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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진짜 원하는 것은 한국의 코로나 백신 대리 구매?

등록 :2021-01-06 09:39수정 :2021-01-06 10:24
 
 
이란 당국자 자국 언론에
“한국과 백신을 ‘바터’하는 것은 어떤가” 의견
이란 혁명수비대가 4일(현지시각) 중동 산유국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1만7426t급)를 나포하는 과정을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헬기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에는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소형 고속정이 한국케미에 가까이 접근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파르스(FARS) 뉴스 동영상 갈무리
이란 혁명수비대가 4일(현지시각) 중동 산유국의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1만7426t급)를 나포하는 과정을 찍은 영상을 공개했다. 헬기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에는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소형 고속정이 한국케미에 가까이 접근하는 장면 등이 담겼다. 파르스(FARS) 뉴스 동영상 갈무리
혹시 이란의 진짜 의도는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대리 구매’?

이란이 6일 한국 선박 억류 문제가 해양 오염과 관련된 “완전히 기술적 문제”임을 재차 강조하며, 한국의 방문 계획에 “필요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란의 표면적 주장대로 이 문제가 완전히 ‘기술적 문제’라고 하기엔, 억류 시점이 너무 미묘하고 대응 또한 지나치게 거칠어 이란의 ‘진짜 속내’가 뭘지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서 큰 관심을 모은 사실은 이란이 한국이 보관 중인 원유 대금 약 70억달러(7조6000여억원) 중 일부를 활용해 코로나19 백신을 구매하려 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이란은 2010년부터 한국에 개설된 이란중앙은행의 계좌를 통해 원화로 무역 결제를 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2019년 9월 이란을 특별지정 국제테러조직(SDGT)으로 선정하며 양국 간 교역이 사실상 중단됐다. 그에 따라 이란 돈 약 70억~80억달러(약 7조7600억~8조7000억원)가 한국에 묶여 있는 상태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이란은 지난해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한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고 호소하는 등 자금 반환을 강력히 요청해 왔다. 세계보건기구(WHO)의 5일 자료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란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24만9507명이고 이 가운데 5만5605명이 사망했다. 백신 구입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일 수밖에 없다.외교부는 5일 한국과 이란 사이에 관련 논의가 진행돼 왔음을 시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란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 국제 프로젝트인)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백신을 확보하려고 했다. 대금 납입을 하는데 한국 원화 자금을 이용해 납부하는 문제로 미국 재무부와 우리가 다방면으로 협의했다. 미국 재무부의 특별승인을 받았고 그에 따라 우리가 대금을 지불하려고 했었는데 이란 측이 송금 과정에서 달러로 바꾸면 미국 은행으로 돈이 들어가는데 미국 정부에서 혹시 이 돈을 어떻게 할지 하는 우려 때문에 아직 결정이 안 내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즉, 이란이 한국이 보관 중인 동결자금으로 인도적 물품인 코로나19 백신을 사려했고 그에 대해 미국의 승인까지 떨어졌지만, 미국을 믿지 못해 최종 결정을 못 내렸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이란 역시 한국이 선의에 기초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상당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백신 확보를 이유로 선박 억류와 같은 거친 압박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란이 한국과 동결 자금과 코로나19 백신을 교환(바터)하는 협상을 추진할 계획임을 알리는 3일치 <테헤란 타임스> 기사
이란이 한국과 동결 자금과 코로나19 백신을 교환(바터)하는 협상을 추진할 계획임을 알리는 3일치 <테헤란 타임스> 기사
이 지점에서 곰곰이 음미해 봐야 할 이란 당국자의 발언이 있다. 이란의 영자 언론 <테헤란 타임스>는 지난 3일 에스하그 자항기리 이란 제1부통령과 호세인 탄하이 한-이란 상공회의소 회장이 전날 만나 “한국 은행에 있는 석유 수출 동결 자금과 코비드19 백신과 다른 물품을 교환(barter)”하도록 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이란이 ‘물물교환’을 뜻하는 바터(barter)란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탄하이 회장은 “한국에 있는 우리 돈과 코로나 백신을 어떻게 교환할지 제안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리스트에 있는 특정한 물품들을 바터하는데 한국인들이 얼마나 협조할 의사가 있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기사는 전했다. 이어 <테헤란 타임스>는 당국자를 인용해 이란이 원하는 구체적 물품으로 코로나19 백신 외에 원자재, 약품, 석유화학제품, 자동차 부품, 가정용 전자제품 등을 제시했다.한국 정부 당국자의 발언과 <테헤란 타임스>에 나온 이란 당국자들의 발언을 묶어 보면,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이란은 자국 내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서둘러 백신 구매에 나섰으며, 미국의 심각한 경제제재 아래 있는 이란은 한국이 보관 중인 7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재원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1차 계획은 코벡스 퍼실리티를 통해 이란이 직접 구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란 자금이 미국 은행을 거치는 과정에서 미국이 이 돈을 재차 압류할 위험을 인식했고, 결국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그렇다면, 한국이 백신을 대리 구매해 이를 한국 내 동결 자금과 바꿔주는 것(바터)은 어떨까. 그러나 각국이 백신 확보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현재 상황에서 한국이 협조해 줄 것인지 이란은 확신하지 못했다. 탄하이 회장 역시 “지켜볼 것”이라 말하고 있다. 결국 한국 정부를 움직일 수 있을만한 ‘외교적 지렛대’가 필요했을 수 있다. 물론 외교부 당국자가 거듭 밝혔듯 “예단은 금물”이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갖고 사태에 대응해야 함은 물론이다.현재 이란은 이번 선박 억류 문제가 철저한 기술적 문제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살벌한 중동의 국제 정치판에서 ‘철천지 원수’ 미국, ‘숙적’ 이스라엘, 그에 못지 않게 미운 ‘라이벌’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대치하며 생존해 온 이란의 고된 역사를 생각해 볼 때 그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미 동맹 아래서 ‘온실 속 외교’를 해 온 한국과 외교적 기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백신과 선박 억류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직접 교섭을 피해가며 협상력을 높인 뒤, 단숨에 코로나19 백신의 교환(바터) 등의 요구를 쏟아낼 가능성도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977480.html?_fr=mt1#csidxabe7dd83b6957ac96fab4cb677960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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