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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 국토부가 만들어놓은 한심한 '철도 쪼개기'

 
[기고] 철도 개혁,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유럽 철도차량 제작사의 양대 산맥인 알스톰과 지멘스가 합병을 선언했다. 세계 철도차량 시장 점유율 4위의 알스톰과 6위의 지멘스는 합병을 통해 단숨에 세계 2위 업체로 뛰어오르게 됐다. BBC는 9월 26일, “유럽철도 챔피언 탄생”이라는 헤드라인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알스톰과 지멘스는 유럽철도차량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는 알스톰은 중동, 아프리카, 인도, 중남미에 진출해 있고 지멘스는 중국, 미국, 러시아에 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두 기업의 결정은 유럽철도차량시장의 확고한 지배를 바탕으로 세계철도차량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새로 탄생한 거인은 <지멘스알스톰>그룹으로 결정됐으며 본사는 프랑스 파리에 두기로 했다. 이미 충분히 큰 기업들이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린 이유는 세계 철도차량시장의 초강자로 떠오른 중국 중차(CRRC)와의 경쟁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국영 철도차량제작사인 중국중차는 2015년 신조차량 매출 기준 점유율 33.4%로 세계 1위의 거대 기업이다. 중국중차 역시 세계 1, 2위의 점유율을 가진 중국남차와 중국북차의 합병으로 탄생한 역사를 갖고 있다. 강철 네트워크로 중국의 도약을 꾀하겠다는 철도굴기의 한축이 중국중차이다. 풍부한 중국내 철도 인프라를 배경으로 선진국과 대등한 차량제작기술을 확보하게 될 때 중국철도의 잠재력은 현실적 힘이 된다. 
 
이처럼 철도차량제작사들이 통합으로 몸집을 불리는 이유는 철도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비탄력성은 풍부한 자금력과 연구개발 투자의 적극성이 일관되게 유지될 때 성장을 보장한다. 이것은 비단 차량제작 분야만이 아니라 철도시설 건설과 운영에도 적용된다. 세계철도시장은 완성차 납품이 아니라 신호체계, 운영기술, 유지보수, 건설노하우가 패키지로 움직인다. 알스톰의 지분 20%는 프랑스 정부가 가지고 있다. 알스톰의 해외시장 진출에는 프랑스 정부 및 프랑스 철도공사(SNCF)가 함께 움직인다. TGV를 한국형으로 제작해 KTX를 수출할 때에도 차량제작사 알스톰과 운영자인 프랑스 철도공사 양측에서 기술진을 한국으로 파견했다.  
 
                          <2015년도 주요 철도차량 제작사 세계 철도차량시장 점유 순위>
 
이 같은 세계 철도산업의 흐름에 한국은 어떤 실정인가? 지난 십 수 년 간 고집스러울 정도로 역행했다. 철도정책의 컨트롤 타워 자체가 부재 했다. 정책결정을 책임진 국토부는 철도 민영화 계획을 현실화 시키는 일에만 집요하게 매달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은 국토부의 앵무새가 되어 정부논리를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이러다 보니 한국철도의 현실을 왜곡하는 억지논리가 양산됐다. 그 대표적인 것이 117년 철도독점체제 논리다. 수서고속철도 출범을 알리는 언론들의 보도도 117년 넘는 독점체제가 드디어 무너졌다는 것으로 채워졌다.  
 
독점은 악이라는 사회적 인식에 기댄 국토부의 선전이 먹혀들었다. 한국철도는 100년 넘는 독점의 안일함에 빠져 세금만 축낸 적자기업이라는 오명을 고스란히 덮어써야 했다. 식민지와 전쟁 가난이 이어진 수 십 년 간 서민들의 발이었던 철도가 독점기업 100년의 횡포로 둔갑했다.  
 
국토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철도 경쟁체제는 많은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질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도 자국 내 경쟁이 아니라 철도산업에서 경쟁력이 있는 국가들의 시장 확대를 위한 정책이었다. 분단된 한국의 협소한 선로 망에서 시설과 운영을 분리하자 두 기관의 갈등구조만 커졌다. 최근 발생한 경강선 시험운전 단계에서도 시설공단과 철도공사는 정확한 시험운행 계획과 과정이 공유되지 못했다. 결국 시험운행에 나선 기관사가 사망했는데도 시설공단이나 철도공사 어디서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차량제작사와 시설과 운영 기관의 공조가 필수적인 해외시장 진출은 허상에 불과하다. 
 
심각한 것은 시설과 운영의 분리 외에도 고속철도 운영기관을 분리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설계하고 박근혜 정권이 완성한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SRT)는 정부가 주장하는 경쟁체제의 효과가 무색하게 한국 철도를 좀먹는 체제로 기능할 것이다. SRT를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집행된 온갖 불공정 행위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수익이 보장된 노선, 코레일로부터 고속철도 차량 임대, 코레일의 SRT 차량정비, 코레일 전산망을 활용하는 통합발권 시스템 등 한쪽의 일방적 희생으로 경쟁사를 살찌우는 일이 진행됐다. 국토부가 주장한 경쟁체제의 진면목이 이런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여기에 국토부 관료들의 낙하산 문제, 최근 불거진 채용 비리까지 국토부의 위장기업 SRT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10년 넘게 눈부신 발전을 했어도 모자랄 판에 역주행만을 일삼아온 철도 정책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코레일과 SRT의 통합문제를 다루겠다는 TF 운영의 문제도 슬그머니 없던 일이 됐다. 국토부는 한 술 더 떠 경쟁체제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자며 통합논의를 연기하자는 주장도 펼친다. 속보이는 시간 끌기 전술이다. 이미 고장이나 궤도를 벗어난 위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 멀리 달아날 뿐이다. 
 
세계 철도 시장은 지각변동을 하고 있다. 그 핵심 내용은 합병이다. 덩치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그 속에서 효율성을 키우려 하고 있다. 현재의 북핵 위기가 해소되는 국면이 도래하고 남북 대화의 새로운 길이 열릴 때 대륙으로 향하는 철도는 평화와 소통의 중요한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중국, 러시아 철도와의 교류 협력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건실한 공공철도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고작 600킬로미터 남짓한 고속철도도 통합운영하지 못하는  공기업 코레일이 대륙철도운영국가들 사이에서 당당할 수 없다. 해외철도시장 개척에 나서도 상대국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 지난 세월 국토부가 만들어놓은 한심한 단상이다.   
 
눈앞의 이권과 자리에만 매달려 분리하고 쪼개온 철도산업으로는 미래가 없다. 시간끌기로 일관하며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철도 개혁에 맞서는 동안 개혁의 골든타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코레일과 SRT 통합의 시동을 걸어야 할 때이다. 이것이 세계 철도의 흐름을 따르는 길이다. 철도가 시민의 발이 되고 대륙으로 뻗는 철의 실크로드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철도 개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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