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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서울은 중재자인가, 할 소리를 하는 주인인가?

이흥노 재미동포 | 기사입력 2020/09/0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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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문제나 조미 관계를 논하려면 꼭 염두에 두고 고려돼야 할 역사적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평양이 “핵무력 완성, 힘의 균형”을 선언하면서 핵보유국 대열에 진입한 2017년 11월 29일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하노이 조미정상회담을 무산시킨 2019년 2월28일이다.

 

전자는 트럼프를 북미 대화로 떠밀어 넣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워싱턴은 평양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핵무력을 완성하리라 상상을 못 했던 터라 정작 오금이 저리도록 기절초풍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노련한 미국 외교관 출신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힘의 균형’ 선언 2주 만에 평양에 급파됐다. 그는 유엔 업무차 방북이라고 시치미를 뗐지만, 실제로는 펠트먼 일행이 예상을 뒤엎고 닷새나 평양에 지체하면서 조미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엔의 2인자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과 비교되는 사건을 이 기회에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15년 5월 예정됐던 반기문 유엔총장의 방북 허가를 평양이 돌연 취소한 사건이 떠오른다. 방북길에 서울에 잠시 머문 반 사무총장은 평양에 대고 비핵화에 나서야 하고 인권도 개선돼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이 기자회견 발언이 평양을 자극했을 수 있지만, 그보다 미국과 유엔 대북제재 강화 조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미국의 충견이라는 게 평양의 평가기 때문에 방북 취소가 내려졌다고 봐야 옳을 것 같다. 사실, 같은 동포 사무총장이라는 좋은 위치에서 펠트먼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반북 활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는 건 같은 민족 성원으로 부끄러운 처사다.  

 

후자는 미국의 정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남북이 값진 교훈을 터득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실패라고만 볼 일이 아니다. 남북미실무진이 완벽하게 만든 하노이 조미공동선언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호전 네오콘 반대 세력의 높은 장벽을 뚫지 못하고 주저앉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마련된 만찬도 거부하고 재회 약속도 없이 하노이 회담장을 박차고 귀국해버린 것은 전례없는 외교적 결례다. 물론 남북 두 지도자와 우리 겨레를 정면으로 모욕 배신한 작태라고 봐야 맞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을 향해서는 19년 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남측을 향해서는 ‘오지랖 넓은 중재자가 아니라 할 소리를 하는 당사자, 주인 행세를 하라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미국을 꿰뚫어 보고 내린 기막힌 지적이라고 평가된다. 트럼프의 식지 않은 미련 때문에 어렵사리 판문점에서 남북미 세 정상 회동이 2019년 6월 30일에 있었다. 곧이어 스톡홀름 조미 실무회담이 개최됐다. 그러나 여기서도 트럼프의 뜻은 오간 데 없고 하노이 회담 결렬에 써먹었던 ‘빅 딜’ 소리만 미국 측 실무진이 복창하자 평양 실무진이 자리를 박차고 떠나가 버렸다.

 

트럼프의 핵협상 타결 의지가 우익보수 네오콘 반대 세력의 집요한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는 것이 트럼프의 한계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것은 트럼프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과거 전임자나 차기 백악관 주인이 누가 돼도 동일하게 적용될 이야기다. 요즘 서울에서는 ‘중재자’ 소리와 ‘선순환’ 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아마 할 말을 하는 주인이 되려는 징조인가 싶다. ‘중재자’ 역할론, ‘선순환’ 논리를 도입하고 거기에 메몰됐던 외교안보통일 최고위 참모들이 최근 교체된 것도 그 일환일 수도 있다. 사실, 이들은 지나치게 친미색채를 띤 미국의 예스멘 (Yes Men)으로 알려져 규탄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미국에 순종하는 자세를 ‘중재자’ 역할이라는 말로 포장한 대단한 재간꾼들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주도 한미실무그룹 창설에도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라는 게 중론이다. 남북 관계 발전을 저지 차단하는 직접 당사자가 바로 한미실무그룹으로 지목되고 있어 온 국민이, 우리 겨레 전체가 일제 ‘총독부’라며 즉각 폐지돼야 한다고 거세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해리스 미국대사가 여기에 올라타고 앉아 일제 총독 행세를 한다는 비난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고 있다. 그는 여야 국회의원들 앞에서 “문 대통령이 좌경 친북이라는 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정도로 거만한  외교관으로 실무그룹을 거치지 않곤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소리를 한다.

 

해리스는 남북 교류 협력 사업을 사사건건 시비 걸고 훼방을 논다. 따라서 남북 관계 발전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되고 있다. 2019년 초, 독감 약 타미플루 인도적 지원이 허용됐으나 미군이 이를 실고 갈 차량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거부해 무산되고 말았다. 그래서 당시 일각에서는 기발하게 지개부대 동원  제안까지 내놨다. 정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해괴망측한 일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정력적으로 남북 교류 협력 추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제재 회피 방도를 찾는 데에 몰두할 게 아니라 제재를 정면으로 뚫고 나가는 지혜를 발휘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는 걸 염두에 두면 좋겠다.

 

드디어 때가 왔다. 우리의 이익, 민족의 화합, 겨레의 최대 숙원을 성취할 절호의 기회가 지금이다. 미국 대선, 일본의 아베 후임 작업, 중미 대결, 코로나 대재앙, 세계 경제 파멸, 등으로 세상이 급변하고 요동치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는 난파선에 매달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일대 위기에 처해있다. 지금이야 말로 할 말을 하는 주인의 입장에서 우리의 이익을 챙길 절박한 순간이다. 우리 민족문제는 민족 내부 문제라는 사실을 설득시켜야 하고 관철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건 간에 우리 민족 문제는 우리 스스로 해결한다는 원칙에서 이탈하면 안 된다. 자주는 양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고 끝까지 사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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