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말, 미군 주도로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의 빨치산 토벌작전이 기획되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에는 백선엽 본인의 이름을 딴 사령부가 차려진다. 이른바 '백선엽 야전사령부(백야사)'. 그는 임무를 받으며 "사령관의 성을 부대명에 넣는 것은 전례없던 일로 개인적 영광에 앞서 책임감이 어깨를 무겁게 눌렀다"고 적었다(17~18p).
4개 사단 규모의 토벌대는 지리산 일대를 포위하며 토벌작전을 진행했는데 작전명 '쥐잡기 작전(Operation Rat Killer)'에서 보여지듯 산 속의 모든 사람들을 빨치산으로 간주하고 죽이거나 무차별적으로 체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참모들이 무리한 작전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회고록의 내용을 보면 그 역시 자신의 부대가 체포한 사람들 중 민간인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빨치산은 다수의 비무장 병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들이 무장게릴라화 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며 총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양민으로 볼 수는 없었다. 따라서 빨치산과 함께 있다 붙잡힌 사람들은 모두 수용소를 거친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물론 각 부대간의 전과 경쟁 때문에 양민들이 빨치산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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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선엽 장군이 10일 오후 11시 4분께 별세했다. 향년 100세. 사진은 2013년 8월 경기도 파주 뉴멕시코 사격장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미8군 명예사령관 임명식에서 미군 야전상의를 입은 뒤 경례하는 백 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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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이 자신이 지휘하던 부대가 민간인에게 피해를 준 사실을 인지한 것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49년 가을 5사단장 당시 광주에 주둔하며 공비토벌을 하던 중 백운산 지역에서 300호 정도의 마을이 불 타 잿더미가 된 것을 보고 사실을 확인해 본 결과 통비부락이라는 이유로 15연대가 저지른 것임을 알았다고 적고 있다(52~53p). 그는 이 일과 관련해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사단의 공금을 가져다 마을 재건에 지원했다고 부연했다.
전역 후 자신의 부대원이었던 사람의 제보를 통해 백야사 작전 과정에서 8사단 소속 부대가 백아산 인근의 마을주민들을 학살했으며 그중에는 노인과 애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적었다. 또 뱀사골에서는 체포된 여자 빨치산을 여러 부대원들이 돌아가며 성폭행한 후 사살해버렸다는 사실을 들었다고도 적었다(76~78p).
백야사 토벌작전 과정에서 민간인의 피해는 작전과정에만 있지 않았다. 언급한대로 지리산 토벌작전 지역 내 민간인은 빨치산으로 간주되었고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체포돼 광주포로수용소로 보내졌다. 그의 참모였던 공국진의 증언처럼 광주포로수용소에 보내진 수많은 사람들은 추위와 질병으로 죽어갔다. (
"백선엽, 이 양반은 지리산 안은 모두가 적이다 이래서…", 미디어오늘 2011년 6월 29일자 보도)
백선엽은 회고록 곳곳에서 자신의 부대원들에게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 것을 누누이 강조했으며 그 이유로 "일제 말기 만군에 몸 담았던 시절에 '죽이지 말라, 태우지 말라, 능욕하지 말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게릴라 토벌은 민심을 얻어야만 성공한다는 점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52p).
'6⸳25 전쟁 영웅' - 백선엽의 죽음을 다룬 많은 기사에서 붙인 미사여구다. '지혜롭고 재능이 뛰어나며 용맹한 사람', 국어사전에서 영웅을 규정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진정으로 사과하고 책임질 수 있는 용기'를 추가할 순 없을까. 그의 회고록을 읽으며 그걸 찾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지휘했던 부대의 잘못을 언급하면서도 그는 본인 스스로의 참회와 책임에는 인색했다. 전역 후에도 그는 자신의 부대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피해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오히려 백야사 회고의 말미에는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다"고 적었다.
백선엽은 죽었다. 죽었다고 모든 것이 미화되진 않는다. 잘한 것과 잘 못한 것은 구별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우린 삶과 역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 되는 해, 전쟁영웅이라 불리는 한 사람의 죽음이 던지는 질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석진님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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