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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50만원 농민기본소득제, 농촌 붕괴 막고 도시 문제 해결할 대안”

[‘농민수당’ 톺아보기]“월 50만원 농민기본소득제, 농촌 붕괴 막고 도시 문제 해결할 대안”

고재섭

ㆍ해남군 첫 도입 주목…‘농민수당’ 톺아보기

전남 해남군의 ‘농민수당’ 지급 결정으로 농촌은 물론 도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농민기본소득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올해 부산지역 첫 벼 수확이 이뤄진 강서구 들녘에서 한 농부가 활짝 웃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전남 해남군의 ‘농민수당’ 지급 결정으로 농촌은 물론 도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농민기본소득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2일 올해 부산지역 첫 벼 수확이 이뤄진 강서구 들녘에서 한 농부가 활짝 웃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전남 해남에서 가뭄 속 단비와 같은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해남군이 내년부터 전국 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가장 먼저 ‘농민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가구당 연 60만원씩 해남군 전체 농가 1만4579가구가 대상이다. ‘농민수당’ 지급은 농가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농업이 농산물의 생산뿐만 아니라 국토환경과 자연경관 보호, 토양유실과 홍수 방지, 생태계 보전 및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 유지 등 다양한 역할과 다원적 기능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자체 차원에서의 ‘공식 인증’이다.

전남 강진군도 보조금 형태로 지급
건강한 농촌이 있어야 도시도 건강
중앙정부 차원서도 관심 가질 필요

자치단체들 사이에는 최근 이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강진군이 농민수당 비슷한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 중이고, 순천과 화순, 장흥, 담양, 영광, 무안, 함평 등에서도 지자체와 농민단체가 농민수당을 두고 협의가 진행 중이다. 해남군의 농민수당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농업계의 숙원을 풀어준 것으로 다른 지자체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해남군의 농민수당과 같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 또는 농가를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 ‘농민기본소득제’다. 이 농민기본소득제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나라가 직면한 도시 문제를 포함해 복합적인 난제 해결의 길이 보인다. 지자체 차원이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급히 나서 전국적으로 시행해야 할 핵심 정책인 것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소득불균형, 최근 다섯달 연속 100만명을 넘어선 실업자 수,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청년실업률, 무섭게 상승하는 대도시의 집값, 저출산, 미세먼지, 올해의 폭염 같은 이상기후…. 얼핏 보면 이 같은 문제들이 모두 별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맥락으로 연계돼 있다. 농촌의 붕괴가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농촌은 고령화 속도가 빨라져 70세 이상의 노인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일자리 찾기가 힘든 데다 교육·의료 등 기본적 서비스가 부재하고 농산물 가격 또한 형편없어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난다. 반면 도시는 과밀 인구로 집값 상승, 열악한 환경 등 숱한 문제들로 몸살을 앓는다. 그렇다고 도시의 삶이 안정적인가. 임금소득과 노동소득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창업해 성공하기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실업률은 해마다 치솟고, ‘조물주보다 높은 건물주’가 서민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더불어 미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젊은이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이런 도시 문제의 상당 부분은 농촌 붕괴에 따른 도시로의 인구 밀집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닐까? 최근 미세먼지, 폭염 문제도 도시 근교의 녹지감소에서도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농민기본소득제는 이 모든 문제를 관통, 해결하는 핵심 열쇠다. 농촌을 살리지 않고는 도시가 지속가능할 수 없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 농촌을 살려내야만 도시의 문제는 물론 농촌의 문제도 해결된다.

젊은이들 떠나가 농촌 고령화 심각
인구 밀집에 도시의 삶도 팍팍해져
녹지 줄면 미세먼지·폭염에도 영향
농촌에 청년층 몰려야 근본적 해결

슬로푸드 운동을 하면서 농촌으로 가고자 하는 많은 젊은이를 만난다. 그저 농사가 좋아, 농촌이 좋아 귀촌하려는 젊은이들도 있고, 농촌에서 조그만 카페나 갖가지 공방, 지역문화운동 등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외국의 유명 조리학교 출신인 한 젊은이는 텃밭 딸린 농가에서 지역농산물로 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을 열고자 한다. 그러나 붕괴된 농촌에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이들 많은 젊은이를 농촌으로 모여들게 하는 게 농민수당, 즉 농민기본소득제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기본생활은 유지할 수 있을 정도라면 젊은이들이 주저 없이 발걸음을 농촌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세계와 연결되니 농촌에 있어도 고립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농촌에 다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고, 학교가 문을 열고, 서점과 카페를 읍내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생계가 안정되니 무리하게 농약을 치며 농사짓지 않고 정성껏 질 좋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결국 땅과 물을 살리고 미세먼지, 폭염 같은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에도 일조한다.

도시는 어떨까? 농촌의 붕괴로부터 몰려오는 과도한 압력이 줄어들면서 집값과 임대료의 거품이 사라질 수 있다. 자영업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완화돼 연간 문을 여는 10개 중 9개가 폐업하는 비극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전국적으로 403만명이나 되는 ‘나 홀로 사장’ 중 많은 사장들이 농촌에 터를 잡고 농사일을 하면서 자신의 직업도 살릴 수 있다. 농민기본소득제가 되면 농업만큼 평생이 보장되는 확실한 생계형 ‘창업’이 없기 때문이다.

농민기본소득제는 원래 농촌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제기된 처방이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 등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는 각당의 공약으로도 제시됐다.

사실 농민기본소득제는 농민, 농촌을 위해서라기보다도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절실하다. 교육, 의료, 복지, 문화 인프라가 무너진 농촌공동체의 붕괴는 우리 모두를 엘리베이터처럼 좁은 도시에서의 삶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민 매력 느낄 정도 액수 돼야
6조여원이면 103만명에 ‘월 50만’
일자리 예산으로 재원 확보 가능

농민기본소득제의 지급 대상, 금액은 학자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김성훈 전 장관은 농가 단위로, 정기석 소장은 청년농·영세농·고령농 등 주로 개별농업인 단위로, 박경철 박사는 농민의 범위를 넓혀 농촌주민으로까지 대상을 확대하자고 한다. 지원 금액은 농가 또는 농민에게 월 50만원 정도로 모아지고 있다. 제도를 도입해 금액을 정할 때는, 도시민들이 농민기본소득에 충분히 매력을 느껴 이주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 정도여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그렇다면 예산 확보는? 농민기본소득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예산 확보에 대해서도 모두 긍정적이다. 농업예산의 조정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김성훈 전 장관의 경우, 농가 호당 약 월 50만원씩 전국 110만 농가에 일률적으로 지원한다고 할 경우 연간 총 6조6000억원이 소요되는데 기존의 각종 직불금 예산과 농업 관련 기관의 구조조정 등으로 조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숱한 난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농업예산을 벗어나 보다 큰 틀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농촌과 도시를 별개로 나눈 칸막이 예산 방식의 처리로는 농촌과 도시의 고착된 문제를 풀 수가 없다. 정부의 재정지출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2019년 정부예산안을 보면 내년 예산의 투자 중점을 일자리 창출, 혁신성장, 저출산 대응, 소득분배 개선 등 구조적 문제 해결에 두었다. 이를 칸막이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농촌과 연계해 보라. 정부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들이 농민기본소득제로 달성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가.

정부의 내년 예산을 보면 청년일자리 창출과 고용산업 위기지역 지원에 3조9000억원, 구직급여에 7조4000억원, 지역주도형 청년일자리 사업에 2조5892억원 등 일자리예산만 23조4566억원이나 된다. 지난달 청년실업을 포함, 실업자 수는 총 103만9000명이다. 이들이 평생 보장되는 창업 분야인 농업에 종사한다고 할 때 매월 50만원씩 지원한다고 해도 6조2340억원이면 충분하다.

농민기본소득제는 각 개인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극대화함으로써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요즘 수많은 젊은이들은 돈을 적게 받더라도 진정으로 자신이 꿈꾸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이들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 농촌이 될 수 있다. 낮은 급여에도 일하는 준자원봉사직이라는 새로운 경제 영역이 확대돼 민간분야의 공공활동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건강한 농촌 없이는 건강한 도시가 있을 수 없다. 농민기본소득제는 사전예방적인 정책이다. 도시가 받는 압력을 줄여 농촌과 도시 모두가 더불어 더 균형 잡히고 발전하는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제 도입, 이제는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농민수당’ 톺아보기]“월 50만원 농민기본소득제, 농촌 붕괴 막고 도시 문제 해결할 대안”

고재섭은 (주)김정문알로에 자연의학연구원장, (사)팔당생명살림 상임이사를 거쳐 지금은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상임이사로 슬로푸드 운동에 힘쓰고 있다. 농업, 음식, 의학의 상관관계를 연구하고 사람과 사회, 생태계가 좀 더 평화로이 소통하고 공존하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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