 윤기돈 성북동  안암동 고대 아세아문제연구소 라봉 4.8 7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1 서교동  서교동 상상마당  라봉 0.2 3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2 서교동  서교동 미스홍  라봉 0.6 3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3 서교동  서교동 마포평생학습관  라봉 1 4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4 서교동  창전동 라이브클럽쌤  라봉 1 4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5 서교동  동교동 문지문화원사이  라봉 1.2 4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6 서교동  대흥동 마포아트센터  라봉 3 5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7 서교동  동교동 홍대입구역 역무실  라봉 1 4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8 서교동  합정동 갤러리벼레별씨  라봉 2.5 4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9 서교동  망원동 아트블렌더 파랑캡슐  라봉 1.6 4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10 서교동  성산동 성미산 마을극장 사무실  라봉 1.4 4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11 서교동  연남동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라봉 1.4 4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12 서교동  연희동 연희문학창작촌  라봉 3.1 5000
2010-06-17 10:00:00 택퀵 서교예술실험센터 13 서교동  성산동 마포구청 문화체육과  라봉 2.7 4000
 

 

2009년 6월, 빈집에서 놀다가 첫 주문을 뛴지 벌서 1년. 아니 이제 1년인가? 첫 주문은 지음과 함께 을지로 인디스페이스에서 북아현동 언덕배기와 홍대앞 상상마당으로 리플렛  배달.  그리고 다음날 해방촌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서울대로 혼자 첫 배달을 떠났다. 달달달달 스트라이다 타고 한강대교, 상도터널, 봉천고개를 지나, 관악경찰서 언덕배기까지 끌바해서 올라간 후에야 겨우 보였던 서울대 정문. 배달을 마치고 빈집으로 돌아와 먹었던 저녁밥, 그 고봉밥이 생각나. 참.. 맛있었는데. 그렇게 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여름, 다시 2010년 6월. 365일이 지난 오늘, 자전거 바퀴는 16인치에서 24인치로, (허벅지도 1인치 업? -_-), 피부는 완전 까매졌고, 조금 더 능숙하게 달리며, 조금 더 길도 잘 찾는다. 하지만 여전히 체력적으로 힘이 부쳐하며, 급한 주문이나 먼 주문엔 약하고, 추위보다 더위에, 직사광선에 약하다. 특히 배고픔에 허기에 약하다.

 

지난 1년 함께 달리고 대기했던 지음과 나은, 사방팔방에서 메신저를 불러준 여럿 단골손님들, 위험스럽고 힘든 일을 하는 동생땜에 맘 많이 졸였을 언니와 짝꿍과 친구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래도 1년이 지난 오늘, 사지와 오장육부 모두 다행히 무사해요. 몸이나 마음이 너무 힘들고 지칠 땐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불쑥불쑥 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페달을 밟는 걸 보면 아직은 더 물건을 나르고 사람들을 만나고 서울의 더 많은 길과 골목을 누비고 싶은가봐요.  앞으로도 즐겁고  안전하게 달릴게요! 자전거메신저 1주년 자축합니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동차와 텔레비전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의 조상들은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력으로 여행을 한다. 움직임의 기술은 - 자동차에서부터 그칠 줄 모르게 뻗어 있는 콘크리트 고속도로까지 - 인간의 정주지가 고밀 도심에서 주변 공간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공간은 그러므로 순수한 움직임의 목적지로 가는 수단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자동차로 얼마나 통과하기 혹은 빠져나가기 쉬운지를 기준으로 도시공간을 계측한다. 이러한 움직임의 힘에 종속되어 있는 도시 공간의 외관은 반드시 중립적이어야 한다. 운전자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이 최소화되어야만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운전을 잘 하려면, 표준화된 표지판, 중앙분리대, 배수관, 그리고 다른 운전자들만이 존재하는 도로가 있어야 한다. 도시공간이 단지 움직임의 기능만을 할 때, 공간 그 자체는 활기를 잃게 된다. 운전자는 공간을 뚫고 지나가고 싶어할 뿐, 공간에 의해서 자극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육체라는 물리적 조건은 공간으로부터 감각의 분리를 강제한다. 속도 자체만으로도 지나가는 풍경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속도 상자(sheath of speed)가 발달하는 것만으로, 차를 운전하는 데 필요한 동작인 가속기와 브레이크를 가볍게 밟는 일과 백미러를 보는 눈의 작은 움직임은 마차를 운전하는데 필요한 힘든 육체의 움직임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현대 사회의 지형을 항해해 나가는 데는 아주 적은 육체적 노력이 필요하고, 그러므로 접촉(engagement)도 적다. 실제로 도로가 직선화되고 표준화됨에 따라 여행자는 가장 단순화된 환경에서 미세한 동작만으로 이동하면서,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건물을 알 필요가 점점 더 적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새로운 지형은 대중 매체를 강화시킨다. 여행자는 텔레비전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마취된 상태에서 경험하게 된다. 유체는 수동적으로, 공간에서 둔화되어 조각나고 불연속적인 도시 지형내의 목적지로 이동하게 된다.

 

고속도로 기술자와 텔레비전 연출가는 둘 다 "저항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창조한다. 기술자는 방해물, 노력이나 접촉 없이 움직일 수 있는 통로를 설계한다. 연출가는 사람들이 무엇이든지 너무 불편하지 않은 채로 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탐구한다. 영화를 본 후 내 친구로부터 사람들이 물러서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 친구의 다친 육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경험에 의해 흔적이 남고 제약받는 실제의 육체가 사람들을 위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육체를 저항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소망은, 현대 도시 설계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접촉에 대한 공포와 맞물려있다. 예를 들어, 계획가는 주거지구를 업무지구로부터 격리시키는 쪽으로 교통량을 유도하거나, 강을 주거지구 가운데 배치해서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 혹은 인종이 다른 지역을 분리하려 한다. 계획가는 지역사회 개발에 있어서, 학교나 주거지구를 사람들이 외부인들과 접촉할지 모르는 주변보다는 지역의 중심에 건설하고자 한다. 담장이 있고, 문이 설치되고, 경비가 잘 되어 있는 계획된 지역사회가 구매자들에게 좋은 삶의 인상을 주면서 점점 더 많이 팔려나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쟁영화를 본 상점가 근처의 교외에 대한 연구에서 사회학자 바움가트너는 "일상생활을 기준으로 할 때, 생활은 갈등을 부정하고, 최소화하고, 억누르며 피하려고 하는 노력으로 채워져 있다. 사람들은 대립을 멀리하고, 잘못을 비난하는 것과 불평거리를 찾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접촉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인가 또는 누군가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느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의 기술은 그러한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 오늘날의 질서란 접촉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 즉 육체를 무감각하게 하는 현대 기술과 연합한 현대 도시의 넓게 확장된 지형의 근거가 현대 문화의 몇몇 비평가들이 현재와 과거사이에 커다란 불연속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게 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역사적으로 특이한 현상으로 보일 정도로 감각 중심의 현실과 육체적 활동이 손상되었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의 원인을 도시 군중의 변화한 성격에서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 때 도심에 빽빽이 차있는 밀집된 육체였던 대중이 오늘날에는 흩어져 버렸다. 대중은 지역사회와 정치 권력의 더욱 복합적인 목적보다는 소비를 위해 상점가에 모인다. 현대 군중에게는 다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위협인 것이다.

 

- 리차드 세넷, <<살과 돌 - 서구 문명에서 육체와 도시>>, 문화과학사, 15p~18p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 자전거 농활단 모집

 

 

이거구나. 올여름, 정말 같이 하는 거야? 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차량의 이동성에 한계를 부과하는 정책

공룡님의 [이반 일리치 강독회 시연...^^;;] 에 관련된 글.

 

 

공룡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이반 일리치.

그리고... 그의 교통에 대한 사고들.

 

---------------------------------------------------------------------------------------------------------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강독회 자료

100604 진행자/박영길

 

 

이반 일리치 <성장을 멈춰라 - 자율적 공생을 위한 도구> 중 143~147쪽

 

언어의 재발견

 

 

1830년과 1850년 사이에 12명의 발명가들이 에너지보존법칙을 정식화했다. 그 중 대부분은 공학자였는데, 그들은 서로 독립적으로, 우주의 떠돌아다니는 생명의 힘을 기계의 일이라는 관점에서 재정의하였다. 실험실에서 채택되는 측정 장치가 수세기 동안 소위 일의 능력이라고 불렸던 신비스러운 전(全)우주적 연계를 규명할 수 있는 척도가 되어 버렸다.

 

같은 기간에 산업생산양식은 처음으로 다른 생산양식과 성공적으로 경쟁하였다. 이제 산업적 수행능력은 전체 경제에서 인간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척도가 되었다. 가사노동, 경작, 수공업, 그리고 잼을 만드는 일에서부터 집을 스스로 건축하는 일에 이르는 생존행위는, 생산형태로서 부차적이거나 2등급적인 일로 간주되었다. 산업생산양식은 사회에 공종하고 있던 생산관계의 유대관계를 처음에는 가치절하하고 나중에는 마비시켰다. 단일생산양식이 모든 사회관계를 독점하는 사태는, 기업경쟁을 막는 독점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심각한 일이다. 외관상 경쟁을 막는 독점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심각한 일이다. 외관상 경쟁의 승자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더 자본집약적인 공장, 더 잘 조직된 기업, 더 착취적이고 잘 보호되는 산업분야,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효용을 가장 매끄럽게 외부로 퍼뜨리는 기업,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기업이 바로 승자다. 보다 큰 규모에서 이 경쟁은, 다국적기업 간의 경쟁 그리고 산업화된 민족국가 간의 경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데스매치(deadly game)는, 게임 자체가 경쟁자들에게 부과하는 의례적 서비스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킨다. 경쟁이 미치는 지역이 확대되어감에 다라 산업구조는 전 세계 모든 사회에 부과되기에 이른다. 기업생산양식은, 자원과 도구에 대해서 뿐 아니라, 사람들의 상상력과 동기구조에 대해서도 근본적 독점을 구축한다. 여러 정치 시스템은 동일한 산업구조 확대에 상이한 이름을 붙이려고 경쟁하면서, 그것이 이미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났음을 깨닫지 못한다. 심층구조의 수준에서 사회가 기업독점으로 수렴되는 현상은 가히 인간의 산업화라 불릴 만하다. 이 경향은 사람들이 자유롭다면 전복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이 언어 자체를 부패시켜 버려서, 이 이슈를 정식화하는 것조차 끔찍이 힘든 일이 되었다.

 

언어는, 인식과 동기를 산업생산양식이 독점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산업화된 국가의 언어는, 창조적인 작업과 인간노동의 결실을 산업의 산출물로 파악한다. 의식의 물질화는 서구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 학교는 ‘교육“이라는 슬로건에 의해 움직이는 반면, 일상 언어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묻는다. 동사에게 명사로의 기능 전환은 사회적 상상력이 그만큼 빈곤해졌음을 보여준다. 명사로 이루어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have) 일(work)이라는 식으로 소유권적인 표현을 쓴다. 라틴 아메리카인들 중에서 월급쟁이들만이, 그들이 노동자건 관료건 상관없이 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농부들은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일은 하지만 직업은 없다(Van a trabajar pero no tienen trabajo)." 근대화되고 조합에 속한 사람들은 산업이 더 많은 재화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인간이 하는 것뿐만 아니라, 바라는 것도 명사에 의해 지칭된다.”주택건설(Housing)"은 활동이라 보다 상품이다. 사람들은 지식, 이동성, 심지어 감성과 건강까지도 획득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일뿐만 아니라 섹스도 가진다(have sex).

 

동사에서 명사로의 이러한 전환은 소유권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반영한다. “소유”, “점유”, “장악”은 더 이상 학교와 고속도로 시스템과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지 않는다. 도구를 소유한다는 식의 표현은, 그 도구의 산출물 또는 자본과 상업의 이윤에 대한 권리나, 그 도구를 작동시키는 지위를 가리킨다. 완전히 산업화된 인간은 그를 위해 이루어진 것을 자기 소유물을 표현하듯 부른다. “나의 교육”, “나의 수송”, “나의 오락”, “나의 건강”은 그 사람이 학교, 차, 쇼 비즈니스, 의사로부터 얻은 상품을 지칭한다. 서구 언어, 그 중에서도 특히 영어는 산업생산으로부터 떼어낼 수 없게 되었다. 서구인은 소유관계가 공생적 방식으로 재구조화될 수 있다는 점을 다른 언어로부터 배워야 한다. 예를 들어 미크로네시아(태평양 서부 멜라네시아 북쪽에 퍼져 있는 작은 군도/옮긴이) 언어에는 나와 (나로부터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나의 행동 사이의 관계, 나의 (잘라낼 수도 있는) 코와의 관계, (그것 없이는 온전한 한 사람의 몫을 수행할 수 없는) 카누와의 관계, (당신에게 드리는) 음료와의 관계, (같은 음료지만) 내가 마시려고 하는 음료와의 관계를 가리키는 서로 전적으로 구별되는 표현들이 존재한다. 언어가 동사에서 명사로의 변화를 겪은 사회에서, 술어는 상품을 뜻하는 용어로 진술되고, 희소한 자원을 경쟁하여 따내고자 하는 주장으로 서술된다. “나는 배우고 싶다”는 말은, “나는 교육을 받고 싶다”라는 말로 번역되어 버린다.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결정, 학교화라는 게임에서 한 몫 차지하고 싶다는 요구로 바뀐 것이다. “걷고 싶다”라는 말은 “수송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바뀌어 진술된다. 위의 예에서 전자의 문장은 화자를 행위자로 두지만, 후자의 문장은 화자를 소비자로 표현한다. 언어상의 변화는 산업영역의 팽창을 지지한다. 제도화된 가치를 획득하려는 경쟁이 명사적 언어의 사용에 반영된다. 자기 몫을 위한 경쟁은 필연적으로 게임의 형태를 띤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명사로 인식하는 것을 위해 게임에 참여한다. 물론, 그 경쟁은 누군가가 이기면 다른 누군가는 지는 제로섬게임으로 조직될 수도 있고, 경쟁자 모두 성공하는 것이 더 이득인 비제로섬게임으로 조직될 수도 있다. 그 정체의 본질상, 학교는 탈락시키는 사람보다 더 적은 수의 사람에게만 특권을 준다. 비제로섬게임의 예로는, 개인교통수단을 대중교통으로 전화하는 정책이 있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전보다 더 많은 수의 통근자들이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게 된다.

 

갈등이 꼭 희소상품을 따내려는 경쟁에 관하여 일어나는 것만은 아니다. 자율적인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들을 제거하는 최선의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명백한 의견불일치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런 경우, 갈등은 새로운 자유를 창출하게 될 수도 잇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명시적 언어에 의해 희미하게 가려진다. 갈등은, 모든 사람들이 그 정체의 본질상 상품도 아니고 희소하지도 않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창출하고, 실제로 하게 만들 수도 있다. 걸을 권리, 사회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권리, 평등하게 소통할 권리,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살 권리, 또는 공생적 도구를 쓸 권리에 이르게 하는 갈등은 공약 불가능한 새 자유라는 이득을 얻는 일부 사람들, 풍요의 선전자들을 무력화시킨다.

몇몇 사회에서는 언어의 부패가 정치적 상상력을 절름발이로 만들어, 상품을 가질 권리와 공생적 도구를 쓸 권리 사이의 차이점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도구에 부과해야 하는 한계는 공적으로 토론되어야 한다. 긴급한 이슈에 공중이 눈이 멀어 있는 사태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를 들어 수십 년 동안이나 인구를 조절할 긴급한 필요성에 눈을 뜨지 못했다. 자유와 공생을 위해 도구를 제약하는 일은, 그처럼 공적으로 제기되지 못하는 이슈가 되어버렸다. 차량의 이동성에 한계를 부과하는 정책이 선거의 주요 이슈가 되는 상황은 부자에게는 설득력이 없는 아이디어로, 빈자에게는 무관한 아이디어로 생각된다. 고속도로 바로 옆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속력이 빠르지 않은 세계를 상상할 수 없고, 안데스 산맥의 농부는 사람들이 그토록 빨리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교통을 위한 속도제한은 쇼킹한 아이디어로 간주된다. 도구에 한계를 부여하자는 제안은, 더 훌륭한 결혼풍토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성적인 정직함과 성의 자유를 확대하자는 제안이 한 세대 전에 외설적으로 들렸던 것만큼이나 외설적으로 들린다. 산업화된 도구의 작동법칙은 일상 언어를 침식하고 인간의 시적인 자기 확신을 감소시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태엣 대해서만 저항을 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의 계속되는 산업화는, 언어의 공생적 기능이 새로운 의식수준을 지니고 회복될 때에만 전복될 수 있다. 지금은,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각자의 역할을 주장하고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소위, 공학적으로 제도화된 가치와 인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데에 사용되는 이차적인 도구가 되어버렸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level의 새로운 메신저가방

 

작년 여름 티레벨에서 메신저백을 협찬 받았다.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했고 내 보기에도 예뻤다. 하지만 가로 질러 매는 방식의 가방은 조금만 무게 나가는 짐을 넣으면 어깨와 등의 피로감이 너무 심했다. 등판도 덥고. 그래서 한동안 잘 매다 어느 순간 양 어깨로 매는 등산가방을 매기 시작했다.

최근 자전거를 새로 뽑고 짐받이를 달고 나서는 패니어(짐받이에 거는 휴대용 가방)를 물색중이었는데, 티레벨에서 가방을 또 준단다. 최근 영입된 메신저신입 말랴와 가방을 받으러 티레벨에 갔다.

 

 

 

오호. 홈페이지에서 미리 검색할 때 본대로 가방은 예뻤다. 등판도 땀이 차지 않게 잘 설계되고 46리터 대용량, 곳곳에 수납공간도 세심하게 배려되어 있었다. 함께 오지 못한 지음 꺼 까지 세개 받아오나 했는데, 두개 준비해 주셔서 두개 받아왔다. 색깔별로 세개면 더 좋았겠지만, 공짜로 받는건데 두개도 고맙다.

 

20만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가방을 넙쭉 받아오는 게 말랴는 영 어색한 모양. 나도 좀 어색한 한편 스스로 생각해도  꽤 뻔뻔하다. 좋은 뜻에서 주는 것, 고맙게 잘 받아 잘 매고 다니면 되는 거 아닌가 싶다. 새 가방을 매고 빈집으로 복귀. 배달을 마치고 온 지음까지 셋이서 새 가방 쟁취를 위해 사다리를 탔다. 유효기간은 두달. 내가 탐내하던 색깔의 가방을 낙찰받은 지음에게 웃돈 5천원을 얹어주고 색깔을 교환했다.

 

 

이건 라이풀 매장에 걸려있던 한강 자전거도로 지도 티셔츠. 서울지도를 이처럼 간략하게 추려 메신저티셔츠를 만들어 입고 다니면 좋겠는 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도 큰바퀴 메신저.

 

작년 6월, 미니벨로 보다도 작은 16인치 작은바퀴 스트라이다로 메신저를 시작했다.

스트라이다를 타면 기분이 좋았다. 바퀴도 작고 짐받이도 작고 기어도 없어 좀 힘들었지만 견딜만 했다. 너무 피곤할 때나, 꽤 멀리 가야할 때, 시간에 쫓길 땐 접어서 지하철이나 버스에 태우기도 했지만 여러 터널과 고가, 한강다리, 고개(봉천고개 제외. -_-)도 다 달렸는데...

하지만 언젠가부터 나보다 슬렁슬렁 페달질 하는데 훅 앞서가는 자전거를 보면서,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하며 출퇴근 거리가 길어지면서, 점점 스트라이다는 빛을 잃어갔다. 그리고 수많은 상담과 검색과 고민의 밤을 보내고 결국, 큰바퀴 자전거를 들였다.

 

 

2010 스캇서브 40.  mtb와 사이클의 짬뽕, 하이브리드. 마음 같아선 아무런 군더더기 붙이고 싶지 않지만,, 짐받이와 흙받이를 달았다. 조금 이뻐 보이던 게 그냥 아저씨 자전거가 됐지만, 그래도 좋은 나의 새로운 큰바퀴자전거.

 

 

흰 안장 새까매 질 때까지 아껴 타줄테니, 오래오래 서울 구석구석, 전국 방방곳곳 나와 함께 달려주련!?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두물머리(팔당)로 떼거리잔차질 하러 또 갑시다

두물머리(팔당)로 떼거리잔차질 하러 갑시다

1. 시간 : 6월 5일 토요일 광화문앞 발바리 광장. 10시 모이기. 1시간동안 인사하고 피켓만들기. 11시 출발

2. 경로 : 광화문-종로-동대문-청량리-상봉역-망우리고개-6번국도-덕소-팔당-능내-운길산역-팔당생협(약 40km)

3. 식사 : 간식 각자 준비, 저녁과 다음날 아침은 공동으로 준비

4. 개인준비물 : 컵, 수저, 간식, 세면도구, 밭일 복장, 홍보도구 등.

5. 전체준비물 : 트레일러, 공구, 깃발(대형, 소형)

6. 회비 : 10000원 (음료, 저녁, 아침 식사 비용. 남는 금액은 팔당 대책위 후원)

7. 프로그램

달리는 중간중간 홍보 퍼포먼스.

저녁식사 후 : 관련 영상 준비, 팔당 생협/대책위 간담회, 놀이

다음날 오전, 오후 : 팔당 유기농 단지 밭일 돕기.

8. 돌아오기

각자 사정에 따라서… 자전거 또는 전철로 복귀

마지막은 4시쯤 밭일 끝내고 5~6시쯤 자전거 또는 전철로 복귀하는 팀

점심 시간이 좀 애매하네요 모여서 상의해봐요(중간에 식당에서 또는 내처 달리고 가서 먹는다)
붓이나 아크릭은 챙겨갈 수 있습니다. 매직은 별로 없으니까 준비 좀 해오면 좋을 듯…
소형깃대는 5개가 있습니다. 천을 누가 준비해오실런지요?
2인용 잔차 타실 분 계신가요? 대형깃발을 요기다 달아야 되거든요
짐자전거 타실 분도 모집해요 간지가 좔좔 흐르는 녀석인데 여기저기 장식할 구석이 많거든요
짐수레(트레일러)끄실 분도 모집해요
홍보전단도 있으면 좋을텐데… 누가 좀…???

 

참가신청은 http://bike.jinbo.ne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로드킬, TAKE ACTION!!

종종 배달가는 독립영화배급사 씨네마달에 들렀다가

예전에 보고 감동받았던 다큐멘터리 <작별>&<어느날 그 길에서> DVD가 발매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길에 누워 있는 저 삵이...

몇 주전 황학동 도로에서 발견했던 머리가 으스러진 고양이를 닮았다고 느꼈다.

이 도시는 근처에 고양이 한 마리 묻어줄 땅뙈기도 없어...

남산까지 자전거 상여에 태우고 와서 묻어주었던 고양이.

 

자동차는 동물을 치어죽이고,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자전거는 천천히 달리며 그 동물들이 어떻게 참혹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지를 본다.

자동차를 타면 자기가 동물을 죽이는지도 알 수 없고, 죽여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전거를 타면 죽어가는 동물들을 보고 무섭고 두렵고 끔찍하고 슬프고 불쌍하고 화나는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탈 것에서 내려서면 엇비슷한 상식을 가진 같은 시민이겠지만... 이렇게 달라지고 만다.

나는 두렵다. 내가 무수한 생명을 죽일 수 있는 물건을 탄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의식조차 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것에 조금 익숙해지기만 하면, 적당히 체념하고 충분히 위안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그래서 나는 기어코 자전거에 내 몸을 밀어넣는다.

그러면 자전거는 내 몸을 내가 생각하고 바라던대로 만들어 준다.

고양이를 묻어줄 수 있게 했던 슬프고 미안한 마음, 끔찍한 사체를 똑바로 보고 안을 수 있게 한 용기, 남산까지 오르게 한 체력, 이런 몸을 만들어 준 자전거에게 나는 감사한다.

분명 자전거를 타기 전까지의 나라면... 절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일이다.

 

그래서 나는 상식과 의식을 믿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머리를 몸에 얹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교통수단에 몸을 싣고 있는가이다.

 

 

---------------------------------------------------------------------------------------------------------------------------------------------------------------------------------------------------------------

* 씨네마달은 좋은 회사이고, 황윤 감독의 두 작품 모두 훌륭한 작품입니다.

DVD 세트에 포함된 <작별> & <어느 날 그 길에서> Teacher's Guide 에 실린 아래 글만 봐도 어찌나 훌륭한지...

소장할 가치가 충분... 흠흠.

 

 

TAKE ACTION!!

로드킬을 줄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 로드킬을 줄이기 위해 운전자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
    • 시속 60km 이하로 달리면 로드킬을 많이 예방할 수 있습니다.
    • 폭풍우 전야나 길에 눈이 살짝 내렸을 때는 도로로 야생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니 서행합니다.
    • 신설도로와 산악지형을 통과하는 도로, 밤의 시골도로는 특히 로드킬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니 과속하지 않습니다.
    • 봄과 가을은 로드킬이 많이 발생하는 계절입니다. 특히, 5월과 10월은 고라니의 이동이 잦은 시기이니 주의합니다.
    • 야생동물은 주로 새벽이나 해 질 무렵에 먹이와 물을 찾아 이동합니다.
    • 야생동물은 무리지어 이동하기 때문에 한 마리의 야생동물이 나타난 후에 계속 나올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합니다.
    • 로드킬을 발견하거나 일으킨 경우 안전에 유의하여 갓길로 옮기고 해당 관청(시청, 군청 등)에 위치를 알립니다.
    • 네비게이션 서비스업체에 야생동물 출현이 잦은 지점의 안내를 요구합니다.
    • 주위 사람들에게 로드킬에 대해 알리고 정보를 공유합니다.
  • 자전거면 충분하다!

로드킬은 더 빠른 것, 더 편한 것을 바라는 우리들의 과도한 욕망에서 비롯된 비극입니다. 자동차와 '이혼'하고 자전거와 친해집시다. 선진국은 도로 중심의 교통 정책이 아닌, 철도와 자전거 중심으로 전환한지 오래입니다. 도시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일터와 학교에 갑니다.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더 편하고 빠르도록, 자전거 전용도로가 도시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늘어나는 자동차에 맞춰 계속해서 도로를 만든다면, 우리 삶은 황폐해지고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동차 사용을 줄이고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한다면 로드킬, 지구온난화, 석유고갈 등 많은 문제를 줄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과 자연이 건강해집니다. 시민모임 '발바리'는 "자전거면 충분하다!"는 깃발을 걸고, 매달 정해진 토요일에 시내에서 '떼거리 잔차질'을 벌입니다. 정부가 자동차에서 자전거 중심의 교통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힘을 모읍시다.

  • 더이상의 도로는 그만!

정부는 우리나라에 도로가 부족하다며 도로건설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고속도로와 국도의 연장이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이 작은 국토에 이미 10만km가 넘는 도로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국 곳곳의 산과 들을 파헤치며 국도와 지방도가 계속 신설되고 있고, 기존의 국도는 4차선 이상의 대형도로로 확대되고 있으며, 고속도로는 현재의 두 배로 확장될 예정에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 나왔듯이, 이렇게 많은 도로 건설은 상당수가 중복, 과잉 건설입니다. 건설사가 정부로부터 도로건설을 허가받기 위해 통행량 예측을 부풀리거나, 공사 과정에서 공사비를 부풀려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불필요한 도로 건설로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며, 무려 수조원에 달하는 소중한 혈세가 낭비되고 있습니다. 도로 건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정부부처, 지자체, 도로건설 회사에 항의 메일을 보냅시다.

 

  • 발자국을 찾아서! - 야생동물 보전 단체에 참여하기

전국 각 지역의 많은 환경단체와 시민모임에서 야생동물 보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생동물소모임(야소모)'에서는 산과 들로 정기 탐사를 떠나 발자국과 똥 같은 흔적을 조사합니다. 또한 다양한 주제로 정기 강좌를 열어 야생동물에 대한 이해를 넓힙니다. '녹색연합'에서는 매해 겨울 야생동물의 목숨을 앗아가는 덫과 올무를 제거하러 산으로 가고, '녹색교육센터'에서는 야생동물 교육자 양성 과정인 '야생동물길라잡이' 교육을 정기적으로 펼칩니다. 관심이 가는 단체에 실제로 참여해 봅시다.

 

  • 즐거운 불편

빨리 많이 생산해서, 빨리 많이 소비하고, 많이 버리는 생활을 위해 더 많은 자동차와 도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요? 로드킬은 결국 소비와 속도 중심의 태도에서 비롯된 문제일 것입니다. 전 지구인이 한국인처럼 살면 지구가 3개 있어야 하고, 전 지구인이 미국처럼 살면 지구가 7개 있어도 모자란다고 합니다. 물건과 에너지의 소비를 줄여봅시다. 적게 갖고 나눠 쓰고 적게 버리는 삶은 우리를 보다 자유롭고 풀요롭게 할 것입니다. '즐거운 불편'은 어머니 지구를 위한 우리의 의무이자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위한 길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펜하겐 자전거에는 '계급'이 없다.

자전거 정책이

사람과 마을과 도시와 자연과 세상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아래 기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방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차도에 나란히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 우선 신호

자전거 횡단 보도

자전거 속도에 맞춰져 있는 신호체계, 그린웨이브

비싼 차량 취득세와 주차료

이산화탄소의 획기적 감축

육아, 물류, 쇼핑에 활용되는 수레형 자전거

 

모두 자동차 운전자를 최대한 불편하게, 자전거를 최대한 편안하게 하는 정책들이다.

자동차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한, 자전거는 편안해질 수 없다.

자동차를 억제하겠다는, 자동차 운전자를 괴롭히겠다는 명확한 방향 없이,

생태적인 이미지로서만 자전거를 차용하는 정책은,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도 결국 자전거에게도 해가 될 뿐이다.

 

자전거 라이더의 54%가 편하고 빠르기 때문에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코펜하겐 자전거에는 '계급'이 없다> 부분 발췌, 김당, 오마이뉴스, 09.12.17

 

코펜하겐이 자전거 왕국이 된 것은 자출사(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교통환경을 꾸준히 개선해온 덕분이다. 특히 70년대 2차에 걸친 오일 쇼크를 계기로 덴마크 정부와 코펜하겐시는 자동차 사용을 줄이고 자전거를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교통수단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시민들은 자전거로 차나 버스보다 더 빠르게 도심에 접근할 수 있고, 실제로 라이더의 54%가 편하고 빠르기 때문에 자전거를 이용한다고 한다. 이 통계는 코펜하겐의 자전거 도로연결망이 얼료나 잘 갖추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력의 당연한 결과로, 자전거의 도시 코펜하겐에서는 자동차보다 자전거의 힘이 더 세다. 강력한 자전거 우선 정책 때문이다. 코펜하겐에서 대부분의 차도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나란히 있는데, 자전거 통행을 위한 신호등이 있어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먼저 신호를 받는다. 또 교차로에는 싸이클러들의 안전한 통행을 위한 자전거 횡단보도가 있다.

자전거도로는 코펜하겐시의 광역권까지 이어져 있다. 시당국은 출퇴근 시간대에 자전거 도로의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해 '그린 웨이브(Green wave)'라는 교통신호 정책을 도입했다. 그린 웨이브가 적용되는 시간에는 녹색신호를 한번 받으면 연속적으로 신호등이 바뀌면서 정차 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다. 그린 웨이브 신호등은 평균속도 20km/h에 맞추어 신호가 바뀌도록 시스템화 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자동차는 뒷전이고 싸이클러들의 천국인 셈이다.

네덜란드의 그로닝겐, 독일의 뮌스터와 함께 세계적인 자전거 도시로 손꼽히는 코펜하겐의 또 다른 자부심은 '시티 바이크는 코펜하겐이다!'(The city bikes are Copenhagen!)는 광고문구에서 엿볼 수 있다. 코펜하겐시는 해마다 4월부터 11월까지 시민과 관광객들이 누구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시티 바이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코펜하겐시는 자전거 우선 정책과 함께 180%나 되는 차량 취득세, 비싼 주차료 같은 자동차 억제책을 통해 자전거 인구를 크게 늘렸다. 한 통계에 의하면 코펜하겐에서는 35% 이상이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장관이나 시장 같은 고위 공직자들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데, 이들이 선거 때마다 자전거 통근율을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생활정치의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환경 문제가 이제 더는 선택적으로 고려해 볼 사항이 아닌 이 시점에, 자전거는 도시를 더욱 쾌적하게 만들어 주는 핵심 요소다. 코펜하겐시가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2015년까지 현재의 20%까지 줄인다는 야심찬 목표를 위한 미션 중의 하나는 현재 35% 정도의 자전거 통근율을 50%까지 높이는 것이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앞쪽에 아기나 짐을 실을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수레형 자전거였다. 젊은 엄마들은 자신만의 맞춤형 자전거에 쌍둥이를 태우고 쇼핑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들을 태운 채 시위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게 하는 미래를 위한 그들의 선택이 부러웠다.

이처럼 자전거의 매력은 자동차처럼 위험하게 빠르지도 두 발로 걷는 것처럼 더디지도 않은 중간적 실용에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상징하는 자동차와 달리, 코펜하겐의 자전거 도로는 남녀와 노소는 물론,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나뉘지 않는 평등한 공간이다.

그에 따르면 자전거는 '저탄소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고, 코펜하겐은 세계의 자전거도시를 선도하는 도시이다. 덴마크가 국민 소득 세계 7위이면서도 국민 행복지수는 세계 1위인 까닭을 환경 친화적이고, 속도로 다른 사람을 위협하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 자를 차별하지 않는 교통수단인 자전거 문화에 대한 자부심에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회의(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UNFCCC COP15)가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이유이기도 하다(이에 견주면, 온실가스 배출 세계 9위 국가이면서도 COP15에서 개발도상국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내세운 한국이 2012년 제18차 총회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