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현대차 정문 앞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아산과 울산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현대차와 하청업체는 노조를 깨려고 한 노동자를 식칼로 위협하고 아킬레스건을 끊는 만행을 몇년전에 저지른 적도 있다고 하네요. 참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본주의나라에서 노동자가 인간으로 사는 것이 이렇게도 용납하기 힘든 일인가요?

 

 

http://cham-sori.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90&no=11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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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부당징계, 규탄결의대회 열려

“노조지침 따른게 해고사유냐”

2011.05.18 11:41 입력

봉동에 위치한 현대차 전주공장 정문 앞에서는 17일, ‘정규직화 쟁취, 부당징계에 맞선 비정규직 전조합원 결의대회’(결의대회)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300여 명과 정규직 조합원들이 함께 모여 힘 있게 진행됐다.

 

 

 

 

노조지침 따랐다고 해고?

 

대회사를 한 강성희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장은 “내 아이가 열이 심해 조퇴를 한다고 해도 조장과 방장의 눈치를 봐야 했다. 일요일에도 근무하지 않는다고 현장에 나오지 말라는 소리를 지겹게 들어야 했다”면서 “붉은 머리띠를 묶고 투쟁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때 알았고, 우리에게 노조가 생기면서 우리는 비로소 노동자가 되었다”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했다.

 

이날 결의대회는 울산과 아산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함께 자리했다. 이들은 발언을 통해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는 연대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호소했다.

 

이동환 울산노동자는 “우리는 사측에 구걸이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 기죽어서 살면 안 된다”고 못 박으며 “현장에서 인간답게 일하기 위해 우리는 해고와 눈치 등을 이겨내고 정규직화를 쟁취하자”고 말했다.

 

이어 김호관 아산노동자는 “사법부도 우리가 정규직이라는 것은 인정한 마당에 현대차로부터 돌아온 것은 갖은 회유, 협박과 해고였다.”면서 “나는 비조합원 선동과 지회지침을 따랐다고 해고됐다. 이런 부당징계에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목숨 걸고 싸운다면 승리할 것

 

이날은 기륭전자 노동자들과 금속노조,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해 지역의 연대단체들이 함께하며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에 힘을 보탰다.

 

김형우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04년 우리가 처음 현대차 비정규직노조를 아산공장에서 만들려고 할 때, 사측은 식칼로 우리 노동자의 아킬레스건을 끊기도 했다”면서 “이런 폭력에 우린 굴하지 않고 노조를 만들었다. 그때의 투쟁심을 되살려 이제는 정규직화를 기필코 쟁취해야 할 때이다”며 힘을 불어넣었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은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말이 우리 투쟁 구호이다. 자존심과 목숨을 걸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차게 투쟁할 것을 주문했다.

 

한편, 이날은 현대차 합작문제로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주를 찾은 이경훈 현대차노조 위원장이 함께 자리했다.

 

이경훈 위원장은 조만간 2011년 현대차 단체교섭이 열린다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는 이 자리에서 논의가 될 것”이라며 “울산, 아산, 전주, 정규직, 금속노조까지 포함한 5주체가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해보자”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340여 명의 조합원 전원이 징계를 당한 전주 비정규직지회는 현재 재심을 청구했으며 매일 출근투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15명의 해고자와 상집간부들은 현대차 노조 사무실에서 밤샘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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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16:18 2011/05/1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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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150여일 동안 투쟁중인 전기원노동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노동자는 이 시대의 그림자입니다. 자신을 감추며 살아가야하는 존재니까요.
그 그림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때, 자본과 정부는 폭력적으로 진압합니다.
그래도 사람이기에, 그래도 살아야하기에...

노동자들은 잡초처럼 밟혀도
잡초처럼 다시 일어납니다.

 

 

http://cham-sori.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90&no=11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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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전기원 노동자들의 투쟁이야기 ①

 

 

 

“죽음의 현장을 바꾸려 투쟁을 시작했다”

 

 

 

 

한국사회 안에는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가난한 노동자들은 더욱 그렇다. 노동자, 농민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지만, 자신을 감추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자동차를 만들지만 현대차노동자라고 불리지 못하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동자들.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몸이 안 좋아도 오직 웃음으로 손님을 대해야 하는 수많은 감정노동자. 이렇게 이 땅에서 자기를 감추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북 남원시. 지리산과 춘향의 고향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자기를 감추며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150여 일 동안 투쟁하고 있다. 전기원노동자들이 그들이다. 한국전력노동자로 알고 있지만, 그들은 한국전력이 아닌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이다. 하청과 비정규직, 도급.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통해 고용하는 것은 다 자기 잇속을 차리려는 일이다.

 

남원 전기원 노동자들은 그런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한국전력으로부터 하청받은 업체가 재하도급한 업체에 고용되어 있다. 전기원 노동자들은 다 아는 이 고용구조를 한국전력과 하청업체는 부정한다. 이런 구조에서 IMF 때 엄청난 임금삭감을 경험했고, 배전현장은 안전보다는 빠른 공사가 먼저였다. 그리고 95년부터 지켜온 노동조합을 깨려는 하청업체와 투쟁하고 있다.

 

150여 일. 참 짧지 않은 시간인데, 이들의 투쟁은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죽음보다는 안전을 위해 스스로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을 들어보자.

 

 

▲남원 전기원 노조 안성수지회장(우), 김희근사무장(좌)

 

 

배전공사라고 쓰고, 죽음의 배전현장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흔히 지나다니면서 전봇대 위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우리다. 전봇대 흐르는 2만 2천 볼트의 전기가 가정에서 쓸 수 있는 220볼트가 되도록 변압기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얼마 전, EBS 다큐 <극한직업>에서 수 십 미터 송전탑을 관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방영된 적이 있다. 높이도 공포지만, 이들이 더욱 조심하는 것은 수만 볼트의 전기였다. 전기가 언제 공기를 타고 이들을 덮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하늘 높은 곳, 이들의 작업장은 죽음과 싸우는 전쟁터였다.

 

“08년부터 10년까지 50명의 전기원노동자가 사망했다. 부상자는 수백 명이다. 서울에 한국전력 부속병원에 가보면 그곳은 야전병원이나 다름없다. 손 잘린 사람이 천지다. 그래서 한국전력에서 산업안전과 관련된 규정을 만들었는데, 현장에서는 소용이 없다. 결국 우리가 사비를 들여서 민원을 제기한다. 사진을 찍고, 문서를 만들어 올리면 한국전력은 현장을 관리감독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변명을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업체에 벌점을 주는데 형식적일 뿐이다.”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한국전력’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공기업이고 세계 최고수준의 전력품질을 인정받고 있다’라고 소개하고 ‘한전 직원이 전기공사’ 중인 사진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사진은 사실 여기 거리에서 투쟁 중인 하청업체 전기원 노동자들이 매일 작업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수준의 전력품질과 배전시스템은 이들이 죽음과 맞바꾸어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한국전력은 안전이 무시되는 현장을 민원 넣었을 때, 무시하기 일쑤였다.

 

“한국전력이 배전업체를 감싸다 보니 배전현장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안전보다 빠른 작업이 우선되었다. 그리고 배전업체 사장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을 해야 했다. 일요일도 없는 노가대 식 작업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2만 볼트 이상의 전기를 만지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작업을 시켰다.”

 

 

▲평소 작업하는 전기원 노동자 [참소리 자료사진]

 

민주노조 역사와 함께하다.

 

“2년 전에 광주전남 전기원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했다. 60여 일 만에 끝났는데, 사측과 조인식을 하면서 그들이 다음은 전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전업체는 전국 사장단 모임이 있는데, 이곳에서 서서히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전북을 표적으로 삼아 이렇게 압박이 들어온 거다.”

 

남원 전기원 노동자들이 투쟁은 배전업체들과 맺었던 2010년 단체협약을 토대로 2011년 단체협약 협상이 결렬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존 단체협약에서 19개 조항을 삭제요청했다. 약 50%인데, 이 말은 단협체결을 안 하겠다는 거다. 그래도 우리는 임단협 체결하고 현장에서 바꾸자고 생각해서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제도)도 900시간 요구했던 것을 160시간까지 양보했다. 그런데 1차 교섭부터 잘되지 않았다. 예전과 다른 모습을 배전업체들이 보였고, 9차까지 결렬되면서 지노위에 갔다. 거기에서 조정결렬이 되면서 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전북지역은 배전현장에서 최초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 역사도 민주노조 역사와 같이한다. 91년부터 ‘전봇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95년 민주노총이 건설되면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10시간 이상 노동이나 우천 작업 등이 조금씩 없어졌다.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작업환경이 개선되니 자연스럽게 조합원도 늘었다. 최근에는 남원/순창 지역 전기원 노동자 98%가 가입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배전업체, 3억 묻고 노조 깨려 해

 

“배전업체사장들이 3억 원을 묻어놓고 노동조합을 깨려 한다.”

 

배전업체사장들이 작심한 모양이다. 배전업체들은 3억 원의 약속어음을 공동보관하고 전기원 노조와 개별적으로 단체협약을 맺으면 3억 원을 배상하기로 약속했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는 거나 다름없는 행동들을 배전업체가 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남원시의 불을 밝히는 역할을 했던 노동자들을 존중하기보다는 이들을 더욱 몰아붙이고 있으니 과연 이런 배전업체가 제공하는 전기를 우리는 마음 놓고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배전업체. 더욱 질 좋은 전기공급과 노동자들의 안전이 함께 보장되는 작업환경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배전업체가 할 일이지만 이들은 노동자들을 그저 착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처음에는 64명의 노동자가 함께했다. 그런데 노동탄압이 심해지면서 지금은 24명으로 줄었다. 생계를 걱정하며 어쩔 수 없이 현장으로 돌어간 사람들이 많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런 상황들이 벌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죽음의 배전현장’.

 

비가 오는데도 작업을 강행하라는 배전업체,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 산업안전규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작업현장, 이 모든 것을 묵인하고 있는 한국전력.

 

이 사각형의 테두리 안에서 전기원 노동자들의 하루는 고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이제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아무리 매일 오르는 하늘이고, 매일 만지는 전깃줄이라고 해도 스트레스가 없겠는가?

 

함께 바꿔보자고 시작했다. 그래서 두 손 잡고 시작했다.

 

사측의 회유와 협박에 현장으로 돌아간 조합원들을 볼 때면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플 것이다. 바꾸자는 ‘죽음의 배전현장’이 바뀌지 않았는데, 생계 때문에 그 현장에 돌아가야 하는 동료를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0년 동안 일하면서 우애를 다졌다. 그리고 전기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작업구간이 300M 정도 되기 때문에 무전기에 의지해 일하는데 팀워크가 없으면 안전사고도 많이 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친형제처럼 지내고 서로 생각해주고 그런다. 조합원들은 자기이익보다 동지들을 먼저 생각한다. 동지애다. 이제 악으로 버틴다. 더는 물러설 곳도 없고 잃어버릴 것도 없다. 반드시 승리해서 남원지역 배전현장을 개선할 것이다.”

 

 

 

 

사측의 악랄한 탄압이 끈끈한 동지애로 뭉친 전기원노동자들을 위협하지만, 투쟁의 깃발을 스스로 접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똘똘 뭉쳐야 살 수 있는 배전현장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이들이기에 잡초처럼 밟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다시 이들이 현장에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응원이 필요하다. 잡초는 바람에 눕고 다시 일어서지만, 결코 혼자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언제까지 이들만의 투쟁으로 지켜만 볼 일은 아니다.

 

우리는 노동자를, 농민을 민초라 부른다. 민초의 끈질긴 삶에 이제 우리도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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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4:36 2011/05/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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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정말 어려운 줄 알았습니다. 정말 어려워서 노동자 해고한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획파산"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쌍용차노동자들이 계속 죽고 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그 원인입니다. 그에 맞서 해고노동자들은 쌍용차의 비리를 고발하는 투쟁과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투쟁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더이상 노동자들이 죽지 않는 세상을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cham-sori.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90&no=1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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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노동자, 사회적 타살에 맞서다
“희망을 되찾기 위해 투쟁을 이어간다”
2011.05.13 16:52 입력

쌍용차 희망퇴직노동자 고 강종완 조합원의 시신이 12일 오후 고향이 전주에 왔다. 고 강종완 조합원은 오랫동안 공장 복귀를 기다렸다. 그 희망을 품고 고향 땅을 밟았다면 좋았지만, 쌍용차에 의한 죽음으로 시신이 되어 고향 품에 안기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빈소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으로 채워졌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이 계속되면서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빈소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투쟁 중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다. 고 강종완 조합원의 장례식이 진행 중인 전주에서 그들을 만나보았다.

 

 

 

 

“해고 스트레스, 전쟁 겪은 군인과 같아”

 

“14번째 희생자인 고 임무창 조합원의 죽음을 지켜봤을 때, 더는 죽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개월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죽음을 대하니까 너무 슬프다. 그런데 노제를 몇 번이나 지내니 눈물은 나지 않는다. 그냥 가슴이 먹먹하다.”

 

해고된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빈소를 지키면서 이와 같은 죽음이 계속되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처럼 아파했다. 아니, 자신의 일이라 더욱 아팠을 것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아웃소싱 파견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최저임금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살기 위해 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엄청난 모멸감과 자괴감을 견디며 일해야 한다. 아웃소싱으로 다니는 공장은 노조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노조가 예전에는 어느 정도 보호를 해주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다. 해고되었다는 자괴감과 배신감, 그리고 쌍용차 해고자라는 낙인이 찍혀 그 시선을 견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자살과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다는 것은 그 스트레스가 도를 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는 전쟁을 겪은 군인들의 그것과 같다고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많은 사람은 2009년 공장 점거를 풀고 쌍용차 공장이 정상 가동되었을 때, 쌍용차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언론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쌍용차 노동자들은 봉합되지 않은 상처를 견디며 살아갔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살기 위해 싸울 때, 우리는 그들을 강성노조라고 비난했고, 그들이 상처를 메우기 위해 기나긴 시간을 견딜 때, 우리는 그들을 외면했다.

 

 

[출처= 쌍용차비정규직지회]

 

 

“쌍용차 정리해고, 먹튀 자본의 계획된 살인”

 

“쌍용차는 정상화되면 복직을 시키겠다는 약속을 깼다. 사측은 2,646명이라는 정리해고 숫자를 채우기 위해 악랄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을 쫓아냈다. 밤늦게까지 집 앞에서 기다려 희망퇴직서에 사인하라고 협박하고 쉬는 날에는 회사에 와서 사인하라고 계속 전화를 했다. 그리고 지금 안 쓰면 퇴직금도 못 받는다는 거짓말로 노동자들을 속였다. 사측은 회사가 어려워서 그런다고 국민을 속였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때 정리해고 2,646명이 어떤 근거로 정한 것인지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쌍용차는 회계법인을 고용해 정확한 근거로 정했다고 주장했지만, 회계법인은 자신들은 쌍용차에서 준 자료를 바탕으로 만든 것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쌍차조합원은 결국 정리해고 숫자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고 강종완 조합원처럼 희망퇴직노동자도 사측이 회사가 정상화되면 복직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사인을 한 것이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상황에서 썩은 동아줄인 것을 알면서도 노동자는 믿고 싶었다. 회사의 그 복직이라는 말을 믿고 싶은 거다. 그렇게 무급자들도 1년을 기다렸고, 당연히 복직될 거로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회사는 왜 못 시키는지 성의 있는 답변도 하지 않고 양해도 구하지 않는다. 당연히 희망퇴직자들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회사는 무급자 복직 문제도 커지니까 현장노동자들에게 절대 무급자, 해고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고 한다.”

 

쌍용차는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고 해고를 하면서 정상화되면 다시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1년이 넘겨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와 가족들이 생계의 벼랑 끝에서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또 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쌍용차 노동자들은 분명히 말한다. “사회적 타살”이라고.

 

“사람들은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회사가 어려워서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쌍용차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회계를 조작하고 자산가치를 깎아내려서 회사가 어렵다는 것을 꾸몄다. 회계부정과 장부조작, 그리고 파산을 기획해서 노동자들이 파업하게 유도했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파업했고, 정부는 우리를 불법과 폭력노조로 몰아붙여 공권력을 동원해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여론을 통해 우리를 비난하게끔 하였다. 회사는 거기에 앞장섰고.”

 

 

[출처= 쌍용차비정규직지회]

 

 

“희망을 쟁취하는 투쟁으로 승리할 것”

 

해고된 노동자들은 쌍용차 공장 앞에서 매일 출근투쟁과 집회를 개최하고 전국을 돌면 선전전을 하며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씩 전국 동시다발 1인 시위, 쌍용자동차 영업소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는 5월 25일에는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힘겹지만, 이들은 투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나는 비정규직이고 다시 회사에 들어간다면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하게 될 거다. 그래도 이 투쟁을 하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고 명예회복을 위해서 투쟁을 하는 거다. 우리의 해고는 회사의 어려움이 아니라 기획된 파산과 상하이차와 같은 먹튀 자본의 만행 때문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밝히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기적이어서도 아니고,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 우리는 사형선고에 맞서 살기 위해 투쟁했다는 그 정당함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 그것이 명예회복이고, 회사복직은 당연하다.”

 

희망.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그 희망을 생계를 위해 떠난 사람들과 복직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공장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 싸울 힘과 분위기, 응원이 필요하다. 우린 그 희망을 주기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다.”

 

고 강종완 조합원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친절하게 심정을 고백한 쌍용차 해고노동자는 77일을 옥쇄투쟁을 했던 그 공장 앞에 서는 것이 지금도 힘들다고 한다. 많은 조합원도 사실 공장을 다시 보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그 상처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공장 앞에서 자존심을 건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투쟁을 멈출 수 없다.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고통 없는 세상, 해고되지 않는 세상. 그리고 쌍용차 노동자들이 다시 웃으며 공장에 복귀하는 그 희망을 되찾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고 강종완 조합원이 부디 노동자 해고 없는 행복한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 그리고 투쟁하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희망을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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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4:34 2011/05/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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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4대강 피해현장을 다녀온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4대강 공사와 토지리모델링 공사로 용안면의 농민들이 어마어마하게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농사를 천직으로 사는 농민들이 4대강 공사때문에 눈물을 흘려야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멈춰야 합니다.

 

http://cham-sori.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103&no=11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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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전북, 4대강 현장에서 눈물을 보다 2

 

[4대강] 용안면, 4대강 공사가 농민을 덮치나

 

 

익산시 용안면 석동리에는 80여 농가가 약 700여 동의 비닐하우스는 작물을 재배한다. 감자, 수박, 상추 등 철마다 재배하는 작물이 달라 이곳의 농민들은 쉼 없이 일한다. 혹자는 이런 농민들을 보고 돈 버는 일에 재미 들어 그러는 것일까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겠지만, 비닐하우스 1동을 짓는데 드는 비용과 품삯까지 포함해서 생산비가 500백 만원 가까이 든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할 노릇은 아닐 것이다.

 

 

 

 

“농민들은 한해 농사 잘못 지으면 그 손해를 끝까지 물고 가야 해. 다른 작물 농사로 돈 벌어서 갚으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농민들은 그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어. 농산물값은 올라가지 않아. 그런데 생산비는 자꾸 올라. 하다못해 비닐값, 비료값 이런 것은 하루가 다르게 오른다고. 결국, 한번 농사 잘못 지으면 그 손해를 평생 업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어.”

 

농사가 모든 노동의 근본, 또는 삶의 근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라를 책임지는 사람들에게 농사는 여전히 천대받는 일이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대형마트에만 가도 우리 농산물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조금씩 깔끔하게 포장된 포장지에 적힌 ‘국산’이라는 단어와 값싼 가격일 뿐이다. 이 농산물이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 우리의 식탁으로 오는지, 그리고 그 유통과정으로 농민들의 몫은 줄어드는 구조는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포장지와 가격은 보여주지 않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농민들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평생을 땅만 보고 땅과 함께 살아온 농민들에게 이런 구조와 상황은 불청객과 같은 존재이다. 땅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 땅에 적응하면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지금 이 시기에는 어떤 것을 조심해야 하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시시각각 변하는 농산물 가격과 정부의 정책은 땅의 변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만들어진다.

 

4대강 사업도, 적어도 용안면 농민들에게 4대강 공사도 이렇게 찾아왔다. 개발이라는 것이 땅을, 자연을 순식간에 인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기에 생태계도, 거기에 기댄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적응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연재해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용안면, 분진으로 올 농사 다 망할 판

 

“어마어마하게 다녔어. 덤프트럭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 다닌다고. 이 매연과 분진을 무시 못 해. 흙먼지나 황사는 그냥 비에 씻겨 내려가지만, 매연하고 뻘모래는 물과 섞이면 비닐하우스에 검게 붙어버려서 빛을 차단해버려. 빛을 봐야 크는 작물들인데 빛을 못 보니까 어떻게 되겠어.”

 

용안면 석동리는 4대강 금강정비사업 제1공구 현장을 둑 하나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그 둑으로 수많은 덤프트럭이 준설토를 싣고 나간다. 거기에서 날린 분진들은 비닐하우스를 덮쳤고, 겨울 동안 비닐하우스는 검은 분진으로 가득했다. 이 검은 분진은 눈이 내리고 나서야 조금 씻겨 내려갔다. 그러나 지금도 당시의 얼룩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분진피해가 700여 동의 하우스에서 나타났으니 그 피해규모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일조량이 없으니까 수박이 수정해야 할 시기에 수정을 안 해. 그리고 병나고 색이 안 나오고, 토마토 이런 것은 피해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3번 정도 출하했는데, 여기는 1번도 겨우 했어. 이렇게 피해는 쌓여만 가고 있지. 답답할 노릇이야.”

 

하우스 농사는 햇볕이 생명이다. 올 겨울은 그 어느 때보다 햇볕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풍년을 기대했다. 그러나 문제는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생을 한 것이다. 4대강 정비사업이 이렇게 농민들에게 피해를 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부도, 건설사도 4대강을 잘 정비하겠다는 말만 하지, 공사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공사가 진행되는지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生’을 위해 ‘生'을 죽이다

 

4대강 금강공사 중 용안지구는 생태환경공원이 조성된다. 이 공원이 들어설 강변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농민이 농사를 했던 땅이다. 그러나 국가소유지라 이들은 말없이 떠나야 했다. 친환경 생태공원으로 조성될 이 관광지.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관광지 조성 때문에 많은 농민은 땅을 잃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원을 만드는 동안 이 용안농민은 병든 작물을 보면서 자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농민들을 밟고 조성될 생태공원. 이 공원의 ‘生’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금강하구둑 막기 전에 이곳은 희귀동물들이 많이 살았어. 특히 갈게가 이곳에 많았지. 하구둑 막기 전에는 잡으면 수십 포대가 나왔어. 섬진강에 살던 조개도 있었고, 조개 잡으면 놀았어. 지금은 다 없어졌어. 하구둑 막으면서 민물장어도 사라지고.”

 

“4대강도 마찬가지일 거야. 자연 그대로 있던 거를 바꾸는 건데, 다 없어질 거야. 기존에 있던 것들은 없어지고, 그나마 있던 것들도 4대강 사업하면서 다 없어질 거야. 얼마 전에 익산시에서 참게를 방류했다고 하는데, 그 참게들이 어디 있느냐는 거지”

 


농민들 죽어 가는데 피해가 없다고?

 

 

용안면 피해대책위원장 김선태 씨는 “이 피해는 다 누가 보상해줄 거냐고.”, “농사 그만하라는 것도 아니고.”와 같은 말들을 추임새처럼 말을 마칠 때마다 넣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피해를 본격적으로 본 지, 5개월이 넘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이 상황을 조사하고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절차를 밟아야 할 관계기관들이나 계룡건설은 시간만 질질 끌고 있다는 생각만 들게 한다.

 

4대강 정비사업. 무려 20조 이상이 투입되는 대형국책사업이다. 한 기업이 아파트를 짓는 것과는 다른 사안의 국토개발이다.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업이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용안면 농민들의 피해에 대해 정부는 제 3자처럼 행동을 하고 있다. 시공사인 계룡건설과 피해농민들의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을 자기들이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장본인들이 이러고 있으니 계룡건설은 당연히 피해를 축소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지난 1월에 계룡건설에서 부른 조사팀이 이곳 분진을 검사했어. 그런데 분진검사 할 때는 엄청나게 지나가던 덤프트럭들이 1/20도 안 지나가더라고. 바람도 엄청 불던 것이 그날은 불지도 않아. 그리고 그렇게 조사해간 결과도 같이 봐야지. 우리는 4개월이 지났는데도 연즉 그 결과를 몰라.”

 

피해가 갈수록 늘자, 농민들은 국토부도 찾고 환경부도 찾고 환경분쟁위에 제소도 하였다. 그제야 얼굴을 내민 계룡건설은 분진체크도 하고 피해조사도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여전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리고 환경분쟁위에는 큰 피해가 없다고 보고 한 모양이다.

 

농사만으로도 벅찬데

 

“농민들 죽으라는 것밖에 안 돼. 직장 다니는 사람에게 그만 쉬라고 말하는 것이랑 똑같아.”

 

현재 진행되고 있는 4대강 공사 현장 주변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농민들이라면 모두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노동자가 해고라는 말 한마디에 죽음을 선택하는 일들이 늘듯이, 농민이 땅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곧 사형선고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밟혀도 다시 서는 풀처럼 농민들은 그 상황에서도 농사일은 멈추지 않는다.

 

“감수할 수밖에 없어. 사업하는 사람들은 실패하면 다른 것을 해볼 수 있을지 몰라도,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한다고 농민들이 바로 그 송충이야. 우리는 잘못 돌아간다고 해도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 올해가 안되면 내년에는 올해보다 좋으려니 하고 또 시작하는 게 농민이야. 건강만 허락된다면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고. 그런 생각으로 살지. 우리 농민들은”

 

농민들에게 사실 농사일 하나만으로 벅찬 삶일 것이다. 피해를 봤다고 농사일 접어두고 정부와 건설사와 분쟁을 다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농민들을 농사일에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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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4:32 2011/05/1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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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전북지역 장애인미신고시설 실태조사를 다니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장애인시설은 사라져야한다.'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시설은 감옥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시설에 들어가면 자립생활은 사실상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을 꿈꾸기란 하늘에 별따기이죠. 시설에서 만난 장애인들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자립생활지원이 주어진다면 자립생활을 하겠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저에게 되물었습니다. "그게 가능하냐?" 자립생활에 대해 믿기 힘든 눈치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시설장애인들이 시설에서 경험한 것은 5시에 기상에서 기도하고 점심 먹고 기도하고 저녁먹고 기도하고 그게 전부였으니까요. 한 장애인이 사회에서 적응하고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시설이 되어야하는데, 오히려 시설에 발을 담그면 나올 수 없는 감옥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하루 빨리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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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am-sori.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99&no=11447

 

 

미신고시설, 끝나지 않은 이야기
[칼럼] 신고시절 전환만이 아닌 자립생활정책이 필요해
2011.05.06 10:44 입력

지난 5월 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지난해 전국미신고시설 인권실태조사 이후 두 번째 보고대회가 열렸다. ‘미신고시설,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주제로 개최한 이번 보고대회에서는 전국 22개소 미신고시설 인권실태조사에 직접 참여한 조사원들의 못다한 이야기, 시설거주인 당사자 이야기, 미신고시설을 유지시키는 힘이라는 주제로 정신병원과 미신고시설과의 관계와 자원봉사와 푸드뱅크 순서로 진행되었다.

 

 

▲[출처= 전북시설인권연대]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여준민 상임활동가는 “시설운영자들은 평상시에는 별다른 왕래나 관계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정해진 파이를 서로 나눠 갖고 그것으로 이익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자체 조사나 감사 등 서로 필요한 관계가 되면 똘똘 뭉칩니다. 시설연합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줍니다.” 라고 말한다. 조사 기간에 전국을 누비며 시설연합회 사람들이 조사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국회의원 이정선의원실,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탈시설정책위원회, 시설인권연대의 공동주최로 실시한 민관합동 실태조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6개월 남짓 조사기간에 그들의 행태는 가히 폭력조직과 다름없었다.

 

시설은 그저 시설일 뿐이다.

 

함께가는 서울장애인부모회 박문희 센터장은 장애아를 둔 부모이며, 대부분의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장애인들이 바로 센터장의 자녀와 같은 지적장애인이다. 조사를 마치고 그가 내린 결론은 “그저 시설은 시설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시설이 유지될 수 있는 여러 이유 중에 바로 시설을 택할 수밖에 없는 가족의 여건과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시설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존재하길 원할 것이다.

 

사실 실태조사 이후 보고대회는 지난 2월에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었다. 바로 그 안에 거주하고 있는 거주인들의 이야기이며, 앞으로의 대안이 신고시설로의 전환만이 아닌 정확한 실태파악과 거주인의 인권실태, 탈시설을 희망하는 이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여 신고시설로의 유도가 아닌 자립생활정책으로의 정책전환을 구축하는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시설인권연대,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탈시설정책위원회 민간단체에서 다시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수유너머R 안티고네 연구원은 ‘값싼 복지, 이제 그만!’ 이라는 제목으로 미신고시설의 자원봉사와 푸드뱅크에 대한 부정적인 이면을 조심스레 꺼냈다.

 

연구원은 “푸드뱅크는 기탁자가 보유하고 있는 ‘잉여음식’을 푸드뱅크 이용자에게 전달함으로서 빈곤층을 구제함과 동시에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따라서 자원을 보호하며-,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자연스레 환경이 보호된다는 1석4조의 논리를 취합니다. 현재의 푸드뱅크가 시스템과 운영 마인드가 개선되다면 지금보다 양질의 음식을 공급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미신고시설 조사에 참여하면서 감지한 문제점은 푸드뱅크가 사회빈곤층, 소외계층은 푸드뱅크와 같은 것을 먹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틀에 박힌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있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푸드뱅크 트럭에서 음식물을 내려 식사 준비를 하는 장애인 시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고, 어떤 껄끄러움과 불편함 없이 ‘시설은 곧 그런 곳’으로 자연스레 당연시하는 우리들의 인식 때문입니다.” 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지적장애인거주시설 다솜 최용진 원장의 발제가 이어졌다. 우리들은 탈시설, 자립생활운동을 하는 사람들이고, 무조건적인 현재의 시설정책에 문제제기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욱 시설 원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최용진 원장은 마지막 순서여서 많이 기다렸고, 무슨 말을 할까 여러 생각을 하였다면서 말을 꺼냈다. “저도 여러분들을 작년부터 알게 되고, 만나서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탈시설운동, 자립생활운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설에서 장애인을 위한다고 했지만 정작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의사를 들으려했는가 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고민을 남기는 말을 하였다. “시설이 비민주적이고, 인권침해 공간입니다. 하지만 퇴소하는 숫자보다 계속해서 입소하고, 입소를 기다리는 숫자가 훨씬 많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왜 입소자가 계속 발생합니까?” 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바로 서두에서도 나왔고, 미신고시설 실태조사를 한 이유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시설을 희망하는 이 사회와 가족, 당사자가 존재하는 한 시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시설을 원하는지, 어떠한 지원체계가 마련되면 시설이 아닌 다른 복지서비스를 택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따른 정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임] 김병용 님은 전북시설인권연대 사무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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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6 15:51 2011/05/0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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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일간의 사투, 그리고 다시 시작
고공단식농성, 그 목숨을 건 주인공들을 만나다.
2011.05.04 14:27 입력

35일간의 망루단식농성을 마치고 전북고속, 신성여객, 호남고속 쟁의대책위원장이 땅을 밟았다. 목숨을 건 망루단식투쟁이기에 회복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곳은 병원이 아니라 버스투쟁본부 총회가 있던 민주노총 전북본부에서였다. 아직 전북고속 투쟁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편히 자기 몸을 챙길 여유를 이들은 갖고자 하지 않았다.

 

버스파업투쟁이 반환점을 돌았다. 시내버스는 현장에서 단체교섭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타결되지 않은 전북고속은 다부진 결의를 모아 투쟁을 이어갈 것이다. 망루단식농성으로 어쩌면 지쳐 있을 호남고속과 전북고속 쟁의대책위원장에게 지금까지의 노력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인터뷰 - 호남고속 쟁의대책위원장 김현철, 전북고속 쟁의대책위원장 남상훈       

 

 

삶과 죽음의 경계위에서 단식을 하다

 

Q. 몸은 좀 어떤가
김현철 호남고속 쟁의대책위원장(호남) : 몸은 안 좋은 상황이다.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단식이 불가피하게 길어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35일간 단식을 해보았다. 의지와 관계없이 마음은 괜찮은데, 몸이 자꾸 휘청거리고, 똑바로 걸으려 해도 한쪽으로 치우친다.

 

Q. 망루에서 외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을 텐데 어떻게 이겨냈나 
남상훈 전북고속 쟁의대책위원장(전북) : 오직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렇지만 민주노조를 세우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를 생각하면 고통스러웠다.

 

호남 : 망루단식이 파업전술 중 하나지만 삶과 죽음이 직접 연관된 곳이었기에 두렵기도 했지만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그래도 고공농성이었다. 농성장이 바람에 많이 흔들리고, 비가 오면 빗물이 새고, 번개가 치면 감전의 위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숙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 아니 수면에 앞서 두려움이 앞섰다. 붕괴는 안 될까, 감전은 안 될까. 그래서 세 사람 모두 두 시간 이상 잠을 못 잤다. 그럴 때마다 책도 보고 향후 투쟁에 대해서 논의도 하고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면서 이겨냈다.

 

Q. 망루단식농성이 길어지면서 내려올 것을 권유했던 일들도 있었는데
전북 : 지난 1월에도 1주일간 민주당사에서 단식한 적이 있다. 거기서도 정치인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치인들과 사업주는 사인할 때까지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정동영의원이 올라와서 무슨 말을 해도 따라갈 수 없었다. 내려오자고 할 때도 밑에 가서 사인하고 올라오라고 했다.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고공농성단식 당시 망루에서. 남상훈 전북고속 지회장(좌), 김현철 호남고속 지회장(가운데), 이성범 신성여객 지회장(우) [출처= 전북고속지회]

 

 

전북고속지회,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Q. 조합원들을 위에서 지켜볼 때 어땠나
호남 : 망루에서 파업이 합법 판정을 받았을 때, 많이 안도했다. 그리고 사측과 합의서를 쓰고 내려왔을 때, 많은 감정이 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분노의 아픔하고. 이제 파업을 정리할 수 있다는 안도감, 타결되지 않은 전북고속에 대한 애정이 어린 미안함,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결연함. 이런 느낌들이 한꺼번에 스쳐 갔다.

 

전북 : 전북고속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왔기에 오직 조합원들을 다시 어떻게 단결시켜 끌고 갈까 고민을 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갈 때 많은 동지의 박수를 받았지만, 속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래서 병원에만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북고속 동지들만 따로 모여서 총회를 했다. 거기서 동지들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고 감동하였다. 그 자리에서 말했다. 우리 정말 다시 한 번 시작하자고. 동지들이 이 뜻을 받아들여 줘서 고맙고 감사하다.

 

Q. 왜 민주노조인가
전북 : 40년 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혹독한 노동을 시키지 말라고 요구하면 분신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도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노총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급료를 개선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자기들 주머니만 생각했다. 한국노총 간부라는 사람들이 자기들은 70만 원을 올리고 우리는 0.88% 올렸다. 이 사실은 주주총회에서 사측이 자랑스럽게 보고한 내용이다. 그리고 노동조합 간부를 전부 간선제로 뽑고, 대의원도 지명제로 뽑는다. 수습기간은 3개월에서 약 11개월로 늘었다. 그리고 통상임금을 없애기 위해 시급을 올렸는데, 시급도 줄이려고 14시간 노동으로 계산하던 것을 2시간 깎았다. 일을 똑같이 하는데 총시급량은 줄었다. 독재보다 더한 상황이 바로 지금 버스노동자들의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 다물고 있는 것은 인간도 아니다.

 

호남 :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체계여야 한다. 그런데 버스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이런 다양성이 무시된 체계였다. 그러다 보니 고인 물은 썩는다고 부패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해나가야 할 시기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노조를 선택했다. 그러다 보니 탄압이 많았고, 탄압 탓에 전주시민에게 불편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다양성과 민주노조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다면 더 좋은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버스서비스 향상이라는 것은 곧 운전기사를 믿고 버스를 탄다는 말이다. 보다 안전운행에 중점을 두고 시민들이 편하게 탈 수 있는 노선과 배차, 환승제도의 획기적 변화 등의 길에 노동자도 함께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보조금을 받고 있으니 값싸고 편리하게 탈 수 있도록 공영제도 현실화 돼야 하지 않나. 이러한 이야기들이 우리가 민주노조건설투쟁을 하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불편이 아마 유익함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도 노력하겠다.

 

 

 

 

“현장을 넘나드는 투쟁으로 승리 쟁취할 것”

 

Q. 앞으로의 각오를 밝혀 달라
전북 : 교육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지금 복귀하면 바로 회사의 가진 구박을 받으며 살 것이다. 여기 현장에 남아 싸우면 역시 우리 가정과 가정경제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각오하고 투쟁하는 것은 사는 길을 찾아야 했기에, 싸우는 길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내버스동지들이 우리 천막부터 옮겨주었다. 그들이 희망을 주었고 힘을 주었다. 다시 한 번 뜻을 모아서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호남 : 현장투쟁이라기보다 이제 출발선이다. 실제 투쟁 완성이 아니고 앞으로 밀려오는 모든 산적한 숙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 마찬가지로 전북고속 투쟁이 하루빨리 승리해야 우리가 처음에 약속했던 공동투쟁, 공동단체교섭이 완성된다. 그 길에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동지들도 전북고속이 시내버스와 함께할 수 있도록 적극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따라서 앞으로 전북고속과 함께 현장을 넘나들면서 투쟁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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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23:23 2011/05/04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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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시민대책위, 도청 농성 돌입
전북고속파업 타결까지 힘 보탠다.
2011.05.04 20:39 입력

'버스파업해결과 완전공영제실현을 위한 전북시민사회단체대책위'(시민대책위)가 전북고속 파업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농성장을 시청에서 도청으로 옮기고 계속 농성을 이어간다.

 

대책위 한 관계자는 “전북고속이 조속한 시일 내에 해결돼야 한다. 시외버스파업 타결도 시민이 바라고 있다는 마음을 전북도에 전하려고 농성장을 옮겼다”고 도청농성 이유를 설명했다.

 

 

 

 

시민대책위는 농성장을 4일 농성장을 이전 설치했다. 한 때 도청 공무원들과 청원경찰들이 몰려나와 소란이 벌어졌지만 큰 제지 없이 설치했다. 시민대책위는 전북고속파업이 해결될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방침이다.

 

전북고속지회는 “시민대책위의 연대에 감사하다”며 “전북도가 시민대책위의 농성장을 강제철거한다면 파업이 해결될 때까지 전북고속지회도 도청에서 농성에 돌입할 것”이라며 전북도의 철거 움직임에 경고했다.

 

전북고속지회, 끈질긴 투쟁으로 파업투쟁 승리할 것

 

한편, 전북고속지회는 조합원 60여 명과 시민사회단체회원들이 함께한 가운데 도청 앞에서 전북고속규탄집회를 개최했다.

 

 

 

 

대회사를 통해 윤종광 민주노총 전북본부 수석부본부장은 “버스사업주들을 딱 한 번 믿어보자는 뜻에서 시내버스 합의를 했지만, 돌아온 것은 전북고속지회의 외로운 투쟁인 것 같아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스럽다”고 말문을 연 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전북고속지회노동자들의 투쟁 승리 의지를 보니 자랑스럽다”고 전북고속지회의 높은 투쟁 열기에 대한 느낌을 전했다.

 

이어, “끈질기게 투쟁해 전북도지사와 전북고속 황의종 사장이 버티는 것은 무지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자”고 결의를 모았다.

 

연대사를 한 방용승 민주노동당 전북도당 위원장은 “합의를 통해 현장에 복귀한 시내버스노동자도 전북고속을 두고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진 자들의 재산권이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날이 조만간 찾아올 것”이라고 전북고속지회 투쟁이 승리할 때까지 연대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전북고속지회는 현재 시외버스터미널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파업투쟁을 계속 전개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작년 5월에 우리가 투쟁을 시작했으니 벌써 1년이 되었다”면서 “이만큼 왔으니 한번 끝까지 해보겠다”며 시외버스만 합의하지 못했다는 서운함보다는 당찬 결의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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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23:22 2011/05/0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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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루만 보면 가슴이 떨려. 자꾸 용산이 생각나” 지난 4월 19일, 버스노동자들이 쌓아올린 망루를 보며 문규현 신부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용산철거민들을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했던 신부님. 자신이 손수 만든 마중물카페에서 불과 2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망루가 위태롭게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가난과 설움에 노동자들이 올라갔다고 하니 오죽했으랴.

 

망루를 보면 편치 않은 건 신부님뿐이 아니다. 버스노동자들을 응원하는 이라면 누구나 걱정이 앞선다. 행여나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망루에 오른 이들의 건강은 어떨까? 이런 걱정과 함께 노동자가 결국 망루에 오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망루를 편하게 바라볼 수 없는 일이다.

 

용산 철거민들이 그랬고,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을 선택할 때 그랬다, 망루는 세상에 더 이상 기대할게 없을 때 선택한다. 적어도 버스노동자들에게 망루는 그랬다. 정당한 절차를 거친 파업이라 당연히 합법한 투쟁이었지만, 노동부는 공개되지도 않은 매뉴얼을 들먹이며 불법파업이라는 섣부른 결정을 내렸다. 전주시는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불법을 외쳤고, 그렇게 정당한 파업을 불법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버스노동자들은 참았다. 지역사회를 믿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는 하루 16시간 운전대를 잡아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버스노동자들의 삶을 알아줄거라 생각했다. 배차시간을 엄수하기 위해 위태롭게 전주 시내를 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30년 노동의 삶. 배차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무슨 욕이든 다 들어야 했던 그 30년 노동의 삶. 결코 드러나지 않았던 그 노예같았던 삶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 양심이 있는 지역사회라면 알아줄거라 버스노동자들은 굳게 믿었다.

 

그래서 지역 여론을 고려한 투쟁을 전술로 선택했다. 삼보 일배로 머리도 조아려보았고, 수만 장의 유인물도 뿌려보았다. 그러나 언론은 그들을 매질하듯 몰아붙혔고, 공권력은 버스노동자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노동자 100명이 모이면 공권력은 1000명으로 상대했고, 민주노조를 버스노동자들이 외치면 불법폭력집단으로 매도했다.

 

그렇게 100일이 지났다. 그리고 버스노동자들은 차디찬 거리보다 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하늘, 고공에 마지막 믿음을 걸고 망루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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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3 22:49 2011/05/0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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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am-sori.net/news/view.html?section=1&category=102&no=11437

 

운수노조 상대로 8억여 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제기
2011.05.03 18:26 입력

전북고속 사측은 파업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봤다며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과 전북고속조합원들을 상대로 8억 3천여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전북고속은 고소장을 통해 법원에서 종지부를 찍은 합법파업을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4월 1일, 법원에서는 버스파업 노동자들의 교섭권을 인정해 이번 파업이 합법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노동부, 전주시 등은 파업 초기에 불법으로 매도해 사실상 이번 파업을 장기화시킨 당사자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버스투쟁본부, “노조를 압박하려는 행위”

 

전북고속은 4월 18일, 운수노조의 파업 때문에 5개 항목에 대해 손해가 발생했다며 그 금액을 8억 3천여만 원으로 산정하여 소송을 제기했다.

 

전북고속이 제기한 손해액은 △파업으로 인한 차량 미운행(약 3,091대) 1억 4천여만 원 △차량파손 1억 2천여만 원 △시외버스터미널 매표액 수수료 손실액 1억 9백여만 원 △회사건물 및 시설물 파손 5천여만 원 △경비인력 인건비와 식대 4억여 원 등이다.

 

이번 소송에 대해 버스투쟁본부는 “노동조합을 압박하려는 행위”라고 딱 잘라 말했다.

 

민주노총 법률지원센터는 이번 소송에 대해 <노동관계법 - 제3조 손해배상청구 제한>에 따라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말한 뒤, “전북고속의 파업이 합법성을 인정받은 상황에서 노조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사측이 고용한 용역비용까지 물어내라?"

 

한편, 이번 소송에서는 사측이 고용한 경비인력에 대한 비용까지 청구하여 문제가 될 전망이다. 전북고속은 파업기간 동안 투입된 용역의 3억 8천여만 원의 인건비와 1800만 원 상당의 식비를 청구했다.

 

이에 대해 전북고속 남상훈 쟁의대책위원장은 “사측이 고용한 용역인건비 정도면 전북고속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복지비로 충분한 비용”이라며 30년 가까이 전북고속에서 일한 노동자들을 대하는 사측의 태도에 다시금 분노했다.

 

민주노총 법률지원센터는 “경비인력에 4억을 넘게 썼다”며 “용역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업주 자기 판단에 따라 사용한 비용인데 노조 측에 떠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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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3 21:40 2011/05/0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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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거창한 것을 쓰려고 노트를 작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보라"를 보고 무언가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컴퓨터를 켠다.

 

1) 전북고속 남상훈 쟁의대책위원장과 인터뷰 후기.

 

오늘 오후에는 35일의 단식과 17미터의 망루 농성을 마치고 땅을 밟게 된 

전북고속 남상훈 쟁의대책위원장을 만났다. 

 

버스노동자들은 작년 여름,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적법한 절차를 거쳐

쟁의와 교섭을 요구했고 교섭이 결렬되면서 절차에 따른 파업을 12월 8일 시작하였다. 

그러나 노동부는 자신들의 메뉴얼을 근거로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전주시는 이 것을 빌미로

합법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버스노동자들의 고된 행군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버스노동자들은

무려 150여일이라는 시간동안 

거리에서 추위와 따가운 시선들과 싸워야했고,

집에서는 가난과 힘겨운 동거를 시작해야했고,

공권력의 침탈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했다.

 

법원의 판결은 이런 고난을 힘겹게 이겨내던 다음 해 봄이 되어서야 나왔다. 

 

남상훈 위원장은 공권력의 계속되는 침탈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시기에  망루에 올랐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건, 물론 버스노동자들의 집회였다. 등에는 검은색 가방을 메고 연대온 동지들을

반갑게 악수로 맞이하던 모습. 남상훈 위원장을 망루에 오르기 전에 기억하는 장면은 그게 다였다. 

그런데 왠지 모를 자신감이 그에게 느껴졌다. 

 

그리고 약 40일이 지나고, 오늘에서야 나는 남상훈 위원장과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전북고속은 아쉽지만 사측의 교섭거부로 거리에서 다시 투쟁을 시작하였다. 

많은 언론들이 "버스파업 해결"을 떠들때, 전북고속 노동자들은 전교조의 천막농성장을 철거하고

다시 시외버스터비널에 천막을 쳤다. 

 

전북고속 남상훈 쟁의대책위원장 역시 망루에서의 단식농성을 마치고

병원에서의 요양을 할 겨를도 없이 천막농성장을 찾아야 했다. 

 

승리하기 전에는 내려오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는데 내려올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그를 천막농성장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내가 그를 만난 건, 그래서 병원이 아닌 민주노총 전북본부 사무실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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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Kg이 빠졌다고 한다. 꽤 단단했던 체구는 상당히 말라있었다.  

그러나 빠진 건 살일뿐, 전북고속의 문제는 여전히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할말도 많았고, 분노도 그만큼 컸다. 

 

목숨을 담보로, 삶과 죽음 경계위에서 위태롭게 서있던 망루에서

투쟁했던 그에게 분노는 분명 독이라고 생각하게 되니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는 것은 남상훈 위원장에게 해가 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질문이 이어질때마다 분노는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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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고속 사측은 이번에 8억 3천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전북고속노동자들을 상대로

걸었다.

 

모든 사람들이 바랬던 합의서 한 장이 아닌 고소장을 사측은 내밀었다. 

민주노조. 그거 하나였다.

 

보다 민주적인 노동환경을 만들기위해 30년, 20년 간 운전대를 잡았던 버스노동자들이

그 손으로 주먹을 웅켜지고 하늘 높이 치켜세운 이유는 그거 하나였다.

 

"전태일 열사가 70년 분신을 할때 외쳤던 단 한마디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였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외침은 변함이 없다. 우리가 투쟁하는 이유다.

       한국노총의 대표라는 사람이, 한국노총 전북고속지회 간부라는 사람이 자신의 월급 70만원 올리고

       조합원들 통상임금을 없애고, 임금을 삭감하는 그런 노동조합이 아니라....

       하루 14시간, 16시간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그런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는 노동조합.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노동조합이다."

 

노예같았던 30년 버스노동자의 삶을 청산하고 이제 인간답게 더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전북고속노동자들.

 

난 순간 부끄러워졌다. 

 

전북고속의 향후 투쟁방향을 정하던 조합원 총투표에서 92%의 압도적인 지지로 거리에서의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건 대단한게 아니었다. 전북고속에서 밥 굶어가며 운전대를 잡아야 했던 노동자라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노예같았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전북고속 노동자들.

 

어쩌면 자신의 건강보다는 투쟁하는 동지들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혹시 힘들지 않았냐는 나의 질문에 대화를 거부하는 전북고속 사측에 대한 분노와 투쟁으로 답하는....

 

남상훈 전북고속 쟁의대책위원장의 투쟁심은 전북고속 노동자들이 함께하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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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건승을 빈다. 아니... 그들에게 내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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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2 23:54 2011/05/0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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