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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긴급재난지원금, 묘하게 따듯한 깨소금 맛

[기고] 팬데믹 장기화, 서민 중심의 '적극재정'이 필요하다

 
 
 
 


 

2020년 5월,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신선했다. 순식간에 세계를 휩쓴 코로나의 위력 앞에 온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몸을 동그랗게 움츠렸지만, 정부로부터 가구당 4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의 뜻밖의 현금 지원을 받았다. '이게 뭐지?' 신기했다. 잔뜩 움츠린 마음의 두 팔을 조금은 쭉 펼 수 있었다. 오래 살다 보니, 아니 또는, 아직 그렇게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형편에 따라 큰 돈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려워진 그 상황에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다. 그런 금액을 아주 하찮고 우습게 생각할 정도의 대단한 금수저가 아니라면, 누구나 그 돈을 조금씩 써가면서 조금은 묘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대박!' 맞는데, 나만 맞는 대박이 아니라, 다 같이 맞고 있는 대박이라서, 다 같이 훈훈해지는 느낌이 드는 특이한 대박이랄까? 그래서 '별것 아니네'가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거꾸로, 묘하게 따듯한 깨소금 맛을 느끼게 해주는 아주 특별한 대박.

 

세상은 모를 일이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그렇듯 특별한 신선함과 신기함을 선사해주었던 그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이제 어디선가로부터 '퍼주기'라는 질타와 비난을 받고 있다. 마치 아주 나쁜 일이요, 죄악이라는 것처럼. 혼란스럽다. 정말 그런가? 나의 혼란은 죄가 아니다. 말장난, 속임수가 있다.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공유했던 소중하고 특별했던 그 느낌(feeling)에 대한 변호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연합뉴스
 

우선 쉽게 지금 미국의 바이든 정부를 보라. 유럽과 일본의 정부 정책을 보라.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퍼주기'를 안 하고 있나. 우리가 놀랄 만큼, 우리가 받았던 것보다 열 곱절 스무 곱절로 크게 퍼주고 있다. 지금 이런 재난 상황에서 퍼주기를 안 하면 언제 퍼줄까? 이제 대한민국은 G20가 아니라, G10에도 들어가는 나라다. K방역의 성공으로 이 팬데믹 이후에는 GDP 순위가 올라가게 되어 있다. 필경 현재 이미 그러하다. 그럼에도 한국만은 안 된다는 주장에 무슨 근거가 있는가? 지금 퍼주기로 말하면 G20 중 한국이 꼴찌다. 한국보다 GDP가 낮은 나라보다 서민 지원에 훨씬 더 인색하다. 왜 한국만은 안 되나?


 

'퍼주기' 주장(=비난, 단죄, 공격)이 말장난이요 속임수라는 또 다른 근거는, 그렇게 주장하는 측이 이번 대선의 승자가 된다고 하더라도,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적극재정 정책을 펼 것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현 정부가 그런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내로남불'이다.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너는 하지 마라, 내가 할게'다.

 

인간사에서, 인생사에서 누구든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극단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도움은 항상 선하다. 그럴 때 '퍼주기'는 항상 선하다. 그렇게 프레임을 벗기고 추락하고 있는 쪽을 돕는다는 의미로 다시 정의한, '재난 상황에서의 퍼주기'를 재정정책 용어로 하면 '적극재정', '구제재정'이 된다.


 

지금 미국, 유럽, 일본 정부가 화끈한 적극재정 정책을 펼치고 있는 이유가 있다. 그렇게 해도 되더라는 나름의 경험,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2008년의 절체절명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 행해진 미국 연방준비은행(연준)의 '헬리콥터 머니' 정책이 그것이다. 문자 그대로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린 것은 아니었다. 망하게 된 부실 금융사 계좌에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돈을 1,000,000,000…… 입력하여 엔터키 때려서 보내주었다. 휴짓조각이 된 주식과 채권을 전량 매입해주는 방식으로 돈을 마구 꽂아준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적극재정을 펼쳐서 망해가는 금융사들을 살려 놓았다. 다 죽었다가 살았으니 금융권력에게는 기사회생의 대성공이요, 그래도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미국 정부로서도 성공이었다 할 만했다.
 

 

그런데 그 당시 그 사태의 묘한 진행 상황을 보면서 "잠깐만!" 하며 호각을 불었던 쪽이 있었다. 그 유명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다. "아니, 잠깐만!!!" 그 '헬리콥터 머니'는 누구에게 갔지? 도산 위기에 빠진 거대 금융사로만 갔고, 직장 잃고 집 잃은 서민들에게는 한 푼도 가지 않았다. 되살아난 금융사 CEO는 보너스 축제를 벌이고, 빚더미 위에 앉은 서민은 감옥에 갔다. '1대 99'가 여기서 나왔다. 헬리콥터에서 뿌린다는 그 막대한 돈은 왜 몽땅 최상층 1%에게만 가고, 어찌하여 99%에게는 한 푼도 오지 않았는가? 이건 아니다. 사기다. 1이 아니라 99에게 가야 마땅하다. 구제할 쪽은 99%였지, 1%가 아니었다. 경제만 살고 서민은 죽는 경제는 필요 없다. 서민이 살아야 경제가 사는 경제가 필요하다. 엔터키를 쏘는 방향을 바꾸어라. 1% 쪽이 아니라 99% 쪽으로. 

지금 유럽과 일본, 그리고 이제 미국 정부까지를 '적극재정'으로 돌아서게 한 것은 순전히 코로나 팬데믹의 힘이다. 서민들이 당하고 있는 재난의 크기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이 재난 상황을 구제하지 않으면 나라 경제, 아니 세계 경제 전체가 붕괴할 위기에 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양극화는 극심하게 진행되고 있다. 비대면 플랫폼 대기업들은 오히려 엄청난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봉쇄, 영업 제한, 업무 제한으로 소득 기회를 잃은 대면 사업, 대면 근무의 서민들은 생계 위기와 파산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적극재정'이 어느 쪽을 지원해야 하는지는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되었다.
 

 

코로나 재난이 준 교훈은 크다. 지난 수십 년 간 부동의 진리처럼 군림해왔던 것이 '균형재정 원리' 또는 '긴축재정 원리'였다. 수십 년을 겪고 보니, 그래서 알고 보니, 이 원리는 결국 경제권력을 몽땅 민간 금융자본에 떠넘기라는 교리였다. 경제에서 정부는 빠져라. 지원한다고 나서지 마라. 정부가 빠질수록 경제가 좋다. 정부가 거둔 세금(세수) 이상 돈을 쓰면 경제를 망친다. 돈이란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민간 은행이 만든다(대출). 은행 대출을 받은 기업이 돈을 벌어야 서민에게도 돌아간다(낙수효과). 서민도 돈이 필요하면 민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라. 금융기관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니 정부는 금융기관 규제를 철폐하라. 지난 수십 년 세계는 이러한 교리를 주문처럼 따랐다. 그리하여 금융권력 전성시대가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전성시대라고 부른다.

 

그 잘못된 교리가 병으로 쌓이고 엉켜서 터진 것이 2008년 금융위기였다. 규제가 풀린 거대금융사들은 사기에 가까운 부실 대출로 막대한 수의 서민들을 빚더미 위에 올려놓았고, 소득이 준 서민들의 대출금 상환이 불가능해지자 연쇄적인 도산 위기에 빠졌다. 바로 그때 미국 연준을 비롯한 많은 서방 국가 중앙은행들은 한없이 돈을 만들어 망해가는 금융자본에 퍼주었다. 금융기관이 죽을 지경이 되니, 결국 돈을 만드는 쪽은 민간 금융기관이 아니라 국가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명백해졌다. 신자유주의의 긴축재정 교리는 이미 이때 끝났다. 전환의 첫 신호는 그때 켜졌다. 그러나 부패한 금융사에게만 국가가 돈을 몽땅 퍼주었던 것은 명백하게 부당했다. 긴축재정에서 적극재정으로 전환한 것은 맞다. 그러나 전환의 방향이 틀렸다. 전환의 방향은 그때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이 제시했던 것처럼, 1%의 부패한 금융권력이 아니라 피폐해진 99%의 서민경제 쪽으로 가야 했다.


 

이번 코로나는 두 번째 신호다. 이제는 미국, 유럽, 일본의 정부만 아니라, 여력이 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부가 코로나 구제, 서민구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대로 재정정책 전환의 방향이 잡히고 있다. 본격적인 적극재정의 시대가 돌아왔다. 처음이 아니다. 한때 밀려났다 다시 돌아왔다. 미국, 유럽, 일본 등은 2차대전 이후 30여 년 동안 사회보장국가의 적극재정을 통해 안정된 번영을 이루었다. 적극재정이 서민고용과 서민생활 부양에 쓰일 때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함을 보았다. 이후 금융권력이 비대해져 사회보장국가를 억눌렀던 지난 30~40년이 정도(正道)를 이탈한 때였다. 금융권력이 국가의 재정지원까지 독점하면 양극화가 걷잡을 수 없게 극심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금융권력만 한없이 좋고, 서민은 한없이 괴로웠던 때였다. 이제 풍향이 바뀌고 있다. 이 전환의 방향을 확고하게 틀어쥐어야 한다. 서민중심의 적극재정으로.


 

나라는 1%의 권귀(權貴)가 아니라, 99%의 민(民)을 살리자는 물건이다. 이것이 우리의 오랜 전통이 말하는 '민유방본(民唯邦本)'이 뜻하는 바다. 나라의 존재 이유는 오직 민의 안녕에 있다. 지금 코로나 상황에서는 '나라의 재정권은 오직 민(民)이 평안하게 잘 살도록 하는 데 쓰이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코로나 정국에 주목받고 있는 기본소득, 기본자산, 보편복지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다. 저명한 경제사상가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어법으로 말하자면, 모두가 국가 재분배 경제에 속한다. 그 셋 중에 내가 주장하는 것만이 진짜고, 다른 쪽은 가짜라는 어법이 있는 모양이지만, 이는 진실과 멀고, 특히 지금 상황에서는 백해무익하다. 지금은 그 재정지원을 빨리 집행하는 것이 관건이다. 민의 사정이 그만큼 어렵다. 그것에 어떤 이름을 거는가로 다투며 시간을 허송할 여유가 없다. 기본소득도 기본자산도 보편복지다. 보편복지를 위한 수단이 많아지는 것은 문자 그대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아울러 그 모두가 우리 전통에 결코 낯설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우리 전통의 경제사상은 칼 폴라니와 통하는 바 많다. 모두에게 소득원, 일자리를 줘야 한다는 정전법 원리, 재난 상황에서는 나라가 재정을 풀고 국력을 동원해 재난에 처한 소민(小民)을 구제해야 한다는 상평(常平), 환곡(還穀)의 원리가 모두 우리 역사에서 늘 강조되어 왔음을 기억하자.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21616180610337#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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