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도 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추진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정책협의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IPEF 추진을 위해 한국의 역할을 기대한다”라고 말한 지 한 달여 만이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만큼 IPEF 참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벌써 IPEF 추진 TF까지 신설했다.
IPEF가 뭐길래 아직 출범도 않았는데 서둘러 참여부터 결정했을까?
IPEF, “중국은 빼고 여기여기 모여라”
미국이 주도하는 IPEF는 중국의 경제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협력체이다. 당연히 중국은 이에 거세게 반발한다.
더구나 IPEF의 협력 분야는 ▲무역 원활화 ▲공급망 안정성 ▲인프라 협력 ▲탈(脫)탄소·청정에너지 협력 ▲노동 표준 등 민감한 영역에 걸쳐 있다.
만약 오는 24일 쿼드 정상회의에서 IPEF가 예정대로 출범하면, 무역 갈등과 공급망 경쟁이 전쟁 수준에 이른 미·중 패권 구도에 기름을 붓게 된다.
중국은 이미 강력한 견제에 들어갔다.
IPEF를 추진하는 미국을 향해 “미국은 불장난해선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또한 IPEF 참여를 권유받은 한국에 “IPEF에 가입하면 대응할 수 있다”라고 선을 그었다.
IPEF의 손익 계산서
미국이 IPEF를 추진한 이유는 세계무역 시장의 판도가 중국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과학기술력이 무역 시장을 좌우하던 데서 원재료 보유국으로 무역 중심지가 옮겨가는 양상을 띠면서 세계무역에서 중국시장은 더욱 각광 받고 있다.
실제 2018년 기준 세계 190개국 중 128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 중국이다.
한국도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중국과의 교역량이 더 많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가 IPEF 동참을 꺼린다. 현재 IPEF 참여 의사를 밝힌 곳이 한국을 비롯해 일본, 호주, 뉴질랜드에 그친 것도 이런 사정이 반영된 결과다.
IPEF 참가국 확대가 난항을 겪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2일 동남아세아 10개국 특별정상회의까지 개최해 IPEF 참가를 종용했다. 그러나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는 불참을 선언했고, 싱가포르만 유일하게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은 왜?
처음 IPEF 참가 문제가 불거졌을 때 중국은 “한국과 중국의 무역 관계는 뗄 수 없는 사이”라며 한국의 불참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든 미국의 강압을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이해득실을 따질 새도 없이 덜컥 IPEF 참여를 결정해 버린 것.
IPEF 참여 문제가 단순히 교역량이 중국과 많으냐, 미국과 많으냐로만 따질 수는 없다. 오히려 교역량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
질을 따져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해 발생한 요소수 대란이다.
요소수 대란은 국내 필요량 70%를 수입하던 중국이 갑자기 석탄 수출을 중단하면서 발생했다.
러시아가 미국의 경제제재에 들자, 유연탄 수입이 차단돼 시멘트 대란이 인 것도 유연탄 75%를 러시아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자재를 한 국가에서 70% 이상을 수입하는 품목이 많을수록 더 중요한 교역국이 된다.
무역협회가 한국의 대(對)중국 수입 의존도 상위 100개 품목을 조사한 결과 현재 망간(99.0%)을 비롯해 방전관(98.1%), 순견직물(97.5%) 등 79개 품목이 70% 이상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28개 품목은 중국의 수출제한 조치가 있을 경우 곧바로 제2, 제3의 요소수 사태를 초래할 수 있는 ‘약한 고리’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미국에서 70% 이상의 원자재를 수입하는 품목은 없다.
혹자는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IPEF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입 다변화가 하루아침에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IPEF에 참여하는 일부 국가가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한국의 IPEF 가입은 교역량과 질에서 절대적인 우위에 있는 중국과 등지고, 미국이 펼치는 대중국 경제전쟁의 포로가 되는 꼴이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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