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클수록 힘세고 생식능력 뛰어나
다른 수컷과 평화적 분쟁 해결 신호
» 보르네오섬의 긴코원숭이 수컷. 긴 코는 강한 힘과 생식능력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쓰다 잇키 제공
동남아의 보르네오섬에는 오랑우탄과 함께 특이하게 생긴 긴코원숭이가 산다. 수컷의 코는 길게 늘어져 입 아래까지 늘어지기도 한다. 긴코원숭이는 어떻게 이렇게 긴 코를 지니게 됐을까.
수컷의 과장된 형질을 진화론에서는 성 선택의 결과로 설명하곤 한다. 이를테면 공작 수컷의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크고 화려한 깃털은 그만큼 크고 건강한 개체라는 신호여서 암컷이 짝짓기 상대로 선호한 결과이다. 깃털이 클수록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그러나 실제로 야생 상태에서 성 선택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 등 국제연구진은 긴코원숭이를 대상으로 수컷의 긴 코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조사했다.
» 긴코원숭이는 덩치가 큰 수컷 한 마리와 여러 암컷으로 이뤄진 집단을 이뤄 생활한다. 암컷은 코가 상대적으로 작다. 마쓰다 잇키 제공
긴코원숭이는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과 함께 일부다처제 집단(하렘)을 이룬다. 어린 수컷은 총각 집단을 이뤄 호시탐탐 하렘을 차지하려 노린다. 밤이 되면 잠자리에 여러 무리가 몰려든다. 암컷은 종종 하렘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달아난다. 이래저래 수컷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성 선택 압력이 매우 강한 조건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원숭이 수컷 사이에선 큰 싸움이 드물다. 그 이유도 큰 코와 관련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야생 긴코원숭이 18마리의 코 길이, 체중, 고환 부피 등을 측정했다. 그랬더니 코가 클수록 체중이 무겁고 고환도 컸다. 다시 말해 수컷의 큰 코는 힘(체중)이 세고 생식능력(고환)도 뛰어나다는 광고판 구실을 한다. 이런 시각적 신호는 암컷에게만 효과적인 것이 아니다.
» 수컷 긴코원숭이의 큰 코는 불필요한 수컷 사이의 갈등을 막아주는 구실도 한다. 마쓰다 잇키 제공
총각 집단 긴코원숭이의 코 크기는 하렘을 차지한 수컷보다 현저히 작았다. 따라서 암컷들을 차지하고 싶은 수컷은 그 무리의 수컷과 부상을 무릅쓴 무리한 싸움을 벌이기 전에 코의 크기를 비교하는 편이 낫다. 연구자들은 “긴코원숭이가 수컷 사이에 직접적인 싸움이 없이 분쟁을 해결하는 데는 큰 코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큰 코가 평화를 부른다.
연구자들은 또 코의 길이가 울음소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했다. 긴코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해안과 강변의 열대우림을 멀리 떠나지 않는다. 울창한 숲에서는 시각 신호보다 청각 신호가 잘 전달된다. 조사 결과 코가 길수록 공명이 잘 일어나 암컷을 유인하는 긴 콧소리를 내는 데 유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 어린 긴코원숭이. 긴코원숭이는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물가를 떠나지 않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이다. 마쓰다 잇키 제공
결국 큰 코는 이 원숭이가 암컷의 인기를 끌고 경쟁 상대인 다른 수컷에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알리는 시청각 신호라는 사실이 이번 연구로 드러났다. 긴코원숭이는 보르네오 고유종으로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몸집이 크며 체중은 30㎏에 이른다. 코의 길이는 최고 10㎝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멸종위기’ 등급에 등재된 종이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oda et al. Nasalization by Nasalis larvatus: Larger noses audiovisually advertise conspecifics in proboscis monkeys, Sci. Adv. 2018;4: eaaq0250, DOI: 10.1126/sciadv.aaq025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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