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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말하기 – 크리스티안 불프 사임과 가우크 대통령 지명에 얽힌 이야기

크리스티안 불프의 사임과 가우크를 차기 대통령으로 지명한 것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민주주의와 말하기 혹은 말 못하게 하기가 아닌가 한다.

이와 관련 독일 정통 보수일간 FAZ와 자생 좌파일간 taz의 동시적인 기사가 눈에 뜨인다. 크리스티안 불프 전 대통령의 이임 의전예식과 관련해서 FAZ는 말 못하게 하기를 조명하고,  taz는 자유민주주의 가우크란 인물의 가공으로 가려진 구동독혁명에 관한 다른 이야기하기를 제시한다.

크리스티안 불프의 사임을 둘러싼 이야기가 뇌물수수 혐의에 이어서 대통령 연금을 주자 말자는 이야기와 대통령 이임 의전예식을 허용하자 말자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전직 대통령 모두가 불참을 선언하고 독일 의전서열 5위인 헌법재판소장이 „진행 중인 수사절차때문에 참석이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라는 사유로 불참에 가담했으나 연방상원의장 겸 임시 대통령 대행 호르스트 제호퍼, 메르켈 총리 등 내각이 거의 모두 참석한 가운데 대통령 이임 의전예식이 진행되었다. 대통령궁 앞에 집결하여 부부젤라 소음으로 의전예식을 방해하려는 시위대의 노력이 허사였다. 의전예식은 아무런 일 없이 진행되었다.
 
이를 두고 2012.3.9 FAZ는 의전예식의 의미는 [국가 권력의 자리에 올라간] 개인의 모순적인 행동을 덮어 그 뒤로 개인이 사라지게 하는데 있다고 지적하고 오로지 정해진 틀을 반복하고 그런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예식을 거행함으로써 민주주의적인 말하기를 배제하고 사소한 것으로 만든다고 분석했다.

가우크에 얽힌 이야기는 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전 국민이 지지하는 참신한 „시민대통령“(Bürgerpräsident)이란 평을 받았다가 SNS의 반가우크운동이 확산되어 이젠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난 구동독 반체제운동이 다시 조명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서2012.3.9 taz 톰 슈트로슈나이더(Tom Strohschneider)의 평론 „가우크의 그늘에 덮은 것“(Aus dem Schatten Gaucks)을 전문 번역하여 아래 소개한다.

원문은 여기

요하힘 가우크가 인권운동가였나? 이 질문을 놓고 지난 며칠동안 이리 뒤집어보고 저리 뒤집어보는 답들이 있었다. 구동독 반체제 활동가들은 차기 대통령으로 선정된 가우크가 1989년 전환가을을 맞이하여 „막판에 떠나는 기차“에 뛰어 올라탔다고 1968년 이후 적극적으로 동독의 쾌쾌묵은 체제 반대에 참여한 목사 한스 요헨 취헤(Hans-Jochen Tschiche)의 표현을 빌려 기억한다

노이에스 포룸(Neues Forum/신포럼) 발기인인 하이코 리츠(Heiko Lietz)는 가우크가 수년을 거쳐 „세워진 가공된 인물“이라고 평한다. 다른 이들은 가우크의 편을 들기도 했다. 예컨대 [중도좌파] „쥐드도이춰 짜이퉁“의 구스타브 자이프트(Gustav Seibt)는 „[가우크를] 소급적으로 동독 반체제 활동가에서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그런가 하면 taz의 일코 자샤 코발추크(Ilko-Sascha Kowalczuk)는 „SED 독재에 대항하여 과감하게 싸웠던“ „89세대가 모두“ „그들이 대항했던 지배자들과 같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꿈을 공유했다“는 비판으로부터 방어한다.

이 말은 약간 [노이에스 포룸 대표자] 베를벨 볼라이와 [동독 최후 SED 서기장 겸 국가평의회 의장] 에곤 크렌츠가 한 동아리 사람이었다는 뒷맛을 남긴다. 정말 그랬나? 반면 전환은 오늘날 공론장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었다는 지적은 옳다. – 1990년 10월 3일로부터, 즉 사건의 마지막 장에서 뒤돌아 보는 시각은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하고 동반했던 꿈들을 사각지로 사라지게 했다.

이미 몇년전에 사회주의자 인권운동가였고 통합좌파당(Vereinigte Linke) 발기인이었던 토마스 클라인(Thomas Klein)이 동독 반체제 운동의 성격을 „오늘날 지배적인 정치가치관에 입각하여“ „차후적으로“ 규정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동독 반체제 운동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있어서 그 발전과정과는 괴리시키고 단지 활동가들이 당시 지향했던 목적의 현재 독일 상황과의 합치가능성여부만을 가지고 규정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자기 자리를 확실하게 찾은 과거 동독 반체제운동 일부의 상징인 된 가우크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가우크는 전환에 있어서 시민-자유주의적인 동기와 통일로 향하는 민족적인 흐름을 상징하고 슈타지 문서 보관소 초대 수반으로서 동독을 [동독 국가안보부 수장] 밀케유산으로만 보는 협소한 고찰의 체현자가 되었다.

그러나 1989년 가을 초창기에 사안이 되었던 것은 절대 단지 „한 민족“, 슈타지 건물에 쳐들어가 자료실을 점거하는 것, 그리고 여행자유화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런 것이 절대 우선적인 것도 분명 아니었다. 적극적인 행동을 했던 소수의 반체제운동가의 대부분은 제3의 길, 생태적인 재건,  결정참여권의 신장이란 깃발을 높이 들었다.
 
예컨대 „민주주의 지금“(„Demokratie Jetzt“) 운동은 „사회정의, 자유,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이 모든 사람에게 보장된 연대사회“가 되기를 희망했다. 평의회민주주의 이념을 실험하고 새로운 경제모델과 법정치의 대안을 고안했다.
 
1989년에서 1990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몇 달간에 전환에 관하여 적잖게 출판된 문건들을 모은 모음집의 제목 „역사는 열려있다“, „이성의 잠에 대항하여“ 등은 이런 역사의 개방성과 유토피아적 동력을 대변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이것은 몇 명 안되는 동독의  „꿈꾸는 자“에게만 매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었고 서독 좌파도 사로잡는 그런 것이었다.
 
예컨대 [녹색당의 유일한 지역구 의원/베를린 프리드리히하인-크로이츠베르크] 한스 크리스티안 스트뢰벨레(Hans-Christian Ströbele)는 당시 동독혁명의 „첫 귀결“로 „헌법보호청을 집어치우고 완전히 없애는 것“(„Abrüstung und Nulllösung beim Verfassungsschutz“)을 요구했다. [나찌] „민족지하연맹“(NSU) 살인마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오를 둘러싼 논쟁을 감안하면 아직도 매우 시급한 사안이다. 로버트 융크(Robert Jungk)는 당시 동독의 전환에 상응하는서독의 민주주의와 투명성 신장을 아젠다로 했다. 이것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시급성을 상실하지 않은 사안이다.

어쩌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지만 당시 동독에서는 그 몇 달 어느 순간부터 한편으로는 서독 정치판의 패걸이들(Politikbetrieb)과 서독 경제의 이해관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충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동독 „인민운동“(Volksbewegung)의 서독 마르크와 통일 요구에 부응하여 실세를 등에 업은 현실정치세력 한 패가(eine realpolitische Kraft des Faktischen)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동독반체제운동가들의 요구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이런 괴리가 동독반체제운동이 접했던 큰 문제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이런 [예견 불가능한 휘발적인]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 역동성에도 대항하여 당시 고안되고 토론된 것을 보면 어쩌면 나이브하게 보여질지도 모른다. 이제 그들이 이야기 했던 말의 흔적이 대체적으로 공론장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거기엔 정확한 이유가 있다. 사회주의를 개혁한다는  „재건청사진“(„Umbaupapier“)에, 기업에서 새로운 좌파적인 길을 모색하는 새로운 출발에, 아니 전혀 다른 새로운 헌법에 대한 논쟁에 근거하는 전통을 세우는 것을 신독일이 허용할 수도 없었고 원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문을 열어재꼈다. 그러나 정치는 다른 이들이 했다.“라고 22년이 지난 지금 취헤 목사가 말한다. 이 말은 가우크를 염두한 말이기도 하다. 가우크가 정치무대에 올라올 땐 정치적 봄이 이미 가능하고, 현실적인 것으로만 제한된 궤도에 올라 경직되기 시작했다. 1990년 1월 말 노이에스 포룸에서 처음으로 통일에 찬성하는 자들이 일어서는데 가우크가 거기 있었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깊은 단절을 느꼈다.  1990년 3월 선거로 소집된 인민의회의 의원으로서 그는 동독인권/시민운동가 다수의 지침에 역행하여 통일조약에 찬성했다.
 
역사학자 마르틴 자브로우(Martin Sabrow)는 오늘날까지 지배적인 동독혁명서술과 관련하여 그런 이야기하기는 무엇보다 먼저 „민족적인 자유 및 통일운동의 열정“(„Pathos einer nationalen Freiheits- und Einheitsbewegung“)을 강조한다고 말한바 있다. 그런 열정은 가우크란 인물에서 살아있는 기념비를 찾았다. 그게 제대로 된 일인지 안 그런지는 논쟁의 대상으로 남을 것이다. 자신을 내세우려는 마음과 청산되지 않은 옛 개인감정이 일정한 역할을 하는 다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적이 차기 대통령이 역사의 일부만을 대표하고 그리고 다른 것들을 그늘로 사라지게 하는 방법으로 대표했다는 것에는 아무런 변함을 주지 못한다. 1999년에 이미 인권운동가들이 가우크 앞으로 보낸 공개서한을 통해서 „당시 동독 야권과 1989년 가을 시민운동이 쟁취하려고 투쟁했던 것이 [통일] 독일에서 이루어졌다“라는 가우크의 주장을  우리에겐 적용하지 말라"고 항의한 바 있다.

이건 아직도 유효하다. 그리고 다시 전 동독반체제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차기 대통령에 관한 논쟁이 [역사의 사각지로 밀려난] 동독 야권으로 하여금 공론장의 기억에서 그 전통의 위상에 알맞은 자리를 차지하게 하고 있다. 동독의 전환은 가우크를 초월하는 것이었고, 전환은 가우크의 좌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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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노동부 대 EU 시민 기초생활비 지급 중지 업무지시

ou_topia님의 [2012/02/27] 에 관련된 글.

 

독일은 "European Convention on Social and Medical Assistance" 조약에 가입한  EU 시민이 일자리를 찾아서 독일로 올 경우 "하르츠 IV"라는 기초생활비를 바로 지급했는데,2012. 2.23 독일 노동부가 이를 관할하는 "고용센터/JobCenter"에 업무지시(Arbetisanweisung)을 내려 더 이상 바로 기초생활비를 지급하지 못하게 함. (관련 기사 Süddeutsche Zeitung 2012.3.9)

 

추가기사

[남]유럽경제위기가  스페인 그리스 등에서 고위학력자를 독일로 몰려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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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사회에도 경찰 있다" - 꼴통보수의 학문결과 이데올로기화

PLoS(Public Library of Science)가 2012.3.7일 발표한 스위스 연구진의 논문 „Impartial Third-Party Interventions in Captive Chimpanzees: A Reflection of Community Concern“을 „Chimpanzees Have Police Officers, Too“로 인용 보도한 사이언스 데일리의 보도를 연합뉴스 등 한국언론이 „침팬지 사회에도 경찰 있다“로 다시 인용하면서  „치안 유지“와 „권위“를 논하고 있다.

스위스 연구진은 이런 오역과  „권위“와 „치안“을 운운하는 찌지리 꼴통보수들이 이 논문을 남용하는 것을 예상했는지  사이언스 데일리가 „경찰/ police“로 오역한 „policing“이 뭔 말인지 정확하게 하고 있다.


“Researchers have identified several mechanisms through which social animals, especially nonhuman primates, manage conflicts, including dominance, reconciliation, bystander affiliation to recipients and/or initiators of aggression, mediation, punishment and policing,. The focus of this paper is on events of policing, which we define as impartial interventions by third parties in ongoing conflicts. Being impartial, these interventions never include aggression directed specifically at one of the contestants. Such policing is different from the common partial bystander involvement in conflicts, which involves agonistic support of one of the contestants. It is also different from punishment, which concerns aggression directed specifically at the wrongdoer. To emphasize the impartiality of the performers of policing, we call them “arbitrators”.” (강조는 ou)

여기서 스위스 연구진은 “policing”을 “분쟁에 관련되지 않는 제3자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진행 중인 분쟁에 개입하는 행위”(impartial interventions by third parties in ongoing conflicts)라고 규정하고 나서 ‚중립적인 개입’(impartial interventions)을 “분쟁자 한쪽만을 특정하게 겨냥하는 적대행위를 절대 포함하지 않는 개입”이라고  명확하게 한다. 이런 중립적인 개입은 흔히 볼 수 있는, 한편이 이기도록 지지하는  편들기 또는 한편을 나쁜놈으로 규정하고 그 편에 벌을 주는 식의 한편에 대한 적대행위와는 다르다는 것. 이런 “중립성”(Impartiality)를 강조하기 위해서 “policing” 행위자를 “중재자”(arbitrators)라고 부른다는 것.

푸코를 증인으로 부르지 않고, 한국 경찰이 사회분쟁에서 특정 한편에 어떤 폭력행사를 하는지만 봐도 경찰이 하는 일이 „policing“이 아니고, 스위스 연구진이 말하는 „policing“을 „경찰“로 번역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스위스 연구진이 „policing“ 개념을 명확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로 오역하는 것은 과학의 연구결과를 남용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오역에 근거하여 „policing“ – 사회안녕(social stability) – 공동체 생각하기(community concern)를 축으로 하는 스위스 연구진의 논문을 „경찰 – 치안 – 권위“를 축으로 하는 이야기로  대체하는 언론의 작태는 정말 사대주의 팬티를 입은 침팬지수준의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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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강령에 대한 단상

이번 총건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그 결과를 좀 신빙성있게 내다보기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뿐만 아니라 수많은 징후와 흐름을 반영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하찮은 토크쇼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그에 대한 관중의 반응 등에 이르기까지 민심이 어디로 쏠리고 있는지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정보’와 단절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각 정당의 강령을 한번 읽어보았다. 근데 새누리당 강령이 가장 신선한 느낌을 준다. 철학적 수고가 보이는 일목요연한 흐름이다. 골빈 좌클릭이라고 일축하고 넘어갈 수 없는 강령인 것 같다.  명쾌하고 설득력이 있다.  „국민 행복“이란 큰그림에 굵직한 획들을 „국민과의 약속“으로 배치하고, 그 약속을 이행하는 방법으로 조화와 통합이라는 실천규범을 내놓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생각나게 한다. 특히 [보수]정치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행복’(eudaimonia)과 ‚중용’(mesotes)을 반영한 강령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정희가 진정 지향했던 것이 복지국가였고 그런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박근혜가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것“을 추구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다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으로 돌아가 보면 이건 산수적 혹은 기하학적으로 계산되는 정체적인 ‚중간’이 아니라 극과 극을 치닫는 대립관계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시도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현재 상황에 적용해 보면 자본과 노동간의 대립관계가 첨예화된 역동적인 상황에서 자기자리를 찾으려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정책정당, 국민정당, 전국정당으로 거듭 태어“나려는 몸부림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근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대립구도 („성장과 복지“, „자율과 책임“ 등등)를 이야기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활쏘기 비유를 들어 그랬듯이 은연중 아무나 최종목적인 „행복“을 제대로 겨낭하고 실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립구도에 있는 세력에게 „행복“문제를 맡길 수 없고 이런 대립구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만, 즉 특정한 엘리트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강령“이란 특이한 강령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엘리트의 몸가짐(hexis)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맑스적으로 이해하자면 계급간의 대립을 부동하는 제3의 뭔가 – 심판자, 중재자, 정부, 국가 등등 – 만이 „행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계급간의 대립이 첨예화될 때마다 벌어지는 양상이다. 주의하지 않을 수 없는 강령이다. 이런 부동하는 제3의 세력이 막판에 가서는, 독일에서 보았듯이, 파쇼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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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레린주의 학생운동가 출신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 판사로 추대

재밌는 일이 베를린에서 벌어진다.

2011.9.18 베를린 주 선거에서 8.9%를 득표하고 베를린 주 의회(Abgeordnetenhaus)에 입성한 해적당(Pirarenpartei)에게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의 판사 제안권이 돌아와  재밌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해적당은 마인하르드 스타로스틱(Meinhard Starostik)를 제안했는데, 스타로스틱으로 할 것 같으면 학생시절때 „마르크스 레닌주의 공산주의 대학생동맹“(Kommunistischer Studentenbund Marxisten Lenisten)의 멤버였고, 그 이유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8년동안 헌보청의 제동으로 사법연수생으로 일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1982년 변호사 자격증을 딴 후 망명신청자의 권리를 돌보다가, 최근 들어서는 정보자기결정권 침해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대테러조치라는 빌미로 시한부로 재정된 „통신법“(Telekommunikationsgesetz)을 장기화하려는 움직임과 전국민의 통신접속을 일정기단동안 저장할 수 있게 하는 „임의통신정보저장“(Vorratsdatenspeicherung) 등에 항의하여 연방헌법재판소에 항소하여 알려지게 된 변호사다.

 

베를린 주 헌법재판소 판사가 되려면  베를린 주 의회에서 2/3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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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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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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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pad)

 

브레빅(Breivik)에서 i 만 생략한 이름으로 간판을 건 켐니츠 시내에 있는 극우파 옷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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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마 알 아사드와 참말

CNN과의 인터뷰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실황을 폭로하면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시리아 대통령부인 아스마 알 사다드. 현재 진행중인 시리아 상황 설명이 오버레이되어 있다.

 

 
 
 

 

포스팅: "i just hate the way she speaks.... she acts so "Innocent"... cmon man, you helped your man killing 8.000+ people..."

 

 

 
 
"Where in the world, could this hap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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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랑드 '왕따'와 금융계 하수인 4인방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이 메르켈의 뒤를 이어 이태리, 스페인, 그리고 영국 총리가  프랑스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프랑수아 올랑드를 "왕따'하는 분위기라고 보도한 후 시끄럽다.

올랑드가 메르켈이 어렵게 관철시킨 "신 재정협약'을 재협상해야 한다는 걸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나서기 때문이란다.  한겨레는 '우파인 주변국과는 이념이 다른  좌파 정당이기 때문이다"이라고 해석한다.

언론은 대동소이 이런 차원에서 이 사건을 보도한다. 근데 독일 정통보수일간지 FAZ의 2012.3.5 평론이 색다르다. 좌파의 비판을 무색하게 만든다.

FAZ는 메르켈, 몬티, 라호이, 캐머론을 '금융의 친근 네 명"이라고 일컫고, 메르켈 주도하에 진행되고 있는 정책을 비민주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정부는 의회가 통제하고, 의원이 재정권을 행사하고, 운명이 걸린 사안은 온 시민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민주주의는 이제 열어 놓았지만  잠자는 브라우저 창일뿐이라고 평하면서 “유럽은 [금융계에] 돈을 넘겨주는 자들의 대연정이 지배하고 있다”고 비판. 유럽차원에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위원회들이 (Ad-hoc-Gremien), 해가 뜨면 사라질 지도 모를 속이 시커먼 기구들이, 한밤중에 회의를 하고 수백억 유로의 흐름을 결정한다는 것. 이태리와 그리스에서는 이런 목적을 위해서 정치적 정당성이 의심스러운 전문가 정부가 들어서고, 국민들의 의사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  

“우리는 2008년 말 이후  갉아 먹듯이 서서히 의회의 입을 봉하고 [주권을 행사하는 인민과 쪼인되어 있어야 할] 정치권력을 [인민의 쪼인트를 까] 따로 놀게 만드는 걸  말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는 징후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잠옷을 입고 들판에 서있는 몽유병 환자처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다.  이런 유의 징후가 바로 독일 총리가 이태리, 스페인, 영국 총리와 짜고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부 프랑수아 올랑드와 프랑스 대선 당일 4월 22일까지 회동하지 않겠다는 소식이다. 이건 물론 그저 세상사의 한 조각 이야기밖에 되지 않고,  나아가 올랑드가 저들과 회동하는 것이 그에게 이득이 되는지도 의문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총체적인 맥락에서 볼 때 분명해 지는 것은 [메르켈-사르코지가 자기네들이 결정한 유럽재정위기 해소정책들을 놓고 떠드는] 유럽통합의 생존이 달려있다는 재잘거림이 거짓말이라고 판결 받는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유럽에서는 우리들이 뽑은 정치인들이 3년 반 전부터 과감하게 해왔던 일, 즉 은행과 보험업체를 살릴 목적으로 자금을 마련하는 일을 하는 정치인들만 환영을 받고 있다."

좌파의 비판을 무색하게 하는 독일 정통우파의 비판이다. 뚝심이 보인다. 올랑드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그의 말 한마디를 가지고 왕따 시킨다는 것.

“나의 유일한 적은 이름도 얼굴도 없다. 즉 금융시장들이다.”

올랑드는 단지 현황을  시민의 하수인으로서의 정치인이 주권을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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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요셉 데겐하르트 - 붐저 파코

붐저 파코

 

[붐저/Bumser는 1950년대에 남티롤 자치권을 주장하는 "남티롤해방위원회"(BAS)가 파괴폭파 테러행위를 하는데 이렇게 폭탄 던지는 사람을 두고 "Bumser"라고 함]

 

얼음보다 더 냉철한 붐저 파코가 꾸는 꿈, 대박 터뜨리는 꿈에 관한 노래 - yeah

붐저 파코 이야기, 듣기 싫어도 좀 들어봐, 4세대 적군파 테러리스트, 철두철미한 프로 - 바더마인호프 등 적군파 첫 세대를 생각하면, 그들의 입에 베인 판박이 정치 슬로건을 생각하면 붐저 파고는 미소가 절로 나오지. 그래도 어딘가 향수에 젖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땐 뭘 모르는 날들이었지. 정겹기도 하고, 그 증기관차 게릴라, 요즘은 완전히 달라, 매끈하고, 쿨하고, 직접적이기 그지없지, 예를 들어 최근의 소규모 털기, 붐저 파코와 몇 명으로 구성된 조가 원자로에서 핵연료 4개를 턴 일,우연에 맡긴 게 하나도  없었지, 톱니 맞물리듯  완전한 타이밍, 애석하게도 야간 경비원 한 명을 꺼꾸러뜨릴 수밖에 없었지만. 이렇게, 단지 스케일만 좀 더 크게, 아니 훨씬 더 크게, 대박, 대박 터뜨리는 일이 진행될 거야, yeah!

그럼, 붐저 파코나 할 수 있는 일이지, 4세대 적군파 테러리스트, 상당한  작전 노하우가 머리에 가득하지. 이런저런 정보기관에서, 상이한 게릴라들에게서 철저한 훈련을 받았지. 감정관리 문제없고, 여린 마음, 동정심 등 이런 거 언제나 가차 없이 끊어 버릴 수 있지, 그리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일이 틀어져도 남을  탓하지 않는, 이를테면 자유시장에서 훈련된 마인드로, 그리고 진짜  하드코 씬의 서너 명 하고만, 많아봤자 로지스틱스 지원자 1명을 더한 5명으로만 하는 일이지. 붐저 파코의  생각: 단지 이렇게만, 대박, 대박, 진짜 대박 터뜨리는 일이 진행될 수  있어. yeah!

그럼, 붐저 파코가 아니면 할 수 없지. 4세대 적군파 테러리스트, 밖으론 전혀 드러나지 않고, 쿨하고 유연하고, 딴 세상에서 마냥 즐기는 [올림피아 신들의] 아티카 패거리처럼, 그리고[독일 특전경찰] GSG-9를 약간 본 따고 .이렇게 붐저 파코는 그 한 순간을 기다린다. 아무런 지원 없이 혼자서 때를 포착하려고. 내 책임이라고 최종결정 하는 기업가나 프로정치꾼들처럼. 사이사이에 자금 확보도 해가면서. 돈이야 은행에 널려 있으니까. 외로움 등 감정은 꾹 눌러두고. 술, 여자, 이런 따위는 고프지도 꼴리지도 않지. 시 외곽 텅 빈 아파트에 홀로 누워 어쩌다 대마초나 한 번 빨면서 말짱한 머리로  대박, 대박, 진짜 대박을 터뜨리는 꿈을 꾸지. yeah!

그럼, 붐저 파코가 끝내 해 낼 일이지. 4세대 적군파 테러리스트, 그렇게 되어야 해, 그렇게 되겠지. 대중매체를 완전 컨트롤하는 최상의 액션, 연중 최대 사건, ARD(독일 제1공영방송), ZDF(독일 제2공영방송) 뿐만 아니라 BBC, ABC, ORTF 등등이 생중계방송하고, 4억 5천만이, all around the world,  TV 스크린 앞에 자리하고, 그리고 스포트라이트가 켜지고, 이런 라이트 돔에서 제네바 유엔 건물위로 헬기가 부상하는 순간, that's the point, 이 순간을 위해서 그는 살아왔고 준비해 왔지. 그리고 스피커에서 이런 깨진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을 위해서: “붐저 파코, 당신은 완전히 포위되었습니다. 포기하십시오! 우리의 제안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가고 싶은 데로 가게 해 주겠습니다. 당신과 당신 추종자에게 두당 백만 달러를 지급하겠습니다. 그 대신 인질을 풀어 주십시오. 미국 국무장관, 소련 외무장관, 독일 외무장관, 아랍에미리트 석유장관을 한명씩 차례로 풀어 주십시오.”

그래, 붐저 파코가 이런 꿈을 꾸고 있지. 4세대 적군파 테러리스트, 철두철미한 프로가 이런 꿈을 꾸고 있지, 이런 준비를 하고 있지, 대박, 대박, 진짜 대박 터뜨리는 꿈을. 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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