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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노조 신문 칼럼 원고]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에 가면 치매 노인과 정신지체장애인을 치료하는 효정재활병원이 있다. 병상 수가 275개. 50~60대 아주머니 간병사 20여명이 일한다. 간병사 1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 수는 20여명. 24시간 맞교대에 한달 기본급이 50만원이다.

 

간병사 둘이서 환자 40명 기저귀 갈고나면 허기가 진다. 이 일을 하루종일 대여섯번 해야 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여자, 남자 번갈아가며 목욕을 시킨다. 환자가 죽으면 시신 소독까지 해야 한다. “보통 가정에 치매나 중풍 환자 한 사람만 있어도 나중에 가족 모두가 힘들어하잖아요? 우리는 두 사람이 환자 4~50명을 돌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장난 아니예요.”

 

지난 7월 간병사들은 “억울한 얘기 하고 싶고 인간다운 대접 받고 싶어서” 울산지역 연대노조에 가입했다. 병원은 노조의 교섭 요구를 무시하고 조합원 6명을 직위해제했다. 직위해제 당한 6명은 퇴사한 조합원 2명과 함께 직위해제되지 않은 조합원들이 출근하는 날에 맞춰 이틀에 한번 병원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뙤약볕 밑에서 양산 하나로 버틴다. 퇴사한 67세 할머니 조합원도 연좌농성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이젠 빨간 투쟁조끼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간병사 아주머니들은 지금 외롭게 투쟁하고 있다. 거리가 먼 탓에 연대하러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병원은 직위해제된 조합원들 대상으로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순을 밟고 있다. 경비실 만든다고 병원 정문에 갑작스레 공사판을 벌여놓고 조합원들의 병원 출입을 철저히 막고 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전국의 노동자들이 떨쳐 일어섰던 1987년 대투쟁이 벌어진 지 19년이 지났지만 2006년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그것도 5~60대 여성노동자가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란 이렇게 어렵다.

 

효정재활병원 간병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자. 고 김진균 교수의 말처럼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자리에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볼 때 우리 운동의 미래가 있다.” 내년이면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이다. 20년을 결산하고 새로운 20년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대공장 정규직의 제 배 불리기’가 우리 운동의 미래일 수는 없지 않는가?

 

“환자들 돌보다 보면 사랑도 알게 되고, 배려, 인내, 자비심도 알아지고, 그런 건 체험하지 않고는 배우기 어렵잖아요. 환자들이 힘들게 하고 애 먹이면 밉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다 잊고 환자가 측은하고 그래요. 그런 마음 없으면 어떻게 일해요?”

 

이 마음에서부터 우리 운동의 새로운 20년을 준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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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0 16:16 2006/09/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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