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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독서·출판·도서관·지식사회를 말한다

 

책·독서·출판·도서관·지식사회를 말한다
 
[현장과 논평] 대선후보 초청 ‘지식사회 인프라 구축 포럼’ 기자간담회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1-08 01:43:16 | 최종:2012-11-08 02:51:2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하도 오래 전부터 들어온 얘기라 이제는 별 느낌도 없다. 우리 출판계가 몹시 어렵다는 얘기 말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사회과학서적이 서점가에서 인기를 잃기 시작한 90년대 초중반부터 들어 왔지 싶다. 어쩌면 맞는 얘기일 수도 있다. 파주 출판단지에 군집한 출판사를 빼면 서울시내에서는 서교동-홍대 주변에 군소 출판사들이 집중돼 있다. 최근에 만난 몇몇 출판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곧 문 닫을 곳이 적잖다고 했다.

‘책’은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다. 필자에겐 경험과 지식을 담는 그릇이자 출판사로선 편집 작업의 일거리다. 또 서점 입장에서는 팔아야 할 매물이며, 읽는 자들에겐 기쁨이자 숙제요, 또한 식자(識者)의 길로 안내하는 길잡이이기도 한 것이다. 그‘책’을 중심으로 필자, 출판편집자, 서점, 독자, 그리고 도서관까지 모두 한 데 어우러져 하나의 ‘책 공동체’를 꾸리고 있다. 오늘날 이 공동체는 지식사회를 여는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 '책 공동체'는 지식사회를 여는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이진아기념도서관' 열람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 속의 ‘책 공동체’는 빈약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다. 우선 필자는 계속해서 좋은 책을 내고 싶어도 사회적·물적 기반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출판계는 십수년째 죽기 일보직전이라고 앓는 소리를 하고 있으며, 도서관은 ‘독서실’ 기능에서 이제 겨우 벗어난 상태다. OECD 가입 국가 치고는 국민들의 독서 수준은 형편없이 저급하며, 고학력 사회라고는 하나 학교와 사회는 ‘책 읽는 나라 만들기’에 별 관심이 없다.

대체 우리사회가 이 지경이 된 원인은 무엇일까? 다양한 필자가 부족해서인가? 출판사나 서점의 경영술이 시원찮아서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책읽기를 게을리 하는 국민들 때문인가, 당국의 정책부재 때문인가? 아니면 도서관이 부족해서인가? 그 어느 집단의 책임도 아닐 수도 있고, 반대로 전부 다 책임이 있는, 즉 ‘복합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문제 타령’만 하는 사이에 문제는 진짜로 ‘문제’가 되었고 이제는 목까지 차오른 형국이다.

어제(7일) 이런 문제를 고민해온 ‘책 공동체’ 관계자들이 ‘책읽는나라만들기국민연대회의’라는 긴 명칭의 단체를 내걸고 한 자리에 모였다. 출판계를 대표해서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도서관계를 대표해서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도서관을 대표해서 광진구립도서관 관장, 도서관 자원활동가를 대표해서 ‘도서관친구들’ 대표, 그리고 문헌정보학과 교수, 학교도서관 사서교사 등이 모여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들이 모인 계기는 올 연말 대선이다.

‘연대회의’ 출범의 산파이자 임시대표를 맡은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인사말을 통해 “우리 문화·지식계의 기본 인프라가 붕괴됐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고 진단한 뒤 “이제는 각 관련분야에서 유기적 연계를 통해 21세기 한국의 지적기반을 확충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설파했다. 김 교수의 진단 역시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누구나 ‘21세기는 지식사회’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총대를 메는 자는 그간 쉬 나타나지 않았다.
 

▲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삿말을 하는 김민웅 '연대회의' 임시대표

 

좀 더 구체적인 얘기들도 나왔다. 고영은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은 “책의 가치보다 가격으로 경쟁하는 현 시장구도 하에서는 곤충에서부터 공룡까지 다양한 존재가 공존할 수 없다”며 도서정가제 정착을 현안으로 지목했다. 남태우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은 “요즘 정치권의 화두가 복지이나 다들 ‘소비적 복지’만을 강조할 뿐 ‘생산·창조적 복지’에 눈을 돌리는 사람은 없다”며 정치권에서 이제는 ‘문화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길사 김언호 사장이 읽은 기자회견문은 이들의 고민이 잘 녹아든 듯 했다. 그 몇 대목을 옮겨보면, 이들은 우선 대선후보들이 지식사회의 기본 인프라 구축에 대해 분명하고도 실질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음을 첫머리에서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여야 후보 할 것 없이 정치개혁, 민생·복지, 외교·안보, 경제, 교육 분야 등에 관한 공약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출판·독서분야의 정견을 내놓은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이들이 앞장선 문화지식계는 지난 9월 ‘대한민국을 책 읽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독서관련 시민사회단체의 10대 제안’을 후보들에게 던진 바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이 ‘제안’에서 지식사회 기반 구축을 위해 대통령이 나서서 책임지고 국가 기본정책 차원에서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단순히 예산 증액이나 부서 설치 차원을 넘어 ‘국가 정책의 중심에 미래형 지식사회을 위한 융합적 기획과 정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했다.

만약 이러한 토대가 조성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 이들은 출판문화 진흥, 도서관의 질과 양에서의 성장, 이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평생학습 사회 만들기, 저술가들의 저작활동과 지식산업이 전반적인 발전이 총체적인 동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이들은 확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제안에 대한 각 후보 진영의 반응은? 실망스럽게도 여태 무소식이다. 그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순서에서 밀린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 책은 선인의 경험과 지식의 보고이자 우리의 미래다. 사진은 교보문고 매장

 

그럼에도 이날 이들은 두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첫째, 책 읽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공약을 제시할 것, 둘째, 대통령 직속의 ‘지식창출융합국가위원회’를 설치해 출판과 도서관, 서점유통과 평생학습, 저술가들의 작업 등을 위한 예산과 정책을 총괄해 기획해 나가도록 할 것 등이다. 이 제안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또 공약으로써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현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얼마나 제 역할을 했는지는 도서관계가 되짚어 보고 넘어갈 일이라고 생각된다.

부연하자면 한국 출판계와 도서관계는 이런 요구와 주장에 앞서 겸허한 자기반성도 필요해 보인다. 우선 출판계는 ‘제 살 깎아먹기’식의 과당경쟁으로 군소 출판사의 생존을 내부에서부터 위협해 왔으며, 규모와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약육강식의 상업논리가 팽배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또 도서관계는 ‘지식계의 무풍지대’로 불릴 정도로 무사안일 집단으로 평가받아 왔으며,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안팎의 지적을 받아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나마 도서관계는 독서운동가, 도서관 자원활동가 등이 그 공백을 메워주고 있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장에서 만난 여희숙 ‘도서관친구들’ 대표는 “전국 곳곳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도서관 운영을 돕고 있으며, ‘도서관친구들’은 회비를 내는 회원만도 5700명 정도”라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동석했던 오지은 광진구립도서관장은 “여 대표는 도서관 예산확보를 위해 구청을 상대로 로비(지원활동)까지 하면서 도서관 운영에 큰 힘이 돼주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이날 모임은 일종의 ‘예비모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는 13일 오전 10시~12시 프레스센터에서 여야 대선후보들을 초청해 오늘 발제된 내용을 토대로 정책 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유력 대선후보 3인 가운데 2인은 이미 참석키로 약속이 돼 있고, 나머지 1명과도 일정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13일 참석할 후보들이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어떤 공약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그러나 그들을 설득하고 만족할만한 답을 이끌어내는 것은 여전히 ‘연대회의’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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