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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자유로웠던 ‘김밥 모임’ 자리…선생님의 유머가 그립습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종철 선생님을 보내며

[특별기고]자유로웠던 ‘김밥 모임’ 자리…선생님의 유머가 그립습니다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날 오후 제게 메일을 주셔서 카뮈의 <페스트>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소상하게 개진하신 후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이명’의 고통에 대해 말씀하시며,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피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명원 문학평론가·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07년 즈음이었을까요? ‘녹색평론’이 나오면 우리가 ‘김밥 모임’(김종철 선생님과 밥을 먹는 모임)으로 불렀던 자리가 열리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지행네트워크를 함께했던 저와 오창은·하승우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고영직·김해자·황규관·손제민·이문영·김남일·정우영·노지영 등과 같은 문인과 기자들이 선생님과 식사를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그야말로 자유롭게 하는 자리였지요.

선생님께서 대학을 사직하시고, 녹색평론사가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면서, 저희들과의 만남이 본격화되었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이반 일리치를 읽는 독자모임’과 같은 공부 모임도 녹색평론사에서 정기적으로 하셨는데, ‘김밥 모임’과는 성격이 달랐겠지만 ‘우정과 환대의 공동체’라는 선생님 특유의 삶의 철학이 잘 녹아든 모임이었죠.

몇년 전부터는 일본의 평화운동가인 오다 마코토를 기리는 ‘오다 마코토를 읽는 시민모임’과 함께 연례적으로 ‘한·일 식견교류’도 하게 되었지요. 이때 처음으로 ‘김밥 모임’과 ‘이반 일리치 모임’이 함께 참여해, 선생님께서 제안하고 현순애 선생님이 동참해 만든 한·일 시민교류회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을 생각해 보면, 저는 무엇보다도 풀뿌리 민중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의 방식에 대한 신뢰가 지적·감성적 토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교류해왔던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담론을 펼치면서, 선생님이 문학으로부터 생태주의로 이행해갔다는 주장을 흔히 식자들은 거론하곤 합니다.

그런데 ‘김밥 모임’을 통해 선생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곤 했던 것은 문학함의 진실한 태도, 그 가운데서도 ‘시인의 마음’에 대한 심원한 강조였습니다.

“원시적 언어, 살아있는 상징과 은유, 삶의 깊이, 반전, 궁극적인 것에의 탐구, 근본적 겸허와 감수성”의 가치와 함께,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 책임을 문인과 지식인들이 예리하게 자각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우리의 지성계는 언제부턴가 트리비얼리즘에 함몰되어버렸다는 말씀이셨지요.

선생님께서는 이문재 시인의 말을 빌리면,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 속에 숨어있는 위대한 가치를 섬세하게 감지하고 의미화하는 민감한(delicate) 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자주 조언했던 것은 “맥락 없는 추상적 개념의 남용, 장식적 수사의 남발, 실감을 동반하지 않는 작품과 현실에 대한 재단”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런 유머. 책을 너무 많이 읽지 말고, 인용하지 말고, 내지 말라는 말씀도 기억납니다. 그 말씀의 아이러니를 부단히 의식하면서 저희들은 글을 쓰고 책을 내곤 하였지요.

슬프게도 우리는 생동하는 선생님의 쾌활한 유머와 풍부한 표정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크게 울고, 내일은 크게 웃어야겠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김밥 모임’이니까요.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262049015&code=100402#csidxbfe35517b9a70b8b271d394cfd1ae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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