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서 너 달 동안 시달린 일이 있다.  그 일의 마감은 내일이다.

일에 정확히는 일정에 질질 끌려다니면서(내 탓이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있을까 싶다가 그 순간을 모면하고 나면 아니나 다를까 더 나빠져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마감을 코 앞에 두고 계속 딴짓이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하기 싫고 신물나는 일은 처음이다. 최고다.

 

쪼이고, 몰리고, 쪼그라들고, 덜덜 떨면서 엄청나게 초라해진 나는,

나 같은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온 몸으로 느끼게 되면서

(비유가 아니다. 정말 몸으로 느껴진다. 피부가 오그라들고,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근육들이 바들바들 떨린다)

호시탐탐 아주 작은 일에 별별 의미들을 다 부여하고 있는 중이다.

내 기분, 내 일상, 내 사람들 등등에 이렇게 예민 혹은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도 오랫만이다.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지만 (마감이 주어진 순간들마다 이랬다)

어김없이 그 다짐은 단 한 번도 복기되거나 지켜지지 않았다.

아이쿠. 이렇게 나는 내가 얼마나 별 거 아닌 사람인지 소스라칠 정도로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동시에 그런 별 거 아닌 나와 내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 자꾸 눈이 가고,

그 소소함을 누리고 싶다는 욕구의 대단함에 놀라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하고 있는 일, 만나고 있는 사람들, 이리 저리 엮여있는 관계들, 누리고 있는 공간들

이 정도는 내가 누릴만한 대접, 인정, 자리라고 여겼었던 게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내가 뭐라고...
 

지금 같은 상황은 절대 사절이지만 (절대 안돼!) 나의 초라함을 확인하는 건 필요한 듯하다.

내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보이는 주변의 일상의 대단함들.

주변과 일상을 나에게 잘 새기면서 그렇게 꾹꾹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봐라, 지난 몇 달 간 내가 쓴 글의 양을.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지금 내가 누리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성실하게 집중하고, 기록한 게 얼마만인가.

 

나라는 사람의 함량을 과신하지 말자. 늘 의심하고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살자.

자꾸 덜어놓고, 내려놓으면서 순간 순간들을 누리는 것에 기꺼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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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7 06:54 2014/11/1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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