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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도 없이... 윤석열정부 노동정책 끼워넣기는 국민 '기망'

[주장]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안, 과로 유발하고 공짜노동 증가시킬 우려 있어

22.06.25 19:51l최종 업데이트 22.06.25 19:51l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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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유연화 방안을 발표하였고, 주요 언론이 이를 다루면서 근로시간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가 주목 받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발표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면,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하는 방안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근로시간 52시간 상한제를 폐지하는 방안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방안 ▲연장근로를 한 후 이를 수당으로 받지 않고 저축계좌에 넣었다가 미래에 휴가로 쓰는 근로시간저축방안 등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내용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 때부터 언급되어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황당한 것은 이전까지 전혀 논의되지 않았던 것이 하나 새롭게 추가된 것인데 바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1주에서 한 달로 연장하는 방안이다.

현재는 일주일에 12시간까지만 연장근로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를 한 달로 정산하게 되면 12시간×4주, 즉 48시간을 한 주에 몰아서 연장근로로 쓸 수 있게 된다. 적어도 한 주에 88시간을 몰아서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일터와 노동자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기에 주요 언론들은 고용노동부 발표 이후 앞 다퉈 그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논의 없는 정책 끼워넣기 발표는 '기망' 이번 고용노동부의 공식 발표는 두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전형적인 정책 끼워 넣기이다.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가 모두 나쁘고 잘못된 것은 아니다. 시차출근제처럼 노동자의 일-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다. 또한 정부 말대로 다양한 근로시간제도가 있으므로 필요하면 노사합의를 거쳐 추진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는 법이다.


이번 발표에 포함된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1주에서 한 달로 확대하는 안은 가벼운 정책이 아님에도 그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다가 불쑥 다른 것들과 함께 끼워 넣어 발표한 것은 국민을 기망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정부가 제시한 다양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 모두 토론이 필요하지만 주 최대 88시간 또는 주 92시간까지 근로가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는 특히 많은 검토가 필요한데,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은 채 슬그머니 끼워 넣은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은근슬쩍 정책 끼워넣기는 오랜 만에 목격한 것인데, 실은 보수정권 때마다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고 그 때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불과 5년 전 박근혜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의 사회적 대타협 합의결과를 일부분만 왜곡, 해석하여 저성과자 퇴출과 공공기관 성과급제를 도입하려고 했다가 큰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또 하나,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노사합의를 통해 개선할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발표는 역시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발상이다. 노사합의를 하려면 노동조합 가입 대상의 과반수이상으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거나 근로자 대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은 14.5%에 불과하고 근로자대표제도는 아예 없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에서는 노사합의를 통해 스스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선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85.5%의 기업들은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그렇게 될 경우 애꿎은 노동자만 피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자대표 제도부터 입법화하고 차분한 논의과정을 거쳐 이해당사자 간의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

과로 유발과 노동권 침해 문제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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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주단위에서 월단위로 확대하는 것을 포함하여 발표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의 쟁점을 살펴보면, 첫째 '과로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연장근로 관리단위 확대, 근로시간저축계좌 활용, 선택적 근로시간 정산기간 확대, 스타트업 연장근로시간 상한 폐지 등 이 모든 제도의 공통점은 짧은 기간에 몰아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근로시간을 주 단위로 정해 놓은 것은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특정한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심지어 유럽 국가들은 주 단위 근로시간 이외에 1일 동안 일할 수 있는 최대 근로시간도 정해 놓고 있으며 일과 일 사이에 11시간 휴식시간을 준수하도록 설계해 놓았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노동자의 몸은 특정 주에 과도하게 일을 하게 되면 손상되고,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목숨까지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과로에 대한 방지 없이 근로시간만 유연하게 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둘째, 정부의 설계대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가 도입되면 실소득이 줄어들고 '공짜 노동'이 늘어날 수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임금체계는 크게 기본급과 복리후생성 수당 그리고 연장근로수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부터 기본급을 늘리기보다 연장근로수당을 통해 더 많이 일하면 임금 총액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임금체계를 설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의 필요에 의해 유연하게 일할 경우 그때마다 발생하게 되는 연장근로수당이 줄어들게 된다. 더구나 근로시간저축계좌에 넣어두는 휴가마저 제 때 쓰지 못한다면 일은 일대로 몰아서 하고, 실소득은 줄어들며 휴가는 제대로 쓰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실제 우리나라 노동자의 40%가량은 연차휴가를 필요한 때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스타트업 등 IT업계 노동자의 경우 근로시간 상한 제도를 폐지하고,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아예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노동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 등 스타트업의 현실을 고려하여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는 있으나 사용자의 요청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부가 근로시간 상한 예외를 적용시키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정부가 사용자의 입장만 대변하게 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당사자 간 충분한 협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고소득 전문직의 연장근무수당 폐지도 누가 얼마나 벌어야 전문직 고소득자인지가 모호하여 결국 현장의 갈등만 불러올 것이다.

기업 편의가 아니라 노동자 위한 정책 만들어야

그렇다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도 부족하고 과로와 실소득의 감소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뻔한 근로시간 유연화 제도를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하나는 기업의 편의를 과도하게 배려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의 결과로 보인다.

원래 근로시간 유연화는 주4일제와 같은 총근로시간의 감소와 함께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근로시간 총량을 줄이는 대신 그 안에서 활용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노사의 양보를 전제로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의 논의 방향은 기업의 오랜 숙원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모양새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업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어려 차례 했고, '120시간 노동'도 같은 배경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번 근로시간 유연화 계획은 대통령의 이러한 철학을 너무 살뜰하게 챙긴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발표 이후 정작 대통령은 정부의 최종적인 결과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아마도 발표 이후 성난 민심을 살핀 행동일 것이다. 부디 대통령께서는 본인 말대로 대통령을 처음 해보는 것이니 과거를 되풀이 하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 정책을 챙기는 관료들도 대통령만 쳐다보지 말고, 한 푼 두 푼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를 묵묵히 일하는 노동자를 생각하면서 정도(正道)의 행정을 펼치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흥준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이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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