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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우드맨

(스포일러가 잔뜩 있지만, 영화를 안보셨으면 글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거에요.아마)

 

 

이 영화는 '특수한 상처'를 가진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다른 상처들을 가진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남자가 가진 ‘아동성애증’(pedophilia)이라는 특수한 상처는 현실 경험 속에서 수시로 과거의 기억들을 플래시백시키며 그를 괴롭히고, 동시에 그의 내면적 욕망과 항상 충돌한다. 주변 환경(직장동료, 그를 감시하는 경찰관)들 또한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특히나 소아성애증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혹은 공포적으로 강박적인- 미국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1시간 2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동안 영화는 많은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동성애증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판단을 -우호적으로-무리하게 하다가는 자칫 엄청난 사회적 질타를 받게 될 것은 안 봐도 뻔하다. 그래도 영화는 균형을 잘 잡은 편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를 묘사하는 것에 집중한다. 신인 여성 감독인 Nicole Kassell의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연출은 이를 꽤 잘잡아 낸다.
어떤 사람들은, 월터가 공원에서의 로빈과 대화 장면을 “다시 범행을 저지르려고" 했던 것으로, 캔디맨을 구타하는 장면을 “자기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하던데, 나는 이에 별로 동의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저 머리카락 냄새 맡는 것을 좋아했을 뿐”이다. (그가 여동생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서 12년동안 감옥에 있었지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그때 일을 고백하면서 '니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냐'라고만 할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이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타인에게는 상처로 남을 수 있다. 그의 동생도, 극중 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했던 '로빈'도 그랬듯이. 그래서 그는 '캔디맨'을 때림으로써 인간 대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던 자신을 (좀 과격하게ㅋ)반성했던 것이다. (영화 초반 주인공은 캔디맨이 아이들을 꼬시는 장면을 보면서 "만약 저 차에 타는 아이가 있다면 그건 그 아이가 원해서 일거야"라고 하며 외면한다. 공원에서 '로빈'에게 자신의 무릅에 않기를 권유(?)하는 장면도 그리 폭력적이지는 않다. 물론, 권력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그것은 단순한 '권유'가 아닌 '폭력'으로 작용할수도 있다.) 

 

 케빈 베이컨과 그의 실제부인인 키라 세즈윅의 연기도 좋았지만, 잠깐 출연하는 아역배우, Hannah Pilkes의 연기도 만만치 않다. 특히 공원에서 케빈 베이컨과의 대화 장면은 영화전체를 통틀어서 감정의 떨림이 극대화된 장면이다. 그녀는 그 나이대의 소녀들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목소리와 눈빛을 가지고 있다. 역할에 힘입은 바가 크겠지만. 한쪽 얼굴을 찡그리면서 “11살은 싫어요.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나이일 거에요.”라고 말할 때(물론 영어로ㅋ)는 가슴이 콩닥거리더라.ㅋ

 

삶을 관통하는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아름다움이 있다.

 

사족1. '성해방'이 되었을때, pedophilia도 포함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 특성상 '권력관계'가 작용하지 않을수없으니.

 

사족2. 얼마전 한국에서 연속적으로 아동성폭행 사건들이 있었고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놈 꼬추한번 만져보자"가 당연시되는 사회에서(그런데 "요년 보지 한번 만져보자"는?)  아동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고 충분히 필요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전자족쇄""사형제도"등에 대한 논의 또한 이성적으로(제발!!이성적으로)되어야 한다. 사람을 가장 비이성적으로 만드는건 '공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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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주일.



 

참으로 이상한 일주일이었다. 일주일 동안 말을 엄청나게 많이 해서, 한 한달간은 침묵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 말들이 전혀 다른 공간에서, 각각 다른 사람들과, 완전 다른 맥락으로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말들이 나름의 이상한 연결고리를 가지며 이어지는 것이었다. J의 박정희론에 대한 반발로 시작해서, 준희형의 운동관, 오랜만에 본 지나의 고민, 휴가나온 현호와의 생뚱맞은 구조주의 대 실존주의에 대한 논쟁, 프로메 싸이 게시판에서의 답글들, 심지어 금요일 동재형과의 대화시작은 "알앤비-워우워우~하는 식의- 를 어떻게 봐야하는가?"였다.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워낙 말이 많았으니 당연했던거 같기도 하고. 어쩌면 마고가 자주 쓰는 표현대로 '삶이 통합되는 지점'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메모를 해보니 이렇게 됐는데, 이걸로 글을 써보면 뻔하긴해도 한번 읽어 볼 만한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귀찮기도 하고 다른 할 것들도 많아서 관뒀다. 결론은, 요새 공부에 탄력받았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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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라!

야간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포장마차 옆 보도 블럭에서 한 아저씨가 앉아서

종이컵에 소주를 부어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며 "허허허" 웃고 있었다. 지나치며 그 아저씨와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눈길을 피해버리고 말았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NL민중가요'틱'한 노래를 만들어 부르다가 문득, 보들레르의 시가 떠올랐다.

 

시간의 짐을 견디기 위해선 취하는 정도로 되겠지만,

세상의 '공기'를 견디기 위해선 미치는 수 밖에 없다,고 나는 다짐했다.

 

미친 사람들은 무섭다. 그러나 그 반대는 더욱 무섭다.

 

보들레르 알코홀릭!

 



취하라 - 샤를르 보들레르

 

취하라

언제나 너희는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의 문제다.
너희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너희를 지상(地上)으로 누르고 있는

시간이라는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너희는 여지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으로 취하는가?
술로 또는 시(詩)로, 또는 당신의 미덕(美德)으로,
그건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하여간 취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당신이 때로 고궁의 계단이나 도랑의 푸른 잔디 위에서

또는 당신 방의 삭막한 고독 속에서

취기가 이미 가셨다면 물어보시오.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벽시계에게,

달아나는 모든 것, 탄식하는 모든 것, 구르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 물으시오.


지금 몇 시냐고.

그러면 바람은, 별은, 새는, 벽시계는 대답하리다.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시오.

 노상 취해 있으시오!

 술로, 시로, 또는 미덕으로, 하여간 당신 뜻대로..."


 

 

Enivrez-vous

 

Il faut etre toujours ivre. Toue est la:

c'est lunique question pour ne pas sentir l'horrible fardeau du Temps qui brise vos epaules et vous penche vers la terre, il faut vous enivrer sans treve.
Mais de quoi?

De vin, de poesie ou de vertu, a votre guise. Mais enivrez-vous.


Et si quelquefois, sur les marches d'un palais, sur l'herbe verte d'un fosse,

dans la solitude morne de votre chambre, vous vous reveillez,

a la vague, a l'etoile, a l'oiseau, a l'horloge,

a tout ce qui fuit, a tout ce qui gemit, a tout ce qui roule,

a tout ce qui chante, a tout ce qui parle, demandez quelle heure il est;

et le vent, la vague, l'etoile, l'oiseau, l'horloge, vous repondront :

 

"Il est l'heure de s'enivrer!

 Pour n'etre pas les esclaves martyrises de Temps, enivrez-vous;

 enivrez-vous sans cesse!

 De vin, de poesie ou de vertu, a votre g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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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식의 글은 별로 맘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답답한 마음에 대자보나 하나 써볼까 한다.

정문에 한 몇일 붙어있다가

얼마안가 기독교동아리 홍보 포스터에 뒤덮일 운명을 가진 이런 글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뻔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슬픈 글이다.

 

-

4월19일, 짧은 단상.

-민주화 이후, 4.19를 다시 생각함.

 

소위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닙니다. 어릴 때 옆 짝꿍을 한대 툭 치며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야, 나는 내 맘대로 할 권리가 있다구"하며 장난을 쳤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씩은 가져 보았을 겁니다. 한편으로 그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보았던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 역시 기억하실 줄로 압니다. 이 시에서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치떨리는 노여움으로...서툰 솜씨로...숨죽여 흐느끼며...남몰래"쓰던 ,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앞의 그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2006년 현재에, 46년전 이 날은, 또 26년전 광주의 5월18일은, 우리에게 너무나 멀게만 느껴집니다. 민주화 운동은 '기념사업'이 되었고, 그 주체였던 사람들은 현 정권에게 '보상'을 받습니다. 소위 386세대로 불리던 민주화세력은 지금은 집권 여당이 되어서, 유동적이면서도  더욱 강력한 지배체제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민중들이 주체가 되어 이룩했던 민주화의 성과는 자본이 빼았아갔고, 여전히 그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농민들이 더 이상 이 땅에서 농사지을 수 없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흑석시장에는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그 곳에서 20년 이상을 터전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을 무참히 쫓아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취업을 위한 학원정도로 변모해버린 대학교가 한때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리웠다는 사실은 촌스런 옛 말이 되었습니다. 그마저도 비싼 등록금 때문에 빚을 지지 않고서는 다니기 힘들게 되었고, 졸업을 한다고 해도 노동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불안한 현실에 맞서게 됩니다. 오는 4월20일 '장애인의 날'에 어떤 장애인들은 그 날을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명명하며 거리로 나서야 합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경찰의 보호를 받는 용역깡패들이 그 곳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무참히 밀어내고, 포크레인으로 논과 밭을 갈아엎으며, 독재정권을 지원했던 미군의 확장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잊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니, 새롭게 기억해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세상을 변혁했던 것은 우리 민중들이었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그리고 이 땅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아직 한번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중앙도서관 앞에는 4.19혁명 당시의 중앙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비가 서있습니다. 오늘 그곳에 꽃 한 송이 바치며 조용히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이것이 당신들이 진정으로 바랐던 세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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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린다 린다 린다

 (스포일러가 있지만, 영화를 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되면서도 이런데 예민한 사람들은 괜히 후회하지 말고 그냥 읽지 마세요ㅋ)

 


 

최근에 우울할 때 마다 처방전으로 보았던 일본식 코미디 영화들 -박치기, 스윙걸즈, 거북이도 의외로 빨리 난다, 메종 드 히미코, 별이 된 소년 등- 이 나름의 효과들을 꽤 거두었기에, '린다 린다 린다'를 보게된 것도 순전히 이러한 맥락의 무척이나 실용적인 이유에서 였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그다지 발랄한 영화는 아니었고, 나는 영화를 보다가 술 먹자는 연락에 나간 것이 한번, 무척 피곤한 상태에서 보다가 졸아버린 것이 한번, 그래서 결국 세번에 걸쳐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한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 축제 공연을 위해 3일전에 급조된, ‘파란마음’이라는 팀명을 가진 후줄근한 스쿨밴드에 관한 내용이다, 라기보다는 그냥 영화가 '스쿨밴드 그 자체'이다. 영화전개는 실제 스쿨밴드가 공연을 준비하는 연습과정처럼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영화 속에서 그나마 스펙타클 한 사건이라고는 공연 날 늦잠을 자는 바람에 비 맞으며 열심히 뛰어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영화는 마지막 공연 날까지 그녀들을 조용히 따라가며 지켜보는데- (정말 조용히! 극중 방송반이 캠코더로 찍은 화면을 제외하고는 - 영화전체에서 클로즈업 샷이 내 기억으로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개는 풀샷이고 많이 들어 가봤자 웨스트 샷 정도.) 그 마지막 무대 또한 그리 화려하지도 않다 -우연히도(?) 비가 내려주는 바람에 그나마 사람들은 꽤 있었지만서도.
 

이거 오늘 한국에서도 개봉 된다고 하던데, 정말이지 "와~배두나다~"하면서 몇몇 극장에 걸렸다가 일주일 만에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사라질 운명을 가진 그런 영화다.
 

만만치 않게 후줄근한 (대)학교밴드를 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영화장면에 그때의 일들이 오버랩 되기도 하고, 영화에서 나오는 ‘블루하트’라는 그룹의 음악도 꽤 괜찮아서 조만간 조조로 다시 보러 가 볼 생각이다.

 

사족1. 써놓고 보니 정작 영화 얘기는 별로 없다. 뭐 형식을 갖춘 평론을 쓸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사실 그럴 능력도 없고ㅋ). 위와 같은 이유로 영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번역도 문제가 좀 있었던 거 같고. 조만간 극장에서 보고 다시 써봐야겠다.

 

사족2. 올릴만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 네이버에서 '린다 린다 린다'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잘 어울린다' '나는 달린다' '비가내린다' 와 같은 전혀 생뚱맞은 것들이 종종 눈에 띄인다. 그 중 최고는 '이거다'.ㅋ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クソッタレの世界のため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빌어먹을 세계를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全てのクズ共のために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모든 쓰레기들을 위해서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僕や君や彼等のため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나와 그대와 그들을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明日には笑えるように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내일은 웃을 수 있도록


世の中に冷たくされて 一人ボッチで泣いた夜
삶을 살다가 냉정한 취급을 받고 외톨이인 채로 울었던 밤
もうだめだと思うことは 今まで何度でもあった
이제 틀렸다고 생각한 적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지
眞實の瞬間はいつも
진실한 순간은 언제나
死ぬ程こわいものだから
죽을 만큼 무서운 법이니까
逃げだしたくなったことは 今まで何度もあった
도망치고 싶어진 적도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어


 *Repeat


なれあいは好きじゃないから
한통속이 되는 건 싫으니까
誤解されてもしょう

誤解されてもしょうがない
오해받아도 어쩔 수 없어

それでも僕は君のことを いつだって思い出すだろう
그래도 나는 그대를 언제라도 생각해내겠지

 *Repeat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クソッタレの世界のため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빌어먹을 세계를 위해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全てのクズ共のために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모든 쓰레기들을 위해서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一人ボッチで泣いた夜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외톨이인 채로 울었던 밤
終わらない歌を歌おう ……あつかいされた日日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 취급 당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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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인천에 가고 있는 중에, 내 건너편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엄청 심각한 표정을 하고는 양손을 사용한 다양한 제스춰를 취해가며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누구랑 이야기하는건가 살펴보았는데, 양 옆에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푹 숙인채 졸고 있었고 그녀 앞쪽 또한 아무도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스치는 사람들을 흘긋 보기도 했지만 줄곳 어떤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 곳은 허공이었고 초점은 없었다. 무슨 말을 하나 싶어 귀기울여보았지만 말소리는 그리 크지 않아 거의 들리지 않았는데, 표정이나 제스춰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걸로 보아 누군가와 주고 받는 식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혹시 무슨 연극 같은 걸 연습하는게 아닌가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것이 연기라는 생각이 절대 들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녀를 관찰하면서 나는, 내가 꼭 지금 저런 상태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블로그 또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족1. 결국 그녀가 무슨 대화를 누구와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내 옆에 앉아서 빨간 거울을 자신의 얼굴에 들이댄 한 아가씨의, 코디가 어쩌고 검정가디건이 저쩌고 하는 이야기 보다 최소한 몇 백배는 의미있는 대화였지 않았을까 싶다.

 

사족2. 사실 블로그를 만들게된 가장 큰 계기는 이쁜 일기장을 샀음에도 일기가 잘 써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그 일기장에는 3월 한달동안 달랑 시 두편이 옮겨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비루한 내 자신을 잘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소심한 나로서는 벌써 두사람이나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이곳을 들어왔다는 것이 내심 걱정이 된다.(총방문자수도 벌써 49명이다!) 하긴 진보넷이라는 이 좁디좁은 바닥에 블로그를 개설한 것 자체가 안그러기는 무리인 것을 알면서도 더욱 우스운 것은, 그럼 혼자 볼 수 있도록 설정해 놓으면 될 것을 이 따위 자족적인 글쓰기를 드러냄으로써 이렇게 뻔하게 표현되는 나 자신의 인정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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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사람들.

왼쪽부터 지경, 마고, 판, 준, 흑점.

photo by 짤막

 

-2006.4.14 새벽에

 인천 '반지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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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째 달렸다.

그 바람에 오늘은 늦잠을 자서 스피노자수업도 못가고 팬티바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러고 있다.
 

 월요일엔 컴퓨터를 고치고 성진형과 저녁을 먹으면서 “차라리 태어날 때부터 두 쌍씩 찍어줘서 나왔으면 좋겠어. 이렇게 힘들지 않게.” 하는 식의 대화를 하다가, 12시에 현아의 문자를 받고는 잠도 안 오고 날씨도 좋은데 맥주나 한잔할까 하는 생각에 나갔다가 완전히 말려버렸다.
 박정희를 좋아한다는 J의 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어떻게 하다보니 장장 2시간 남짓 걸린 나의 ‘자본론’강의로 넘어갔고, 이것저것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시간은 새벽5시를 넘어가고 우리는 학교정문광장에서 추위에 떨고 있었다.
 J에게는 부모가 없다. 일주일 내내 학교 마치자마자 11시까지 학원에서 알바를 하면서도, 주머니에 돈이 있는데 없다고 하기는 싫다면서 저번주엔 후배들 밥 사준다고 20만원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당장 내일 얹혀살았던 친구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고 아직 갈 곳이 없다고 했다.
 ‘내가 인천에서 만난 아이들은 학습능력도 떨어지고, 없는 살림 쥐어짜내 학원을 가도 대부분은 실업계로 진학하고 혹 인문계를 간다고 하더라도 대학은 등록금 때문에 갈 생각도 못한다.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이게 현실이다.’ 라는 나의 말에 J는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면 그 사람은 성공 할 수도 있고 잘 먹고 잘 살수도 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총 한 자루를 쥐어주고 싶다.’ 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지만 뭔가 씁쓸했다.

 화요일엔 낮에 율과 함께 서울대에서 스피노자 강의를 듣고 프로메에서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세미나를 했다. 뒤풀이 자리에서 뒤늦게 준희형이 합류했고,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제처럼 준희형의 말이 잘 들리던 때가 없었다. 덕분에 난 취하지도 않으면서 소주 2병 이상을 마셨고 그 바람에, 다음날 아침 부랴부랴 알바를 갔는데 12시까지 술이 안 깨서 시뻘건 얼굴로 카운터를 봤다. 사리곰탕으로 겨우 해장을 하고, 인터넷을 하다가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 들어갔는데 메인화면을 보고는 갑자기 멍~해져 버렸다. 평택을 생각하면 걷잡을 수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말이지 기도라도 하고 싶어진다. 작년 여름 평화 캠프에서 느꼈던 무게감이 아직도 가슴한구석에 그대로 남아있다. 평화캠프에서 만난 덕균을 화요일 서울대 청강하러갔던 날에 만났는데, 학교에서 평택캠페인을 하고 있으니 ‘평화캠프 갔던 사람으로서’ 한번 들르라고 했지만, 결국 나는 가지 못했다. 알바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공사를 지나는데 그 앞에서 청소용역아주머니들이 집회를 하고 계셨다. 버스 안이 무척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봄바람이 분다. 눈이 따갑다.
아마도 황사바람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갈 수 없는 고향-노찾사

 

저 멀리 저 산 마루에 해가 걸리면
쓸쓸한 내 맘에도 노을이 지네
물결따라 출렁이는 그리운 얼굴
혼탁한 강 내음이 내 맘을 적시네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이따금씩 지나가는 기차를 보면
내 고향 산 마루도 그리워 지네
뜨겁더 지나 여름나 더운 바람속에
설레이던 가슴안고 서울로 서울로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갈 수 없는 그리운 그리운 내 고향
나는 가고 싶지만 내가 갈 수가 없네
내가 갈 수가 없네
내가 갈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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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중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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