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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를 추도하며]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

[김지하를 추도하며] 9

 

 

 

"하느님!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시편 130,4)

우리는 오늘 이곳 천도교당에서 김지하 시인을 기리며 인내천(人乃天)의 가르침을 되새깁니다.

저는 1970년 6월 로마 유학시절, 노동신문에 실린 '오적'을 읽었습니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고발한 판소리 가락의 이 담시는 힘 있고 흥이 넘친 그러나 무섭고 날카로운 예언자적 고발 문학이기도 했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우리는 조국과 하나된 마음으로 이 담시를 판소리 음률에 맞추어 크게 읊으며 기도 했습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지학순 주교님과 함께 우리 사제들의 귀에 익은 김지하 시인, 1975년 2월 15일 구속 집행정지로 석방된 그는 응암동 성당으로 저를 찾아 왔습니다. 첫인사는 "아니, 신부님, 이렇게 작으신 분이셨어요? 신문 사진을 통해서는 굉장히 키 큰 분 인줄 알았는데 신기하네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그해 3월 13일에 '고행 1974'로 다시 구속되었습니다. 

4월 어느 날 윤형중 신부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오전에 한 출소자가 갖고 온 김지하 시인의 편지를 제게 주셨습니다.  

"그의 양심선언입니다." 

그리고 그를 사형에 처하려는 박정희정권의 음모를 감지한 문인들과 우리 사제단은 힘을 모아 "김지하 문학의 밤"을 개최하면서 그의 석방을 염원했습니다. 그 후 김 시인의 어머니는 자주 성당을 찾아오셔서 함께 기도하고 어느 날에는 저의 어머니와 함께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김 시인 어머니의 유머 감각과 순발력에서 저는 그의 천재성이 모친으로부터 연유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저도 서대문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어느 날 밤 김 시인이 제게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신부님, 반갑습니다. 기도하시면서 운동도 많이 하세요. 앉아만 계시면 치질 걸릴 위험이 있으니 꼭 담요로 방석을 만들어 앉고, 방에서도 매일 적어도 500번 이상 제자리에서 뛰십시오. 건강을 잘 챙기셔야 합니다!"

두어 달 뒤에 우리 재판이 시작되었을 때 변호사들의 접견이 이루어지면서 주고받은 소식은 박정희 정권이 사제들을 석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겁니다. 이때 김시인은 제게 두 번째로 비둘기를 날려 보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들을 분리해 석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데 절대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이곳이 바로 지금 사제들이 계셔야 할 곳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기십시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 내 주어라.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를 같이 가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라.'"(마태오 5:40-42) 

저는 눈감고 기도했습니다. 본능적으로는 나가고 싶은데 그가 제시한 성경 말씀은 바로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하느님의 명령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와 감옥에서 나눈 신앙과 우정 그리고 고난의 체험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1991년 5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 라는 그의 거친 왜침은 민주시민과의 결별 선언이었습니다. 이에 김형수 시인은 "젊은 벗이 김지하에게 답한다!"는 글로 그를 엄혹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두 분의 글은 각 대학마다 대자보로 게시되었습니다. 매우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뒤 1993년 9월에 그는 장위동 성당으로 저를 찾아와 자신의 심적 고통과 고민을 털어 놓았고, 우리는 증산교 등 새로운 종교와 생명사상 등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말했습니다. 그 날 저는 그에게 종교 다원주의 등 당대 새로운 신학 사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제가 지니고 있던 여러 권의 책도 건네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너무 다른 길로 멀리 갔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저는 헤겔의 정반합 원리를 기초로 김지하의 삶을 다음과 같이 종합합니다. 

명제 : 우리는 30대 청년 시인 김지하를 마음에 품고 예찬하며 기립니다. 

반명제 : 후반기의 김지하, 그 일탈과 변절을 단호하게 꾸짖고 도려냅니다. 

종합 : 죽음을 통해 이제 그가 신의 반열에 들었으니, 청년 김지하의 삶과 정신을 추출해 그의 부활을 꿈꾸며 민족공동체의 일치와 희망을 확인합니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 진 것은 다시 이루어 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코헬렛 1:9-10)

하느님, 저희는 모두 죄인입니다. 저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김지하의 모든 허물과 잘못도 용서해주소서.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이제 그는 죽음을 통해 우리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사오니, 사랑하는 모친과 함께 영생을 누리며 민족공동체 모두를 위한 천상 전달자가 되게 하소서. 성령 안에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2022.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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