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현장통신란을 둘러보다, 지난 회 문화이야기 ‘울산과학대에서 피어나는 해방의 문화’라는 글을 읽고 이어지는 생각을 정리해서 올린 박주석 동지의 글을 읽었다. 늘 일방적인 글쓰기에 맥이 풀려 나눔의 기쁨을 갈망하던 터에, 글을 읽고 이어지는 생각으로 시비(?)를 걸어주신 박주석 동지 글이 너무나 반갑고 고마웠다. 그래서, 그 시비에 화답도 하고 싶었고, 또 그 글을 읽으면서 이어지는 생각들이 있어서 2회로 나누어서 그 이야기를 할까 한다. 이번 회에서는 ‘투쟁’과 ‘밥’에 대해서, 다음 회엔 여성 노동자들 투쟁 속 여러 가지 풍경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앞으로는 문화이야기 연재 글을 읽고 이어지는 생각이나 반론의 의지가 있으신 분들이 메일로 글을 보내오면, 그 다음 회 연재글로 게재하고자 한다. 서로 나누면서 채워가는 문화이야기!!
1. ‘투쟁’과 ‘밥’에 관한 몇가지 생각
박주석 동지가 제기하신 ‘천막 안을 보자. 우리 서로가 안을 들여다 보자’는 시비(?)에 나는 전혀 시비를 걸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훌륭한 진보적 문화가 있다 해도, 여전히 낡고 병든 문화도 그만큼 존재하고 있으므로 늘 안을 냉정히 살피는 것은 전적으로 필요한 행위라고 ‘완전동감’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고 나누는 시기나 방식은 내용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랬다. 농성을 시작하고 지하실에서나 천막 안에서나 울산과학대 여성조합원들은 밥상을 챙기셨다. 박주석 동지 못지않게 나도 그 장면이 늘 불편했다. 조합원들에게 직접 말하기에는 그 분들의 마음을 호도하는 것으로 비춰질까 조심스러워 노동조합 집행부에 제기하기도 했다. 당번을 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그 모습은 한동안 지속되었고, 아직도 남아있긴 하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측면이 있는 듯하다.
일단은, 자신들의 투쟁에 연대하러 달려오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어린 애정에다가, 보살핌이 몸에 베인이 그들의 삶의 역사와 일상이 그대로 행해진 것일 거다. ‘고마운 사람들한테 따뜻한 밥 한끼 씩, 든든히 먹여야 한다’는 그들의 정서와 마음 결.
한편으로는, 투쟁이라는 걸 처음 하다 보니 투쟁에 필요한 체계가 무엇인지, 그에 따른 역할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 지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생전 처음 농성이라는 걸 하는 그 분들의 몫이 아니다. 그 투쟁을 조직적으로 책임지는 노동조합이 체계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었음에도, 조합원들이 보여주는 자발적인 행위에 편의적으로 편승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는 이 문제에서 박주석 동지와 약간 다른 생각을 해본다. ‘투쟁’과 ‘밥’은 주, 부차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투쟁주체는 ‘투쟁’하고 연대온 단위는 ‘밥’을 하는 문제도 아닌 듯하다. ‘농성’이라는 것은 밥 먹는 것 자체가 투쟁이 되기도 한다. 특히, 장기 농성 투쟁에서는 밥 먹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2001년 효성투쟁에서 공장이 폐쇄되고 식당마저 폐쇄되었을 때 끼니마다 도시락으로는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노동조합은 멈춰버린 식당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두고 여러 가지 정보와 기술을 종합하여 가동시켰다. 노동조합 총무부서가 책임을 지고, 대규모 식사 준비에 경험이 있는 간부나 조합원들을 모아서 ‘식당 운영팀’을 구성하고, 설거지며 주변정리 등은 부서별 당번제로 운영하면서 공장안 파업에 활력을 얻었다. 그 경험은 복산 성당 농성에서도 노동조합이 체계적으로 ‘식사 담당팀’을 구성하여 안정적으로 이어갔다. 거기에는 ‘투쟁’과 ‘밥’이 ‘주체’와 ‘객체’로 분리되지 않았다. ‘투쟁 주체’들이 ‘밥’을 ‘투쟁’으로 해결해갔다. 그 과정에서 ‘밥’을 하는 행위는 곧 ‘투쟁’이 되었다. 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저지 투쟁에서도 식당 조합원들이 파업 내내, 조직적으로 밥을 했었다. 그것은 그 투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투쟁’에서 밥’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고 ‘밥’을 하는 행위는 ‘잡무’가 아니라, 오히려, 투쟁체계 안에서 정확히 배치되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2. 왜, 둔감한가? 왜,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문제를 부차적인 문제로 놓고 체계적인 방침을 마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래 전부터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남성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서 그들의 부인들이 가족대책위를 구성해서는 밥 챙기는 일을 주로 하고, 노동조합 선거 때만 되면 각 선대본 조직별로 후보자 부인들이 중심이 되어 밥을 챙기곤 하는 장면들... 아마도 그 부인들은 남편의 부재로 인한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고스란히 자기 몫으로 안으면서도 투쟁하는 남편들에게 연대하려고 ‘밥’ 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것을 당연시 하는 문화가 노동자들의 투쟁 안에서 자라났다. 남성은 바깥에서 일을 하고 여성은 집안에서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한다는 고정적인 성역할 나누기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투쟁의 자리에서도 이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성역할 이데올로기는 여성 노동권을 억압하는 치명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집안에서 일하는 것이 업이기에 사회적 노동시장에 나와도 부차적인 노동인력이 되고 만다. 부차적인 노동인력들이기에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의 불평등도 당연하다. 사회적으로 필요할 때 대거 노동시장에 인입했다가 또 필요에 따라 집안으로 돌려보내는 여성 노동 정책은 자본주의 시작과 함께 이어지고 있다. 여성들이 담당하는 사회적 노동의 많은 부분이 ‘여성 본연의 성역할과 연관된 보살핌 노동’이라 하여 집에서 하던 일의 연장쯤으로 취급받으며 사회적 노동으로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간병사, 청소, 식당, 백화점, 보육....
가정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일터에서 실컷 부림을 받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들어와서도 곧바로 쉴 수가 없다. ‘집안일’이라 불리워 지는 일을 거의 전담하고 있다. 자본가만 착취하는 것이 아니다. 안과 밖, 어디서도 여성의 노동은 착취 받고 있다. 그리고도 제대로 항변하지도 못한 채 억압을 떠안고 살 수밖에 없도록 ‘성역할 이데올로기’가 뒷받침하고 있다. 아주 뿌리 깊은 문화로, 계급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성별을 가리지도 않고...
생각해보자. 이런 문화에서 자신이 얼마만큼 벗어나 있는지. 우리 서로가 안을 들여다 보자. 이른바 진보적인 삶을 살고자 하고 착취와 억압을 뚫기 위해 투쟁한다는 세력들, 조직들 안 어떤 문화가 살고 있는지. 과학대 농성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밥을 해주는 것을 당연시 했던 우리들의 불감은, 이런 성역할 이데올로기가 우리 안에 무성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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