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우였다. 박 시장을 애도한 이들은 추모 그 자체에 집중했다. 박 시장이 이뤘던 일들을 거론할 뿐, 고소인을 깎아내리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SNS에서 거침없이 벌어지고 있는 피해자 신상털이와 같은 언급은 당연히 들을 수 없었다. 남녀노소 5명을 골고루 만난 결과였다.
발걸음을 조금 옮겨 서울시청 입구 쪽에 섰다. 영결식이 끝난 후 박 시장의 영정이 서울시청을 빠져나왔다. 곳곳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열은 분통으로 바뀌기도 했다. 그런 이들조차 "기레기 XX"를 외칠지언정 고소인을 거론하진 않았다. 때론 박 시장을 과하게 두둔하는 말이 나오긴 했으나 최소한 고소인만큼은 공격하지 않는 선을 지켰다.
물론 한정적으로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자가 보고 들은 게 전부가 아닐 순 있다. 하지만 영결식 전후인 13일 오전 7시 40분~9시 40분 서울시청 앞 분위기는 '차분한 애도' 그 자체였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왼쪽부터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20/0713/IE002664992_STD.jpg) |
▲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왼쪽부터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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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객들과 마주하며 그러한 걱정을 했던 이유는, 요며칠 고소인을 향한 온라인상 2차 가해를 너무도 쉽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누구라더라, 피해자에게 성추행의 원인이 있다더라 등의 추측성 글이 특정 사진 및 욕설과 함께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피해자의 변호사가 강용석이란 허위사실이 사실처럼 돌기도 했다. 이번 일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음모론과 이번 일을 정쟁으로 이끄는 과도한 정치화도 서슴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극단은 역으로 극단을 낳았다. 반대편에선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언어로 상대를 공격하고 박 시장의 죽음 역시 조롱했다. 그렇게 지난 닷새 '극단의 과대 대표'된 오염된 말들 속에 살았다.
이날 오후에도 장맛비는 여전히 거셌다. 고소인 측 기자회견이 진행된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은 취재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직접 참석하지 못한 고소인의 글을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대신 낭독했다. 글의 말미, 고소인은 이렇게 말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누군가는 이 말의 진정성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가해자로 지목한 이의 명복을 빌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박 시장에게 애도를 표하는 일과 고소인에게 연대의 마음을 건네는 일은 극단에 위치해 있지 않다. 오전에 서울광장에서 만난 조문객들이 그랬다. 그들은 고소인을 향한 선을 지켰고, 고소인은 박 시장의 명복을 빌었다. 박 시장과 가까웠던 이들도 "애도와 연대는 함께 할 수 있는 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0~10이 있다면 0과 10에 위치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중 대부분은 생각보다 가까이 위치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글의 첫머리를 고쳐야 할 것 같다. 오전, 오후의 현장은 극단이 아니었다.
고소인이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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