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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미래를] 00년 3월

 

한국 노동운동이 직면한 몇가지 문제들


1. 선포되는 총파업과 현실의 외로운 투쟁

  노동자도 인간임을 선언하며 한국 노동운동의 불가역적 전환점이 되었던 87년 7∼8월 노동자대투쟁, 전노협 건설을 추동해냈던 88년 11월 노동법개정투쟁과 88∼89년 현대중공업 128일 파업투쟁, 투쟁으로 전노협을 사수해냈고 한국사회 노동자대중투쟁이 어떻게 발전하는가에 대한 합법칙성을 보여줬던 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과 전노협 5월 총파업투쟁, 민주주의투쟁에 총파업으로 결합했던 91년 5월 투쟁, 노동운동 위기론 논쟁을 불러왔던 91∼92년 현대자동차 성과분배투쟁, 정권의 '개혁'이 공장문 앞에서 어떻게 멈춰서는지를 폭로해냈던 93년 현총련 공동임투, 87년의 파장이 전지협과 신규 대공장 민주노조들의 파업 '데뷔'로까지 확산됐던 94년 투쟁, 95년 국가전복세력으로 내몰렸던 한국통신 투쟁과 자본의 신경영전략에 맞서 죽음으로 항거했던 현대자동차, 대우조선, 철도청 노동자의 분신투쟁, 96년 공공 5사 공동투쟁, 노동자 정치선언이자 한국 노동운동의 새로운 시기를 열어제꼈던 96∼97년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 98년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표·대리전으로 치러졌던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반대 36일 파업투쟁과 만도기계, 조폐공사 파업투쟁, 99년 서울지하철 8일 파업투쟁과 공장점거 파업투쟁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줬던 한라중공업 52일 파업투쟁, 한국중공업 빅딜·민영화 반대 파업투쟁…

  87년 이후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는 곧 투쟁의 역사였다. 투쟁은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해마다 외연을 넓혀나갔고 요구와 내용을 심화시켜나갔다. 97년 이후 총파업은 일반적 지침이 되었다. 그러나 '총파업'은 철회되기 일쑤였고 단위사업장의 긴박한 투쟁들과 결합되지 못했다. 98년 2월 정리해고 노사정 합의와 합의안 부결, 총파업 결의와 철회, 6월·7월 총파업 철회, 99년 1, 2차 총력투쟁의 분리에서 드러나듯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은 대정부·대자본 교섭을 위한 압력용 일정으로 '선포'될 뿐이고 시기별·연맹별로 분리되면서 철회되거나 하루 이틀 '단타'로 진행될 뿐이었다. 당연히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조폐공사, 서울지하철, 한라중공업, 한국중공업의 파업투쟁은 '외로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이후 외로운 싸움을 극복하고 공장점거 파업투쟁에 기반한 전국 총파업투쟁을 실현하려면 민주노총이 개별 연맹들에 휘둘리지 않는 전국 투쟁의 실질적 지도부로 위상을 회복·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지도부가 총파업을 대정부·대자본 교섭을 위한 압력 수단이 아니라 총파업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사회적·정치적 긴장의 실질적 '돌파'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2.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발전 전략과 산별노조 건설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은 지역과 업종, 그룹으로 나뉘어 발전해왔다. 88년 전국노동법개정투쟁본부와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를 거쳐 90년 전노협을 중심으로 업종회의, 91년 연대를 위한 대기업 노조회의로 나뉘어 발전했던 민주노조운동은 91년 박창수 노대위와 ILO 공대위, 93년 전노대로 이어지면서 '민주노조총단결 대오'로 모아졌고 95년 민주노총에 이르러 일단락되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조총단결'에서 '천만노동자총단결'로 전진하는 교두보이자 한국노총에 반대하는 소수파운동에서 한국 노동조합운동 전체를 책임질 다수파운동으로 전환하는 조직발전 진지로서 탄생했다.

  민주노총 출범 5년째, 비정규직 노동자 수가 정규직 노동자 수를 넘어섰고 여전히 민주노총의 조직률은 전체 노동자의 4%에 머물러 있다. 산별노조 건설운동은 연맹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민주노총은 각 연맹의 산별노조 건설과정에서 지도력과 관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투쟁과 조직은 연맹이, 노사정 정책협의는 민주노총이, 정치는 민주노동당이' 맡아 한다는 이상한 역할 분담론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산별노조 건설은 당위로 절대화될 뿐만 아니라 일정으로, 대의원대회 등의 결의사항으로 강제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능 열쇠로 선전·주입되고 있다. 심지어 2000년 1월 22일 금속산업연맹 3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무효표 일부를 '2000년 10월 산별노조 건설 안'에 대한 찬성으로 계산하여 과반수를 겨우 넘긴 것이 중앙위원회 재검표 과정에서 밝혀질 정도로 금속 중앙의 '무리한 산별 추진'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산별노조는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연맹별 우선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현장의 힘으로 조직의 관료화를 뿌리부터 차단·분쇄하며, 투쟁을 통해 제조업노조, 사무전문직노조, 공공노조 등 3개의 커다란 산별노조로 재편하고 궁극적으로는 전국·전산업 단일노조를 지향하는 과정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민주노총은 이를 위해 인력과 재정을 집중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획기적으로 조직하고 미조직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모아내며 휴면노조들을 깨우고 어용노조의 굴레를 깨뜨리는 활동을 시급히 벌여내야 한다.

3. 뚜렷하게 3분립되어가는 현장조직운동

  87년 이후 예외없이 노조민주화투쟁으로 출발한 현장조직운동은 대중적 노민추운동을 거쳐 95년 자본의 신경영전략에 맞선 현장투쟁 속에서 재건되어 발전해왔다. 97년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가 만들어졌고, 금속 대공장 중심에서 점차 다른 산업과 공공부문으로까지 현장조직운동이 확대·일반화되고 있다. 한편 현장조직운동은 정치적 분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민주노동자전국회의라는 독자적인 전국적 틀을 갖추고 있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 산별노조 건설과 민주노동당 운동에 주도적인 이른바 '정책·대안적(?) 노동운동', 그리고 전국현장조직대표자회의로 대표되는 '전투적·계급적 노동운동'으로 3분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 3분립 구도는 지난 99년 2월 금속산업연맹 2기 임원선거에서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지금 시기 현장조직운동은 시대착오적인 대동단결론이 아니라 이 3분립을 보다 가속화시키고 보다 분명하게 분화를 촉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선 부위에서 현장조직운동은 이미 현장정치(조직)운동으로 육박해가고 있다.

  현장조직운동은 일반화됨과 동시에 점차 자신의 정치적 경향을 뚜렷이 해갈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장조직운동은 기업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조직구성과 운영원리를 새롭게 구체화해야 한다. 현장 중심성을 분명히 하면서 직영과 하청의 구분을 없애고 현장 안과 밖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단사를 뛰어넘어 현장조직들 사이의 연합적 질을 높이는 것도 점차 중요해질 것이다. 분화의 촉진과 더불어 분화가 완료된 현장조직들의 통합과 지역을 뛰어넘는 단일조직화가 적극 추진되어야 한다.

4.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하부 조직인가?

  80년대 이후 정치적 노동운동은 노동단체운동과 정치(파)조직운동으로 발전해왔다. 노동단체운동은 노운협, 전국노련, 한노협 등으로 분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파조직운동은 80년대 중반 NL과 CA에서 80년대 후반 이후 주사파와 사노맹, PD(인민노련, 삼민, 노동계급, 제파피디그룹 등)그룹으로, 그리고 이들 정파운동이 안팎에서 해체되고난 9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신생 그룹들로 이어져왔다. 민중당 해체 이후 한노당에서 진정추로, 그리고 사추위와 민중회의로 갈라져온 (반)공개정치조직운동은 92년 백기완 선대본에서 함께 했다가 사추위와 민중회의는 민정연으로 통합했고 민정연은 다시 진정추와의 통합 문제로 노진추와 노정연으로 분리됐다. 민정연 안에 있던 구 사추위그룹은 진정추와 통합하여 진정연을 만들었다. 진정연은 97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승리21로 부활했다. 국민승리21은 민주노총을 등에 업고 민주노동당으로 전환했다. 다른 합법정당으로 청년진보당이 있고 민주노동당과 '결'이 다른 정치조직으로 노동자의 힘(준비모임)이 있다.

  민주노총은 99년 8월 23일 대의원대회에서 '진보정당 창당에 따른 민주노총의 방침'을 결정했다. 일반원칙을 보면 ▲부르조아 보수정당이 아닌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대의에 입각하여 활동하는 제정치조직에 민주노총 조직원이 참여하여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민주노총은 제정치조직과의 관계에서 대중조직 고유의 상대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제정치조직과 연대, 지지, 지원을 강화하되 구체적인 내용은 조직의 결정에 의한다고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2000년 1월 대의원대회에서 이 방침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후보 방침을 정함으로써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관계를 상하부 관계로 왜곡시켰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현대자동차 정치위원회의 2000년 1월 26일자 질의에 대한 2월 1일자 답변에서 "민주노총 후보는 단위노조, 연맹, 지역본부의 승인을 전제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민주노동당 후보로 추천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총선에 출마할 의사를 가지고 있는 개인이 민주노동당 후보로 추천되는 것을 거부한다면 민주노총 후보 자격을 가질 수 없다"고 하여 민주노총 각급 의결 단위에서 승인된 후보는 곧바로 민주노동당의 예비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못을 박음으로써 이 왜곡을 보다 더 분명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 '방침'과 '답변'은 2월 11일 현대자동차 대의원대회에서 격론을 불러 일으켰다. 민투위를 중심으로 한 대의원들은 ▲현대자동차 전체를 통틀어 민주노동당원은 2∼300명 밖에 안되고 대의원들의 경우도 민주노동당원은 얼마 되지 않는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4만 조합원을 대변할 수 없다. ▲노동자 정치조직은 민주노동당만 있는 게 아니다. 노동자의 힘도 있고 청년진보당도 있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만이 민주노총을 대변해야 한다는 방침은 노동조합이라는 대중조직의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고 노동조합이 앞장 서서 조합원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억압하는 패권적이고 비민주적인 잘못된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하부조직이 아니다. 민주노총의 승인을 얻은 후보가 반드시 민주노동당원이어야 한다면 민주노동당 내에서 후보를 추대하면 될 일이지 왜 복잡하게 당원 아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가? 민주노동당원이 아닌 사람이 민주노동당의 예비후보를 선출해야 하는 이런 모순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민주노총이 하나의 정치조직만 승인하고 지지하고 지원하겠다는 것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이는 대단히 큰 잘못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민주노총이 가장 비민주적인 독재의 전형을 보여주는 꼴이 될 것이며 조합원 대중의 다양한 정치의식을 강제로 묶어두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5시간 이상을 이 문제로 격론을 벌였다. 결국 민주노총 지침을 따른다는 안과 안따른다는 안으로 표결에 부쳐 166:80으로 민주노총 지침대로 한다고 결정은 되었지만 민주노총 정치방침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대자동차에만 있는 게 아니다. 영창악기에서는 전조합원이 매달 민주노동당 기금 800원씩 내는 것을 정치활동 규정으로 제정하려다가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되었고 현대자동차에서도 정치특위에서 노동조합비를 민주노동당의 정치 기금으로 사용하려는 것에 반대하여 대의원대회에서 아예 목 자체가 삭제되는 일까지 있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의 하부 조직이 결코 아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비정상적이고 왜곡된 관계는 시급히 바로 잡혀야 한다. 96∼97년의 '총파업 정치'가 보여준 새로운 노동자 정치의 싹을 또 다시 "일어나라 코리아" 류의 왜곡된 정치로 축소시켜서는 안된다. 4.13 총선은 그런 점에서 3말4초 대중투쟁의 일환으로 부차적이며 제한적으로 활용되는 투쟁공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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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0:24 2005/02/14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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