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진 ‘성추행 의혹’ 규명…고소인 향한 “지지·연대” 확산
SNS ‘#피해자 연대’ 해시태그에 ‘서울시 5일장 반대’ 청원 25만 서명
피해자 신상털기식 글에 조롱·욕설까지…경찰 “2차 가해 내사 착수”
여야 일각 “혼자 아니다” 응원…“애도 우선” “명예 훼손 그만” 입장도
박원순 서울시장이 숨지며 그의 성추행 의혹 고소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고소인은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거나 공론화하기 어려워졌다. 일부 시민들이 박 시장 추모를 넘어 2차 가해로 여겨질 발언도 내놓으며 고소인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그런 가운데 시민들 사이에 피해자를 지지하는 연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온라인상에는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고 고소한 서울시청 직원 ㄱ씨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트위터에서는 ‘#박원순 시장을 고발한 피해자와 연대합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글들이 게시됐다. 박권일 문화평론가는 페이스북에 “한마디 사과도 받지 못한 피해자들, 앞으로 어떤 시달림을 겪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그들을 아프게 떠올린다. 명복을 빌지 않겠다. 당신들의 시대가 이렇게 끝나고 있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성찰하길 바란다”고 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 저서 <김지은입니다>를 출간한 봄알람 출판사도 “이번에도 유력 인사들은 사건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 없이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메시지를 올리고, 애도를 표하는 시민들이 많이 보인다”며 “거대 권력 앞에서 세상에 진실을 드러내준 피해자의 용기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함께하겠다”고 했다.
박 시장과 서울시에 성추행 의혹에 따른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많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박원순씨 장례를 5일장, 서울특별시장(葬)으로 하는 것 반대합니다’라는 글이 게시됐다. 오후 9시 기준 약 25만명이 참여했다. 청원인은 “성추행 의혹으로 자살에 이른 유력 정치인의 화려한 5일장을 언론에서 국민이 지켜봐야 하나. 대체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가.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가해지목인이 숨진 뒤 남겨진 피해자는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고 했다. 실제 일부 시민들은 피해자 신상털기식 글을 게재했다. ㄱ씨에게 박 시장 죽음의 책임을 묻고 욕설과 조롱 등을 담은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 여성학자는 “ㄱ씨에게 ‘왜 빨리 일을 그만두지 않았느냐’ ‘왜 증거를 모았느냐’ 등 전형적인 2차 가해가 이어졌다”며 “성폭력 피해는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을 받아야 빠르게 회복된다”고 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박 시장의 마지막 선택이 고소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그 선택은 박 시장이 졌어야 할 책임의 무게를 피해자의 어깨에 내려놓는 형국이 된다”며 “ㄱ씨는 앞으로도 사과를 받지 못하고, 피해에 대한 판단조차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박 시장 빈소에서 “이 상황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분 중 한 분이 피해 호소인일 것”이라며 “피해 호소인 신상털기나 2차 가해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장혜영 의원도 “어렵게 피해사실을 밝히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의 마음을 돌보기는커녕 음해와 비난, 2차 가해가 일어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류호정 의원은 피해자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게시판에도 “민주당이 나서서 공식추모하지 말라” “이러려고 20·30대 여성들이 민주당에 표를 줬나” 등 글이 올라왔다. 다만 민주당은 현재로선 박 시장의 성폭력 의혹을 판단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일단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박홍근 의원은 “근거 없는 글로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유족에게 고통을 주는 무책임한 행위를 멈춰달라”고 했다. 박 시장과 인연을 맺은 의원들이 당 내에 많은 것이 이번 사건을 대하는 민주당의 ‘온정적 태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날 ㄱ씨 2차 가해 행위 내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고소 사건과 관련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유포해 사건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위해를 고지하는 행위에 대해 내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해당 고소 건과 무관한 직원의 사진이 ㄱ씨로 지칭돼 포털에 유포됐다. 이를 재확산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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