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거리는 일상  2014/11/13 22:34

보일러

이틀 전, '망했다' 생각하고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요즘의 예민하고 불안한 상태의 나를 걱정해주는 그는

돌아 누운 나를 조용히 안아주고, 내 손목을 가볍게 쥐고 쓰다듬어줬다.

그 느낌이 참 고맙고 위로가 되어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어제, '다 망해버려' 심정으로 그냥 잠자리에 들었다.

역시나 나에 대한 걱정이 많은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잠 못 들고 뒤척이는 나를 조심스럽게 토닥, 쓰다듬어줬다.

서슬 퍼렇게 날이 선 내 신경은 아주 작은 그의 뒤척임 혹은 손길, 숨길에도 예민해져

나를 건들지 말라는 표시로 등을 돌리고 누운 채 한 쪽 손을 들었다.

아마 나는 속으로 욕을 조금 했을 수도 있다.

 

오늘, 올 겨울 들어, 우리를 위해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다.

어제 그가 보일러를 켜자고 했고, 나는 '그래'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가스비는..' 한숨을 쉬었다.

난방비 아낄 요량으로 11월까지는 버텨보려 했던 보일러.

종일 고생하고, 내일도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 그와 나를 위해

오늘만큼은 따뜻함을 누리고 싶다.

 

우린 앞으로도 가난할 거고,

나는 혹은 우리는 앞으로도 불안하고 예민할 거고,

가끔 혹은 종종 날카롭게 날을 세우게 될 거다.

곁에 있어서 안심이지만, 곁에 있어서 날을 채 감추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 애틋함과 애잔함에 마음이 좀 뭉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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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3 22:34 2014/11/1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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