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검찰이 청계재단이 소유한 서울 서초동 영포 빌딩을 압수수색하다 찾은 3400여 개의 문건 중에도 명진 스님 사찰 문건이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국정원 등이 보고한 문건의 일부를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지 않고 빼돌린 것이다. 명진 스님 관련 문건의 제목은 '명진의 막가파식 행태에 전략적 대응방안 강구'였다.
최종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이 문건 역시 국정원이 작성했거나, 국정원의 불법사찰을 통한 정보가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정원이 작성해서 청와대에 보고한 명진 스님 사찰 문건도 다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는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형식의 문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유병문 사무처장은 "봉은사 신도였던 유력 보수언론 관계자와 전 청와대 관계자도 당시 명진 스님을 찾아와서 '국정원이 스님에 대한 보고를 1주일에 한 번씩 청와대에 올린다'면서 몸조심을 하라는 말을 전했다"면서 "미행 감시했다면 육하원칙에 따른 보고 문건, 공개된 종합적 문건, 청와대 등에 보고된 문건 3종 세트가 있어야 하는데 앞의 미행 감시, 해킹 등의 문건과 청와대 보고 문건이 없다"고 말했다.
▲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중간 점검 나선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은 권력기관 개혁 작업 진행 상황을 점검한 뒤, 검경수사권 조정, 국정원법 개혁, 공수처 설치에 대한 의견을 논의했다. 2019.2.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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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위의 이상한 결론?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구성됐던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도 적폐청산 T/F를 구성해 활동하면서 명진 스님 사찰문건을 확인한 바 있다. 국정원 개혁위는 2017년 11월 6일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확인된 원세훈 전 원장의 명진 스님에 대한 비위 수집ㆍ심리전 전개 지시 등 행위는 직권 남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검찰에 수사의뢰하도록 권고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 개혁위는 당시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및 명진 스님의 봉은사 주지 퇴진 과정에서 국정원이 영향력을 행사한 증거나 정황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국정원 개혁위는 이번에 공개된 문건을 직접 확인하고도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일까? 이와 관련, 국정원의 개입 정황이 없다고 발표한 국정원 개혁위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당시 조사 정황을 설명했다.
"우리(국정원 개혁위)가 직접 국정원 파일에 접근한 게 아니고, 조사 대상을 넘겨주면 국정원 직원들이 자료를 검색했다. 가령 '명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국정원 전산실 직원들이 직접 입력해 검색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문건을 직접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국정원이 조계종 총무원에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 개혁위의 결론과는 달리 국정원 문건이 실행된 정황은 많다.
우선 국정원은 2009년 11월 13일 '좌파 인물들의 이중적 형태 및 고려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명진 스님 퇴출 공작을 시작한 것이다. 이날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조찬하던 자승 당시 총무원장에게 명진 스님을 겨냥해 "강남 부자 절에 좌파주지를 언제까지 그냥 둘 겁니까?"고 말했던 날이다.
또 이번에 공개된 국정원의 문건 중 2010년 1월 7일에 작성한 '명진 봉은사 주지 최근 특이 동향 및 평가'에서는 "조계종 종단 내부적으로 연임을 반드시 저지하도록 간접적인 압박 스탠스 유지"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로부터 2달 뒤인 2010년 3월 3일에 조계종 총무원은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 안건을 종무회의에 상정했다.
국정원이 3월 31일 작성한 '명진 봉은사 주지 관련 각종 추문 확인 결과 및 평가' 제목의 문건에서는 "종단 차원의 주지직 퇴출 유도와 함께 면밀한 동향 점검 및 보수언론을 통한 부조리 실태 부각 등 입체적인 압박 전개가 바람직"하다며 "OO에게 직영 사찰 조기 집행은 물론 종회 의결 사항에 대한 항명을 들어 호법부를 통한 승적박탈 등 징계절차에 착수토록 주지"했다고 적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는 직영사찰 조기 집행건이 그 뒤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대한 결과 보고도 빠져 있다. 하지만 총무원은 호법부와 호계원 등을 동원해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하고 명진 스님을 제적했다.
보수 언론들도 국정원 문건에 나온 것처럼 '명진의 부조리 의혹·설 등을 기획·연재 보도'하면서 흑색선전에 동참했고, 보수 단체들도 '명진 실체폭로 유인물을 봉은사 등에 배포'하고 집회도 열었다. 국정원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다면 제대로 해석이 되지 않는 일사불란한 행위들이다.
이와 관련 명진 스님은 "국정원 개혁위는 이 문제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파헤친 적도 없고 파헤칠 의사도 없었다고 본다"면서 "국정원 내부 문제가 전혀 대통령에게 보고가 안 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국정원의 적폐청산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정원 개혁위도 보지 못한 13건의 공개 문건이 그 증거이기도 하다. 또 국정원은 아직도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국정원은 불법사찰 기록을 모두 공개하고 삭제해야... 국정원 개혁입법도 처리
더 큰 문제는 불법사찰을 감행한 이명박 정권과 같은 권력이 또다시 집권한다면, 공개되지 않고 묻혀 있던 불법사찰, 흑색선전 문건들이 부활해 막강한 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불법사찰의 대상이 됐던 명진 스님을 비롯한 인사들의 문건이 모두 당사자에게 공개된 뒤 국정원 서버에서 모든 기록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국정원 개혁 입법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내놔라내파일 시민행동' 곽노현 상임공동대표(전 서울시 교육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국정원 수집 문건들은 인권 침해적 요소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단순히 공개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21대 국회가 들어서면서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국정원 특별법을 통해서 수정 혹은 삭제할지를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비롯한 40여 명의 시민사회원로모임도 18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국정원은 당시 행해졌던 모든 사찰 행위와 공작의 전모와 관련 문건을 철저히 밝히고, 헌정유린에 가담한 모든 관련자는 엄벌에 처하며, 당사자에게 사과하고 내부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면서 "국정원의 국내정보 분야뿐만 아니라 대공수사권을 폐지하지 않는 한 불법사찰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국정원 개혁입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14일 국정원감시네트워크는 논평을 통해 "국정원이 광범위하게 민간인을 사찰해 온 것은 오래전 알려진 사실인 만큼, 이번에 공개된 사찰문건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면서 "국정원은 전체 사찰규모와 작성 보관 중인 사찰문건이 얼마나 존재하는지 스스로 밝혀야 하고 사찰피해자에게 해당 문서를 공개할 뿐만 아니라 당연히 폐기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 보도]
"명진 스님 집중 미행... 협조자 포섭해 불교계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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