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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자료] 95년 10월

 

금속산별노조,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1. 금속노조들의 고민과 현실

올 11월 11일이면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전문직 노동자를 포괄하는 50여만 노동자의 연대틀인 민주노총이 출범한다. 민주노총은 첫째, 87년 이후 전노협, 대공장, 사무전문직으로 분화·발전되어온 민주노조운동이 박창수노대위, ILO공대위, 전노대를 거쳐 발전시켜온 민주노조 총단결 대오의 일단락이고 둘째, 민간부문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총괄이자, 이후 공공부문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를 모아 산별노조로 발전해갈 징검다리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지금까지 반어용노총을 기치로 한 소수파 운동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실질적 다수파 운동으로 전화하는 시발점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민주노총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금속노동자는 약 20만명에 육박한다. 조선노협 6개 노조 3만 6천명, 자총련(준) 38개 노조 6만 5천명, 금속일반(추) 128개 노조 4만 8천명에, 그룹과 지역으로 포괄되어 있는 약 5만명의 노동자를 합친다면 20만 금속노동자 대군이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금속산업 조직 노동자 36만의 55%가 민주노조진영에 조직적으로 결집하는 셈이고, 건설될 민주노총의 40%가 금속노동자들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20만 금속노동자가 단일한 조직대오로 민주노총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속산업에 속해 있는 노동조합들이 민주노총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참여방식을 둘러싼 금속 세업종의 논란

95년 5월 1일 업종 단위로 민주노총(준)에 가입한 자총련(준)은 8월 10일 제2차 대표자회의를 열어 11월 4일 자총련을 공식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 자총련(준)은 자총련(준)을 뺀 금속조직단위의 명칭에 금속연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정리하고, 8월 12일 자총련(준)과 조선노협, 금속일반(추)가 민주노총에 대한 결합과는 별개로 금속산별조직(추)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에 금속일반(추)는 8월 17일 제12차 전국대표자회의를 열어 자총련(준)이 함께 하기 어렵다면 함께 할 수 있는 조직이라도 크게 묶어 민주노총에 가입한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8월 18일 조선노협 대표단과 금속일반(추) 대표단이 연석회의를 열어 두 조직이 금속산별노조 건설에 시급히 나설 것임을 결의했다. 이 결의에 기초하여 8월 23-24일 전국 금속산업 단위노조대표자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대표자들은 자총련(준)이 독자 가입을 밝히고 있는 속에서 나머지 조직이라도 하나의 조직으로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해 금속연맹(추)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산하 조직의 90.47%(13개 노조 2개 지부 74,114명)가 금속노동자인 현총련은 8월 23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현총련 단위로 민주노총에 가입하며, 현총련 산하 금속노조는 금속연맹(추) 사업에 결합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9월로 접어들면서 이 세가지 입장들은 보다 구체화된다. 자총련(준)은 9월 20일 제4차 운영위원회, 9월 23일 확대간부수련회를 거쳐 제3차 대표자회의를 열고, 11월 4일 자총련 공식 출범을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문제가 되고 있는 금속연맹 건설에 대해서는 자총련(준), 조선노협, 금속일반(추)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위에서 금속 세 조직이 금속산별조직(추)를 구성해, 이 조직단위로 민주노총에 가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현총련은 9월 21-22일 중앙운영위원회를 열어 민주노총에 현총련 단위로 가맹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10월 14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최종 결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금속연맹 건설사업을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전개하자고 결의하기 위해, 현총련 내 금속노조 총결집체 구성을 위한 현총련 내 금속노조 대표자회의(9월 29일)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금속산업 단위 노조들의 고민

이렇듯 3가지 입장이 각각의 조직적 결정을 매개로 서로 충돌하고 혼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금속산업 내 단위노조들이 받는 하중과 고민은 엄청나다.

첫째, 지역, 업종, 산업, 그룹이 혼재되어 어떻게 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이런 판단이 일정을 못박은 선택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둘째, 일정에 따른 선택을 강요받게 되면서 단위노조 지도부조차 판단의 근거를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민주노총 건설은 당위 이상의 의미를 갖고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며 연대사업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단위노조 위원장 개인의 몫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소한 상집이나 대의원 선에서라도 논의를 모아내야 하겠는데 이거냐 저거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일정의 촉박함에 밀려 충분한 논의가 되고 있지 못하다.

셋째, 다른 무엇보다 95년 임투를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듯이 자본의 현장 재장악 기도가 본격화되면서 단위 현장에서 풀어내야 할 산적한 과제에 파묻혀 연대사업을 집단적으로 고민할 엄두조차 못내고 있는 절박한 현실이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단위노조에서 '대세'에 따라가는 수준에서 판단을 유보하거나 조합원총회로 미루는 등 절차의 문제로 후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주1).

2. 제출된 자총련(준), 조선노협, 금속일반(추), 현총련 안에 대하여

자총련(준)은 "산업별 조직화와 단결의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는 과도기 단계의 업종별 조직을 건설,운영하여 성과와 모범을 창출하면서 단결의 수준을 높혀나가야 ... 따라서 현재의 업종별 조직화가 진행되고 있는 실정을 고려하고, 나아가 3자 간의 연대 수준이 상층 지도부조차 교류, 협력이 원할하지 못한 조건에서는 자동차, 조선, 금속일반 등 업종별 조직을 강화하면서 이에 기초하여 금속산별조직을 건설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동종업종의 동질성과 연대는 민주노총(준)에 가입하지 않은 많은 부품업체 노조들을 가입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조직력도 강화되고 민주노조 진영이 확대된다는 사실", "업종별 단결을 홀시한 금속 전체의 졸속한 판짜기는 조직력의 확대 강화에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대중적 연대가 되지 못하고 간부 중심의 연대에 그칠 우려", "조합원들이 동종 업종의 임금 및 근로조건 실태, 노조의 동향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금속산업이라도 다른 업종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심이 덜한 현실", "만일 병원노련이 대산별을 고집하여 사회 및 개인서비스업으로 조직 대상을 폭넓게 잡았다면 지금처럼 병원노조 전체가 가입한 업종내 대표성을 얻기도 어려웠을 것이며 조직의 확대와 강화도 곤란했을 것"이라는 점 등을 들고 있다.

조선노협과 금속일반(추)는 "같은 업종 노조끼리의 노력만으로 '기업별 체계를 극복하고 강력한 금속산별 단일노조를 건설하는 지름길'을 찾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금속산별노조 건설을 위해 전체 금속노동자들과 공동의 조직대오를 짜고 공동의 실천을 함께 병행해야 하며 그랬을 때만 업종조직인 조선노협도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금속산업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분리되었을 때 조직화의 사각지대 현상이 나타나고 투쟁의 조직화와 대응에서도 그 힘을 반감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조직화사업을 업종별로 분산된 중앙집행력으로 뒷받침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업종별 조직만으로는 노총 산하 금속연맹에 대해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기 어렵다. 업종별로 분립하였을 때 영향력의 한계, 사업의 한계 등으로 큰 압박을 주지는 못한다. 이로 인해 노총 산하 금속연맹의 내부 동요와 이탈을 가속화시키지 못함으로써 민주노조 진영의 조직확대 사업은 대단히 수공업에 가깝게 되고 스스로 떨어져 나오는 조직을 흡수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업종별 조직으로 분립되었을 경우, "산업 내의 업종간 불균등성을 더욱 심화시켜 금속산별노조를 건설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금속노동자들이 금속연맹이라는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함으로써 정권과 자본의 분열책을 분쇄하고 여타 산업에서도 산업별로 크게 뭉치는 촉진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현총련은 "민주노조 진영의 진정한 의미의 총단결체를 만들어야 할 지금의 단계에서 각 조직이 갖고 있는 그 고유한 존재 근거와 역사성, 성과를 깡그리 무시하듯이 진행하는 조직체계 논의는 대단히 위험하다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현총련은 "매 조직의 운동 출발에서 비롯된 고유한 특수성인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각 조직유형에 따른 성과를 올바르게 계승하며 단결력을 높이는 방향에서 민주노총의 조직체계는 ... 지역, 그룹, 산업(업종)을 모두 담는 큰 그릇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금속연맹 건설과 관련해서는 "업종으로 재편해서 금속산별연맹을 건설한다는 것은 현총련 내부의 불필요한 혼란을 가져 오며, 그 결과 전체의 단결된 금속산별 노조 건설 뿐만 아니라 중요한 투쟁력을 가진 조직의 조직력을 분산시킨다는 측면에서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금속산별노조 건설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해서 조직을 형태를 갖추거나 시기를 맞추는 점에만 몰두하는 지금의 산별 논의는 단결을 가로막는 이유가 되고 있다. 먼저 내용을 준비하고 그 조건을 성숙시키는 데 집중하는 방향으로 산별건설 논의가 모아져야 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자총련(준)의 안에 대한 문제제기

자총련(준)의 안에 대해서는 경주노협 정책실의 문제제기가 가장 구체적이다.

자총련(준)에서 말하는 "동질성이 강한 업종별 단결에 기초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경주노협 정책실은 "이 주장은 자기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업종 내에는 또다시 완성, 부품, 판매, 써비스, 정비 등 그 임금, 근로조건, 작업환경, 노무관리 등에 있어 차이가 나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에 의거 완성차노조는 완성차대로, 부품은 부품대로, 판매/써비스는 판매/써비스대로 그 동질성이 강하다. 이 차이는 단기적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완성차는 완성차끼리, 부품은 부품끼리, 판매/써비스는 판매/써비스끼리 그 조직적 단결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더 구분한다면 부품 내에서도 그 동질성이 더욱 강한 어느 완성차의 부품끼리 모이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그 동질성은 강하다"고 일침을 놓고 있다.

"이미 우리는 대부분 노동조합 설립 초기에 어용 한국노총 산하 금속연맹으로 묶여있었던 동질성이 있다. 민주노총 건설시기에 이보다 더 후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비제조업의 그 업무에 따른 업종별 동질성과는 비교될 수 없는 과거에는 '공돌이, 공순이'라는 동질성이, 현재는 쇠를 만지는 '철의 노동자'라는 동질성이 우리 금속노동자들에게는 있다. 따라서 비제조업의 업종조직 건설이 금속노동자들의 조직건설과는 단순 비교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업종별 단결을 홀시한 금속전체의 졸속한 판짜기"라는 자총련(준)의 주장에 대해서도 "지노협 및 전노협에 직접 가입하여 혹은 직접 가입하지는 않았더라도 긴밀한 관계 속에서 활동해왔던 노조들은 대부분 해당 지역의 금속산업에 속하는 민주노조들이었다. 지노협 및 전노협 내에서 업종별로 나뉘어 사업을 진행해온 것이 아니라 금속산업이라는 큰 틀 속에서 사업을 진행시켜왔다. 따라서 금속노동자 단결의 의미는 '금속으로 헤쳐 모이자'는 것이 아니라 7-8여년의 지노협, 전노협의 성과와 지난 1년여간 진행된 업종별 조직화의 성과를 하나로 모으자는 의미이지 결코 졸속한 판짜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전문적 역량의 결집 및 원할한 재정, 소모적인 사업 중복을 없애기 위해서도 금속전체로 묶일 필요성"을 들면서 "민주노총 건설시기에 민주적인 금속산업 노동조합 전체가 하나의 조직으로 뭉치는 일은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며 또 더이상 미뤄서도 안되는 문제이다. 따라서 자총련(준)은 향후 조직발전 방향을 '준비위' 딱지를 뗄 것인가? 말 것인가? 딱지를 뗀다면 그대로 '총연합'으로 할 것인가? '연맹'으로 할 것인가? 지역지부를 어디에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1년여 동안 진행되어온 성과를 모아 금속산업 노동조합 전체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금속산업 노동조합 전체가 뭉친 산업별 상급단체의 구축, 이는 금속산별노조 건설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다"라고 주장한다.

현총련 안에 대한 문제제기

현총련 안에 대해서는 현대중공업 노조 정책실의 문제제기가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 정책실은 "현총련 조직의 이중적 특성 ... 경인 현총련을 포함하는 순수한 그룹별 조직으로서의 특징과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 대규모 공장이 밀집되어 수년의 투쟁을 통해 굳어진 투쟁의 선봉장이라는 특징들이 뒤섞여" 있음을 지적하고, "그룹별 조직이 지역적 차이와 산업(업종)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고서는 단일한 조직 -순수한 그룹별 조직- 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현대정공 등 개별 노동조합이 쌓아온 투쟁의 성과 전부를 현총련의 성과로 돌리는 것은 현총련을 무소불위의 조직으로 신비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현총련은 그룹별 특정 사안에만 대응하는 조직으로 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울산지역 민주노총 조직발전 기획단(주2) 문답 작성팀에서 작성된 초안 역시 "그룹별 조직을 기본조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현총련이 강화된 것은 울산지역 노조건설이 준비위(울노협준비위) 단계에서 극악한 탄압으로 와해되었을 때, 당장의 연대활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였"음을 지적하고, "현총련 일부의 주장은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재벌중심이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그룹노조가 중요하고 계속 존재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①기본적으로 노조조직의 자주성에 위배되는 것이고 ②전국, 지역적 단결의 관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재벌구조를 타파해나가는데는 재벌구조로 인해 피해를 가장 많이 받는 노동자들과 전국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지 그 재벌에 몸담고 있는 노동자들이 이에 투쟁해나가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것"이고 "자본의 구조에 종속되어 기업별노조의 확대형태로 조직발전의 전망을 주장하는 것은 산별노조의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따라서 "현총련은 현대그룹 내의 고유한 문제에 대해 활동하는 낮은 수준의 회의체 형태의 조직으로 정리하고 금속연맹으로 조직되는 것이 민주노총의 힘을 최대한 강화하는 길"이며, "그룹별 조직은 지역별로 발전적으로 재편되어야 할 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 금속산업 재편과 관련하여 제출된 세가지 입장들은 '차이를 객관화하는 속에서 토론을 통해 극복되고 통일'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선택을 강요하고 상호 비방을 앞세운 상층 공작만이 난무하는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된 데는 뿌리깊은 역사적 연원이 있다. 지난 과정에서 대중운동에 무매개적으로 인입된 분파적 활동양식의 폐해에 대해 대중운동의 통일 단결을 앞세운 또다른 분파적 대응이 대립되면서, 이미 '무엇을' 얘기하는지를 들으려 하지 않고 '누가' 얘기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전제되는 왜곡된 질서가 고착화되어 버렸다.

대중운동 내의 정치적 분화는 당연한 것이고 장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계급적 단결에 기초하여 내부의 정치적 분화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분파적 분열을 전제로 '쪽수 싸움'하는 듯한 우려할 만한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금속연맹 건설과정에서 그리고 금속연맹의 지도력 구축 과정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무엇보다 대공장 노조들의 책임성과 주도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가 단사 내부의 조직적 토론을 거쳐 금속연맹 건설 방안에 합의하고 현대정공 역시 이와 일치된 견해로 접근한다면 기아자동차와 만나 전체 금속노동자의 올바른 단결 방안을 서로 설득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일까? 더불어 현장의 건강한 문제의식들을 계급적 단결의식에 근거한 '단사를 뛰어넘는 현장활동가들의 독자적 실천대오'로 조직하고 이를 지역적으로 그리고 전국적으로 꾸준히 확산해간다면 현재의 난맥상을 극복하고 20만 금속노동자의 대중적 요구로 금속산별 단일노조 건설운동을 본격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3. 금속산별노조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첫째, 현재 민주노조 진영에 포괄되어 있는 20만 금속노동자들은 단일한 금속연맹(준)으로 조직되고 이 단위로 민주노총에 결합해야 한다.

자총련(준)은 조선노협과 경주노협 그리고 현대정공의 문제제기를 경청하고 금속연맹(준)으로 결합해야 한다. 무엇보다 영남권 대부분의 자동차업종 노조들이 자동차업종 독자의 연맹화 또는 단일노조화에 반대하고 있고, 수도권 내에서도 이 점에 대한 입장이 통일되어 있지 않은 마당에 자총련(준) 차원의 독자적 업종 강화로 무리하게 조직 발전 논의를 끌고 갈 경우 자동차업종 자체가 분열되고 조직 발전은 커녕 심각한 조직적 퇴행을 초래할 우려가 높다.

그럼에도 자총련(준)이 '기본 5만의 쪽수 밀기'로 지금과 같은 독자 행보를 강행할 경우 이는 업종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며, 금속연맹이나 금속산별 단일노조 건설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현총련 또한 현대중공업 노조 정책실과 지역 조발 기획단 그리고 현대자동차의 문제제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미 9월 15일 현대중공업 노조 상집 차원에서는 재론의 여지를 남겨두기는 했지만 "현대중공업은 금속연맹(추)에 가입하며 금속연맹(준) 단위로 민주노총에 가입한다. 의무금 역시 금속연맹 단위로 일원화한다"고 결정한 바 있고, 9월 21∼22일 현총련 중앙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단위사업장 내부의 입장을 재정리하는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다. 여기에 9월 19일 현대자동차 6대 임원 선거가 민주연합진영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현총련 차원의 조직발전 논의 역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현대자동차 신임 6대 집행부의 입장이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현총련 차원의 결정은 크게 좌우될 것이다.

현총련은 그룹별 협의체 수준으로 위상을 현실화하고 금속연맹 건설사업에 주도적으로 임해야 한다. 업종의 독자적 강화에 반대하고 금속연맹 건설과 이를 통한 금속산별노조 건설이라는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그룹별 연합체를 고집하고 나아가 그룹단일노조까지 발상하는 것은 그룹 이기주의에 다름 아니고, 그룹 산하 단위노조에 3중의 고민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위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건설될 금속연맹(준)은 96년 임투에 총매진함으로써 준비위 딱지를 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매해 임투를 총관장할 전국 사령탑(전국임투본부)은 93년 전노대 결성 이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조건에서 전국적 전선 형성의 모든 하중과 책임은 투쟁 사업장 개별의 몫으로 떨어졌고 전국투쟁사업장회의 수준에서 시기 집중을 논의하는 정도로 전선이 유지되어 왔다.

건설될 금속연맹(준)이 20만 금속노동자의 총단결 총투쟁을 선도할 상급단체로서 조합원 대중 속에 각인되고 승인되기 위한 첫걸음은 96년 임투일 수밖에 없다. 금속연맹(준) 차원의 첫싸움에서 또다시 개별 단위노조에 투쟁의 모든 하중이 떨어진다면 금속산별노조로의 발전 뿐만 아니라 금속연맹 건설 자체도 좌초될 가능성이 크다.

크게 묶었으면 크게 묶은 효과가 조합원 대중 속에 피부로 다가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설될 금속연맹(준)이 지금까지의 시기 집중 수준의 연대투쟁을 요구의 집중과 행동의 집중으로까지 끌어올려야 하고 무엇보다 금속연맹(준) 초기 지도부가 첫 임투에서의 전면전을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금속연맹(준) 내의 투쟁사업장회의 정도로 금속연맹(준) 차원의 단일한 전국적 전선 지도 책임을 분산시키거나 변형된 형태의 또다른 조직보존논리로 전선의 정면 돌파를 회피한다면 준비위 딱지를 떼기는 커녕 지금까지의 조직발전 노력 전부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그만큼 96년 임투는 금속연맹(준)의 향후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계기이고 금속노조 전체가 총동원되어 지금까지의 한계를 돌파하지 않으면 안될 전면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른바 기업별 의식은 기업별 노조 체계 아래 오랫동안 있어왔기 때문에 조합원 대중에게 전제적으로 내재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사를 뛰어넘어 함께 만들어가는 투쟁의 산 경험'이 대중적으로 축적되어오지 못한 지난 과정의 반영이다. 단위사업장의 사정이 모든 것을 앞서온 지난 임투 방식으로는 대중적 연대의 산 경험이 축적될 수 없으며, 단위노조들의 수평적 결합 수준의 기획과 집행으로는 전국적 전선 집중과 투쟁동력의 일사분란한 동원, 배치가 불가능하다.

기업별 의식의 극복과 산업별, 계급적 단결의식의 획득은 무엇보다 건설될 금속연맹(준)의 투쟁 지도력과 위력적인 대중 연대투쟁의 조직화에 전적으로 달려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셋째, 금속연맹은 민주노총의 구심으로서 산별노조 건설운동을 본격화시켜야 한다.

건설될 금속연맹은 지난 시기 민주노조 총단결의 구상 -전노협을 중심으로 대공장을 결합시키고 이 힘에 근거하여 비제조업 업종회의를 견인하며, 민주노조 총단결 대오가 총노동의 투쟁을 조직하고, 민중연대 투쟁전선을 추동하는 구도- 속에서, 미완으로 그쳤던 전노협과 대공장의 조직적 결합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투쟁으로 조직을 건설하고 투쟁으로 조직을 사수해왔던 전노협, 전노협의 '피를 먹고 자라온' 대공장이 지역으로 업종으로 그룹으로 분화되어왔던 지난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명실상부한 금속산업 내 민주노조 총단결 대오로 통합되는 것이 금속연맹이다. 금속연맹은 이런 의미에서 지난 8년간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제조업 민주노조 운동이 쟁취한 그 모든 소중한 성과들을 온전히 계승하여 금속산별 단일노조 건설로 총매진해 갈 교두보이자, 민주노총 내 다른 산업노조들의 산업별 재편을 촉진하고, 민주노총이 산별노조의 단일한 전국 중앙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추동하는 중심조직의 지위를 갖는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기업별 노조체계의 조직형식적 재편과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과 정권이 쳐놓은 온갖 울타리와 장애들을 넘어서서 진정한 의미의 계급적 단결을 쟁취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금속연맹은 단일한 금속산별노조 건설로 나아감에 있어 자본운동의 논리와 요구에 의해 나누어진 규모별, 성별, 기술·숙련별, 업종별, 직위별, 업종별 차별을 철폐할 뿐만 아니라, 자본에 의한 고용여부를 넘어서서 실업노동자, 파트타임노동자, 하청노동자, 임시노동자, 해고노동자, 예비노동자, 외국인 노동자까지를 조합원으로 포괄하는 노동 자체의 논리에 근거한 자주적 조직원리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금속연맹은 내부의 규모별, 업종별 차이를 극복함에 있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전국단위의 중앙집중성을 강화해야 하며, 노민추 조직, 해고노동자 조직, 미조직된 개별 노동자들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해야 한다.

건설될 금속연맹 체계에서 일상적 의사결정과 집행과정 그리고 집행에 대한 대중적 평가와 통제과정의 기본단위는 여전히 단위 금속노조일 수밖에 없겠지만, 지역단위 금속연맹이 보다 단일한 의결과 집행의 주체로 서고 그만큼의 지도력을 지역 내 조합원 대중들로부터 검증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역금속연맹의 조직화

지역은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실질적 성과가 집약되어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단위노조 간의 교류와 연대투쟁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왔고 연대의 조직적 틀이 발전되어왔다. 그러나 지역마다 연대투쟁과 지역조직을 발전시켜왔던 역사적 경험은 다소 차이가 난다. 중소사업장 노조들의 연대투쟁과 지노협 건설에 고무받으면서 뒤늦게 노조민주화로 나아갔던 대공장 중간노조들이 지역 차원의 독자적 세력화를 모색했던 경우(인천, 경기남부)도 있고 또한 대공장 노조가 중심이 되어 지노협을 건설하려던 시도가 좌절되면서 중소사업장 노조들의 지구별 조직화와 대공장 노조들의 그룹별 조직화가 분리되었던 경우(울산)도 있다. 반면에 대공장 노조와 중소사업장 노조가 초기부터 결합하여 지노협을 건설했던 경우(마창)도 있다.

지역금속연맹은 이런 역사적 경험의 차이로부터 각각의 장단점을 발전, 극복하는 과정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금속연맹이 단위노조의 필요성에 근거한 협의적 질을 뛰어넘어 보다 강력한 지도집행력을 갖는 것이다. 의사결정과 집행, 집행에 대한 대중적 평가와 통제 전반에 걸쳐 단위노조의 담장을 뛰어넘는 실질적 경험들이 축적되고 발전될 때만 힘있는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본격화되고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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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경주지역 노동조합협의회에서 발행되는 [정책실통신] 18호(95.7.25)는 이와 관련한 현장의 생각들을 잘 정리하고 있다.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①조직발전 논의는 노동운동 이론에 밝은 몇몇 똑똑한(?) 간부들이나 위원장이 결정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 ②뭐가 뭔지 모르겠다. 골치 아프고 속시끄러운 것이라는 인식 ③단위노조가 입장 가져봐야 뭐하냐? 전국적으로 정리되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태도 ④두가지 주장 중 하나를 선택하는 차원으로 바라보는 태도 ⑤하나로 모아져도 시원찮은데 매일 지지고 볶고 싸우기만 한다는 식의 냉소적 태도 ⑥자신의 견해와 다르다고 매도하는 태도

주2) 울산지역 민주노총 조직발전 기획단은 울산지역 내 민주노총 조직발전 논의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7월 26일 구성되었다. 참가 단체는 현대중공업 정책실, 현대중공업 전진하는 노동자회, 현대정공 기획실, 울산해고자협의회, 울산노동자연합투쟁위원회, 울산남부지역노동자연대를 위한 모임 추진위, 울산노동정책교육협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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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7:24 2005/02/14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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