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지난 10월 29일 솥발산 열사묘역 합동추모비 제막식에서 낭송한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의 추모사.

 

 

두 번 다시 어떤 꽃도 피지 않고 어떠한 열매도 다시는 익어갈 것 같지 않았던 가을이 있었다. 밤낮없이 들끓던 시간이 어느 날 문득 질주를 멈춘 날이 있었고 그렇게 멈춘 시간이 이제 조용히 깊어갈 차례였건만 그때 시간은 벼랑 끝으로 추락했다.


단풍도 들지 않았고 세상은 온통 감옥의 벽처럼 잿빛이었고 하늘마저 어둡고 거대한 구멍처럼 보이던 그때.


신조차 용서가 되지 않았고 그보다는 비겁하고 무력했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 혼자 있으면 울었고 모이면 술을 마시고 급하게 취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높은 곳에 서면 뛰어내리고 싶었고 낮은 곳에 앉으면 그대로 묻혀 버리고 싶은 욕망이 시시각각 꿈틀거리던 그때.

 

그때 일곱 살짜리 준하. 널 보았다.


열 살이 되었겠구나.

 

크레인이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곳에 마징가 제트처럼 올라간 아빠랑 생이별을 하고 '아빠 힘들면 내가 일자리 구해 줄 테니 빨리 돌아와요'라고 편지를 쓰던 누나 곁에서 누나의 크레용을 빌려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빠 살랑해요. 언제와요?'라고 아빠 모습을 그려 편지를 썼던 네가 열 살이 되었겠구나.

 

제 애비의 장례식장에 와서 크레인에 내걸린 영정 사진을 보고는 '아빠다' 반색을 하던 네가 열 살이 되었겠구나. 아빠의 상여를 덮었던 하얀 국화꽃을 누나의 머리에 꽂아주며 이쁘다고 손뼉을 치던 네가 열 살이 되었겠구나.


황소 같던 네 아빠였지만 준하 너만 보면 '아이구, 우리 막둥이' 입이 저절로 벙그러져 안고, 업고 물고, 빨고, 꺼칠한 수염을 네 여린 볼에 부비며 어쩔줄 몰라 하던 네가 열 살이 되었겠구나.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일곱 살짜리 아이가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앓았다는 준하야.


아빠가 보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아빠에게 드릴 편지를 그 꼬물거리는 손으로 쓰고 그렸을 준하야.


마지막 날까지 그 편지를 닳도록 읽고 또 읽다가 끝내 그 편지가 크레인 위에 남겨진 네 아빠의 마지막 유품이 되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준하야.


제 목을 감을 밧줄을 제 손으로 매듭을 짓던 그 모진 시간까지 차마 놓을 수 없었을 이름 준하야.


밧줄에 목을 거는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고 미치도록 안고 싶었을 준하야.

 

힐리스를 사주마 약속했던 아빠가 왜 그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한다는 건 이 모순 덩어리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일이기에 네 나이 열 살은 아직 어리다.


아빠가 하시는 일을 적어오라는 잔인한 숙제를 받아온 날이거나, 아빠랑 체험 학습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을 때거나, 아빠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친구들을 볼 때 마다 그렇게 가버린 아빠가 미울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준하야.


네 아빤 세상 어느 아빠들처럼 너랑 그렇게 오래오래 살고 싶었던 거란다.


일요일이면 의기양양하게 네 손을 잡고 동네 사람들 다 볼 때까지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어 목욕탕에도 가고 싶으셨을 거야.


아빠가 사준 자전거를 비틀거리며 타는 네 등 뒤에서 우리 막내가 저렇게 컸구나. 열 살이 된 널 콧날 시큰거리며 지켜보고 싶으셨을 거야.


네가 혼자 일어서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때까지 오래오래 널 지켜주며 세상에서 가장 넓고 따뜻한 둥지가 되고 싶으셨을 거야.


너에게 가장 안전한 놀이터이자 가장 편안한 침대가 되고 싶으셨을 거야.


아침이면 네가 닦아 놓은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 저녁이면 네가 담싹 안겨드는 집으로 땀내 풍기며 돌아가 너랑 함께 레슬링도 하고 나란히 배 깔고 엎드려 책을 읽는 꿈. 그게 아빠가 꿈꾸었던 세상의 모습이었단다.

 

그러나 준하야.


너에게 아빠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듬직한 거인이었을 테지만 사실은 네 아빤 난장이였단다.


수 백 명의 생존권을 난도질하고도 낯빛하나 바꾸지 않던 세상과 외로이 맞서 싸워야 했던 난장이였단다.

 

천막이 삭았던 세월, 2년 동안을 안 해 본 것 없이 다해가며 마침내 이끌어낸 합의안을 손바닥처럼 뒤집는 가진 자들의 농간에 맞서 바이킹보다 높고 아찔했던 크레인에 올라가는 것밖엔 할 게 없었던 난장이였단다.


129일을 혼자 매달려 있었던 크레인 위에서 기어이 목숨을 던져 모두를 살렸던 거대한 난장이였단다.

 

준하야.


너마저 이런 세상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통일을 향한 발걸음들이 아직도 간첩이 되고 빨갱이가 되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평생을 일해도 집 한 칸 지닐 수 없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평생을 일만 해온 애비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짤리고 하루에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밖에는 도무지 할 게 없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비정규직이라는 차별과 서러움의 이름을 수번처럼 달고 살다가 그마저 쫓겨나 1년을 넘게 천막을 치고 그 천막에서 사계절을 맞고 보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세상에 남겨졌던 유일한 거처였던 그 천막마저 뜯겨져 나간 어느 날 아침.


천막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빈자리에 무릎이 꺾인 채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어야 하는 이런 세상을 너한테 마저 물려 줄 순 없지 않겠느냐.


비정규직은 울고 정규직은 잔업과 성과금에 영혼을 파는 오로지 이 두 가지의 선택이 너의 미래가 되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어린 자식들은 애비를 잃고 늙은 부모들은 자식을 잃는 이런 세상은 이제 끝내야 하지 않겠느냐.

 

준하야.


어느 날 육교를 오르다가 굽이 다 닳아빠진 어떤 사내의 낡은 구두를 보다가 그만 가슴이 미어진 날이 있었단다.


크레인에 올라가기 1주일 전. 새 구두를 사놓고 끝내 그 구두를 신을 수 없었던  아빠의 새 구두를 네가 신을 만큼의 세월이 지나면 그때가 되면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미안하다는 말.


널 간절히 지켜주고 싶었던 네 아빠를 끝내 지켜주지 못해 준하야.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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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0 21:32 2006/10/3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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