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우리나라 밥상을 흔들고 있다. 세계 주요 곡창지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 공급이 주러들면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했고 식량과 사료를 확보해 밥상을 지키려는 각국의 총성 없는 식량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주요 밀 수출국이던 인도를 비롯한 카자흐스탄, 세르비아 등 식량 수출국은 자국 내 곡물 수출을 제한시켰고 당장 곡물을 수입해오던 나라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당장 동네 빵집과 돼지농가가 밀과 사료 값 급등으로 타격을 받았고 그 충격은 고스란히 우리 밥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우리 밥상도 평온해지는 걸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전쟁이나 기후위기로 인해 국제 곡물 시장의 불확실성은 커졌고 이로 인한 식량전쟁은 더 자주 더 치열하게 발생할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무엇으로 밥상을 지킬 것인가. 편집자.
세계 밀값 폭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인한 세계 곡물가격, 밀값 인상이 국내 외 뉴스의 중심을 자리한 지 오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그 논의의 중심은 다음 내용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뛰었다.
2. 국제 곡물가격 인상으로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에 밀값에 큰 오름이 생겨 국내 관련 제품 가격도 크게 올랐다.
3. 국제 곡물가 인상에 대한 대비로 밀 자급률 제고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 글은 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위 3가지 논점을 포괄적으로 살펴본 내용이다.
선물가격 인상 실물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우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곡물가격 인상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이 시간 세계 밀값 기준이 되고 있는 시카고상품거래소 시황을 보면 가장 거래가 많은 7월 선물 기준에서 부셀(bu, 밀 무게 단위)당 11.68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가격은 최근 20년 가격 흐름에서 저가 국제 곡물가격 시대(2007년 이전 시기) 부셀당 3~4달러, 중가의 4~6달러(2014~2016년 시기)에 비해 2~3배 심지어 4배에 이르는 가격이라는 점에서 말 그대로 폭등 수준이라 할 만하다.
이 가격이 수입 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에서 실제 가격을 살펴본 결과 올해 1~4월 기간 수입 밀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50% 가까운 수준으로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선물가격이 실물가격으로 반영되는 데는 2~3개월 차를 둔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가격 상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영향의 반영 전 모습이다. 전쟁 영향의 실질적 반영이 예상되는 5월 이후 수입가격은 이보다 더 큰 폭으로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자장면 먹기도 힘들다'는 내용의 뉴스는 이 같은 가격 흐름의 반영이다.
우리는 자장면 가격 타령이지만, 이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관점에서 국제 곡물가격 폭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러시아·우크라이나 밀에 크게 의존해오던 아프리카·중동 국가들 이야기이다. 식용밀 기준에서 국제 밀 무역동향은,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는 미국·호주·캐나다 밀 중심으로 소비하고, 아프리카·중동 등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생산물 수입이 많았다. 그 이유는 바로 가격차에 근거했다. 문제는 싼 값에 수입하던 러시아·우크라이나 곡물이 러시아 무역제재 그리고 우크라이나 수출항구 봉쇄로 더 이상 수입이 쉽지 않게 됐다. 이 영향에 직격타를 받는 국가들에서는 2008년 이후 2013년까지 이어지던 식량폭동이 다시 재현될 움직임마저 보인다.
최근 갑작스레 주목받은 인도 밀 수출 관련 이야기도 이 흐름의 연장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간 인도는 세계 두 번째 밀 생산 대국이면서도 14억 인구 부양, 낮은 밀 관련 산업 인프라, 거기에 가격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등지에 밀리면서 수출이 거의 없었다. 있어야 이웃 방글라데시 정도로 나가는 정도였다. 이런 인도 밀이 러시아·우크라이나 밀의 접근성이 크게 낮아지면서 동시에 세계 곡물가격 폭등 속에서 가격 경쟁력이 생겨나면서 새삼 세상의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이다.
전쟁 변수, 왜 우리 밀 가격에 반영되지 않나
국제 밀값 폭등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지금까지 오래 언급해 왔던 '우리 밀과 수입 밀 가격차 3~4배'가 다름 아닌 '저가 또는 중가 밀값 시대에 발생하던 일'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제 국제 밀값 폭등으로 앞으로는 가격차가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과 함께, 관세청 무역통계를 근거로 밀 가격을 살펴본 결과 올해 3월·4월 우리 밀과 수입 밀 가격차가 2배 가까이로 줄었고, 5월 이후는 그 차가 더 좁혀질 터이다. 분석 결과로 볼 때 1.5배 가까이로 가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수입 밀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우리 밀보다는 싸다는 점이다. 수입 밀 가격의 이 같은 폭등에도 우리 밀보다 싸다는 점은 냉정히 수입 밀 가격 폭등으로 아무리 아우성쳐도 우리 밀 소비 진작을 가져오기는 벅차다는 것이다.
이 흐름에서 주요하게 살필 최근 정책동향이 있다. 바로 정부가 그 인상의 70%, 업계가 20%, 소비자가 10%를 책임지겠다는 수입 밀 가격 인상 대책이다. 이는 현재의 수입 밀 고가행진 보도가 우리 밀 소비 진작, 자급률 제고의 실질적 진전보다 수입 밀 업계의 가격 인상 논리의 근거로 작동하고 있음과 동시에 정책은 이를 받아 자급률 제고가 아닌 수입 밀 소비 진작의 방향에서 방향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한편에서 아직은 외화되지 않았지만, 분명 우리 밀을 비롯한 식량 자급률 방안도 함께 있을 것이고 관련한 어떤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본다. 이 논의에서 우리가 새롭게 할 것이 식량주권의 문제이다. 식량주권의 사전적 의미는 '우리가 원하는 농산물을 우리가 원하는 장소에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 생산한다'이다. 지금까지 이 논의에 함께 따르는 것이 먹을거리 안정적 공급과 안전성 문제였다.
그렇지만 논리의 중요성과 그 합리성에도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또 현재의 모습이다. 곡물자급률이 20% 전후, 하루 세끼 중 한 끼가 아닌 저녁 간식 정도만 우리 것으로 가능한 현실임에도 대개의 국민이 최소한 양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은 식단을 꾸릴 수 있는 우리 식탁의 실상을 반영한 정책이 바로 그 수입 밀 중심 정책인 것이다. 수입곡물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양적인 식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우리 경제가 그러한 정책의 큰 밑받침이다. 그러한 현실의 연장선에서 우리는 미국·호주·캐나다 그리고 그 외 주요 농산물 수출국의 주요 고객이 되어 이들 국가의 중점 관리대상이 되었다. 농산물 수출국들은 아프리카와 중동에 기아가 창궐해도 그들에게 원조하기보다 주요 고객이자 자국의 중점 관리대상인 우리에게 곡물을 팔러 달려올 것이고, 우리는 또 이를 받을 준비가 돼 있다. 오늘의 현실은 이러한 국제적 식량수급 구조의 반영이다.
돈으로 먹을거리 사는 일, 언제까지 가능?
여기서 중대한 질문! 과연 이 같은 우리 먹을거리의 '잔인한 평온'은 앞으로도 쭉 지켜질 것인가? 오늘의 국제 곡물가격 폭등이 전쟁에서 비롯된 것임에 관점을 달리해 다시금 좀 더 철저한 대비를 하라는 주문이 사방에서 쏟아진다. 그렇지만 이 목소리도 과연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그 대비로 지금 당장 우리 밀 소비에 적극 나설까?
필자는 이 물음에 사실 다소 회의적이다. 이 국제 곡물가 폭등은 중요 뉴스거리가 돼 여러 논자들의 논의주제로 자리하다 수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왜? 농업·농촌·농민 그리고 이와 관련한 국가 지속성에 대해 국가가 침묵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농촌현장이 열 집 중 한두 집은 빈 집인 것이 보통이고, 그 나머지도 청년이라고 찾아볼 수 없고, 거기에 80대 이상의 고령이 즐비하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 농촌이 망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식탁 맞은편에 놓인 TV 속 뉴스에서 국제 곡물가격 인상 소식을 들으며, 수입 밀로 가득한 풍족한 밥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풍족함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 필자는 다시 묻는다. 식량주권 문제는 우리 밥상의 양과 질 이상의 내용을 담아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의 농업·농촌·농민 문제의 수렴과 함께 이의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그 기반에서 다시 식량주권 문제를 살펴야 한다. 이 제안도 쉬 받아들여질 것 같지가 않다. 당장 정책 관료들이 모두 도시 사람이다. '나도 농민의 아들이다'조차도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흙과 물을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상태의 대학생 상당수가 도시 출신이라는 점을 상기해봐야 한다. 농업과 먹을거리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정책 입안자와 당대와 미래의 주역이 될 청년들의 다수인 세상이다. 이들을 일깨울 과거의 농활 이상의 정규 교육 프로그램을 사회화시켜 농업과 식량 감수성을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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