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396
정국 기상도ㅣ3·9 대선 분석 전망

이재명, 형수 욕설 사건 등 약점에도 선두
이낙연, 25~26일 호남경선 ‘운명의 날’

막말 전력 홍준표-고발사주 의혹 윤석열 ‘양강’
엘리트거나 점잖은 유승민·원희룡·최재형 약세
하재욱 작가
하재욱 작가
1987년 노태우 민주정의당 후보는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구호를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2년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는 ‘변화와 개혁’을,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정권교체와 외환위기 극복’을 내세웠다.노태우 대통령은 1980년 전두환 쿠데타 세력의 일원이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그에 맞서 싸운 대중 정치인들이었다. 그때는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됐다. 어떤 면에서는 낭만의 시대였다.21세기가 시작되자 전혀 다른 유형으로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 대통령에 줄줄이 당선됐다. 2002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정치판의 ‘아웃사이더’였다.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온몸을 던졌다.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월급쟁이 출세 신화’,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박정희 신화’의 상징이었다. 2017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구호는 ‘적폐청산’이었다.
 
어쨌든 역대 대통령들은 이처럼 뭔가를 내세우거나 상징하는 사람들이었다.
2022년 3월9일 대한민국 20대 대통령 선거를 향해 대선주자들이 질주하고 있다. 전과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있다.첫째, 이른바 ‘나쁜 남자’들이 잘나간다. 도덕적인 엘리트 출신들은 맥을 추지 못한다.둘째, 서로 헐뜯기에 바쁘다. 이른바 네거티브 캠페인만 난무한다. 가치와 노선과 정책 경쟁은 찾아볼 수 없다.끝까지 이럴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참 특이한 양상이다. 왜 이럴까?더불어민주당 경선은 9월25일 광주·전남, 26일 전북 대의원·권리당원 개표 결과가 2차 고비다. 호남에서도 이재명 경기지사가 과반 득표를 하면 민주당 경선은 사실상 끝이라고 볼 수 있다.반대로 이낙연 전 대표가 약진하면 10월3일 2차 슈퍼위크, 10월10일 3차 슈퍼위크 결과를 봐야 한다. 결선 투표로 가면 역전할 수 있을까? 표차가 크면 뒤집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는 알 수 없다.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어쨌든 호남 민심이 민주당 경선을 좌우하는 상황이다. 역시 호남은 민주당의 성지다. 역대 대선에서 호남이 선택한 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됐다.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압도적으로 선두를 달리는 배경에는 지역주의 원리와 확증편향 원리가 함께 작용하고 있다.지역주의 원리는 ‘호남이 지지하는 영남 후보’ 모델이다. 영남보다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은 호남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다.2002년 노무현 후보, 2017년 문재인 후보가 그랬다, 피케이(부산·경남)가 티케이(대구·경북)로 달라졌을 뿐이다. 이재명 지사는 경북 안동 출신이다. 호남 후보들에게는 서글픈 현실이다.확증편향 원리는 “통합형 정치인보다 분열을 조장하는 포퓰리스트가 더 잘나간다”는 가설이다. 21세기 정보화 혁명으로 유권자들이 진실보다 믿음을 중시하면서 정치판의 스핀 닥터들은 분노를 조직화해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고 있다.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 ‘이성보다 감성’에 따라 ‘경력보다 매력’을 보고 투표하는 추세가 강해지고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텍사스 카우보이 스타일의 아들 부시가 정치 엘리트 앨 고어를 꺾은 것이 신호탄이었다. 2016년 장사꾼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이긴 것도 같은 현상이다.이재명 지사의 형수 욕설 사건, 여배우와의 불륜 의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제기됐다. 당시 이재명 지사를 찍은 민주당 지지 성향의 유권자 중에는 “경기지사까지는 시켜주겠지만, 대통령은 안 된다”고 다짐한 사람들이 많았다.그런데 3년 만에 그런 다짐이 깨졌다. 왜 그랬을까? 첫째, 보수 야당에 맞서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후보가 필요했다. 둘째, 도덕적 후보보다는 매력 있는 후보가 더 필요했다.이낙연 전 대표로서는 기가 찰 것이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의문의 1패’를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전 대표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쓴다. 그는 광주일고, 서울대 법대,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엘리트다. 그런데 그게 바로 그의 약점이다.중도 사퇴한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마찬가지다. 그는 장관·국회의장·국무총리까지 했으니 대한민국 최고의 ‘스펙’이다. 한때 직업이 당대표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또 점잖은 사람이다. 욕을 할 줄 모른다. 그런데 그게 바로 그의 약점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일단 안상수·원희룡·유승민·윤석열·최재형·하태경·홍준표·황교안 8명으로 압축됐다.(가나다순)10월8일 발표되는 2차 컷오프에서 또다시 4명으로 압축된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를 기준으로 추리면 홍준표·윤석열·유승민 세 사람은 들어가고, 마지막 한 자리를 놓고 원희룡·최재형 두 사람이 다툴 것으로 보인다.11월5일 발표되는 본경선의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선두를 달리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 휘말려 추락하기 시작했고, 홍준표 의원은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흥미로운 것은 국민의힘 경선에서도 ‘나쁜 남자’ 이미지를 가진 홍준표 의원과 윤석열 전 총장이 선두 다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홍준표 의원은 막말 전력과 돼지흥분제 사건 논란을 이미 넘어선 것 같다. 그가 본래 가진 마초 이미지 때문에 그런 정도 약점은 큰 흠결로 보이지 않는다.윤석열 전 총장은 건들거리며 걷는 모습이 매우 거만해 보인다. ‘도리도리 윤’, ‘쩍벌남’이라는 비난도 쏟아진다. 그런데 바로 그런 모습 때문에 그를 좋아한다는 유권자들이 꽤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문재인 정부 사람들을 제대로 혼내줄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유승민 전 의원과 원희룡 전 제주지사,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고전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너무 엘리트거나 점잖다는 것이다. 당사자들로서는 기가 막히는 일이다.여야의 선두권 주자들 사이에 비방전이 가열되는 것은 ‘나쁜 남자들의 대결’이라는 구도의 필연적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최근 정치 뉴스의 대부분을 ‘이재명 대 홍준표’, ‘홍준표 대 윤석열’, ‘윤석열 대 이재명’의 격돌이 차지하고 있다. 물고 물리는 접전이다.언론도 싸움을 자꾸 부추긴다. 하지만 이제 자제시켜야 한다. 대통령 선거는 싸움꾼을 뽑는 선거가 아니다. 5년 동안 대한민국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정치 지도자를 뽑는 선거다.정의당은 공직 후보자를 당원 총투표로 선출한다. 10월1일부터 5일까지 온라인 투표, 6일 자동응답전화 투표로 후보를 확정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바로 결선 투표를 한다. 심상정·이정미 전 대표와 김윤기 전 부대표, 황순식 경기도당위원장이 나섰다.2017년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6.17%를 득표했다. 이번에는 정의당이 득표율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을까? 진보정당 집권의 길은 요원하다.제3지대에서 뛰는 주자들도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싸움이 격화하면서 중간 지대가 거의 사라졌다. 이들의 생존 공간도 좁기만 하다. 두 사람은 내년 2월13~14일 후보자 등록 직전까지 상황을 보다가 여야 어느 한쪽과 막판 ‘딜’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추석 연휴 이후 대선 국면을 좌우할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이다. 지난해 4월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김웅 미래통합당 후보에게 고발장을 보냈다는 것은 이제 거의 ‘팩트’로 굳어져 가고 있다. 손준성 검사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핵심 참모였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그렇다고 윤석열 전 총장이 고발을 사주했다고 자동으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의 핵심 열쇠는 손준성 검사의 입이 될 것 같다. 그의 진술에 따라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 손준성 검사가 침묵을 지킬 경우 고발 사주 의혹은 미제 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다.홍준표 의원과 윤석열 전 총장의 싸움에서 누가 승자가 될까? 최근 여론조사 흐름은 홍준표 의원이 확실히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윤석열 전 총장 뒤에는 이른바 보수 신문의 논객들이 있다. 그에게 이미 줄을 선 국민의힘 전·현직 의원들도 있다. 승부를 섣불리 예측하기 힘들다.정작 중요한 것은 홍준표와 윤석열의 대결이 아닐지도 모른다. 국민의힘 후보가 된다고 내년 3월9일 대선에서 무조건 이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실무 관계자가 얼마 전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조국 사태’, ‘인국공 사태’, ‘엘에이치 사태’ 등 부정-불공정 사례 등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부정적 이미지로 바로 치환되지는 않는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적폐’ 등에 대한 정서적 반감과 이미지를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야권이 ‘수구-기득권’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대중의 기본 인식이 현재의 여권에 비해 야권이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이나 국민의힘이 확고한 ‘중도-개혁적’ 이미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한 윤석열 전 총장과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는 당연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전략 참모들이나 정치 분석가들도 내년 3월 대선에서 이재명 경기지사가 당선될 가능성이 조금 더 크다고 본다. 2002년 김대중-노무현, 2012년 이명박-박근혜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당 후보가 현직 대통령과 차별화된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권교체 여론을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 근거다.그러나 선거는 알 수 없는 것이다.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1주일만 늦게 치러졌어도 당선자는 김대중이 아니라 이회창이었을 것이다. 선거 결과는 우연적 요소에 의해 상당히 좌우되지만, 선거 결과는 국가와 국민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2022년 3월9일 대선은 6개월 가까이 남았다.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