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박정희-삼성·현대 동맹, 12월에 깨질까?

[프레시안 books] 김윤태의 <한국의 재벌과 발전 국가>

정해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12 오후 6:50:32

 

해방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를 이끌어 왔던 주역을 꼽으라면 국가, 재벌, 그리고 민주화·사회 운동 세력 정도가 아닐까 한다.

물론 국가와 재벌의 전자가 지배 연합을 구축하여 한국 사회를 이끌었다면, 후자의 민주화·사회 운동 세력은 이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통해 한국 사회를 보다 민주화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이 양자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한국 사회는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지구화의 경험을 거치면서 지금의 현실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전자, 즉 한국의 지배 연합은 어떻게 형성, 전개되고 변화되어 왔나?

사실 한국의 지배 연합의 활동과 역할은 매우 역동적이었다. 국가와 재벌이 그 중심이 되어 구축된 지배 연합은 경제 발전을 주도했고, 그 결과 짧은 기간 내에 압축적 경제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 내에 압축적 경제 성장을 이루어낸 한국의 이러한 경험은 자주 발전 국가(developmental state) 이론의 틀로 분석되고 연구되어 왔다. 사회로부터 자율성을 가진 국가가 그 하위 정책의 수행자인 재벌과 연합하여 압축적 경제 성장을 일구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발전 국가론의 틀로 한국의 지배 연합을 분석한 이러저러한 연구들은 제법 있는 편이다. 그러나 그 기원을 찾아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형성과 전개 그리고 변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특히 국내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김윤태의<한국의 재벌과 발전 국가>(한울 펴냄)는 발전 국가의 틀로 한국의 지배 연합의 형성과 전개 그리고 그 변화 과정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한 흔치 않은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 <한국의 재벌과 발전 국가>(김윤태 지음, 한울 펴냄). ⓒ한울
btn

그러나 김윤태의 연구가 갖는 특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발전 국가론의 틀에 의존하면서도 이 연구는 '국가 자율성'이 아니라 '국가 능력'을 통해 발전 국가론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 국가는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기업과 협력하는 국가 능력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한편, 김윤태의 연구가 갖는 또 다른 특징은 이 연구가 재벌 분석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연구는 한국 재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이기도 하다.<한국의 재벌과 발전 국가>라는 이 책의 제목에서 발전 국가의 용어보다 재벌의 용어가 앞에 나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2

구체적으로, 김윤태의 연구는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보여주고 있나?

첫째는 한국 발전 국가의 등장과 역할에 관한 것인데, 그 요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한국의 발전 국가는 강력한 국가 권력과 코퍼러티즘의 성격을 가진 사회 조직의 결합을 통해 일제 강점기에 처음 출현했으며, 이후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계속 발전해 나갔다.

그러나 한국 발전 국가가 경제 발전의 성과를 보여준 것은 박정희 정권 시기 재벌을 앞세운 국가의 중상주의적 또는 후원자적 산업화 정책의 추진을 통해서였다. 또 그 성과는 박정희 정권의 군사주의적 스타일리더십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 국가와 재벌의 발전 연합은 주요 경제 단체를 포함한 코퍼라티즘적인 사회 조직의 토대 위에서 재조직될 수 있었다.

둘째, 김윤태의 연구는 재벌의 등장과 그 성장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195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재벌은 이후 1960~70년대 국가 주도의 산업화 과정을 통해 거대한 복합 대기업으로 발전했으며, 1980년대 경제 자유화 조치가 실행되는 동안에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강화되었다. 또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재벌의 소유와 통제 구조 도 변화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가족 다수 통제'에서 '가족 또는 친족 소수 통제'로의 변화가 바로 그것이다.

셋째, 한국 경제가 1980년대 이후 중상주의적 체제에서 시장 지향적 체제로 변화해가면서 발전 국가는 약화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관료에 의한 국가 기구 내부의 도전, 민주화로 인한 민중 부문의 아래로부터의 도전 그리고 국가에 대한 재벌의 직접적인 도전에 의해 이루어졌다.

반면 발전 국가의 약화와 더불어 재벌은 경제적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 문화의 영역에서 그 영향력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 결과 재벌은 지배 연합의 통합적인 구성 요소가 되었으며, 따라서 국가로부터 재벌로의 권력 이동이 이루어졌다.

넷째, 지구화의 진전 속에서 발생한 1997년의 외환 위기의 충격은 한국의 발전 국가를 최종적으로 종식시키고 '시장 지향적 국가'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이에 따라 발전 국가와 재벌 사이에 오랫동안 형성되었던 위계적, 지배적 관계는 점차 새로운 형태의 공생적, 협조적 관계로 변화되었다.

한편, 외환 위기와 더불어 등장한 김대중 정부와 이를 뒤이은 노무현 정부의 노선은 자유 기업과 복지 제도를 결합시키고자 했던 서구의 제3의 길과 비슷한 점이 없지 않지만, 사회 불평등의 증대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장 친화적 제3의 길과 유사한 것이라 이 연구는 평가하고 있다.

3

연말에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사람들은 과거와는 달리 재벌 개혁을 비롯한 경제 민주화와 복지 증대의 요구를 높이 외치고 있다. 따라서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조차 이에 일정 정도 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2012년 올해의 대통령 선거는, 1987년의 6월 항쟁과 대통령 선거가 권위주의 체제의 민주적 이행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듯이, 성장 일변도의 사회에서 분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새로운 사회로 넘어가는 중대한 전환의 계기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현재 전개되고 있는 사태는 아마도 그것이 재벌에 대한 국가 우위의 지배 연합이 되었든, 아니면 국가와 재벌의 공생적이고 협조적인 지배 연합이 되었든 간에, 그 동안의 발전주의적 지배 연합의 약화와 해체 또는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대다수 서민들의 삶과 생활의 안전이 충분히 보장될 수 새로운 국가와 사회의 등장을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증대의 요구는 바로 그러한 변화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김윤태의 연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하여 김윤태의 연구는 21세기의 새로운 발전 모형으로서 전통적 발전 국가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민주적 발전 국가'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적 발전 국가 모형은 더욱 민주적이고, 참여적이고, 생태 지향적인 발전 모형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원론적일뿐, 아직 그 구체적인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지는 못하다.

어쩌면 그 대안의 모색은 그의 연구를 넘어 현재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공통적인 과제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지배 연합이 주도했던 발전 모형은 안팎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이제 그 생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튼, 김윤태의 연구는 그 동안 한국의 발전주의적 지배 연합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이끌어 왔는지, 그리고 그로 인한 문제점들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정해구 성공회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