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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힘] 특보 / 00년 3월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바로 잡자!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하부 조직인가?

  민주노총은 2000년 1월 18일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 후보는 단위노조, 연맹, 지역본부의 승인을 전제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의 동의를 거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추천한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1월 26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정치위원회가 보낸 "민주노동당원이 아니더라도 민주노총 후보가 될 수 있느냐?"는 내용의 질의에 대해 2월 1일자 답변에서 "총선에 출마할 의사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 민주노동당 후보로 추천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민주노총 후보'의 자격을 가질 수 없다"고 하여 민주노총 각급 의결 단위에서 승인된 후보는 반드시 민주노동당의 '예비' 후보여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이러한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1999년 8월 23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부르조아 보수정당이 아닌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대의에 입각하여 활동하는 제정치조직에 민주노총 조직원이 참여하여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민주노총은 제정치조직과의 관계에서 대중조직 고유의 상대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제정치조직과 연대, 지지, 지원을 강화하되 구체적인 내용은 조직의 결정에 의한다"는 방침에 정면으로 위배될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관계를 마치 상하부 관계인 것처럼 왜곡시킴으로써 거센 항의와 다양한 문제제기를 불러 일으켰다.

민주노동당 울산 북구 후보 선출 과정―당내 민주주의와 현장 민주주의의 충돌

  2월 11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대의원대회에서 현장조직 민주노동자투쟁위원회(민투위)를 중심으로 한 대의원들은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잘못되었다. 당원이 2∼300명 밖에 안되는 민주노동당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4만 조합원을 대변할 수 없다. 노동자 정치조직은 민주노동당만 있는 게 아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하부조직이 아니다. 따라서 4.13 총선 후보는 민주노동당 후보가 아니라 노동자 후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노동조합 후보의 성격을 둘러싸고 5시간 이상 격론을 벌였다. 팽팽한 논란 끝에 민주노총 지침을 따른다는 안과 안따른다는 안으로 표결에 부쳐져 166:80으로 민주노총 방침대로 한다는 안이 통과되었다. 결국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4.13 총선 후보는 민주노동당 '예비' 후보로 결정되었다.

  이 결정에 반발한 민투위 강성신 후보는 "절대 다수가 민주노동당 당원이 아닌 조합원의 의견을 무시한 결정"이라며 유세를 마치고 총선 후보를 사퇴했다. 실천하는 노동자회(실노회) 박상철 후보와 현대자동차노동자신문(현노신) 이상범 후보가 표결에 들어갔고 1차 120:114로 박상철 후보가 이겼으나 과반수에서 1표가 모자라 2차 투표까지 가는 경합 끝에 110:121로 이상범 후보가 역전 당선되었다.

  애당초 민주노동당 내부 경선으로 치르면 그만일 문제가 무리하게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대의원대회의 예비 경선을 거치게 된 데는 울산 민주노동당 내의 '역학관계'가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대의원대회의 결정을 '기정사실화'하여 민주노동당 내부 절차를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계산'이 예비 경선 과정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계산'은 결과적으로 '오산'이 되고 말았다.

  3월 9일 민주노동당 울산광역시지부 총회에서 이상범 현대자동차 예비후보와 세종공업 최용규 후보 사이에 북구 지회 경선이 벌어졌다. 이상범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 절차만 거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경선까지 가게 된 것이다. 투표 결과 전체 당원 90.8%가 투표에 참여하는 치열한 접전 끝에 466:513으로 최용규 후보가 당선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당원 전체의 투표로 총선 후보를 선출한 최초의 정당이라는 '찬사'를 받을만큼 가장 모범적인 '당내 민주주의'를 실천했다. 그러나 이 시끌벅쩍했던 민주주의는 대다수 현장 조합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그들만의 민주주의'로 그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유지' 문제까지 공공연하게 거론될 정도로 심각한 경선 '후유증'을 남겼다.

울산 동구와 대전 유성의 사례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을 비롯한 울산 동구지역 7개 단위사업장 노동조합과 민주노동당 울산 동구지회는 2000년 3월 7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갑용 민주노총 전위원장을 노동자 후보로 추대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7개 단사 노조 위원장들은 이번 4.13 총선의 의미를 '노동자와 자본가의 정면 대결'로 규정하고 노동자 후보를 내세워 자본의 불법 부당노동행위를 분쇄하며 침체된 현장을 다시 살리는 투쟁에 적극 나서겠다고 결의를 모았다.

  대전 유성 과학기술노동조합(과기노조)은 2월 25일 대의원대회에서 84%의 찬성으로 이성우 위원장을 4.13 총선 후보로 확정짓고 3월 9일 민주노동당 유성지구당 창당과 선대본 발족식을 갖는 자리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옹립했다. 과기노조와 이성우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전면 비판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김태진 과기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만약 민주노동당에 추대가 안됐으면 과기노조 차원에서 무소속으로라도 나올려고 했다"며 과기노조 차원의 강력한 총선 참여 의지를 밝혔다.

  울산 동구와 대전 유성의 사례는 민주노동당의 외피를 쓰고 그 절차를 따르기는 하지만 "현장 살리기"와 "대안적 과학기술 정책 수립"이라는 단위 현장의 절박한 요구를 중심으로 총선 공간을 적극 '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울산 북구의 예와 사뭇 다르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바로 잡자!

  민주노동당만이 민주노총을 대변해야 한다는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의 특수성을 무시한 잘못된 방침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비정상적 관계'는 하루빨리 청산되어야 한다. 영창악기 노동조합에서는 매월 800원씩 전조합원에게 민주노동당 기금을 내도록 정치활동 규정을 만들려다가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된 적이 있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서도 정치위원회 활동비가 민주노동당의 정치기금으로 쓰이는 것에 반대하여 목 자체가 삭제된 적이 있다. 민주노총이 마치 민주노동당의 하부 조직인 것처럼 규정되고 "민주노동당원이 아니면 민주노총 후보가 될 수 없다"는 '민주'노총 내부의 '파시즘'이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3말4초 투쟁이 구체화되고 있다. 4.13 총선은 3말4초 총파업과 결합하여 그 투쟁에 복무하는 부차적 투쟁 공간이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은 이 투쟁과 그 결과를 놓고 반드시 '재정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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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24 2005/02/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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