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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역할론’ 재벌 논리로 이재용 가석방 강행한 법무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1/08/10 07:51
  • 수정일
    2021/08/10 07:5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취업제한으로 가석방돼도 경영 개입 불가…이사회 중심 의사결정 체계 갖춘 삼성, 미등기 이재용 부재 영향 미미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 과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1.7.29ⓒ뉴스1

 문재인 정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을 강행했다. 다른 범죄로 재판 중인 이 부회장에 대한 고려가 있었는지, 재범 위험성에 대한 검토 결과는 어땠는지, 취업제한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경영 활동을 재개해도 되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직접 발표자로 나섰지만, 브리핑은 불과 3분여 만에 끝이 났다. 박 장관은 질문도 받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이재용 부회장은 재수감 207일 만인 오는 13일 치러야 할 죗값 40%를 탕감받고 결국 출소한다.

박범계 장관은 9일 정부 법무부 과천청사에서 ‘광복절 가석방 브리핑’을 자처하고 신청자 1,057명 중 810명이 가석방 적격 의결됐으며 이 중 이재용 부회장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 상황, 글로벌 경기를 고려해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으로 수감된 것이 국가적 경제 상황에 악영향을 미치고 반도체 경쟁 심화에 처한 삼성전자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석방이 필요하다는 재계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죄를 짓더라도 역할론을 동원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인식은 국가 질서 밑바닥을 뒤흔든다(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우려나 “이 부회장이 풀려나면 국민은 경제 권력이 법 위에 서는 모습을 보며 좌절감과 실망감을 느낄 것(정세은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등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 부회장이 가석방돼도 경영 참여가 제한된다는 점이다. 현행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르면 5억원 이상 횡령·배임을 저지른 범죄자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범죄 행위와 관련된 기업에 취업할 수 없다. 이 부회장은 86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해 유죄를 확정받고 복역 중이었다. 형 집행을 면제하는 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취업제한이 유지되는 조건부 석방이다.

앞서 법조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이 부회장이 현행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대상자임에도 삼성전자에서 직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5월 이 부회장을 취업제한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법무부는 이 부회장의 불법적인 경영 개입을 관리 감독해야 할 주체지만, 이날 가석방을 의결하며 “경제 상황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경영 참여를 용인하는 듯한 입장을 취한 것이다. 법무부는 지난 2월 삼성전자 측에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대상자임을 통보한 이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법무부는 삼성전자 이사회 또는 대표이사가 이 부회장을 해임하지 않을 경우 해임을 요구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최근까지도 이를 요구하지 않았다.

때문에 일각에선 법무부가 이 부회장 경영활동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법무부 특정경제사법관리위원회는 심의를 거쳐 이 부회장 취업제한 예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광복절 사면이 사실상 무산된 상황에서 법무부가 이 부회장 경영권 회복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 부회장은 출장 등을 위해 출국 시에도 법무부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 부회장 가석방 발표 직후 “가석방은 취업제한, 해외 출장 제약 등 여러 부분에서 경영활동에 어려움이 있어 추후에라도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행정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한 발 더 나갔다.

이재용 재범 위험성은?…특혜 아니라는 구차한 통계만 전하고 자리 뜬 법무부

재범 위험성에 대한 검토가 충분했는지 검증되지 않았다. 앞서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위원은 “가석방 심사에서 재범 가능성을 고려하게 돼 있는데, 사익 추구 유혹은 상존하고 있다. 삼성 준법감시 시스템 미흡하다는 것은 이미 확인됐다”고 우려한 바 있다. 실제 삼성 준법감시 시스템은 이재용 부회장 재판 과정에서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박범계 장관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여론과 수용생활 태도 등 다양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는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법무부 이날 브리핑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특혜를 준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질문조차 받지 않은 브리핑에서 법무부 대변인은 두 가지를 강조했다.

먼저, 법무부는 이 부회장처럼 추가 범죄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 가석방을 받은 사례가 지난해 67명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4조5천억원의 초대형 회계 분식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같은 처지의 수형자가 67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67명이 어떤 혐의로 수감 중이었고, 무슨 혐의로 추가 수사나 재판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형기 60%를 간신히 채운 상태다. 현행 규정엔 55% 이상 형기를 채우면 가석방 심사 대상자가 되는데, 이 규정은 불과 1달 전, 기준이 완화됐다. 법무부는 브리핑에서 형기를 70%도 채우지 못한 상황에서 가석방이 이뤄진 사례는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으면서 “최근 3년간 증가 추세”라고만 덧붙였다.

법무부로부터 가석방을 의결 받은 이재용 부회장은 13일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1.01.18.ⓒ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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