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기

[현장에서 미래를] 97년 6월

 

선진노동자의 전진, 현장조직을 강화하자!

들어가며

  우리 노동운동은 지난 10년 동안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그 속내를 보면, 거기에는 또 다른 갈래의 '운동사'가 숨어 있다. 민주노조운동 속에서 자기 삶의 가장 중요한 10년을 '돌파'해 온 선진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뛰어넘는 실천'의 역사가 있고, 노동운동단체나 비합법 정치조직에서 또는 (반)공개 정치조직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온몸을 부딪혀 온 '정치적 노동운동'의 역사가 있다.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과제가 우리 노동운동의 '대중적 화두'로 된 지금, 산별노조 건설운동과 노동자 정치운동을 본격화하기 위해 우리는 세 갈래로 발전해 온 한국 노동운동의 총력(總力)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현장조직운동의 과제를 여기서 함께 생각해 보는 까닭은 '제대로 모으기 위해 제대로 나눠야' 하듯, 선진노동대중의 현장조직활동이 현재 어디까지 와 있고 또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살핌으로써 우리 노동운동의 총력을 모을 집중점을 명확히 하는 데 있을 터이다.

 

현장조직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대공장들에는 어디랄 것 없이 노동조합과는 그 체계와 운영이 사뭇 다른 여러 현장조직들이 있다. 많게는 2∼300명에서 적게는 몇십명까지 현장활동가들이 전공장에 걸쳐 조직을 꾸리고 자기 조직의 이름으로 신문을 내거나 노동조합 임원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이미 오래된 '현실'이다. 이러한 현장조직들은 80년대말 90년대초에 대부분의 대공장에 등장했던 노민추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 이 노민추를 두고 여러 가지 평가와 판단들이 있었지만, 노민추를 집행부 장악을 위한 선거용 조직으로 과소 평가하거나 '선진노동자들의 전투적 기간대오'라는 식으로 과대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런 평가들과는 상관 없이 현장조직(운동)은 '자기 길'을 걸어 왔고 현실 운동 속에서 자기 위상을 분명하게 정리해 왔다. 하나씩 살펴 보자.

  결론부터 얘기하면 현장조직은 노동조합과 구별되는 현장활동가조직이고 노동자 정치조직과 구별되는 선진노동자 대중조직이다.

  현장조직과 노동조합은 조직 구성원리와 운영원리가 다르다. 노동조합은 사상, 나이, 성별의 차이와 상관 없이 그 노동조합의 규약이 정한 범위에 있는 노동자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현장조직은 그 사업장의 민주노조운동이 쟁취해 온 강령과 활동 목표에 동의하고 그 활동에서 대중으로부터 검증될 뿐만 아니라 활동가 내부의 검열과정을 거친 현장활동가들로 구성된다. 또한 노동조합은 의사결정체계(대의원)와 집행체계(상집)가 분리되고 집행부의 상근으로 현장과 밀접하게 늘 결합되지 못하는 한계를 갖지만(주1), 현장조직은 해고자와 상집 파견자를 빼고 의장을 비롯한 조직원 전체가 생산노동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고 의사결정과정과 집행과정도 긴밀하게 통일되어 있다.

  현장조직은 노동자 정치조직과도 다르다. 노동자 정치조직은 국가권력 획득을 일차 목표로 하여 직접 대중정치활동을 벌임으로써 대리정치를 지양하고자 하는 정치사상적 결사체이지만, 현장조직은 경험으로부터 획득된 민주노조운동의 이념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노동자 정치활동이 새롭게 개척됨에 따라 정치적으로 분화·발전될 과도 조직이다.

  한편 현장조직은 소위원 조직이나 반대표 체계와도 차이가 있다. 소위원 조직은 생산 기본 단위에서 직접 선출되어 올라 온 대표성을 바탕으로 산별노조 시대의 평조합원 운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장조직은 현장활동가조직이므로 현장조직을 곧바로 현장대중권력체의 맹아로 보는 것은 무리이다.

현장조직운동의 과거

  대공장 현장조직운동은 어용노조 퇴진투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어용노조 퇴진에 뜻을 같이 하는 현장활동가들이 이 투쟁을 추진할 현장조직을 건설했다. 당시 이 안에는 노조 민주화를 선거를 통한 집행부 장악으로 제한하는 경향과 투쟁성과 민주성을 강화하는 현장조직력 강화로 이해하는 경향이 섞여 있었지만 이 시기 현장조직은 대부분 선거조직의 성격이 강했다. 87∼88년 대중투쟁의 선봉에 섰던 해고자들은 이 시기에 해고라는 조건을 취약한 현장 민주세력의 상근 역량으로 활용함으로써 많은 역할을 했다.

  89∼90년 어용노조 퇴진투쟁의 성과로 등장한 대부분의 노조 집행부가 개량화되었다. "집행부 장악만으로 민주노조가 쟁취될 수 없다. 민주노조 하려면 '공권력'과도 부딪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분명해졌다. 이러한 자각을 바탕에 두고 어디나 할 것 없이 노민추가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 '노민추운동의 대중화'라고 할만큼 현장활동이 활발해졌다. '민주파'들은 대의원에 대거 진출하거나 소위원회를 광범위하게 꾸려 나갔다. 노조민주화투쟁은 집행부 장악에만 한정된 민주파들의 선거투쟁에 그치지 않고 민주노조운동의 대중 저변을 확대하면서 활성화되었다. 이 노민추 시절만큼 현장 활동가들이 공부 많이 했던 적이 없다고 할만큼 현장 소모임 활동도 왕성했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로 민주집행부가 태어났다.

  91∼92년 새로 등장한 민주집행부는 집권하자마자 3중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첫째, 민주집행부에 대한 조합원 대중들의 기대감이 아래로부터 폭발하듯 분출되고 둘째, 위로는 가볍게 넘어가고 싶은 첫 싸움조차 총자본의 전면 탄압이 들어오고 셋째, 안으로는 집권 경험이 전무한 민주세력이 실무력 부족으로 고통받는 상태가 그것이었다. 이러한 3중고(三重苦)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활동가 대부분이 민주집행부로 들어갔다. 민주집행부 아래서 느슨해진 현장조직의 위상을 정비할 틈도 없이 첫 싸움은 공권력과의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첫 싸움에서 엄청난 탄압을 받은 민주집행부는 직대체제 등으로 민주노조를 사수하고자 함과 동시에 지루한 노조정상화투쟁에 들어갔다. 이 시기 현장조직은 한편에서는 부서동지회 등으로 '산개'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수의 활동가들이 보다 강화된 정치적 입장을 중심으로 집중되었다. 자본은 이 틈을 비집고 신경영전략을 전격 도입하면서 현장을 반 단위까지 장악해 들어왔다.

  95년을 지나면서 신경영전략으로 야금야금 빼앗긴 현장권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투쟁의 한가운데서 현장조직이 재건되었다. 이 시기에 조직 재건은 이른바 만리장성론과 깃발론 사이의 '논쟁'이 아니라 신경영전략 자체에 의해 야기된 '대중투쟁'을 통해 이루어졌다.

 

현장조직운동의 현재

  95년 11월 민주노총이 건설됨으로써 민주노조운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96∼97년의 총파업투쟁으로 민주노총은 우리나라 노동조합운동의 '대표 주자'가 되었고, 노동운동은 우리 사회 민주변혁의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현장조직운동은 자본의 신경영전략에 맞서 현장조직력을 회복·강화하고,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과제를 현장활동을 통해 풀어가고자 애쓰고 있다. 새로운 단계에서 현장조직운동이 씨름하며 통과하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보자.

  첫째, 자본의 유연화 공세가 기업 단위를 넘어 법으로까지 강제되면서 현장은 그만큼 더 어려워졌고 대응도 훨씬 힘들어졌다. 정리해고, 변형근로,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비공인파업 금지, 노조 대표자의 교섭권과 체결권 일원화……. 노동조합 공식체계의 의사결정과정 없이 현장조직 독자로 작업장 일상투쟁을 벌였다간 당장 쇠고랑 찰 판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늘 내몰리게 된 현장 조합원들이 자꾸 칼자루 쥔 놈한테 쏠리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많은 현장활동가들이 지쳐 있다. 대중이 변했고 세상이 변했으므로 현장활동 방식도 '혁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혼란스럽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마치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의 '복음'인양 선포되고 심지어 생산성 향상에 협조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도 들려온다. 조합원이기 위해서 먼저 종업원이어야 하는 우리 노동조합 조직 현실에서, 내 차가 많이 팔리고 내 배가 많이 팔려야 한다는 기업 경쟁력 강화 논리를 그 뿌리에서부터 극복하기 어렵다손 치더라도 이른바 '합리적 경쟁력 강화'라는 것을 무슨 '공동선'인 듯 착각하여 조합원들을 무한경쟁(경제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현장조직운동은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는 자신의 '대안'을 놓고 자본의 동반자가 되는 길을 가느냐 아니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고 하면 대중들이 우 하고 따라오던 '좋은 시절'은 이미 아니므로, 현장 대중들에게 다가가 '설득'할 활동가들의 자기 내용이 '분명'해야 하고, 바로 여기에 두 갈래 길이 놓여져 있다.

  둘째, 노동조합운동이 산업별 연맹단계에 접어들면서 현장조직이 기업 단위 노동조합 집행부와의 관계만으로 닥치는 투쟁들을 벌여나가는 것은 한계를 갖게 되었다. 현장조직이 단위 기업을 뛰어넘어 지역 노조 상급단체나 연맹과 공식·비공식의 관계를 가져가려고 할 때 가장 크게 걸리는 문제가 그 관계의 '규정성'을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공식조직이 비공식조직을 인정하지 않아버리면 그만이다. 현장조직운동이 노동조합운동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정당한 비판권'을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지역 단위와 전국 단위에서 현장조직들의 연대 틀을 꾸리는 것이 급선무다. 이미 울산지역 현장조직대표자회의가 꾸준히 회의체계와 공동 실천들을 정비해 왔고, 전국 대공장 현장조직들끼리 모여 전국 현장조직대표자회의를 정례화한 상태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민주노총의 맞짝으로까지 전국 현장조직대표자회의가 자신의 활동내용과 형식을 발전시켜낼 수 있다면 이는 우리 노동운동에서 매우 커다란 성과로 남을 것이다.

  셋째, 현장조직 내부에서 노선 분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 분화는 조직 분열로까지 드러나고 있다. 현장조직운동 내부에서 노선이 분화되고 심지어 조직이 따로 꾸려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고 오히려 '발전'이다. 현재 본격화되고 있는 현장조직운동 내부의 분화는 크게 노동조합운동노선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부터 비롯되고 있다. 이 분화는 오히려 더 촉진될 필요가 있다. 차이를 인정할 줄 알아야만 크게 뭉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 분화는 현장조직운동이 노동자 정치운동으로 발전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현장조직의 과도성은 이 과정 속에서만 지양될 수 있다.

 

현장조직운동의 과제

  첫째, '고통의 원인'을 찔러들어가지 않는 현장활동은 이미 '경쟁력'이 없다. 사안마다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의 결과'에 대한 이런저런 처방전을 내놓는 것보다, '고통의 원인'을 드러내고 현장대중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현장활동의 '혁신'이라는 말은 이런 뜻으로 쓰여져야 마땅하다.

  둘째, 기업 단위 현장조직이라면 정규직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공장 담 안쪽에 있는 모든 선진노동자들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청 현장활동가들을 기업 단위 현장조직의 특별한 위원회로 묶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역 단위 현장조직의 연대체라면 개별 선진노동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얼만큼이라도 진전이 되어야 기업 울타리를 뛰어넘는 활동가조직을 꾸릴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거꾸로 현장활동가들이 공장의 담벼락을 허무는만큼만 산별노조 건설이 진전되는 것이다.

  셋째, 노동조합 교육체계와 내용을 뛰어넘는 현장활동가 훈련 코스가 마련되어야 한다. 요즘 들어 다시 활성화되고 있는 현장 소모임들을 기본으로 하되, 지역이나 전국 단위의 특별한 '학교' 또한 기획해 볼만 하다.

  넷째, 현장조직 내부의 노선 분화를 제대로 촉진하고 노동자 정치활동을 개척·강화해야 한다. 노동자 정치활동이란 현장조직이 현장대중과 동떨어져서, 또는 현장대중을 대상화시켜 전개하는 어떤 특별한 사업이 아니다. 현장조직운동이 개척하고 강화해야 할 정치활동은 지난 총파업 때처럼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대중투쟁이 벌어질 때 전선의 앞머리에서 현장대중과 더불어 그 투쟁의 정치적 발전에 복무하는 것이다.

  다섯째, 현장조직의 지역·전국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현재는 대표자회의 수준이지만 현장 선진활동가들이 민주노총 수준에서 제기되는 어떤 쟁점에 대해 '인정'될만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틀이 바로 이것이다.

-------------------------------------------------

미주

1) 물론 우리 민주노조운동은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을 성과로 갖고 있다. 파업 시기에 쟁의대책위원회와 같은 투쟁 지도부를 꾸려 일상 시기에 대의원 체계와 집행 체계로 나뉘어 있던 의사결정과정과 집행과정을 통일시키고, 투쟁의 마무리를 언제나 조합원 총회에 물어 집행과정과 집행에 대한 조합원 대중의 평가와 통제과정을 통일시켜 왔던 경험이 그것이다. 그러나 연맹 단계에 접어든 우리 민주노조운동이 단위사업장을 뛰어넘는 범위에서 이런 직접 민주주의 전통을 실현시키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2/14 10:16 2005/02/14 10:16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plus/trackback/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