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 한신대학교 글로벌피스연구원 교수,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임기 시작 후 11일만의 정상회담은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인수위 기간을 거쳤다고는 하나 대통령 신분으로 외교현안을 채 파악할 시간도 없는 상태에서 회담이 열린 셈이다. 이런 회담에서는 대개 준비할 시간이 많은 측 혹은 보다 힘이 강한 측이 주도권을 쥐게 마련이다.
미국이 정상회담을 서둘렀다는 것은 맥락적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중반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추구했다. 사드를 배치하자는 미국의 요구를 박근혜 정부는 3불 입장을 내세우면서 소극적으로 대했다. ‘경중’ 노선과 충돌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2016년 사드배치 합의는 박근혜 정부가 ‘경중’보다는 ‘안미’를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변화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로까지 이어졌다. 미국으로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촛불이 터졌고, 박근혜는 탄핵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문재인 정부 역시 한미동맹 강화로 일관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미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대미정책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중국문제, 북한문제에서 미국과 ‘완벽하게 일치’된 행보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본격화되고 있는 신냉전 국제질서 속에서 바이든 정부는 사소한 간극마저도 허용할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이다. 정상회담을 빠르게 열어 윤석열 정부가 ‘경중’을 생각할 틈새조차 주지 않아야 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국을 완전히 편입시킬 논리와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도 빠른 정상회담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북한의 위협이 고도화되고 있다는 판단,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성 부각, 불안정한 국제정세 인식 등 한미관계를 빠르게 강화해야 할 필요가 충분했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 재가동의 함의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문재인 정부 때 중단되었던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 합의이다. 확장억제전략협의체는 2016년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합의한 한미 외교부, 국방부(2+2) 고위급 협의 테이블이다. 2016년에 12월에 1차 협의회가, 2018년 1월에 2차 협의회가 진행되었으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면서 잠정 중단되었다. 문제는 협의 내용인데, 두 차례의 협의회에서 논의된 것은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국과 그 주변에 순환배치하는 문제였다. 전략자산은 핵탄두를 탑재한 전투폭격기, 전투함대 등을 일컫는 용어이다. 따라서 협의체가 재가동된다는 것은 핵탑재 전략자산이 순환배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2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영토 내 전술핵을 배치하는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핵탑재전략자산의 순환배치를 사실상 합의함으로써 영토 내 전술핵 배치와 비슷한 결정을 한 셈이다.
전략자산이 배치되면 그것을 활용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즉 군사연습과 작전계획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협의체 재가동과 함께 한미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한다고 합의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제 한미군사연습은 핵탑재전략자산이 기동하는 보다 공격적 성격으로 변화하게 된다.
다음으로 작전계획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작전계획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지난 해 12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합의한 한미 작전계획의 최신화를 기억해야 한다. 기존의 5027 작전계획은 재래식 전면전계획이었다. 2015년 만들어진 5015 작전계획은 선제공격 계획이었다. 작전계획의 최신화는 재래식전면전과 선제공격 계획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작성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정상회담의 내용과 결부시킨다면 한미 작전계획 최신화는 핵탑재 전략무기가 작전계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즉 핵전쟁계획을 작성하겠다는 구상 다시 말해 핵전쟁동맹 구축을 의미한다.
바이든이 한국을 찾던 날, 핵잠수함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제어함으로써 핵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미군 공중지휘통제기가 한반도 인근 상공을 비행하고,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에 있던 로널드 레이건 항공모함이 한반도 근해로 출동한 것은 핵전쟁동맹의 실물을 시연한 셈이었다.
공급망동맹: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끊어라!
한중 경제 관계가 발전하면서 한미동맹 강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안미경중’ 사고였다. 즉 안보는 미국과 협력하고, 경제는 중국과 협력한다는 사고가 한미동맹의 발목을 잡았다. 한중 경제관계의 고리를 깨지 않으면 한미동맹은 강화되기 힘들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줄타기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우려는 올해 2월 더욱 커졌다. 중국이 포함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한국이 발효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을 그대로 두면 ‘안미경중’은 더욱 강화된다. 미국이 한미정상회담을 서두른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 회복’이라는 기상천외한 이름이 붙은 정상회의를 지난 해 10월 미국이 주도한 것은 중국 중심의 공급망 체계를 흔들어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한국이 포함된, 미국의 14개 주요 동맹국들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 바이든은 “실패할지도 모르는 단일 공급원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공급망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 체인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었고, 이 기상천외한 이름을 가진 정상회의를 개최한 목적을 드러낸 발언이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글로벌 공급망은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였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며 회복력 있는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이 공급망이 미국 주도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중심 공급망 체인을 뒤엎고 미국 중심의 새로운 공급망 체인을 형성하는 것이다. 한미 공급망동맹의 탄생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공식화했다. IPEF는 중국이 주도하는 RCEP의 대항마로 2022년 2월 중순 미국이 출범을 예고한 경제협력체이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고 대만을 참여시킬 구상을 갖고 있는데서 확인되듯이 대중국 경제포위망 구축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한미공급망동맹 구축에 이은 IPEF 참여는 한중경제관계의 폭력적 단절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한 장치가 ‘경제안보’라는 새로운 용어이다. 경제도 안보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니만큼 중국 중심 경제 관계에 탈피하여 미국 중심 경제 관계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논리이다. 공급망 동맹으로 불리든, 경제안보로 불리든 이제 중국 포위 봉쇄를 위한 미국의 대한정책은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로 인한 모든 피해는 오롯이 한국 경제가 떠맡아야 할 부담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윤석열 정부는 한국 경제를 포기한 것이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 = 신냉전 시대 동맹의 완전체
공급망 회복 정상회의(지난 해 10월), 민주주의정상회의(지난해 12월) 그리고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의 공급망 동맹과 IPEF 가입이라는 일련의 흐름을 한미동맹은 중국과 러시아를 배제하는 새로운 동맹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이 바로 그것이다.
포괄적 동맹은 군사 분야를 넘어 정치 분야, 경제 분야 등으로까지 협력의 범위를 넓힌다는 의미이다. 포괄적 동맹은 이번 공동성명에서도 확인되는 것처럼 코로나 19와 같은 감염병 관련 보건 분야, 기후변화 분야, 인터넷과 사이버 공간 분야, 우주항공 분야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분야는 굳이 동맹이 아니어도 협력이 가능하다. 부시 정부 시기 반테러 관련한 이슈는 한미동맹 뿐 아니라 미중, 미러 사이에서도 협력했던 전례가 있다. 따라서 이들 분야가 포괄적 동맹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번 공동선언에서 상당히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세계 이슈들에 대한 합의는 이미지 포장의 의미가 강하다.
전략동맹은 목적으로서의 동맹을 의미한다. 동맹은 애초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되었다. 따라서 안보환경이 바뀌면 동맹은 변하게 마련이다. 전략동맹은 이 같은 변화를 거부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동맹은 지고지순한 목적으로 남아야 한다. 따라서 전략동맹은 한미동맹을 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한다는 개념이다. 어떤 국제환경이 만들어지더라도 한미동맹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것이 전략동맹의 함의이다.
탈냉전 이후 한미동맹을 수식하는 용어로 포괄적, 전략적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글로벌이라는 수식어는 좀처럼 사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글로벌 동맹이 되는 순간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지역적 범위를 넘어서게 되고 그 자체로 수많은 논란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담에서 드디어 글로벌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글로벌 동맹은 한미동맹을 대북한 동맹을 넘어, 대중국 동맹 더 나아가 대러시아 동맹을 구축하겠다는 선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이 인도-태평양과 이를 넘어선 여타 지역에서 확대된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을 밝혔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대한 지지를 피력했다. 글로벌 동맹의 첫 출발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이 될 것이다.
이번 한미정상 공동선언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다. ‘한반도와 그 주변’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하기 위한 협의”를 개시하기로 했다. 유사한 표현이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에서도 등장한다. “미 전략자산의 한국 및 주변지역에 대한 순환배치”가 그것이다. 이들 문장을 종합하면 전략자산이 참여하는 한미군사연습을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하는 것이다. ‘그 주변’이 어디일지는 복잡한 계산을 요구하지 않는다. 남중국해, 동중국해, 대만해협인 것이다.
바야흐로 국제질서는 신냉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화하려 한다. 우크라이나 민주주의 방어 무기대여법(Ukraine Democracy Defense Lend-Lease Act)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법안이 지난 4월 미국 의회를 통과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서 완성되었다. 2022년과 2023년 회계연도에 적용되니 2년 동안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미국은 중국 포위 봉쇄를 천명하며 쿼드를 출범시켰고, 대만 독립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이 전쟁을 일으키고 그 전쟁이 장기화되고 그로 인해 중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중러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겠다는 장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그 장기 전략엔 북한 역시 포함된다.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은 미국의 장기 전략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완전체 동맹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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