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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자료] 95년 12월

 

{울산지역 노동운동의 역사} - 그 '문제의식'들


{울산지역 노동운동의 역사}는 편집자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지난 8년간…'현중과 현자의 의식적 만남'을 준비하고, 대공장 노동운동의 정치적 임무를 촉구하며, 노동조합운동과 구별되는 선진노동대중의 현장조직운동을 변혁적 노동운동으로 전화·발전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분투해온 '발로 쓴 문제의식'들을 모은 것이다." 여기서는 이 '문제의식'들의 대강을 정리하고 향후 과제들을 뽑아보고자 한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의 의식적 만남'은 그 자체로 한국 노동운동의 향방을 가름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쌍두마차'는 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에서의 그야말로 '자생적'인 첫 만남 이후 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과 현대자동차 4.28 연대투쟁으로 한번 만났고 93년 현총련 공동임투에서 또한번 만났다. 그리고 95년 하반기 들어와 두 사업장에 민주노조가 동시에 들어섬으로써 96년 또한차례의 운명적 만남을 예고하고 있다. 90년의 만남은 "현대중공업이 깨지면 현대자동차도 깨진다"는 경험적 위기감과 88∼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투쟁과정에서 이루어진 두 사업장 선진활동가들 사이의 초보적 연대와 교류의 산물이었다. 그런만큼 이때의 만남은 대중적 만남이었다기보다는 '선도투(?)적' 만남이었다. 대중적인 첫 만남은 93년 현총련 공동임투에서 이루어졌다. 93년 현총련 공동임투는 시기집중을 뛰어넘는 부분적 공동요구와 총파업으로까지 진전해갔지만 90년대판 '긴조'의 부활 앞에서 끝내 이를 돌파하지 못한 채 단위사업장 안으로 '회군'함으로써 종결되었다. 그러나 이 투쟁은 "…이른바 문민정부의 '개혁'이 공장문 앞에서 어떻게 멈춰 서는지를 대공장 연대투쟁의 힘으로 입증했"을 뿐만 아니라 두 사업장의 '의식적' 만남이 총자본의 집중포화를 이겨낼 수 있는 '지도력'(전국성, 계급성, 정치성)을 전제로 요구한다는 점을 다시한번 명확히 보여줬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만남'은 이제 금속연맹 단계의 민주노조운동이 본격화해야 할 대중적 산별노조 건설운동 속에서 예비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의 96년 만남은 따라서 '철의 노동자'들의 전국적 단결·투쟁을 이끌어내고 전선의 선두에서 산업별 단결·투쟁의 희망과 자신감을 일궈나가는 계기로 준비되어야 한다.

대공장 노동운동의 정치적 임무는 변혁적 노동운동진영의 현시기 전략적 과제인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와 맞물려 제기되고 있다.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란 다수 노동자들의 대중적 정치활동을 통해 노동계급이 전사회적 대안세력으로 등장하고 자본에 맞서는 노동의 새로운 권력구조를 세워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한마디로 작업현장과 노동자들의 생활에 굳건히 뿌리내린 '노동의 정치'가 구체화되는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88년 13대 총선, 91년 기초 및 광역 지방의회 선거, 92년 14대 총선과 대선, 95년 지자체 선거 등에 노동자 후보를 내세워 투쟁해왔다. 이러한 선거투쟁은 언제나 그 시기 대중투쟁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수행되었다. 88년 13대 총선투쟁은 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과 88년 현대엔진 민주노조 사수투쟁의 직접적 연장선에서, 91년 기초 및 광역의회 선거투쟁은 91년 5월 투쟁의 성과를 계승한 임투의 한가운데서, 92년 총선은 현대자동차 년말 성과분배투쟁의 패배와 민주노조 재건투쟁의 그 힘겨운 와중에서, 95년 지자체 선거는 현대자동차 양봉수 동지의 분신투쟁과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준법'투쟁으로 촉발된 전국 임투전선의 한복판에서 전개되었다. 선거투쟁과 대중투쟁의 이러한 결합은 그러나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 전략에 근거한 전술적 배치로까지 발전되지 못했다. 오히려 선거와 임투가 대립하고 분열되는 양상까지도 표출되었다. 현시기 대공장 노동운동의 정치적 임무는 제도정치공간에 대중투쟁의 연장에서 개입했던 이러한 경험들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것 이외에 환경, 교통, 복지, 문화 등 사회 전반의 문제들에 대한 노동운동 영역의 확장 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96년 15대 총선과 임투는 바로 이 점에서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민중적 연대의 전망을 열어가는 계기로 조직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운동과 구별되는 선진노동대중의 현장조직운동을 변혁적 노동운동으로 전화·발전시키기 위한 고민은 사실 {울산지역 노동운동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 문제의식이다. 대공장 노동운동은 예외없이 노조민주화투쟁으로부터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민주화추진위] 형태의 현장조직이 광범하게 결성되었다. 노민추운동은 초기에 노조 민주화의 상을 둘러싸고 노조 민주화를 집행부 장악에 한정짓는 경향과 추상적이긴 하지만 '노동해방'의 정신·사상에 근거한 현장조직 강화를 중심으로 보는 경향으로 분화한다. 이 분화는 이후 '민주' 집행부의 또다른 '배신'에 의해 명확히 분리된다. 아래로부터 민주노조를 강화하고 현장 활동가층의 초보적 재생산을 위한 안정적 현장조직운동의 필요성이 점차 증대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장조직운동은 여전히 민주노조운동의 일부로 한정되어왔다. 민주노총이 건설됨으로써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현시기 선진노동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제기되고 있다.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단위사업장의 민주노조운동을 뛰어넘는 계급적 시야를 현장조직운동에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급적 시야는 필연적으로 타계급·계층에 대한 노동계급의 태도 즉 정치적 인식을 전제로 요구하며 현장조직의 정치적 단결을 현실의 과제로 제기한다. 이제 현장활동은 '천만노동자의 단결에 의식적으로 복무하는 현장활동'으로 전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활동은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와 타계급·계층의 이해가 맞부딪치는 지점에 대한 대중적 설득력과 대안적 활동을 요구한다. 노동계급의 선진 부위가 정치적으로 단결하는 것, 노동운동의 근본 목표와 대안적 질서를 강령적 수위로 정식화하는 것, 이러한 이념적·조직적 기초 아래 노동자의 작업현장과 생활에 뿌리내린 정치활동을 조직하는 것. 이 과정 속에서 현장조직운동은 변혁적 노동운동의 일부로 발전한다. 선진노동대중의 현장조직운동은 그 자체로 정치조직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장조직운동 내부에서 표현되어온 동지들간의 상호검열과 조직적 의사결정의 원칙들 그리고 현장활동가의 재생산과 훈련기제로서 현장조직운동이 갖고 있는 정치적 맹아를 놓쳐서는 안된다. 현장조직운동을 진보적 대중정당의 현장분회 정도로 해소될 과도조직 정도로 치부하여 고색찬연한 '양날개론'으로 환원시켜버리는 발상이나 선진노동자조직운동을 그 자체로 독자적 정치세력화까지 가능한 전투적 기간대오로 과대평가하는 입장들은 둘다 잘못된 것이다. 현장조직이 변혁적 대중정치활동을 강화하는 속에서만 노동조합과의 구별이 보다 명확해질 수 있을 것이고 노동계급 선진 부위의 정치적 단결을 앞당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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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30 2005/02/1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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