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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29
    Monthly Review-下(5)
    새민중언론
  2. 2005/03/29
    Monthly Review-上(7)
    새민중언론
  3. 2005/03/29
    미디어참세상의 전사(前史)를 기록하며 -뉴스메이커 22호(7)
    새민중언론
  4. 2005/03/29
    준거집단....(4)
    새민중언론
  5. 2005/03/29
    [명칭공모/메일접수#1] 미디어민중,해방뉴스,대안세계,미디어레지스탕스
    새민중언론

Monthly Review-下

이런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허심탄회한 토론이 강력한 금기사항 아래 억압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기 때문에, 이 잡지(먼쓸리 리뷰)의 창간은 공공에 대한 중요한 서비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라는 문장을 다시 읽으니 가슴이 뭉클하면서 newsmaker13호의 어깨가 갑자기 무거워 옵니다. 우리가 만드는 새 민중언론도 ‘공공에 대한 중요한 서비스’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넘어 정말 ‘공공에 대한 중요한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입니다.

이렇게 창간된 먼쓸리 리뷰는 아카하타가 그랬던 것 처럼 파시즘적 정권에 탄압 받았습니다. 공동 발행인 리오 휴버만은 1952년 매카시와 FBI의 에드가 후버가 함께 이끈 미국의회의 ‘비미국적 활동에 관한 하원 청문회’에 소환되 사상검증의 치욕을 당했습니다. 폴 스위지는 1953년 뉴햄프셔 검찰에 소환되 투옥당할 뻔 하기도 했구요.

그러나 이 들은 자신들의 활동과 발언, 잡지 출간에 대한 추궁에 답변을 전면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당시 먼쓸리 리뷰가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고 하니, 겉표지가 보이지 않도록 포장해 발송하고 기고자들도 실명을 사용하지 못했을 정도랍니다. 오늘 우리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지 않는 것은 세상이 좋아져서라기 보다는 우리가 ‘저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해서 일까요?

이후 리오 휴버만 외에 폴 바란, 해리 매그도프등이 스위지와 함께 먼쓸리 리뷰를 발행하고 편집했습니다. 이 중에 해리 매그도프는 91세의 나이에도 현재 존 벨라미 포스터와 함께 이 잡지의 발행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하나가 또 있으니 그는 바로 해리 브레이브만이죠. ‘노동과 독점자본’의 저자 말입니다. 철강 노동자로 일하며 노조조직책을 맡기도 했었던 해리 브레이브만은 먼쓸리 리뷰 프레스를 책임지며 로자 룩셈부르크, 부하린, 콜쉬등의 사회주의 고전 뿐 아니라 혁명 쿠바에 관한 책들, 사미르 아민의 책들을 발굴해 출간했습니다.



자신들의 50년 역사를 자축하는 글을 이렇게 끝맺었더군요. “자본주의와 제국의 불평등과 불안정이 여전히 깊이 있는 사회 재건설의 절박한 필요성을 야기하기 때문에, 먼쓸리 리뷰가 지난 50년 동안 그랬던 것과 똑같이 다가오는 새 천년에도 전세계 해방투쟁과 연대하는 미국 맑스주의의 깃대로 계속 봉사할 것이라고 기대할 충분하고도 넘치는 이유가 있다”
이 글에서 펠프스는 유료 정기구독 부수가 “작년에는(1998년) 1991년 이후 최고 수준인 5795부에 달했다”고 자랑하면서--;; “이런 변화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잡지는 1998년 표지와 판형, 글꼴을 모두 키움으로써 역사상 첫 편집개편을 시도했다”라과 말하기도 했습니다.(허걱...49년 만에 첫 편집 개편이라니 ㅠㅠ) 여튼 먼쓸리 리뷰는 요즘도 여전합니다. 94살 먹은 해리 매그도프는 존 벨라미 포스터와 함께 “먼쓸리 리뷰는 1980년대 레이건 시대 이래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우익들의 계속되는 공격에 직면해 사회안정망위기의 본질을 지적하며 지속적으로 대응해왔다”로 자신있게 시작되는 권두언을 이 달에도 내놓았더군요.

 

먼쓸리 리뷰는 2000년에는 네그리와 하트가 지은 ‘제국’을 두고 특집판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발리바르, 아리기, 지젝, 캘리니코스의 현란한 논쟁들이 이 특집판을 장식했더랬죠.

 

아이고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포스팅을 하려니 newsmaker13호의 좀이 막 쑤시는군요. 슬슬 마무리 짓겠습니다. 오늘 역시 가쉽 아닌 가쉽을 하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아까 해리 브레이브만 이야기를 하면서 먼쓸리 리뷰 프레스를 잠깐 언급했는데요. 먼쓸리 리뷰 출판부, 즉 먼쓸리 리뷰 프레스는 어쩌면 먼쓸리 리뷰 자체보다 더 유명할지도 모릅니다. (돈을 더 버는 것은 확실합니다^^)

 

아까 몇몇 저작들을 언급했지만 좀 더 자세히 소개해드릴께요. 고전들 외에도 체 게바라의 저서 ‘쿠바 혁명전쟁 회고록’, 만델의 ‘맑스주의 경제학 이론’ 알뛰세의 ‘레닌과 철학’ 사미르 아민의 ‘세계 수준의 자본축적’ E P 톰슨의 ‘이론의 빈곤’ 등(아이고 많기도 하다)등이 모두 먼쓸리 리뷰 프레스를 통해 출간됐습니다. 해리 브레이브만의 ‘노동과 독점자본’ 역시 마찬가지구요.

 

그런데 먼쓸리 리뷰 프레스가 우리에게 더 긴밀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아리랑’을 출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정래의 아리랑은 아니구요--;; 김산의 아리랑, 님 웨일즈가 쓴 바로 그 책, 우리나라에선 1984년인가 동녘 출판사에서 나온 바로 그 ‘아리랑’ 말입니다. 사실 ‘아리랑’을 초간 한 곳은 먼쓸리 리뷰 프레스가 아니지만 50년이 넘게 꾸준하게 발간하고 있는 곳은 바로 먼쓸리 리뷰 프레스입니다. 일본의 나름대로 진보적인 출판사 이와나미 서점 에서는 먼쓸리 리뷰 프레스 판 아리랑을 번역해 참회의 필독서로 ‘세계의 명작 100선’에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아 참, 역시 진보넷 블로거이신 홍실이 님께서 얼마전 보스턴에서 스위지 1주기 추모 모임에 다녀오신 소식을 전해주시기도 했습니다.  홍실이 님이 전해주신 스위지 1주기 추모 모임의 한 장면을 들여다 볼까요? “고인이 93세에 돌아가셨다 하니 그 친구, 동지들이라는 양반들이 다 머리가 하얗게 샌 할머니 할배들.... 한 할배 나와서 말씀하시길 ‘내가 그를 를 처음 만난 건 1943년...어쩌구....’  이크... 거의 내가 제일 젊은이가 아니었나 싶다..... 미국 젊은이들은 다 어디 갔는고....  지난번 하워드 진 강연 때도 젊은이들은 안 뵈고 나이 지긋한 양반들만 줄줄이 앉아 있었는데....”

 

에휴 미국 꼴이 요새 요 모양 요 꼬라지인 갑네요. 스위지도 저 세상으로 가고 이제 미국에는 할배 둘만(하워드 진, 놈  촘스키 -이들도 먼쓸리 리뷰의 단골 필진들이죠) 남아 있나 싶어 가슴이 짠합니다.

 

아 참, 홍실이님은 곧 새 민중언론의 해외통신원으로 맹활약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계시니 많이들 기대하세요^^ 절찬 개봉박두입니다요.

 

휴~ 이것으로 ‘세계의 민중언론’ 2회- 먼쓸리 리뷰 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꼬부랑 글씨로 된 사람 이름들 많이 나와서 헷갈리지는 않으셨나요? 혹 “야 neswmaker13호 너는 니 글에 언급한 사람들 책들은 다 읽고 야부리 푸는 거냐?”고 질문하신다면 전 당당하게 대답하겠습니다. 그것도 영어로 말이죠. “No Comment!" ㅋㅋㅋ

 

자꾸 말씀드려서 지겨우시겠지만 저는 여러분의 리플, 트랙백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발 일용을 넘어 이용, 삼용 할 수 있도록 뜨거운 관심 기다릴께요.

첨언: 혹시 회원가입 절차를 몰라서 새 민중언론 후원회원으로 가입 못하고 계신분^^은 즉각 덧글 주세요.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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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Review-上


안녕하세요. 뉴스메이커 13호입니다. 세계의 진보매체 그 두 번째 순서로 여러분들을 다시 찾아 뵙게 됐습니다.(BGM은 두구두구두구둥-작은 북 트레몰로) 지난 24일 첫 번째 순서로 소개해드린  ‘아카하타’는 재밌게들 보셨나요? 그럭저럭 제 주위에서는 반응들이 좋았던 것 같은데 여러분들께서 겨우 리플 6개, 트랙백 하나라는 양식 밖에 안주셔서, 여러분의 사랑 아니 리플과 트랙벅을 먹고 자라는 저 뉴스메이커 13호는 굶어 죽을뻔하다가 겨우 살아났습니다 ㅠㅠ

 

에휴 잡설이 길었네--;; 하여튼 두 번째 순서로 어떤 매체를 소개해드릴까 고민하다가 어젯밤을 꼬박 세웠습니다. 베네주엘라 볼리바르 혁명의 주력군 역할을 했던 매체를 소개해달라는 주문들도 있었고 세계의 진보매체를 소개하면서 어떻게 ‘로동신문’을 빼놓을 수 있냐는 딴지 아닌 딴지도 있었습니다. 결국 도처에서 암약하고 있는 뉴스메이커들의 의견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두루 들어 제 마음대로 결정했습니다 ㅋㅋ

 

첫 번째 순서로는 좀 대중적 일간지인 아카하타를 소개해드렸으니 이번에는 전혀 다른 성격의 매체를 소개해드리는게 어떨까 싶네요. 오늘 소개드릴 매체는 해리 매그도프와 존 벨라미 포스터가 공동 발행인을 맡고 있는 미국의 월간지 Monthly Review(이하 먼쓸리 리뷰)되겠습니다.

 

모름지기 좌파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영웅적 개인을 기리기 보다는 계급의 힘을 믿는 편이고, 또 그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들도 하는 듯 합니다만 1818년 맑스가 태어난 이후 계급 운동이라는 은하수 속에는 수많은 붉은 별들이 빛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앗 그렇다고 제가 ‘한 별 을 우러러 봅니다’라는 노래를 즐겨 부른다던가 하는건 절대 아닙니다--;; 의심하지 마세요)



먼쓸리 리뷰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폴 스위지라는 붉은 별 하나를 빼먹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군요. 지난 해 10월 자끄 데리다가 사망했을때 미디어참세상을 보니 Peyo라는 기자가 오비츄어리를 썼더군요. 전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잠깐 인용해 볼께요. “에드워드 사이드, 피에르 부르디외, 폴 스위지 그리고 자끄 데리다의 죽음과 함께 이제 20세기는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전 Peyo가 쓰는 기사가 못마땅할 때가 많은 편이지만 윗 문장 하나 만큼은 잘 뽑았다 싶더라구요^^ 여튼, Peyo가 말했듯이 1910년에 태어나 2004년에 영면한 폴 스위지는 20세기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한 사람이고 오늘 소개드리는 먼쓸리 리뷰를 창간한 사람입니다.

 

먼쓸리 리뷰는 1949년 폴 스위지에 의해 창간됐습니다. 사실 창간 당시나 지금이나 먼쓸리 리뷰의 발행부수는 만부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간지와 월간지의 차이라고 한다손 치더라도 첫 번째 순서에 소개드린 아카하타가 지금도 이백만부 가까이 발행하고 있는 것하고는 천양지차지요. 그러나 이 잡지의 권위, 영향력은 일만이라는 발행부수와는 무관합니다.

 

서른 두 살의 나이에 자본주의 발달이론-맑스주의 정치경제학 원리 라는 이 시대의 클래식을 혼자 써서 발간한 스위지는(흑 스위지는 서른두살에 이런 책을 썼는데 nesmaker13호는 지금 뭐하고있는지 ㅠㅠ 만 서른 두 살 되려면 아직 좀 남았다는 걸 상기하며 자위하겠습니다)

 

물론 스위지 혼자 먼쓸리 리뷰를 만든 것은 아니고 많은 사람들의 땀과 헌신이 함께 했지만 먼쓸리 리뷰의 창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리오 휴버만입니다.

 

요즘은 이 책 잘 안 읽는 모양이지만 리오 휴버만의 미국사 우리, 인민들(we, the people)은 정말 유명한 책이죠. 이차대전 중에는 (미국)전국해운노조의 대외협력, 교육국장직을 맡기도 했던 연구자이자 활동가였던 리오 휴버만은 1968년 사망할때까지 스위지와 함께 공동 발행인으로 먼쓸리 리뷰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1949년 매커시즘이 슬슬 몰아쳐오기 시작할 즈음에 세상에 나온 먼쓸리 리뷰 창간호에는 기념비적인 아티클이 실려있습니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쓴 ‘왜 사회주의인가 (Why Socialism?)이라는 글이 바로 그것이죠. 여담이지만 올해가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지 딱 백년이 되는 해라 여기저기서 아인슈타인 열풍이 불고 있는데 사회주의자 아인슈타인에 대해서 다시 주목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새 민중언론에서 한 번 다뤄볼까요?

 

일단 이 기념비적 아티클의 몇 부분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몇가지 번역본이 있지만 진보넷 블로거 marishin님의 신뢰할 만한 번역본에서 인용하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경제나 사회 문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사회주의에 대한 견해를 표해도 되는 걸까?”라고 묻고 바로 답합니다. “나는 몇가지 이유로 그렇다고 믿는다” 이 부분은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겠죠?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이 밤, 철야하며 라인을 타고 있는 노동자들도, 응급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의사들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했던 장애인차별철폐투쟁단들도,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세상의 절반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여성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여성활동가들도 우리, 인민 모두는 사회주의에 대한 견해를 당당히 표할 수 있을겝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던 것 처럼.

 

아인슈타인은 과학적 지식의 관점과 윤리적 관점에서 사회주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이어 아인슈타인은 “오늘날 자본주의사회의 경제적 무정부 상태가 악의 진정한 근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그나마 우직했던 1949년의 자본주의사회를 ‘경제적 무정부상태’라니...만일 아인슈타인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약탈적금융경제를 본다면 허허 과연 뭐라 말할지 궁금하군요.

 

자 좀 더 들여다 보죠. “이런 악을 제거하는 길은 오직 하나 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것은 사회적 목표를 추구하는 교육체계를 동반한 이른바 사회주의 경제를 확립하는 것이다. -중략-사회주의의 목표와 문제를 분명히 하는 것은 지금 이행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인슈타인의 아티클은 아주 멋진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첫 번째 순서에서 소개해드렸던 아카하타의 창간하의 한구절 “아카하타는 여러분들 자신의 기관지이다”에 맞먹을 만합니다.

 

“왜 사회주의인가”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허심탄회한 토론이 강력한 금기사항 아래 억압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기 때문에, 이 잡지(먼쓸리 리뷰)의 창간은 공공에 대한 중요한 서비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이 길어 상, 하로 나누어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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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참세상의 전사(前史)를 기록하며 -뉴스메이커 22호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뉴스메이커 22호 - ‘투투’라고 해요. 블로거인 뉴스메이커가 각 디렉토리마다 분열을 시도하면서 22호 ‘투투‘가 탄생했어요. 뉴스메이커 22호 ‘투투’의 역할은 미디어참세상의 지난 역사를 기억나는 데로 정리하는 일이랍니다.  민중언론의 전사 디레크토리의 주인이라고 하겠지요.


 



 22호는 미디어참세상이라는 민중언론이 진보넷에서 독립함과 더불어 새로운 민중언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디어참세상의 지난 일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나 22호는 생각도 잘 하는지 ^^


문제는 22호가 미디어참세상의 전신인 참세상뉴스와 참세상방송국을 처음 만들 당시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2호는 그래서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다들 처음 어케 만들었는지 긴가민가하더군요.(사실 귀찮아서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았어요. 어딘가 정리된 자료가 있을 텐데 그런 연혁 궁금하시면 노동미디어 행사자료나 진보넷 총회자료등을 찾아보면 되겠죠) 아무튼 들었던거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풀어볼까합니다.


미디어참세상의 전신은 참세상방송국과 참세상뉴스입니다. 사실 아직도 참세상뉴스, 참세상방송국으로 부르는 분들이 많지요? 처음에는 지금처럼 본격적인 뉴스를 생산하지는 않았답니다. 98년 9월경 처음 시도 되었던 참세상뉴스는 그야 말로 진보진영의 카인즈(kinds, 뉴스데이터 베이스)라는 개념으로 진보적인 매체들을 네트워크에 모아보자는 취지였다고 합니다. 물론 보도자료 요약 정도의 수준에서 간단한 뉴스가 제공되기는 했지만 뉴스생산을 위한 역량투여는 거의 없는 상태 였지요. 또한 오마이뉴스보다도 먼저 ‘모든 민중이 기자다’라는 모토로 민중기자석을 운영했습니다. 당시 민중기자석에 쓰인 기사를 보면 지금의 참세상 속보와 뉴스의 중간형태의 기사를 현장 노동자들이 직접 작성해 보내준 것이 있습니다.


아참 여기서 잠깐 주먹구구식 기억에 의존하다보니 이보다 더 전사가 있군요. 참세상뉴스와 참세상방송국의 시작보다도 먼저 미디어적 시도가 되었는데요. 바로 96-97 총파업기간에 시도되었다더군요. 일명 총파업 통신중계단이라고 다들 들어 보셨죠? 22호는 그때 열심히 노동법개악저지를 위해 거리를 뛰어다니던 때라 다른 뉴스 메이커에게 통신지원단 얘기는 넘겼습니다. 그래서 이글은 에피소드2입니다.  하지만 통신지원단 이야기(에피소드1)를 해줄 뉴스메이커가 지금 분열중에 있습니다. 조만간 나타날 겁니다.


오늘은 민중언론의 탄생설화를 시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2호가 직접 지었 답니다. 22호는 언론이 만들어지고 나면 시인으로 다시 태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시상이 막 떠오르는군요.

 

'나는'


나는 98년에 태어났다.

나는 태어날때부터 빨갛게 태어났다.

나는 빨갛다고 탄압도 많이 받았다.

나는 언론이 뭐 그러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나는 수많은 자본의 네트워크 안에서 버그로 인식되며 자랐다.

나는 외로웠다. 나 한참을 울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꿋꿋했다.

그러다 나는 민중들이 탄압받고 생존을 위해 싸울 때 더 이상 버그가 아니었다.

나는 민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나는 투쟁의 현장에서 맞아가며 컸다.

나는 수많은 카메라를 깨먹었다.

나는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그래도 나는 민중언론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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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거집단....

* 이 글은 자일리톨님의 [조그만 준거집단이라도 있었음 싶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글쎄요. 저도 직장생활 경험이 있습니다만 너무 실망하지 않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네요. 원래 노조라는 것은 성인군자들로 조직된 집단이 아니잖습니까...사측에 맞서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것, 그것이 바로 노조의 기본적 목적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것이 다여서는 안되겠지만요. 게다가 그런 문제는 중산층 지식노동자의 이중성 뿐 아니라 생산직 현장 노동자들의 문제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자일리톨님 말씀처럼, 저 뉴스메이커 13호도 진보넷 블로그를 통해 일상을 살아나갈 힘과 용기를 많이 얻고 있습니다. 이 곳이 제 준거집단의 전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준거집단의 일부인 것은 분명한것 같네요.

 

왜 저기 머냐..'힘을 내요 미스터 김'이라는 노래가 있었죠? 자 '힘들 내요 미스터 자'^^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오늘 따라 유난히 푸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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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공모/메일접수#1] 미디어민중,해방뉴스,대안세계,미디어레지스탕스

* 이 글은 새민중언론님의 [새 언론의 이름을 공모합니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하시는 정영섭님께서 제안해 주셨습니다. 모두 4가지 안이며, 아래와 같습니다.

1안
명칭 : 미디어민중
도메인 : minjung.jinbo.net 혹은 people.jinbo.net
설명 : 민중언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말로서 미디어민중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언론의 대표라는 말이지요.

2안
명칭 : 해방뉴스(혹은 레볼뉴스)
도메인 : revolution.jinbo.net
설명 : 민중운동의 해방적 지향을 잘 나타내 주는 말로서 해방미디어가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중해방, 언론해방을 표방하는 것이지요.

3안
명칭 : 대안세계(혹은 얼터너티브월드)
도메인 : alternative.jinbo.net
설명 :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세계사회포럼의 구호에서 보듯이 대안세계를 지향하는 말로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세상'의 맥락과도 닿고요.

4안
명칭 : 미디어레지스탕스
도메인 : resistance.jinbo.net
설명 : 저항을 그대로 표한하는 말로서 적당하지요.

*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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