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출판, 봉사단체 설립, 애플리케이션(앱) 제작 기획, 미술 전시회….’ 국제학교를 다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이 쌓아올린 ‘스펙’은 화려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표절·대필 의혹이 숨어 있고, 의혹의 줄기는 케냐를 비롯한 제3세계 청년들의 지적 착취 산업으로까지 이어진다. 한 장관의 딸은 연구 윤리를 어지럽히는 약탈적 저널을 활용하고, 미국 입시전문가인 이모 진아무개(49)씨의 딸들과 스펙을 품앗이해왔다.
<한겨레>는 지난 1~9일 진씨가 활동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등 실리콘밸리 인근을 방문했다. 여기는 한 장관의 딸과 ‘스펙 공동체’를 이룬 진씨 딸들이 고등학교를 다녔고, 미국 명문 대학을 향한 아시아인 학생들이 치열한 입시 경쟁을 벌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편법적인 기회 획득에 분노하며, 세상의 모든 출발선은 같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미국 명문 대학이라는 학벌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과정에 한국 사회 엘리트들이 동원하는 ‘글로벌 스펙 산업’의 실태와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세 차례에 걸쳐 담는다.
“요즘 애들은 슈퍼맨에다 똘똘이 스머프가 돼야 하거든요. 걱정 마세요. 학생이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면 영자신문 특파원, 개인 홈페이지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들은 저희가 넣어줍니다. 교사 추천서도 써드리고요. 논문 대회 참가하시려고요? 대필도 가능합니다.”
<한겨레>는 이달 초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유학 컨설팅 업체의 입시설명회에 참석했다. 소수의 인원만 예약을 받아 진행했는데, 이날 업체 관계자가 보여준 컨설팅 내역 자료에는 △교내 과제 에세이 첨삭 △수상경력 관리 △대입 에세이 무제한 교정·첨삭 △논문 대회 참가(대필 가능) 등이 적혀 있었다. 특히 “내신점수(GPA)와 (미국 대학입학시험) 에스에이티(SAT) 점수가 낮더라도 특별한 액티비티 내러티브(활동 서사)를 구성해 불가능을 가능케 해준다”고 장담했다.
또 다른 업체가 진행한 온라인 설명회에는 60여명이 참석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임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탓인지 이날 설명회에서는 송도 채드윅 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한 장관 딸의 화려한 ‘스펙’이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 매체에 광고성 인터뷰 기사를 실은 것을 두고는 “미국 입학사정관이 바보가 아니다”며 ‘진정성’을 강조했지만 주말 봉사활동을 연결해주겠다며 컨설팅 기본 금액으로 550만원을 불렀다. 대회 참가, 에스에이티 준비, 대입 에세이 작성 등 추천 프로그램을 합치면 비용은 2천만~3천만원으로 치솟았다.
컨설팅 비용 보통 연간 2천만원…더 내겠다고 하면 1~2억원도
“지금 국내 유학 컨설팅 시장은 도덕적 관념이 무너졌다.” 지난 2일 <한겨레>와 만난 박종경 직지아카데미 대표가 말했다. 직지아카데미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영어 글쓰기·읽기, 미국 수학대회 준비를 위한 수업 등을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수강 학생 200명 가운데 70~80%가 국제학교를 다닌다. 박 대표가 지적하는 국내 유학 컨설팅의 문제는 두가지다. 하나는 대필 문화의 만연이다. “내신 관리 명목으로 학교 숙제를 대신 하고, 대입 에세이 대필도 흔하다. 학생들의 진로를 가이드해주고 국내에선 접하기 힘든 최신 미국 대학 정보를 제공해주는 식이 돼야 하는데 아예 대신 해주는 길로 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컨설팅 업체들의 장삿속과 결부된 ‘가짜 스펙’ 사업이다. 박 대표는 한달에 한번꼴로 받는 이메일을 소개했다. ‘아이비리그 교수진과 논문 출판(학생은 공저자로 이름 기재)을 할 학생들을 소개해주면 수익의 20%를 수수료로 주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보내는 사람은 바뀌는데 내용은 거의 똑같다. 박 대표는 “아이비리그 정교수가 한국 고교생과 논문을 왜 같이 쓰겠냐”며 “전부 사기”라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는 1천만원에 에세이 몇개를 모아 책으로 출판하는 상품이 유행했다고 한다. 그는 “미국 입시에서 내신점수와 에스에이티 등 학업성적을 뒤집을 만한 엑스트라 커리큘럼(봉사·과외활동)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조처 이후 탄생한 유학 컨설팅 시장은 2010년 국제학교가 국내에 등장하면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요즘은 “대기업 차장·부장 정도만 돼도 보내겠다고 나설 정도”(박종경 대표) 로 중산층까지 국제학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미국 대학 입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어났다. 미국 대학 입시를 잘 모르는 한국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한 심리를 유학 컨설팅 업체는 ‘공포 마케팅’으로 파고들었다. 앞서 <한겨레>가 참여한 입시설명회에서도 전공과 관련된 교외활동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한국 기준 중학생인) 9학년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외활동으로 “입학 여부를 가르는 곳은 미국 명문 대학인 아이비리그 몇군데뿐”이며, 아이비리그 입학자는 “한국 유학생 10명 중 1명 정도”뿐이다(20년차 해외 교육 컨설팅업체 대표 이아무개씨). 한국 학생 대부분이 진학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도 아이비리그만 따지는 교외활동을 만들기 위해 입시 컨설팅에 돈을 쏟아붓는 게 현실이다. 이씨는 대학 서열에 익숙한 한국인의 특성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대학은 랭킹보다 전공, 교육의 질을 따져보고 결정해야 하는데 한국 부모는 ‘우리 아이는 아이비리그 아니면 안 보낸다’는 식”이라고 했다.
2021년 10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1 해외 유학·이민 박람회에서 방문객들이 참가 업체 부스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유학 컨설팅 시장에는 통용되는 시세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박 대표는 “컨설팅 비용은 보통 연간 2천만원 수준인데 (부모가) 더 내겠다고 하면 1억~2억원을 받는 사례도 봤다”고 말했다. 시장 규모도 알 수 없다. 유학원이나 컨설팅이라고 밝힌 업체들도 있지만 에스에이티 학원 등을 운영하면서 개인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현금 거래가 보편적이라서 탈세 가능성도 있다.
미국 입시 컨설턴트들이 한국의 유학 컨설팅 시장이 부적절하고 위태롭다고 말하는 이유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미 교육컨설턴트협회(IECA) 소속으로 7년째 컨설턴트로 일해온 이민정(가명)씨는 “미국에서는 옆에서 누군가 조언을 해줄 순 있지만 다른 사람 것을 복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걸리면 큰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서 10년 넘게 학원을 운영한 임아무개 원장도 “첨삭은 학생이 모든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강조했다. 새너제이에서 12년째 에스케이(SK) 에듀케이션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는 크리스 김(50) 대표는 “한국은 입시 컨설팅의 상품화가 심하다. 한국 출장을 많이 가는데 갈 때마다 상품이 바뀌어 있다. 어떤 때는 펜싱이 잘나가고, 그다음엔 대회 출전, 그다음엔 비영리단체 설립 등이 추천되더라”고 말했다.
미국은 에세이 첨삭때도 코멘트만…“학생이 모든 아이디어 제공”
미국 현지 컨설팅은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 이씨는 “9학년은 특별히 컨설팅해줄 게 없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확인만 한다. 10학년부터 흥미나 희망 전공에 따라 학교 수업을 어떻게 들어야 할지 조언한다. 졸업반이 되면 대입 에세이 첨삭에 들어가는데 어떤 내용을 더 강화해라, 빼라 정도의 코멘트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 역시 “대입 에세이를 봐주면서 학생 (본인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이끈다. 다 써주냐고 묻는 부모도 있는데 그런 방식은 학생의 목소리를 제쳐놓고 ‘복제인간’을 만드는 것밖에 안 된다. (한국식처럼) 멋있고 어려운 단어를 모아둔 게 아니라 학생의 메시지가 녹아들어야 잘 쓴 에세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입시 컨설팅 평균 비용은 연간 수천달러에서 1만달러(약 1280만원) 정도다. 5만달러(약 6400만원) 이상은 거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입시 업체를 운영하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딸의 이모 진아무개(49)씨를 두고 김 대표는 “너무 한국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가짜 스펙’이 걸러지지 않고 일부 넘어가니까 계속 상품화했나 본데 학생에게 거짓말로 요령을 피워서 (과정이) 어떻든 (대학 입학만) 하면 되는구나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경원 경기도 교육정책자문관은 “국내 학생부종합전형이 외부 조력을 점차 제한하면서 국내 명문대 진학이 어려워지자 특권층이 사회적 지위를 재생산하기 위해 다른 활로를 찾은 것이 해외 대학 진학”이라며 “다시 한국에 들어와 ‘부모 찬스’로 직장을 구해 사회 지도층으로 행세하는 큰 흐름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컨설팅업체는 강남 소재 무작위 선택어떻게 취재했나<한겨레>는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 등 실리콘밸리 인근을 방문해 학부모와 학생, 입시컨설턴트 등 22명을 인터뷰했다. 한국의 유학 컨설팅 업체 가운데 일부는 국제학교 재학생의 가족으로 가장해 취재했다. 실수요자가 아닌 한 컨설팅 내용·비용 등을 밝히길 꺼리는 업체 특성 때문에 위장 취재 방식을 택했다. 유학 컨설팅 업체들이 밀집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강남대로, 강남역 사거리에서 무작위로 업체를 선택했다.
이유진 장예지 기자, 새너제이/김지은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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