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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65호 97.5.16

 

광주, 골리앗, 그리고……

  온 누리에 꽃보다 더 풍성한 푸르름이 가득하다. 이 오월에 열일곱 해째 맞는 광주 민중항쟁을 다시 돌아 본다.

  92년쯤인가 버스 안 라디오에서 문학평론을 한다는 사람이 80년대와 90년대를 광주라는 땅 이름과 압구정동이라는 땅 이름으로 나누어 얘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80년대와 90년대를 그렇게 나누어 부르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광주 민중항쟁 없이 80년대를 얘기할 수 없다는 건 맞지만, 90년대를 압구정동이라는 땅 이름이 대표한다는 건 틀린 말이다. 소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지자 발도 빠르고 말도 빠른 사람들이 "그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라며 거침없이 떠들고 다녔어도, 그 뒤로 무슨 포스트니 담론이니 하는 따위가 어지럽게 춤을 췄어도, '신세대'가 나타났다고 온 나라가 떠들석하고, 투쟁의 시대는 갔다는 선언에 뒤이어 80년대가 온통 싸구려 상품으로 내다 팔리는 난장이 벌어졌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압구정동이라는 신화는 지존파가 깨버렸다. 이념과 투쟁이라는 자리에 개성과 소비가 들어섰다는 선동은 지존파가 저지른 뒤틀린 살인극으로 끝장났다. 지존파는 압구정동을 향해 '사람 살을 씹어먹는' 분노로 총을 겨눴다. 지존파에게 압구정동은 개성과 소비라는 새로운 그 무엇이 아니라, 자신들을 가난으로 내모는 가진 자들만의 천국이었다. 압구정동은 따라서 '참을 수 없이 역겨운' 쓰레기통이며, 자기들 손으로 싹쓸이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압구정동 어쩌구 하는 얘기는 어쨌든 그 뒤로 많이 수그러 들었다.

  90년대를 연 것은 골리앗이다. 광주의 마지막 전사(戰士)들이 도청에서 죽음을 기다렸다면, 그리하여 이들의 죽음이 80년대를 열었다면, 몰리고 몰려 올라 간 골리앗에서 '외로운 늑대들'이 육·해·공에 걸친 총자본의 공격에 맞서 전노협을 지켜내면서 90년대가 열린 것이다. 광주와 압구정동이 아니라 광주와 골리앗이다. 90년대가 더 이상 투쟁의 시대가 아니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90년 골리앗투쟁과 전노협 총파업투쟁, 91년 5월 투쟁, 92년 현대자동차 상여금투쟁, 93년 현총련 공동임투, 94년 전지협 총파업투쟁, 95년 현대자동차 양봉수 열사 투쟁, 96∼97년 민주노총 총파업투쟁! 자, 이래도 투쟁의 시대는 갔다고 떠들 수 있는가? 이념을 바꿀만큼 우리 시대의 근본 문제들이 뭐 하나 해결된 게 있는가? 90년대 이 투쟁들의 한가운데서 비껴난 채,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가운데 온전한 빚갚음을 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80년대와 90년대는 이렇게 이어져 있다. 우리의 21세기 또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열어제낄 것이다. 그 투쟁은 산별노조와 노동자정당이라는 쌍둥이를 낳을 것이다. 우리가 맞이할 21세기의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다. 60년 4.19, 70년 전태일, 80년 광주, 90년 골리앗, 2000년 ???……. 2010년이나 2020년쯤에 이런 투쟁들이 없어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그 날이 바로 저승길에조차 들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광주 원혼들의 원과 한을 푸는 날이며, 그 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광주와 80년대가 끝났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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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12 2005/02/1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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