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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문재인·박근혜의 뇌 사진을 찍어 보면…

안철수·문재인·박근혜의 뇌 사진을 찍어 보면…

[프레시안 books] 크리스 무니의 <똑똑한 바보들>

강양구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26 오후 6:20:05

 

한참 전에 우디 앨런의 다소 낯간지러운 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Everyone Says I Love You)>를 본 적이 있다. (분명히 혼자 보지는 않았을 텐데, 누구랑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로!) 갈등 같지도 않은 모든 갈등이 마법처럼 해결되는 앨런스럽지 않은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포복절도했던 기억이 난다.

골수 민주당 지지자인 주인공 집에는 가풍을 거스르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꼴통' 오빠가 있다. 그런데 영화의 말미에 이 오빠의 비밀이 내레이션으로 밝혀진다. 뇌를 열어 봤더니 이상한 종양이 있었다는 것! 그 종양을 제거하고 나서, '정상'이 된 오빠는 민주당 지지자로 대변신했다. 믿거나 말거나!

이 에피소드는 미국 동부와 서부에 모여 사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주일마다 복음주의 교회에서 '할렐루야'를 외치고, 선거 때마다 꼬박꼬박 부시 같은 자(者)에게 표를 주는 공화당 지지자를 어떻게 보는지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저들의 머릿속에는 분명히 뇌를 갉아먹는 벌레들이 살고 있음이 틀림없어!"

미국의 기자 크리스 무니의 <똑똑한 바보들>(이지연 옮김, 동녘사이언스 펴냄)을 읽으면서 계속 이 영화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골수 민주당 지지자인 무니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 우디 앨런이 영화에서 보여준 저 에피소드의 변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저러는 이유를 알고 보니, 세상에 뇌가 다르대!"

사실 "보수와 진보는 뇌부터 다르다" 책 띠지에 큼지막하게 박힌 이런 주장은 자극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생각해 보자. 한 인간이 유전과 환경의 상호 작용이 빚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때, 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 자신의 뇌에 흔적을 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자도 이런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 <똑똑한 바보들>(크리스 무니 지음, 이지연 옮김, 동녘사이언스 펴냄). ⓒ동녘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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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몸의 어느 구성 요소보다도 복잡하고 역동적인 인간의 뇌는 특히 유전보다 환경의 영향이 큰 부분 중 하나다. 그러니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지역, 계층, 종교 등에 따라서 정치적 라이프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미국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의 뇌가 다른 특징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오!' 하면서 호들갑을 떨 정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의 저자가 이런 식의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의 다른 특징이 대물림할 수도 있다는 대목을 조심스럽게 언급한 것은 "과학과 정치 사이의 관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로서는 정말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얘기다.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뇌의 차이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후천적 특징일 가능성이 높고, 이런 특징은 유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이 보이는 뇌의 차이가 유전이라는 점을 증명하려면 민주당 가계와 공화당 가계의 유의미한 샘플을 몇 대에 걸쳐서 살피는 대규모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연구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마흔다섯 살을 기준으로 세대별로 보수, 진보로 쫙 갈린 한국의 여론 지형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뇌의 차이 중 하나로 편도체의 크기를 꼽는다. 편도체는 공포와 관계된 뇌 기관으로 알려져 있는데, 보수주의자일수록 이 편도체가 더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다. 편도체가 더 발달한 이들은 위험 혹은 위협이 닥쳤을 때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의 또 다른 뇌의 차이는 전대상피질(ACC)의 회백질이다. 진보주의자일수록 이 ACC의 회백질이 많다는 것이다. ACC는 오류 감지 등에 관계한다고 알려져 있다. 즉 ACC가 더 활성화되어 있는 이들은 상황 변화에 따라 자신의 오류를 점검하고 다른 대안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설명을 듣고 보면, 김이 빠질지 모르겠다. 일상생활에서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일이 꼭 보수주의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세상사에 열린 태도를 지닌 회의주의자의 모습이 꼭 진보주의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여기 미국의 30대 남성이 있다.

그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이다. 진보라면 매사에 개방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대통령 오바마에 관해서는 "닥치고 지지!"를 호소한다. 심지어 진보주의자들, 정확히 말하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그런 심사숙고와 우유부단을 거듭하는 선택 덕분에 미국이 '바보 같은' 보수주의자로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반핵 활동이 활성화된 게 영 마뜩치 않다. 과학자들이 핵발전소의 위험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신빙성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음에도 그것을 듣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과학자들 누구도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를 예견하지 못했음은 그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더구나 핵발전소는 오바마도 지지한다!)

반면에 그는 과학자들이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기후 변화를 놓고서 수많은 경고를 했는데도 공화당 지지자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이 그런 경고를 듣지 않음을 개탄한다. 그는 무섭다. 지구 온난화로 인류가 결딴날 수도 있는데…. 하지만 그는 기후 변화를 둘러싼 수많은 불확실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보수주의자의 궤변'으로만 취급한다.

눈치 챘겠지만 여기서 '그'는 바로 이 책의 저자 크리스 무니다. 자, 그는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횡설수설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바로 무니의 뇌 사진을 찍어보면 도대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뇌는 진보주의자의 상징이라는 ACC가 상당히 미발달된 모습으로 나오지 않을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뇌 과학의 성과를 동원해 "닥치고! 오바마"를 선동해 보려는 이 책은 역설적으로 정치가 망가지고 반지성이 득세하는 미국의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진보 지식인 중에도 무니와 비슷한 이들이 숱하게 많지 않은가? 그들을 모두 모아서 뇌 사진을 한 장씩 찍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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