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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분46초의 숨막힌 외침, ‘플로이드 영상’이 뒤흔든 질서

등록 :2020-06-07 09:31수정 :2020-06-07 09:35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영상으로 기록된 흑인 사망

스마트폰 카메라 손에 쥔 대중
백인 경찰 집요하고도 끈질긴
8분46초간의 공격 그대로 찍어
‘경관 생명 위협’ 해명 안 먹혀

‘이미지 정치’ 대명사 트럼프는
시위 밀치고 교회 인증샷 ‘기행’
미디어에 기득권 민낯 또 전시

약자의 실상 저장된 영상 물결
미디어 독점했던 기득권 겨냥
‘게임의 법칙’ 뒤집히는 중일까
지난달 28일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시내에서 한 시위자가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경찰 앞에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시내에서 한 시위자가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경찰 앞에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2주간 전세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영상은, 영화도 드라마도 토크쇼도 아니었다. 다른 모든 영상을 제치고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영상 뭉치는, 복수의 행인들이 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한 아마추어 기록 클립들이었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살던 46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질식해 죽어가는 모습을 기록한 이 클립들은, 보는 이들로부터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물론 누구도 이 클립들을 보고 ‘엔터테인’ 되지 않았다. 가볍게 웃으며 볼 만한 영상을 찾던 사람들의 정수리에, 이 클립들은 얼음장처럼 찬물을 끼얹으며 말했다. 미안한데 지금 웃고 떠들 때가 아니라고,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인종차별이 사람을 죽였다고. 메시지에 압도당한 미국의 방송사들과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들은 모두 신작 공개를 미루거나, 연대의 의미로 8분46초간 검은 화면을 전송했다. 8분46초, 플로이드가 쇼빈의 무릎에 짓눌려 숨을 거두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영원한 실시간’으로 남을 그 영상물론 무고한 흑인이 경찰의 과잉진압과 인종 프로파일링으로 사망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조지 플로이드 이전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흑인들의 이름만 적어도 신문 지면이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플로이드의 죽음을 담은 영상들은 보는 이를 뿌리부터 송두리째 뒤흔든다. “구할 수 있었는데 눈앞에 두고도 구하지 못한” 상황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트라우마는 힘이 세다. 마치 우리에게 뱃머리 바닥 부분을 수면 위로 드러낸 채 천천히 가라앉는 세월호 영상이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인 것처럼, 공포에 질려 제발 자신을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고 김선일씨의 영상이 지워지지 않는 상처인 것처럼. 그러니까 정성일 영화평론가가 2004년 <씨네21>에 기고한 영화인 이라크 파병반대 선언문 ‘김선일 테이프는 우리 휴머니즘의 실상을 증언한다’를 인용하자면, 이런 것이다.“이 녹화 테이프에 대해서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않는 점이 하나 있다. 이 테이프가 ‘이제부터 항상 현재로서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김선일씨가 살아났다면 이 테이프는 과거의 역사 뒤로 물러났을 것이다. 그러나 김선일씨가 죽는 순간 이 테이프는 역설적으로 불멸성을 획득했다. 왜냐하면 이제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살려달라고 하소연했던 그를 살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을 하소연한 그 순간은 앞으로 영원히 (우리가 죽은 다음에도) 우리에게 하소연하게 될 것이다. 불가능의 역설. 그러므로 이 테이프에 담긴 내용은 항상 우리의 휴머니즘을 질문할 때 실제 시간이 될 것이다.”이제 위의 글에서 ‘테이프’를 ‘비디오’로, ‘김선일’을 ‘조지 플로이드’로 바꿔서 읽어보자. 플로이드 영상을 접한 이들은 모두, 언제든 아직 플로이드를 살릴 수 있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플로이드 영상은 정서적으로만 강력한 것이 아니라, 그간 수많은 이들이 내심 확신해왔지만 물증이 없어 제기하지 못했던 의혹에 증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압도적이다. 플로이드는 무기를 소지하고 있지도 않았고, 도주하려 들거나 경찰을 공격하지도 않았다. 반면 그를 향한 경찰의 공격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 어찌 해볼 수 없었던 사고’가 아니라, 8분46초 동안 지속된 집요하고 끈질긴 공격이었다. 경찰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도 않았고, 언제든 공격을 멈출 수 있었다. 그동안 경찰이 즐겨 사용하던 ‘진압 중에 용의자가 사망한 것은 불행한 일이나, 사진은 진실의 일부만 담고 있다. 현장에서 용의자가 체포에 불응해 거세게 저항했고 경관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같은 해명을, 플로이드 영상은 적극적으로 반박한다.
미국 워싱턴 백악관 근처에서 지난 3일(현지시각)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수많은 시민이 휴대전화 전등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 백악관 근처에서 지난 3일(현지시각)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수많은 시민이 휴대전화 전등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사진이나 목격자 증언만 있었다면 이야기는 사뭇 달랐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이미지가 프레이밍을 통해 진실을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미지가 진실을 다 담보해주지는 않는다는 대중의 지식을 역이용하면, 진실을 담고 있는 이미지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일 또한 가능한 것이다. 동영상은 얘기가 다르다. 물론 동영상도 편집과 조작을 통해 교묘하게 진실을 호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조지 플로이드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영상처럼 중간에 끊기거나 편집되는 일 없이, 그가 서서히 짓눌려 숨을 거두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 앞에서는 다른 핑계를 대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더구나 곳곳에 설치된 폐회로티브이(CCTV)와 사람들 손에 들린 수많은 스마트폰 카메라의 존재는 교차검증을 가능하게 만든다._________
압도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증거
경찰의 부당한 과잉진압을 경험해본 흑인들은 플로이드의 영상을 보면서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나 또한 저와 같은 일을 경험해본 일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종차별주의적인 태도를 지우지 못하던 보수주의 백인들조차, 영상으로 기록된 명백한 증거 앞에서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폭스 뉴스> 앵커들부터 전 미국의 경찰서장들이 모두 앞다투어 쇼빈의 행동을 비판했다. #BlackLives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가 미국 내 50개 주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플로이드 영상이라는 압도적이고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었기에, 반응이 이처럼 즉각적이고 직접적이었던 것이다.공교롭게도 시위대의 반대편에서 “시위대가 약탈과 방화를 이어간다면 연방군을 투입해 진압하겠다”고 말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또한 동영상 기반의 미디어 정치를 통해 인기를 쌓아온 정치인이다. 그는 미국 프로레슬링 리그 ‘레슬마니아’ 시리즈에 출연하고, 최후의 1인을 자기 회사에 취업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 <어프렌티스>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모았다. 대선후보 경선 토론에서는 상세한 정책 설명 대신 티브이로 토론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에 한번에 쏙쏙 박힐 만한 손동작과 캐치프레이즈를 밀면서 이미지를 쌓았고, 리얼리티쇼 출연자를 연상시키는 기행과 폭언으로 하드코어 지지자층을 집결시켰다.본디 동영상 기반의 미디어 정치는 이처럼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한 기득권의 몫이었다. 이라크전 당시 <시엔엔>(CNN)은 미군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과 폭격당하는 바그다드 시내를 생중계하며 전쟁을 엔터테인먼트의 소재로 삼았는데, 미군 또한 이를 통해 자신들의 압도적인 무력을 과시하며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체제)의 질서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스마트폰만 있으면 영상을 촬영하고 전송하고 배포할 수 있게 된 시대가 되면서, 공고했던 기득권은 조금씩 균열을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플로이드 영상이 온 인터넷을 휩쓸면서, 그동안 미디어에서 집요하게 왜곡되고 지워졌던 미국 내 흑인들의 현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미디어를 활용해 구축한 이미지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던 도널드 트럼프는, 이번에도 그럴싸한 이미지를 통해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 했다. 소요사태가 계속된다면 강경 대응하겠다는 연설을 마친 뒤, 트럼프는 최루탄과 고무탄으로 시위대를 밀어내고는 세인트 존 교회로 걸어가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기행을 벌였다. 종교적, 도덕적 권위를 상징하는 성경을 손에 쥔 채 사진 촬영을 한 것은, 분명 보수층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려는 의도였으리라. 그러나 그 순간을 기록한 영상에서, 트럼프는 “그 성경은 당신 소유의 성경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그저 “성경이다”라고 어물거렸다. 성경을 읽지도, 성경 구절을 인용하거나 기도하지도 않은 채 기념사진만 찍었다는 얄팍한 전후 맥락이 기록된 영상은 보는 이들의 비웃음을 샀다.
어쩌면 2020년에 공개된, 그리고 공개될 모든 영상 중 가장 중요한 플로이드 영상 앞에서 생각한다. 미디어에서 집요하게 지워졌던 이들은 모습을 드러냈고, 미디어를 이용해 이미지를 구축한 이는 미디어로 그 민낯을 고발당한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게임의 법칙이 뒤집히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티브이 칼럼니스트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48197.html?_fr=mt1#csidxe9a42a95f838eacb410d64ef228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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