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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골에서 살기로 했다②] 때로는 <리틀 포레스트>같은 우리의 일상과 현실
18.04.04 22:48l최종 업데이트 18.04.04 22:4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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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당연히 도시에서 살 거라 생각하던 시골소년이 서울의 삶을 두고 다시 시골로 갔습니다. 소유의 땅도 집도 없고 가족이나 친척도 없는 강원도 홍천에서 짝꿍과 함께 자연농과 시골살이를 배우고 있습니다. 현실과 부딪치고 방황하는 젊은 부부의 작고 솔직한 시골 사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
올겨울은 참 추웠다. 안 그래도 추운 동네로 이사 왔는데 첫 겨울부터 혹독한 추위 맛을 제대로 봤다. 집밖에 거의 안 나갔다. 도시가스보다 비싼 기름보일러라 집이 작은 원룸인 것이 차라리 고마웠다. 마음씨 좋은 친구가 보내준 온수매트까지 활용해 겨우 버텼다. 드디어 유난히도 길고 추웠던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꽁꽁 얼어있던 몸은 물론 마음까지 풀려 말랑말랑해지고 있다. 서울 살 때는 달력과 일기예보에 쓰인 숫자로 알았던 봄이었다. 봄이라고 해서 내 일상이 달라졌던 것은 옷장에서 다른 옷을 꺼내 입었다는 것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봄이라는 이유를 붙여 행사를 열거나 특별히 어딘가 놀러라도 가기 전에는 봄을 실감하기가 어려웠다.
여기서는 온몸으로 봄을 느끼고 있다. '봄 내음' 물씬 풍긴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정말로 봄의 냄새를 맡으러 나간다. 들에서 솟아나고 있는 봄나물과 풀, 나무에서 나는 향이 어느새 포근해진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지럽힌다. 밖에만 나가면 도로에 가득한 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을 맡기 싫어 숨을 아껴 쉬던 때와는 참 다르다.
솔직한 말로 여기라고 매일 숨을 한껏 들이쉬는 건 아니기는 하다. 여기라고 미세먼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더 깊은 오지로 들어가면 모를까, 그래도 마을이 있는 농촌에는 당연히 차와 농기계도 다닌다. 그래도 다른 건 도시보다 낫지만 퇴비와 축사 냄새는 즐기기 쉽지 않다.
어느 분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지 않는 농촌생활의 현실 중 하나로 영화로는 맡을 수 없는 '냄새'를 꼽기도 했을 정도다. 봄이면 밭마다 가득 쌓아놓는 퇴비냄새를 알기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특히 축사가 많은 동네나 그 가까운 곳에는 집이나 밭을 얻을 때는 냄새가 어느 정도인지 잘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잘못하면 여름에 창문을 열 수도 없고 안 열 수도 없는 웃지 못할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 동네에도 곳곳에 축사가 좀 있는데, 시골에서 돼지 키우는 축사 같은 걸 하게 된다면 조심할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조심한다 하더라도 완전히 막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냄새다보니 이웃과 다투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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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나물 밥상 눈개승마와 겹꽃삼잎국화 |
ⓒ 이파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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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봄 내음을 코로만 맡으면 아쉽다. 봄나물 정도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줘야 시골 사는 보람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입이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작은 냉이였다. 짝꿍이 대뜸 냉이파스타를 하겠다며 냉이를 뜯으러 가자고 부추겼다. 추운 지역이라 그런지 냉이가 아직도 작은 편이지만 먹기엔 충분하다. 어려서 할머니가 냉이로 된장국이나 나물은 해주셨어도 냉이파스타는 처음 먹어봤다. 냉이를 날것으로도 해보고 데쳐서도 해보고 짝꿍의 요리 연구 덕에 덩달아 행복하다.
그 다음으로는 눈개승마와 겹꽃삼잎국화! 겹꽃삼잎국화는 그냥 두면 키가 크게 자란 뒤 노란 꽃을 피워서 키다리노랑꽃이나 노랑꽃이라고도 불리는데 작년 봄에도 파드득나물, 쇠별꽃, 부추 등과 함께 나물비빔밥으로 봄 내내 먹었다.
개성있는 향에 나름 씹는 맛도 있는 녀석이다. 눈개승마는 데쳐서 두릅 비슷하게 초고추장 만들어 찍어먹었고, 겹꽃삼잎국화는 샐러드로 먹었는데, 입맛을 돋우는 맛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신선한 봄나물 요리들을 먹으면서 이렇게 살면 정말 김치냉장고가 필요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김치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김장김치, 말린 나물 같은 건 겨울에나 먹지, 이렇게 밖에만 나가면 맛있는 것들이 널려있을 때 뭐하러 그런 걸 먹나 싶다.
게다가 이 풀들은 고추 같은 채소보다 노력도 덜 들어간다. 밭에 심었다면 다른 풀들을 좀 관리해주긴 해야겠지만, 일단 한번 심어놓으면 자기 혼자 옆으로 퍼지면서 세력 확장하고 매년 심지 않아도 계속 살아남아 먹을 걸 제공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냥 때 되면 가서 뜯어 먹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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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기 작년에 심어놓은 딸기도 여러해살이풀이라 이렇게 알아서 새순이 나오고 있다. |
ⓒ 김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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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어제는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 영화에 나오는 '머위된장'을 만들어 먹는 데에 이르렀다. 영화를 보고나서부터 벼르고 별렀던 짝꿍이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 이건 우리도 이번에 처음 먹어본 것인데, 나는 머위를 심은 밭이나 머위가 많은 곳이 없어서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짝꿍은 뛰어난 관찰력으로 이미 작년에 작은 개울 옆에 머위가 많은 곳을 봐두었단다. 마침 개구리님 논밭을 돌아보다 논둑에 머위꽃이 하나 피어있는 걸 발견하고, 점찍어둔 장소로 가보았다. 거기서 머위꽃을 보이는 대로 다 땄는데 그래봐야 열 개도 되지 않았다. 꽃이 그리 많지가 않다.
한국에서는 머위꽃을 먹는 사람도 없고 판매하는 곳도 없다. 머윗대나 잎만 좀 먹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에 나온 머위된장은 머위꽃으로 만든다. 보는 것도 처음인 머위꽃은 살짝 달큰한 느낌의 기분 좋은 향이 났다.
하지만 그냥 먹으면 많이 쓰다. 데쳐서 볶은 뒤에야 쌉싸름한 뒷맛을 남기는 밥도둑이 된다. 영화의 레시피를 정확히 알 수 없고 된장 등이 일본의 재료와 다를 텐데도, 머위된장 비벼 밥 세 그릇 비우는 장면을 고개 끄덕거리며 볼 수 있게 됐다. 이럴 때는 참말로 영화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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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위꽃 머위된장 만들어보겠다고 머위꽃을 뜯었다. |
ⓒ 이파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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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하시겠지만 현실은 늘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영화에는 아주 잠깐씩 등장하는 허리가 부서질 것같이 일하는 시간 혹은 생계 걱정하는 시간이 좀 더 길다. 우리는 적게 벌고 적게 쓰자는 마음가짐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일하는 시간이 적은 편이다.
주 5일 어디 출근하는 것도 아니면서 농사짓는 것도 돈이 벌릴 것 같이 보이지 않으니 오며가며 자주 인사드리던 동네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돈 많은 사람들인 줄 아셨단다. 어딜 봐도 없는 티를 팍팍 내고 다니는(?) 지라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는 삶이 몸에 밴 분들이니 거기에 대면 놀고먹는 거나 다름없는 우리 모습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싶다.
그렇게 남들보다 일을 덜하다보니 통장잔고는 조금씩 줄어 지난달엔 서울의 저렴한 월셋집보다도 두 배는 싼 이곳 월세를 걱정할 정도가 됐다. 일자리를 수소문하니 그래도 사람 구하는 곳들이 몇 있긴 했는데, 대체로 주 5일에 야근이나 주말근무도 종종 있는, 도시의 월급쟁이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여러 가지로 난감해서 도저히 내키질 않았다. 그 중엔 깊은 고민 끝에 거절한 곳도 있다.
그러다 결국 인연이 닿은 곳은 학원!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나 상황에 대해 고민도 많고, 사교육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기에 그동안 과외나 학원 일로 돈을 벌어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하기로 한 것은 더 이상 일을 가릴 처지도 아니거니와 자급하는 농사도 지으면서 일주일에 이삼일 일해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다른 일이 거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봄비가 내리는데 아직 밭도 다 못 만들고 작물도 많이 못 심어 마음만 바쁘다. 비가 오기 전에 작물을 심으면 좋기 때문에 비 온다는 예보가 나오면 그 전에 다들 바쁘게 뭔가를 심는다. 특히 봄에 가장 일찍 심는 것 중 하나가 감자인데 우린 아직 작년에 수확했다가 보관이 제대로 안되어 싹이 잔뜩 난 감자 몇 개밖에 못 심었다. 우리가 너무 천하태평으로 보이는지 지켜보는 둘레의 농부님들이 당사자인 우리보다 더 걱정을 하실 때도 많아 민망하다. 하하하.
봄이라 농사도 시작하고 새로운 일도 시작하느라 이래저래 정신없는 와중에 비 온다는 핑계로 또 하루 쉬어가는 오늘, 해가 갈수록 가뭄과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요즈음의 봄비가 더없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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